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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2회 [1부] 2화. 주권의 목적지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08 | 회차평점 0 0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에게는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내 오랜 소망 중 하나는 민주정의 기초석이 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시민들에게 왕관을 돌려줘야 해.’

 

 

 

 

 

나는 나의 시대를 끝으로 강하고 지혜로운 철인이 지배하는 시대를 접고 생명력 넘치는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키고 싶었다.

 

 

마치 좁고 자그마한 알껍데기를 깨트리고 아기새가 부화하듯,

 

 

인류가 자신을 가두던 한계의 틀에서 벗어나, 유년기를 졸업하는 일.

 

 

내게는 그것을 이뤄내고자 하는 간절히 바램이 있었다.

 

 

 

 

 

피지배자들에 의한 자율적인 통치.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그런 개혁이 알아서 발생하게 될까?

 

 

여기에 대해서는 나는 회의적이었다.

 

 

과연 ‘올바른 민주주의 질서의 탄생’이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필연일지 아니면 신의 전적인 개입을 필요로 하는 ‘당연치 않은 은혜’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언젠가 그날이 이른다면 그게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으면 했다.

 

 

나는 나를 마지막으로 왕의 시대를 박수치며 내보내는 기쁨을 보기를 소원했다.

 

 

 

 

 

어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세상의 정점에 설 자가 아니던가요?”

 

 

“절대 권력의 소유자가 될 운명의 사나이가 아닌가요?”

 

 

“왜 굳이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미래를 선택합니까?”

 

 

이렇게 말할 이도 있을 테고.

 

 

“위대한 자가 다스리는 편이 어차피 유익이지 않습니까?”

 

 

이런 반론도 있으리라.

 

 

 

 

 

또한 누군가는 “당신의 꿈은 인류 역사의 실질적 현실성과 위배되는 이상주의에 불과합니다” 라고 말하며 비판하리라.

 

 

 

 

 

후자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자면 일정 부분은 옳은 말이었다.

 

 

공화정을 성취해보려던 인간의 시도는 역사속에서 매번 실패했었다.

 

 

로마도, 그리스도, 건전한 포부로 시작했으나 독재정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처럼 협소한 세상에서는 민주정의 소꿉놀이가 허락되었다.

 

 

하지만 사회 규모가 커지고 한 세계의 지평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면 그때부터는 중앙집권의 질서가 필연적으로 보편화되고 정당화된다.

 

 

강력한 군주의 권세 없이는 복잡다단한 거대 사회를 정돈된 방향으로 이끌지도, 장기적으로 안정화하지도 못할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꿈꾸고 소망했다.

 

 

그 소망에는 굳이 복잡한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인간에게는 존엄성이 있으며 불변의 가치와 자유의지가 있다.’

 

 

 

 

 

이 진리를 나의 조상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것을 조금만 달리 생각한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에게는 누구나 거룩하게 세상을 다스릴 자격이 있다.”

 

 

 

 

 

창조주께서 부여하신 자연적인 권리.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라]

 

 

이는 극소수의 선택받은 무리가 아닌, 만민에게 본질적으로 허락된 자격이다.

 

 

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존엄성.

 

 

그 존엄성의 본질에서 ‘다스릴 권세’를 어찌 빼놓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권력이란 혈통이 아닌 인간됨 그 자체에 뿌리를 둘 때 가장 가치 있게 빛나는 법이라고 믿었다.

 

 

 

 

 

사실 내 가문이 가르치는 교훈 또한 내 꿈과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주보다는 시민들을, 시민들보다는 그들을 창조하신 분을 우선시하라’.

 

 

이것은 모든 세대에 걸쳐 우리 가문에서 배출한 통치자의 서약이었다.

 

 

참으로 위대한 가르침이 아니던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우리는 자유롭지만 동시에 묶인 사람들이란다.”

 

 

아버지는 종종 우리를 ‘신을 위해 결박된 자’가 되었던 바울에 비유하였다.

 

 

위대한 가치를 위해 로마의 죄수가 되었던 그 사도와 우리 가문은 비슷했다.

 

 

다만 우리는 쇠로 만든 사슬이 아닌 ‘언약’이라는 사슬에 묶인 종들이었다.

 

 

 

 

 

황가의 군주들을 속박해온 언약은 이와 같이 가르쳤다.

 

 

우리가 그저 ‘종으로서 다스리며, 왕으로서 섬기는’ 서번트 로드에 불과함을.

 

 

또한 신이 인간에게 맡긴 통치권을 시민들로부터 잠시 부여받은, 이차 대리자의 직위에 있음을 상기시켜 늘 우리를 겸손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가는 그 권한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기를 망설여왔다.

 

 

여러 현실적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권력의 이양을 미루었다.

 

 

현실적으로 취하기 힘든 선택이기는 했다.

 

 

당장에 인류가 유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탓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 내 조상들의 마음 속에 은근한 권력욕 내지는 선민 의식이 단 한 움큼도 숨어있지 않았을까?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겠는가?

 

 

그 엄중한 질문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양심 앞에서 감히 당당해질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나의 치기 어린 소망은 도덕적인 책무감과 섞여 더욱 깊어져만 갔다.

 

 

 

 

 

 

 

 

 

 

 

*

 

 

 

 

 

아이 시절의 내가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뇌리에 자주 새겼던 주제 역시 ‘권력의 환원과 복귀’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황태자비로 불림 받기를 내켜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차기 황후보다는 온화하고 온건한 개혁가에 가까운 여인이었다.

 

 

만일 사랑하는 남편이 패권국의 미래를 이끌 황태자가 아니었다면 그녀 스스로 세상을 일깨우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려낸 이상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주권이 환원된 세상, 곧 국민이 스스로의 주권을 책임 있게 감당해내고 연합하여 역량을 발휘하는 시대였다.

 

 

사실 그 자체로는 아주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근현대사만 봐도 우리의 옛 친척인 유럽 대륙은 이 이상을 이루겠다는 미명 하에 다양한 형태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로 증명되었다.

 

 

참된 평등은 요원했고, 왕을 몰아냈더니 매번 왕보다 더 강력하고 지독한 독재자들과 시스템이 세워졌으며 열망은 무참히 배신당하고 짓밟혔다.

 

 

파시즘의 제국들도, 공산주의 제국도, 모두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만민이 인종과 성별과 국경의 장애물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며 공감하는 세상.

 

 

신대륙으로 이민해온 여러 이민족 일족들의 혼합으로 태어났던 그녀는 굳이 권력이나 권세에 힘입지 않고도 인간 스스로 태생적인 저주인 증오의 연쇄를 극복해내는 미래를 소망했다.

 

 

 

 

 

“그래, 내 욕심에 불과한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소망을 멈추는 순간 우리 인간은 헤엄치기를 멈춘 물고기가 죽듯 영혼의 생명력을 잃어버려.”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내게 이런 넋두리를 하곤 했다.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이상을 현실로 가져올 힘이 없었다.

 

 

구체적인 철학적 전략도, 지혜로 쌓은 청사진도. 실질적인 견인력 없이 꿈만 컸기에 누군가에게서는 몽상가라고 비판받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적어도 자기 힘이 닿지 않는 부분에서는 다른 이의 힘을 빌릴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그녀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도덕적으로 실패하지 않고 승리의 행렬을 이어나갔던 우리 가문을 주목했다.

 

 

황가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니, 명예와 권력과 영향력이니 하는 건 그녀에겐 부차적인 문제였다.

 

 

어머니는 황가의 배후의 영적 영향력과 그 무형의 힘의 본질에 집중했다.

 

 

 

 

 

“어쩌면 이 가문은 인류를 위대하게 이끌 무형의 보화를 꽁꽁 감춰둔 채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네.”

 

 

“보물이요?”

 

 

“아직 우리 아들은 다 이해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곧 아버지가 네게 가르쳐주실 거야. 그이의 가문이 소유한 진짜 보배는 제국도, 권력도, 부도 아니란다.”

 

 

내가 그 보물의 정체가 ‘정신’과 ‘가치관’임을 깨닫는 것은 몇 년 후의 일이었다.

 

 

 

 

 

어쨌건 그녀의 혁명적인 지론은 다음과 같았다.

 

 

‘보편화되지 못한 축복에는 그 고귀함에 한계가 있다.’

 

 

일견 옳은 말이었다.

 

 

신의 말씀도, 복음도, 진리도, 어느 한 혈통 속에만 가둬둬서는 곤란하지.

 

 

바로 그런 순혈주의의 폐해 때문에 우리 이전에 신과 언약을 맺었던 그 민족이 흩어짐을 당한 게 아니었던가.

 

 

 

 

 

결론적으로 어머니는 우리 가문만이 대대로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의 원리를 파헤쳐 응용하고 가공함으로써 모든 민족이 보편적으로 수입해올 수 있는, 양산형의 보화를 생성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온전해진 형태의 안정화된 민주주의였다.

 

 

타락해버리기 쉬운 인민민주주의나 민중적 우중정치나 과격한 혁명주의가 아닌, 인류보편적 가치와 자연계 본연의 권리와 의무를 성실히 수호하는 개혁 시스템.

 

 

아마 그녀가 바란 목표치가 그것이었을 테고, 나는 그녀 사후로 그 유지를 이어받아 내 소망으로 취하였다.

 

 

 

 

 

다만 당시에는 끝내 이룰 능력과 지혜가 없었던 그녀는 다음 세대를 선택했다.

 

 

그 소망을 전적으로 나에게 이식해주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아들의 지혜와 능력이 전대 황제들을 아득히 초월함을 알았던 그녀는 자기 세대에 꿈을 이루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내게 마음을 전해주었다.

 

 

 

 

 

언뜻 제삼자가 보면 다섯에 갓 이른 아이에게 철학적이고 깊은 사색을 유업으로 물려준다는 것이 우스꽝스럽게 보였으리라.

 

 

어머니는 내가 알아듣든 그러지 못하든 신경쓰지 않는 듯한 태도로 늘 내게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의 깊이로 전해주었다.

 

 

어쩌면 그녀 나름의 고민을 털어놓는 넋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이른 시점에 정신적 성숙을 이룬 나는 그녀의 전언들을 어느 정도는 소화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준이 안 되는 말들의 경우 모조리 암기하여 머릿속에 반영구적으로 새겼고 훗날 자라난 뒤 그것을 깨우쳐 납득하였다.

 

 

 

 

 

어쨌건 어머니는 다음 세대에 나무를 심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안개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셨다.

 

 

그녀는 한때 자신과 약간의 공통분모를 소유했으나 방식과 사상과 과격성의 차이로 인해 갈라졌던 무리의 영향력에 의해 희생으로 내몰리셨다.

 

 

뒷날 기회가 된다면 이 일들에 대해 자세히 논하겠다.

 

 

 

 

 

나는 비단 복수심 때문이 아닌, 사명 의식과 포부와 비전 때문에라도 그녀의 유지를 잇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방식대로 동일하게 답습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나의 지혜와 경험을 동원해 사색하고 연구하였다.

 

 

십대 시절 내내 나는 여러 분야의 학문을 섭렵하면서 틈틈이 내가 책임져야 할 제국과 인류의 미래를 탐구했다.

 

 

어떻게 하면 현 세상을 옥죄는 각종 문제들을 극복할수 있을까?

 

 

사람들을 진정 하나로 모으기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번영과 발전을 영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길은?

 

 

이런 질문들에 더해 나에게는 더 무거운 숙제가 얹혀졌다.

 

 

나 이후의 시대를 개막하기 위해서 어떤 과업을 이뤄야 하는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내게 주어진 권력과 능력을 모두 활용해 인류 고통의 큰 축들을 해결하여 나은 시대를 연 뒤 세상을 안정화시키고 그 뒤에 순차적으로 안정적인 절차를 거쳐 공화정 시스템을 남긴 뒤 영면에 든다.

 

 

이것이 철 없고 치기 어리던 십대 시절의 비전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은 물론 신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영역의 지식들을 성실히 습득하고 곱씹어 내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책이라는 우물에 갇힌 지식을 넓은 공간으로 끌어내어 실험하고 사색했다.

 

 

 

 

 

나는 여러 버전의 시뮬레이션을 사고 실험 속에서 가동하였다.

 

 

인류를 위한 권력 분립 체계와 행정 체계는 어떤 식으로 정립되어야 하는가.

 

 

외부의 적과 내부의 분열을 제어하기 위한 안전 장치는?

 

 

헌정 체계와 그 운영 시스템을 어찌 구축해야 하며 그 속에 어떤 스피릿을 녹여내야 하는가?

 

 

연합이 구축되는 순서와 단위는 어느 정도 규모와 수준이 적정한가?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면 어떤 체계가 갖춰져야 하는가?

 

 

권력의 흐름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대단히 어려운 질문들의 연속이었다.

 

 

인류사와 인간의 본질을 꿰뚫지 않고는 해답을 내릴 수 없는 난제들이었다.

 

 

숱한 고민을 했음에도 내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들이 많았다.

 

 

 

 

 

더욱이 이 모든 탁상공론을 현실에서 실험해보기에도 한계가 뚜렷했다.

 

 

수십 가지의 청사진들은 세웠으나 무엇 하나 입증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마냥 정치적 사색과만 씨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훌륭하고 완벽한 군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공부할 것들이 많았고 단련할 것도 많았으며 경험해야 하는 체험도 많았으니까.

 

 

그렇게 이론의 한계를 절감한 나는 어른이 되어 현실 속에서 문제들과 씨름할 날을 기다리며 인내의 태도로 잠시 마음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뇌하며 치열하게 사색했던 그 시절은 지금 평가해보건대 오늘의 나를 빚는 데 있어서 한 축의 밑거름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

 

 

 

 

 

자상하신 내 아버지는 나의 학업 성취에 관심이 많으셨다.

 

 

당시 황태자셨던 그분은 종종 바쁜 정무 가운데서도 나를 손수 가르치기도 했고 토론을 나누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의 나는 고등 학문, 풀리지 않은 인류사의 난제, 정치, 경제, 예술, 신학, 과학, 산업, 의학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며 아버지와 자유로이 이야기 나누고 토론하고 생각을 교류하였다.

 

 

 

 

 

자연히 제국의 장래를 향한 내 청사진 역시 종종 간접적으로 토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이 분야에 관해 내 생각들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아무래도 우리 가문이 의지해온 전통의 틀을 깨트리겠다는 소망이었으니까.

 

 

다행히 생각이 깊으셨던 아버지는 아이의 자유로운 사고를 드넓은 마음으로 수용하셨다.

 

 

 

 

 

“세계의 근본 체계를 변화시킨다라.”

 

 

 

 

 

그분에게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은연 중에 있었던 것 같다.

 

 

그분은 친절하게 내 말을 듣고 또 여러 좋은 코멘트를 나눠주셨다.

 

 

심지어 내가 기획하고 구축한 가상의 차기 정치 시스템들과 그 헌정 체계 중 일부를 나름 긍정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며 평가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비전들의 한계를 냉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셨다.

 

 

그는 왜 오늘날의 세상이 공화정과 민주적 체제를 이루기에는 너무 멀리 나와버렸는지를 가르쳐주셨다.

 

 

 

 

 

“아들아, 너는 영리하니 굳이 지적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겠지? 민중에게 통치권이라는 책임을 영구적으로 맡길 때 발생할 결정적인 리스크를 말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조금 실망감에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어리석은 자들의 속임수와 기만으로 인한 민중의 휘둘림입니다.”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구나.”

 

 

 

 

 

아버지는 당시 그 현실을 매일 마주하며 피부로 그 위협을 느끼는 중이었다.

 

 

“선전 선동을 통해 다수를 혹세무민하여 끌어들이려는 세력이 실제로 존재한단다.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사상을 내세워 나타나곤 했지.”

 

 

“하지만 사람들을 올바르게 가르쳐 그들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희망적으로 바라본다면 그렇지. 하지만 인간은 본래 그들 자신이 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리석단다. 자신이 바로 판단한다고 믿는 와중에도 시나브로 속임수에 휘둘리기 쉽지.”

 

 

 

 

 

개인도 그러려니와 군중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개개인의 지혜 자체도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나마 존재하는 지혜조차도 무리 속에 들어가 섞이게 되면 군중심리에 의해 마비되기 쉽지.”

 

 

 

 

 

인간 본연의 권력욕과 단기안적인 어리석은 시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수의 무리가 내세우는 프로파간다와 교활한 전술에 취약하게 만든다.

 

 

그 틈을 타 속임수의 권세가 힘을 얻으면 그 광기는 눈덩어처럼 불어나 더욱 많은 이를 불길 속에 끌어당긴다.

 

 

이것이 모든 형태의 민주적 실험이 실패로 귀결된 이유였다.

 

 

 

 

 

“아들아, 네가 고민하여 창안하고 구상한 법률, 헌법, 균형 견제 시스템, 연방 및 연합식 행정 구성, 권한 분립 원리들, 구체적이고 체계적이구나.”

 

 

“과찬이세요, 아버지.”

 

 

“아니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어린 소년이 생각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고차원적이고 시대를 앞서나가는구나.”

 

 

 

 

 

아버지는 한편으로는 나를 온전히 인정해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에 우리 나라의 권역이 신대륙 정도로만 한정되었더라면 몇십 년 정도만 시행착오를 거치면 네 비전들도 충분히 정착될 수도 있겠어. 적어도 네가 생각한 모델들 중 서너 가지 이상은 실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겠지.”

 

 

 

 

 

북과 남의 두 개의 신대륙.

 

 

첫 번째 세계 대전에서 승전함으로써 획득한 영토.

 

 

내 증조 할아버지가 황제로 재위하셨던 시절, 즉 세계 2차 대전이 벌어지기 이전만 해도 우리의 권역은 딱 그 정도 범위로 제한되어 있었다.

 

 

굳이 추가적인 몫을 말하자면 남아프리카의 일부와 인도 정도였다.

 

 

내 조국은 혹자의 비뚤어진 비판과 달리 이름은 제국이면서도 제국주의와는 궤도를 달리 하였으니까.

 

 

 

 

 

아버지의 경험과 지혜와 시뮬레이션 대로라면 내가 상상한 계책들은 대륙 두 개 정도에서 적용하기 합당한 수준의 연방제였다.

 

 

그 마저도 현실적인 난점을 하나하나 극복해야 할 것을 고려하면 좀 더 시간이 걸리긴 하리라.

 

 

 

 

 

“하지만 우리의 영토는 적정 한계선을 넘어 버렸지. 이미 그 이전으로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고.”

 

 

 

 

 

우리의 팽창은 비가역적이었다.

 

 

당시 나의 조국은 신대륙에 더해 두 개의 구대륙마저 흡수한 상태였다.

 

 

그리고 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한창 힘겹게 극복하던 참이었다.

 

 

설령 네 대륙의 민족과 문화과 문명의 갭을 어느 정도 봉합하고 통합한다 할지라도 이 거대한 영토를 공화정만으로 아우르기란 무리였다.

 

 

분열과 파국과 혼란이 임할 미래는 불을 보듯 뻔했다.

 

 

 

 

 

“돌이킬 수 없다……. 그렇네요. 사실상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겠죠.”

 

 

 

 

 

내 한탄에는 ‘강한 철인의 지배’를 하는 수 없이 긍정하는 자신에 대한 안쓰러운 자조가 섞여 들었다.

 

 

 

 

 

“자만하려는 생각은 아니지만, 강력한 권력과 탁월한 능력, 그리고 그것을 통제할 윤리적 규율, 그 모든 것을 갖춘 우리의 유산 외에는 대안책이 없지. 안타깝게도 이는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유산이니 모방하거나 양산하고 싶어도 불가능하고.”

 

 

 

 

 

아버지의 말씀에 그 보배를 일반화하여 배포하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문득 들었다.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어머니?’

 

 

 

 

 

솔직히 당장 내가 맡겨진 책무부터 잘 감당할 고민을 하기에도 벅찼다.

 

 

 

 

 

무엇보다 더 큰 걸림돌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원동력의 필요였다.

 

 

내가 그 문제를 고민하던 시절, 세상은 두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쪽 날개인 우리의 주적이었던 반대편 날개의 속성이 문제였다.

 

 

 

 

 

“제국과 달리 연방은 도덕적 제약이나 인륜이라는 제한이 없지.”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도 이용하는 악독한 집산 체제였다.

 

 

 

 

 

“우리는 괴물을 상대하는 중이지. 힘 없이는 방어조차 불가능한 괴물을.”

 

 

아버지는 주적의 존재를 잊지 않도록 나를 깨우치고 상기시켰다.

 

 

 

 

 

‘역사의 왼쪽 날개.’

 

 

그런 자를 상대로 맞서려면 강한 국력과 힘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특별히 질서와 윤리와 덕과 선을 기치로 내세우는 우리는 힘 없이는 불리하다.

 

 

저들처럼 반칙을 쓰지 않고도 저들을 맞상대하려면 최소 몇 배 이상 강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적어도 열 배 이상은 뛰어나야 비로소 균형 유지가 허락되리라.

 

 

 

 

 

안타깝게도 제국의 주축인 황가가 스스로 리더십과 정당성을 순순히 내려놓아버리면 당시로서는 힘의 균형이 성립될 수 없었다.

 

 

거대한 위협에 맞서려면 강력한 지휘력이 필요한 법이다.

 

 

우중 정치로 이어지기 쉬운 도전은 그런 상황에서 자충수였다.

 

 

물론 민주적인 질서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뒤 국가적 역량에 있어서 우위를 갖추는 최상의 시나리오도 분명 가능성이 존재하겠지만, 마냥 낙관적인 확률에 배팅하기에는 불확실성이 컸다.

 

 

 

 

 

‘내가 현실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결국, 나는 쓰라린 아쉬움을 안은 채 나의 강렬하면서도 순수한 비전을 마음 속 깊은 곳, 무의식의 바다 속에 숨겨둔 채 고민을 보류하였다.

 

 

이상적인 생각만으로 계획을 펼쳐나가기에는 배울 일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배우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실전을 연습했다.

 

 

 

 

 

‘우선은 말만 떠들지 말고 실질적인 힘을 갖추자.’

 

 

 

 

 

또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능력을 흡수하였으며 내 사람들을 만들어 그들을 공든탑처럼 쌓아나갔다.

 

 

그렇게 바쁘디 바쁜 청소년기가 지나갔고 그 와중에 오랜 소망은 잊혀졌다.

 

 

 

 

 

 

 

 

 

 

 

 

 

 

*

 

 

 

 

 

이후 내가 열아홉 살 후반이 될쯤, 모두가 위태롭다고 우려했던 세계 양대 산맥의 평화적 공존은 깨어졌다.

 

 

애당초 냉전이라는 이름의 살얼음판이 그 전부터 내내 지속되었으니 사실 평화가 깨졌다는 표현보다는 터질 일이 터졌다는 표현이 옳았다.

 

 

많은 이들이 공멸을 예감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병기들이 각 분야에서 범람한 탓이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그런대로 잘 피해갔으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손실을 도시 몇 개 정도로 줄인 뒤 승전의 영광을 우리 몫으로 거두어갔다.

 

 

자유 세계 멸망을 위해 모든 카드를 쏟아부으며 사활을 건 공산주의 세계의 발악은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그들은 패배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우리는 세계 질서를 손에 넣었다.

 

 

 

 

 

이러한 상황이 이르자 전에 내가 묻어두었던 비전을 다시 고민해야 할 당위성이 생겨났다.

 

 

 

 

 

이미 전쟁 종료 1년 전부터 제국령의 일부를 맡은 통치자로서 데뷔한 나는 전후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명을 받아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바쁘게 기반을 다져나가는 와중에도 나는 눈앞의 노력에만 급급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장기적 고민도 병행하였다.

 

 

 

 

 

 

 

 

‘과연 내가 맡을 세상은 어떤 운명 앞에 처해질 것인가?’

 

 

 

 

 

나는 어느덧 큰 위협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 위협이란 크게 두 가지 차원의 실질적 문제로 나눠졌다.

 

 

 

 

 

첫 번째는 알렉시스 황태자라는 존재 자체의 위험성이었다.

 

 

나는 어쩌면 궁극적으로는 적대 세력이었던 연방의 잔당이나 기타 반동 세력의 잔당보다도 나라는 존재가 장기적으로는 제국에게 더 큰 부담 내지는 두려움이 될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모든 대적들을 이겨내고 인간의 충성심을 독식한 상태.

 

 

그 상태에 도달했을 때 과연 나 자신을 온전하게 통제할 수 있을지 감히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인간은 무한한 권력 앞에서 타락한다.

 

 

과연 내 의지가 그 시험마저도 감당해낼 것인가?

 

 

만약에 그럴 도덕적 역량이 부족할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미리 조치를 준비해둘 필요성이 절실했다.

 

 

 

 

 

두 번째는 언약이라는 유산이 얼마나 효용성 있게 유지될지에 대한 실질적 걱정이었다.

 

 

전쟁 초반부에 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그것은 육체적인 부상이었는데, 이로 인해 나는 후사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후계자에 대한 찬란한 축복의 약속이 포함된 우리의 유산이 불확실성의 상태 속에 내던져진 셈이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축복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나라는 인간이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입증해주는 증거였다.

 

 

이제 황가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 규격의 개체를 배출했다.

 

 

그 이상의 진보는 물리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다음 대에는 어떤 일이 전개되리란 말인가.

 

 

이 질문은 나의 재능과 내 부상으로 인해 완벽히 오리무중에 던져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단기적으로는 훌륭한 왕이 되는 문제에 매진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나 이후의 시대에 대한 고민까지 다시금 재점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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