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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5회 [1부] 5화. 자색 눈의 지배자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6.10 | 회차평점 0 0

 

 

 

 

 

 

 

세계 중앙 화약고 지역에서 한창 분쟁 위에 분쟁이 일던 시절.

 

 

그 지방을 거닐거나 방문하는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교훈이 회자되었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거나 약해 보이는 인간이라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라.

 

 

심지어 노숙하는 걸인이나 무력한 어린아이일지라도.

 

 

 

 

 

대륙들의 중앙 교차로인 이 구역은 본래 그런 곳이었다.

 

 

배반과 속임수와 위장과 범죄가 범람하는 세상.

 

 

같은 종교권과 민족권 내에서도 분열과 반목을 일삼고 서로를 향한 적개심과 지배욕을 투사하였던 땅.

 

 

분파가 다른 무리끼리의 투쟁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고대 시절 명목상이나마 하나의 체제를 구축하였을 때도 그러하였거늘, 분열하여 여러 무리의 합집합으로 전락한 뒤로는 더욱 가관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강대한 신정제국(神政帝國)을 이루어 근동 전역을 호령하던 시절에는 힘과 공포에 의한 통일성 유지가 가능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때도 사랑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연합된 것이 아니었기에 파괴와 잔학과 배반과 증오의 연쇄는 끝없이 재생산되었다.

 

 

 

 

 

두 번째 세계 대전쟁을 통해 신정제국이 몰락한 뒤로는 해당 지역은 열강에 의해 갈기갈기 나뉘었다.

 

 

사분의 일은 서방 세력의 손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범 커뮤니스트 연방의 속국이 되긴 했는데 이때도 제대로 된 통제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악의적 반역과 쿠데타가 잦았으며 범죄 조직은 끝없이 양산되었고 사회 질서의 붕괴는 숱하게 벌어졌다.

 

 

지구의 두 양대산맥 세력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바빴기에 그들의 국경부에 자리한 애물단지인 근동 지역을 일일이 관리할 여유가 없었다.

 

 

덕분에 근동의 많은 구역의 치안과 행정이 무너졌고 광신도들과 원리주의자들이 민간인들을 억압하고 지배국에 반항해여 폭력과 테러를 주도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열강의 경쟁이 종료된 셋째 대전쟁 이후로 지구촌은 하나의 정부 아래 복속되었고 이제는 중앙 컨티넌트라 불리게 된 근동 역시 그러하였다.

 

 

유일극초강대국이자 사실상의 세계정부로 자리매김하게 된 지구 제국, 곧 신대륙의 패자는 이제 한때 문명의 발상지이자 인류의 시작점이요 배꼽이었던 서부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전역을 홀로 떠맡았다.

 

 

 

 

 

찬란한 문화와 문물의 기원이라는 명예는 옛말이었다.

 

 

이미 그곳은 어떤 나라도 감당하기 힘든 고역스러운 짐이 되어 있었다.

 

 

화약고로서의 속성은 고대에나 지금에나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냉혹하고 가혹한 종교의 영에 사로잡혔으며 그 가운데는 오로지 강압, 배격, 투쟁만 있었을뿐, 진정한 용서와 긍휼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배격과 반역의 영에 붙잡힌 사람들은 성정이 점차 강퍅해졌다.

 

 

이런 폭력성은 아버지 대에서 자녀 세대로 유산으로 전승되기를 거듭했다.

 

 

악의에 북받힌 영(靈)이 세대를 넘어 계승될수록 악랄함은 폭압적 학습과 훈육을 통해 더욱 자가재생산되었고 강화되었다.

 

 

 

 

 

오랜 수고에 힘입어 조금씩 악업이 청산되었다고는 하나 16년이란 세월은 수백년 동안 투쟁, 폭압, 정복, 말살을 자행하며 축적해온 지독한 얼룩의 여파를 온전히 씻어내기에는 부족했다.

 

 

 

 

 

소년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고 자랐다.

 

 

너무 일찍 여읜 탓에 부모라는 존재는 기억에조차 없었다.

 

 

소년을 양육하고 키운 건 과격파 자경단이었다.

 

 

 

 

 

이들은 말이 좋아 자경단을 자처했지 그 정체성은 범죄 집단에 가까웠다.

 

 

일단은 종교적 원리주의를 기치로 내건 여러 집단 중 하나이긴 했는데 반군 내지는 혁명단의 성격에 가깝기도 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정식 반군 내지는 의용군이라고 봐주기에는 지나치게 포부가 작은 삼류 오합지졸의 무리였고 이렇다할 구심점도 없는 잡범들이었다.

 

 

오히려 험악한 도적떼라고 분류해야 합당하리라.

 

 

테러리스트라고 불러주기에는 한끝 역량이 부족했고, 잡범이라 보기에는 잠정적인 폭발 위험을 내재한 위협적인 무리였다.

 

 

 

 

 

그런데 막상 원리주의를 내세우며 엄격한 규율로 구성원들을 옭아매었던 그들은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믿었다.

 

 

이웃 지역의 주민들의 눈에는 그저 불한당이요 위험분자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이런 배경에서 자라 침투와 배반을 당연한 임무처럼 행하도록 강요받은 소년에게 서방 세계에서 온 사람의 친절은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체험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안락한 기온의 넓은 공간에 머무르며 맛있는 음식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고 따스한 물로 몸을 말끔히 씻은 뒤 침대에 눕기까지, 이 모든 당연치 않은 대우를 누리는 와중에 소년의 마음은 심히 불편했다.

 

 

 

 

 

자신을 이렇게 대우하는 진짜 의도가 뭔지에 대한 의심.

 

 

낯선 사람이 내민 손에 대한 불안감.

 

 

잠깐의 꿈 같은 안락을 떠나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서방인을 만났다는 이유로 심문과 추궁을 당할 것이라는 예상.

 

 

어린 시절부터 심어진 뒤 지금껏 속에서 꿈틀거리는, 맹목적 증오심과 편견.

 

 

그 감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동반되는 본능적인 죄책감과 수치감.

 

 

 

 

 

이런 유쾌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켜 아이의 유약한 머리를 괴롭혔다.

 

 

 

 

 

 

 

 

 

 

 

*

 

 

 

 

 

전전긍긍하며 밤을 지세우다 깜빡 졸아 잠든 후 이른 아침 눈을 뜬 소년.

 

 

그는 거실에 나오자마자 어제 자신을 거둬준 아저씨와 마주쳤다.

 

 

아저씨는 편안한 실내복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으로도 자체적인 근사함과 존재감을 잔뜩 내뿜는 중이었다.

 

 

 

 

 

“편안히 잘 쉬었니?”

 

 

“…….”

 

 

 

 

 

아이는 대답 없이 꾸물거리며 고개만 아주 작게 살짝 흔들었다.

 

 

청년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를 식탁에 앉힌 후 가벼운 아침 식사를 마련했다.

 

 

어제와 달리 사용인들이나 가사용 로봇들의 도움 없이 직접 일하는 모습.

 

 

고귀하게 자라난 풍모인데도 손으로 일하는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아침 식사의 자리.

 

 

거듭된 친절한 대우가 긴장감의 분위기를 어제보다 누그러뜨린 것인지 둘은 서로의 통성명을 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샤디’라고 소개하였다.

 

 

 

 

 

“그래, 샤디. 다시 한번 반가워. 잘 부탁한다.”

 

 

“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능청스럽게 관계를 이어나갈 것을 가정하는 모습이 참으로 얄미우면서도 대단했다.

 

 

 

 

 

“아저씨가 어제 준 제안은 생각해보았니?”

 

 

“그게…….”

 

 

 

 

 

샤디의 눈이 여러 복잡한 고민들로 흔들리며 수심이 표정을 스멀스멀 삼키는 모양을 관찰한 남자는 미안해하며 손을 저었다.

 

 

 

 

 

“너무 다급하게 재촉했구나. 미안. 심경이 복잡했겠지.”

 

 

 

 

 

보랏빛 눈동자의 청년은 마치 아이의 마음을 손바닥 읽듯 보는 듯했다.

 

 

 

 

 

“부모님은 이 근방에 안 계시고?”

 

 

 

 

 

아이는 말없이 쓸쓸한 고갯짓으로 답했다.

 

 

 

 

 

“이런, 유감이구나.”

 

 

“동정해주실 필요 없어요.”

 

 

“순수한 인류애적 애정이라고 생각해주렴.”

 

 

 

 

 

남자가 샤디가 혈혈단신의 고아임을 확인한 이후 아이의 현 사정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마치 이미 많은 정보를 알아 더는 물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이곳에 언제까지 머무르실 생각이세요?”

 

 

“오늘 저녁에는 이동해야겠지. 장기간 파견을 오게 되었거든. 아버지께서 막중한 업무를 맡기셨어. 휴가가 끝나는 내일부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거야. 아마도 네가 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앞으로 다시 볼 기회가 없겠지.”

 

 

“파견이라면, 서방에서 임무를 받으신 거예요?”

 

 

“뭐, 그런 셈이지.”

 

 

 

 

 

확실히 아저씨의 이목구비나 색채나 풍채를 보면 북서부 컨티넌트 혹은 바다 너머의 땅에서 온 출신 같았다.

 

 

소문에 의하면 북반구 신대륙은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린다지.

 

 

그렇다면 아저씨는 아이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던 대전쟁을 통해 이 중앙 컨티넌트 전역을 접수했다던 제국의 본토 시민일 것이다.

 

 

 

 

 

비록 기본적으로는 점령지나 기존의 본토나 모든 주민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베푸는 게 제국의 법령이라지만, 어디 현실적 여건까지 100% 부합하겠는가.

 

 

암묵적인 심리적 장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나름의 선의를 베풀려 노력했다지만 여전히 점령지 주민의 다수는 불만족스러워 했고 여러 문화적, 배경적 차이로 인해 제국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두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로 많은 실책들을 범한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 과거 대전쟁으로 인해 근동 전역이 황폐화된 데에는 이들의 책임도 있었으니까.

 

 

 

 

 

‘푸른 눈의 인간들을 철저히 경계하고 배격해야 한다.’

 

 

 

 

 

이는 아이를 거둬준 무리를 비롯해 근동 거의 모든 극단적 반동 성향 단체들의 공통된 불문율이었다.

 

 

그들은 서방인들을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오랜 역사에 걸쳐 숙적이었던 유럽 대륙도 그리 여겼으나 근래 들어는 신대륙의 대제국을 더더욱 원수로 생각했다.

 

 

한때 영광스러웠던 역사를 꺾어 패배시켰던 장본인이자, 오늘의 점령자.

 

 

그런 주제에 현지 사람들을 해방하여 그 마음을 도둑질하는 데 능숙한 자들.

 

 

근동의 종교적 원리주의에 짙게 물든 자들은 서방 종교를 받아들인 동족의 배반자들을 미워하는 것만큼 서방의 세력도 혐오했다.

 

 

 

 

 

하지만 샤디에게는 과격한 신념이 없었다.

 

 

그에게는 당장 살아남는 것이 더 우선순위였다.

 

 

비록 악랄한 훈육과 율례의 잔재는 그의 뇌리에도 남았지만, 그럼에도 그 본성은 늘 한편에서는 자유를 갈구했다.

 

 

옛 관습이라는 주인에게 두려움으로 묶인 노예인지라 스스로 벗어날 용기는 내지도 못했지만.

 

 

 

 

 

‘저 사람은 정말로 나에게 보호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저 공수표만 남발하는 순진하고 무책임한 사람인가.

 

 

불안감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만일 이대로 허튼 수작을 꾀하다 자신의 몸에 심겨진 족쇄들을 통해 낌새를 눈치챈 어른들이 죄목을 뒤집어씌운다면?

 

 

자신은 범법을 행했다는 명목으로 재판조차도 없이 명예로운 처벌자들의 처분을 당하게 되리라.

 

 

 

 

 

그렇다고 저 사람에게 손을 대자니 그건 그것대로 불안했다.

 

 

이미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할 동족들에게 해악이 미치도록 한 전적도 많았고 서방인들을 정당하게 증오해야 한다는 종교적 가르침에 장기간 노출된 샤디.

 

 

그러나 일부 과격파 원리주의자들처럼 독립 운동을 빙자한 명예 살인을 행하기엔 양심으로나 용기로나 턱없이 연약했다.

 

 

 

 

 

“아!”

 

 

한참을 흔들리던 와중에 청년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혹시라도 날 해쳐야 하나 갈등된다면, 고민할 필요 없어.”

 

 

 

 

 

샤디의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넘어질뻔 했다.

 

 

철렁 내려앉은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는지 맥박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없이 사람 좋던 아저씨의 잘생긴 미소가 순간 두렵게 다가왔다.

 

 

 

 

 

“몰래 수색해서 미안한데 어제 네가 곤히 자는 사이에 몰래 네 소지품을 검사했어. 옷 속에 흉기와 테러 용도의 물품들이 있더라고. 위험도가 낮은 편이라 다행이었지. 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가짜로 바꿔치기 해뒀어.”

 

 

 

 

 

당황한 아이는 내의 속에 숨겨둔 접이식 칼을 더듬었다.

 

 

 

 

 

“행동 방식을 보아하니 널 부리는 단체는 블랙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할 삼류들로 보이더라고. 그렇다고 잡범들로 취급하기엔 죄질이 큰 무리들이지. 독립이니 하는 큰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것도 아닌 주제에 같은 민족을 향한 범죄는 꾸준히 저질러왔겠지.”

 

 

 

 

 

아이는 저항하거나 변명할 의지도 없이 소스라치게 떨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절망감.

 

 

저 사내가 자신을 당국에 신고하여 체포할까 무서웠다.

 

 

반대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어른들도 무서웠다.

 

 

수가 틀리거나 일이 그릇되면 끄나풀로 쓰는 아이들쯤은 얼마든지 자폭하게 할 수 있는 자들 아닌가.

 

 

 

 

 

“안심해, 샤디. 난 널 해치려는 게 아니라 건져주러 왔어.”

 

 

 

 

 

남자는 차분하고 신중한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고자 노력했다.

 

 

 

 

 

“그들이 네 몸에 심어둔 추적 장비들은 이미 무력화해뒀어.”

 

 

“제 몸도 수색하신 건가요?”

 

 

“그럴 필요도 없지. 원격으로 간섭할 수 있으니까?”

 

 

 

 

 

보라색 눈의 사내는 벌벌 떨며 자신을 무서워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런 궁지에 몰린 쥐가 더 위험한 법이지.

 

 

자칫하면 소지하던 칼을 꺼내들었을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이미 날이 없는 단칼로 바꿔치기 된 마당이니 안전하다.

 

 

 

 

 

“참으로 악질이구나.”

 

 

남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혈혈단신의 어린아이들을 거둬 샤리아 율법으로 세뇌한 뒤 스파이로 삼아 자신들의 지역 사회 내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에 심고 비밀리에 교제하는 그들의 정보를 알아낸다라. 그래, 여전히 이곳은 ‘복종과 강압의 종교’가 지배하는 곳이라 사람들은 서방의 종교를 받아들인 동족들을 배격하고 증오하지. 명예 살인이라는 명목으로 가족이 가족 구성원을 배신자로 처분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 기가 막힌 노릇이지.”

 

 

 

 

 

그는 이미 모든 정보를 낱낱이 알고 온 것이 분명했다.

 

 

샤디가 속해있던 곳을 비롯해 모든 과격한 무리들이 숨기고 있는 각종의 추악한 비밀들까지 전부.

 

 

 

 

 

“너의 인생을 그런 하류들에게 저당잡힐 필요는 없어.”

 

 

 

 

 

남자는 진심을 담아 자비롭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너희를 점령하거나 착취하러 온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악습들로부터 구해주려 왔을 뿐이야. 너희에게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그것을 억압하는 옛 관습이 얼마나 불의한가를 고발해주려 왔지.”

 

 

 

 

 

너희도 이제는 우리와 동등한 고귀한 시민이니까.

 

 

남자는 어떤 의미에서 대단히 두려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진솔하게 말했다.

 

 

 

 

 

“그, 그들이……, 그들이 제가 배신한 걸 알게 되면……, 저를 죽일 거예요. 채찍질하거나, 팔과 다리를 자르거나, 뱀들이 우글거리는 구덩이에 던져 넣을 거예요. 목을 잘릴지도 모르죠.”

 

 

 

 

 

이미 샤리아의 율례를 어긴 자들이 받은 명예로운 처벌을 몇 차례 구경해보았던 소년은 사시떨기처럼 떨었다.

 

 

 

 

 

“걱정은 내려놓으렴.”

 

 

 

 

 

커다란 근육질 체격과 장대한 키, 널따란 어깨를 소유한 그 사내는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모를 외양이었고 실제로 그가 보여주는 분위기는 그가 담대한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었다.

 

 

 

 

 

단순히 허우대만 훌륭한 것이 아닌, 비범한 고귀함이 느껴졌다.

 

 

당장 자신을 벌할 무서운 처벌자가 될지도 모르는 데도 역설적으로 샤디의 생물학적 본능은 의지할 대상으로 저 낯선 남자를 지목하고 있었다.

 

 

 

 

 

“정직하게 말해줘. 네가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일에 연루되었는지를. 그래야 내가 너의 신원을 보증하고 변호해줄 수 있지.”

 

 

 

 

 

남자의 기묘한 카리스마에 압도된 탓인가?

 

 

아이는 이상하게도 최면에 걸린 듯 아저씨에게 가장 깊은 심리마저 휘둘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사내에게 많은 것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아직 선을 넘지는 못했구나. 브리튼 본토 시민들을 범할 배짱은 없었던 건가? 약하고 만만한 자국의 배반자들만 노린 모양이네. 개종했다는 이유로 각종 테러와 위협의 대상이 된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처벌하기에는 충분한 반인륜적 비극이지만 말이야.”

 

 

 

 

 

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남자의 눈매에 아주 미약하게 노기가 깃들었다.

 

 

큰 표정 변화는 보이지 않았으나 분위기의 차이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아이는 숨겨둔 모든 잘못을 들킨 범죄자처럼 마음이 무장해제되었다.

 

 

어떤 경우에도 서방인들 앞에서 구걸하거나 도덕적 열등을 보이지 말라던 어른들의 가르침은 이 순간 무의미했다.

 

 

 

 

 

“네가 속해있던 세계가 얼마나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곳이었는지 실감이 오니?”

 

 

 

 

 

사내는 근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의 실상을 읊어주었다.

 

 

작은 범주로는 같은 중동 민족을 향한 크고 작은 핍박들에서부터 시작해서, 큰 범주로는 자신들을 점령한 제국을 징벌한다는 명목으로 타 지역에 대규모 테러를 범하는 행위까지.

 

 

그 모든 악덕들의 뿌리에는 공통된 한 가지 원동력이 있었다.

 

 

 

 

 

“아직 너희를 온전히 치료해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해.”

 

 

 

 

 

남자의 입에서 징벌이나 보응 대신 치료라는 낯선 단어가 나왔다.

 

 

 

 

 

“나로서도 당장은 일차적인 수습이 전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핍박받는 이들은 물론 너와 같은 가련한 아이들이 족쇄에 묶일 일이 없도록, 근원적으로 썩은 뿌리를 도려내야만 해.”

 

 

“도, 도려낸다고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 배후의 더 깊은 망령을 말하는 거지.”

 

 

 

 

 

남자는 이어서 아이가 이 순간 가장 불안해하는 부분을 긁어주었다.

 

 

 

 

 

“오늘 너와의 만남은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해줄게. 하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너에게는 돌아갈 자리가 없어.”

 

 

“…….”

 

 

“최근 사흘 간 대규모 체포 작전이 시행되었어. 최소 백 개 이상의 스테이트들에 걸쳐서 소탕과 무력화가 진행되었고 이미 95% 이상 성취되었지. 블랙리스트에 오른 테러 조직들과 원리주의자 범죄단들은 물론, 샤디 네가 속해있던 무리와 같은 잡범들까지도 그 반경에 올려졌어.”

 

 

 

 

 

순간적으로 샤디의 뇌는 사내의 말을 따라가지 못해 멍하게 마비되었다.

 

 

 

 

 

“아, 그렇군.”

 

 

 

 

 

남자는 홀로그램 전자장비를 꺼내 전송 정보들을 쭉 확인하더니 모종의 명단과 인적 사항을 발견하고는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는 몇몇 이름들을 읊었다.

 

 

그 익숙한 이름들에 아이는 흠칫 당황하였다.

 

 

 

 

 

“널 종처럼 부리던 그 단체를 올바르게 짚은 모양이네. 기뻐하렴. 그들은 물론 연루된 모든 조직원들과 공범자들이 어제 자정부로 소탕되고 체포되었어. 협력할 수 있는 다른 단체들도 전부 같은 신세일 거야.”

 

 

 

 

 

그 엄격하고 무시무시했던 어른들이, 산보다도 크게 느껴졌던 그 치들이?

 

 

모두 사살되거나 체포되었다고?

 

 

허탈감과 안도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동시에 아이를 사로잡았다.

 

 

 

 

 

“돌아갈 길 없는 아이를 내버려두는 건 도리가 아니지. 이제는 나의 성의를 진지하게 고려해줄 마음이 드려나?”

 

 

 

 

 

“다, 당신은……, 누구세요?”

 

 

 

 

 

이에 젊은 남자는 싱긋 여유로운 미소를 그렸다.

 

 

 

 

 

“이름을 물어봐 줘서 영광이네.”

 

 

 

 

 

그는 능청스럽게, 의도적인 동문서답으로 응수했다.

 

 

 

 

 

“아저씨 이름은 편하게 알렉이라고 불러주렴. 네가 원한다면 형이라고 불러도 좋아. 우린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을 가치와 명예로 여기지. 그러니 어려워하지 말고 대등한 존재로서 편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긴장감이 탁 풀린 샤디는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족쇄가 무력화된 지금, 기쁨보다는 허망함이 앞섰다.

 

 

 

 

 

“네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줄게. 네가 안전히 어엿한 어른이 될 때까지 후원자로서 책임지고 지켜줄 거야. 너 이전에 내가 거둬들인 아이들처럼.”

 

 

 

 

 

거절이라는 선택지가 있을까?

 

 

이미 돌아갈 모든 퇴로가 사라진 마당에.

 

 

 

 

 

“그리고 내가 머무는 동안에는 이곳을 포함해 전부 변화시킬 거야. 중앙도, 북서부도, 북부도, 서남부도. 너와 네 또래 아이들이 더는 억압 받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조금씩 개간해나갈 생각이야.”

 

 

 

 

 

그 순간, 샤디의 뇌리에는 어른들이 종종 중얼거리던 말들이 아른거렸다.

 

 

왜 진작에 그 의미를 기억하지 못했을까?

 

 

 

 

 

푸른 눈의 인간들을 믿지 말고 경계하라.

 

 

그러나 그들보다 더욱 자안(紫眼)의 소유자들을 경계하라.

 

 

자안의 인간들은 벽안(碧眼)의 인간들을 다스리는 무리.

 

 

바로 그자들에게서 모든 문명권의 절망적 패배가 시작되었다.

 

 

 

 

 

눈앞에 선 알렉이라는 이름의 남자의 눈동자는 유달리 채도가 높았다.

 

 

짙은 그 신비의 색채는 흡사 스스로 광채를 내는 자수정을 연상케 했다.

 

 

염화가 이글거리는 지하 세계의 고온 고압을 함축한 듯한 보석.

 

 

그것은 은은한 아름다움인 동시에 무거운 위압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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