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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33회 아벨의 후예 Ch 4. 이레귤러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2.24 | 회차평점 0 0

 

 

 

 

 

 

*

 

 

 

 

 

   두 사람은 이레귤러 감시 시설에 당도했다.

   “여기가 바로 그가 거하는 임시 거주 시설입니다.”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건설한 것인지 성한네 식구가 거하는 주택과 가까운 곳에 관측 방지 기술로 감춰진 특수 건물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일반 주택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편리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고 넓이도 제법 괜찮았다. 생활하는 데에는 전혀 불편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감옥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다행히 감옥치고는 느슨한 감옥이었다. 거주자가 일정 범위 이상의 거리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보안 감시 아래 어느 정도의 외출도 허용된다고 한다. 또한 성한 부부나 윤혁, 윤혁의 친구들, 크로스솔져들 같은 지인들에게도 비교적 자유로이 면회가 허락되었다.

   “나머지 110명은요?”

   “그들에게도 이미 거주지를 마련해줬습니다.”

   “따로따로 감시하나 보네요.”

   “그렇다기보다는……, 당신네를 배려해서 스테판에게 편의를 베푼 거죠. 다른 이레귤러들은 어차피 지구에 인척도 두지 않았겠다, 좀 더 공공 관리 시설에 가까운 환경에서 지내는 중이죠.”

   “그렇군요. 그러면 진 당신이 이레귤러들을 감시하는 담당자입니까?”

   “일단 지금까지는 그랬죠. 아무래도 기술 쪽은 제 담당이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점검이 모두 끝나서 딱히 제가 볼일은 없습니다. 이레귤러들의 소속지가 하늘도시에서 지구로 이양되었다고 할까요.”

   스테판을 제외한 이레귤러 110명은 특성 유전 능력을 갖추지 않았음을 확인받은 직후, 곧장 지구로 호송되었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간 제로원에 머무르며 여러 가지 점검과 실험을 받았다. 주로 그들의 표식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점검, 그리고 그 이변 특성을 제어하는 일과 관련된 실험들이었다.

   “부디 잘 지내시길.”

   “감사합니다.”

   진은 스테판이 거하는 시설로 윤혁을 인도하는 일을 마치자 어디론가 워프하여 퇴장하였다. 혼자 남겨진 윤혁은 손을 펼쳤다. 방금 악수하고 헤어지기 직전에 진이 넘겨준 인증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받은 윤혁 이외에는 감지하거나 인식하는 일이 불가능한 코드. 특별 감시를 받는 이레귤러들은 아무와 접촉하지는 못하는 처지이었기에 방문자에게는 이 인증코드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면회 권한 증서. 윤혁은 인증코드로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도 될까요?”

   곧 방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 눈에 안대를 착용한 다소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사나이. 윤혁보다 살짝 작은 키에 다부지고 날렵한 몸을 갖춘 건장한 남자가 활짝 웃으면서 손님을 반겨주었다.

   “반갑소.”

   “저도 반가워요.”

   윤혁은 반가움에 벅찬 채 달려 나가 스테판을 꽉 껴안았다. 스테판도 말없이 윤혁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를 향한 신뢰와 우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다시 보게 되어 정말로 다행이오.”

   “저도요. 지내시는 데는 불편하지 않고요?”

   “거의 왕족 급으로 대우받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조금 과장된 표현이긴 했지만, 오랫동안 쫓겨 다니며 험난한 생활을 했었던 스테판의 입장에서는 특별 감시대상에 베푸는 최소한의 인격적 예우마저도 호사스럽게 느껴졌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외롭지는 않으셨고요?”

   “흠, 얼마 전까지는 지구의 수도에서 지냈는데 그때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단체 감금 시설에서 같이 지냈소. 그래서 그때는 말동무가 많았건만, 지금은 좀 심심하고 적적하오.”

   “제가 나중에 가족들이랑 같이 찾아뵐게요. 리온이랑 루디아도 같이요.”

   “고맙소. 나도 어서 빨리 보고 싶소.”

   지난 모험 때 칼리드에게 수술까지 당하며 험하게 굴렀던 터라 걱정이 조금 되었건만 다행히 스테판은 건강하고 멀쩡해 보였다. 윤혁은 그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는 안심이 되었다. 고독해 하지 않도록 친구들과 자주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둘은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최근 기억이 좀 더 돌아왔소.”

   “정말요? 어떤 부분이요?”

   “기억을 잃기 전 생애. 나는 과거에 일종의 특전사였던 것 같소. 휴먼 솔져 시스템이 확립되기도 이전이라 훨씬 원시적인 단계의 조직이었지만 말이오. 아마도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났던 것도 그 무렵이었겠지.”

   베일투성이였던 스테판의 기억 퍼즐이 조금 더 열렸다니. 윤혁은 호기심이 일었다. 특히 크레센트의 선지자라는 여인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혹시나 스테판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게 될까 봐 직접 묻지는 못했다.

   ‘나중에 스테판 씨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나누자.’

   윤혁은 눈치 빠르게 화제를 불편한 쪽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를테면 친구들의 근황에 대한 것이라던가, 혹은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라던가. 스테판은 그중에서도 윤혁의 지인들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냈다.

   “윤혁, 당신의 아버지와 그 용사분들이 어떤 분일지 궁금하오.”

   “용사들이라……, 틀린 말은 아니네요.”

   요새 보여주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동네 형들이지만, 원래 크로스솔져들은 엄연히 전투와 전쟁의 베테랑들이었다. 윤혁은 그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생생히 보았다. 솔라 타나토스라는 거대 함정에 빠져 꼼짝없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던 그때, 신해와 케리와 무디의 기적적인 맹활약이 아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도 그 일만 떠올리면 전율이 흐른다.

   “다행이오.”

   “어떤 것이요?”

   “윤혁을 보호해줄 훌륭한 전사들을 주님께서 보내주셨잖소.”

   지난 선교 여행 당시 스테판은 내심 윤혁을 걱정해왔다. 스테판 자신만큼이나 무모하게 제 몸을 아끼지 않는 천둥벌거숭이. 거룩한 명분이 생길 때마다 지체없이 자신을 내던지던 바보. 매번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나긴 했지만 보는 이들로서는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윤혁은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동시에 도무지 싫어할 수 없는 청년이었다. 그래서인지 얼굴도 모르는 크로스솔져들이라는 자들이 괜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신뢰가 갔다.

   “하하, 그런 셈인가요?”

   “그분들과 친형제처럼 잘 지내시오.”

   “좋은 분들이에요. 스테판 씨한테도 꼭 소개해줄게요.”

   “고맙소.”

   윤혁과 스테판은 선교 여행 때 같이 공유했던 추억을 회상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스테판이 제로원의 감금 시설에 있을 때 만났던 이레귤러 친구들의 이야기와 최근 윤혁이 경험한 일상 이야기들도 오갔다. 오랜 친우와의 간만의 만남으로 기쁨에 충만해진 둘은 한참 편안히 웃음꽃을 피웠다. 맨입으로 귀빈을 접대하기 미안했는지 스테판은 손수 과자를 구워서 가져왔다. 요새 제과에 취미를 붙인 것인지 맛이 제법 훌륭했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가 무르익을 참에.

   “그……, 인류연합의 지도자, 그러니까 당신의…….”

   스테판이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형 말씀인가요?”

   “그렇소, 윤혁의 형님분.”

   편안했던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그는 요새 어떻소?”

   구체적이지 못한 질문이었으나 의미를 알아듣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혹시 그의 행보가 위험한 방향을 향하는 것은 아닌지, 우주 전역의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려거나 압박하려는 기미는 없는지, 그가 선량해지거나 타락할 낌새가 있는지. 스테판의 질문에는 많은 궁금증이 함의되어 있었다. 그는 인류의 제왕, 체스판의 킹이 장차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지 궁금했다. 인류의 미래도 걸려있거니와 자신과 같은 이레귤러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어튼 자이니만큼,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그 향방이 영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윤혁도 친구의 그 심정을 이해했으나 형 이야기만큼은 주제로서 다루기가 영 껄끄럽고 부담되어서 털어놓기가 망설여졌다. 스테판을 친구로서 못 믿어서가 아니라 재혁의 행보와 관련해 동생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져서였다.

   “잘 모르겠네요. 가족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속 썩이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이 꼭 이와 비슷할까? 윤혁은 어릴 적부터 거의 항상 부모님 말씀에 순종해왔고 성한과 유진도 그에게 서운하게 대한 적이 없다시피 했다. 그렇기에 윤혁의 가족은 다른 가정이 흔히 겪는 불화나 갈등을 전혀 모르고 지냈다. 아마 재혁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마음대로 안 따라주는 가족 구성원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평생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보면 형은 제어불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사고뭉치라고 해도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힘 앞에서는 굴종하는 법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재혁의 경우에는 제어하고 억눌러줄 권위 자체가 없었다. 말 그대로 창조주께서 직접 치시지 않는 이상 누구도 재혁을 훈계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더욱이 재혁 본인은 자기 행동이 지극히 옳다고 굳게 믿는 데다가 세상 사람 대다수도 맞장구쳐주며 그의 방식을 지지해주니 도무지 그를 바르게 권면해줄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힘이 닿는 한은 친구를 안심하게 해주고 싶었다.

   “최소한 설득은 해볼게요.”

   단순한 큰 소리나 호언장담은 아니었다. 윤혁도 현실적 가망성이 희박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나 얼마나 먹혀들지는 몰라도, 심히 부담스러운 과업일지라도 마땅히 노력할 책무를 감당할 작정이었다. 윤혁은 재혁의 형제로서의 연대 책임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형이 스테판 씨나 다른 이레귤러들을 해하지 못하도록요.”

   이에 스테판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윤혁.”

   “네, 스테판 씨.”

   “염려해줘서 고맙소. 허나 내 운명은 하나님이 쥐고 계시오. 아무리 당신 형님이 강해도 난 그가 두렵지 않소. 그는 내 영혼의 티끌만큼도 해하지 못하오. 그가 아무리 강력한 표식을 내게 심어 넣어도 주님께서 내 마음을 보호하시오. 그리고 설령 그가 내 목숨을 위협하더라도 나는 이미 천국 백성이 되었소.”

   그의 사내대장부다운 당당한 고백에 윤혁은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그는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일은 자신 혼자 떠맡아야 할 짐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는 책임감을 가장한 어리석은 만용이었다. 정작 스테판이나 윤혁 자신을 보호해주는 진정한 능력은 따로 있거늘. 주께서 모든 자녀들을 보호하신다는 진리를 미처 잠시 잊고 있었다. 윤혁은 스테판의 굳건한 믿음을 거울삼아 다시금 자신의 연약함과 무모함을 직시하게 되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네요.” 

   윤혁이 씁쓸히 웃자 스테판은 너그러운 미소와 함께 그를 독려했다.

   “그래도 날 이렇게까지 챙겨줘서 고맙소. 지난 여행의 막바지 때도 윤혁 그대가 내가 봉변을 당치 않도록 인류연합의 간부를 설득해주었다고 들었소.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지구로 호송될 수 있었소.”

   “설마 룩과 비숍 말씀인가요?” 

   이에 윤혁은 재빨리 손사레를 쳤다.

   “제가 한 일은 사실상 거의 없었는 걸요. 그자들은 호전적인 성격 때문에 포로를 험하게 대하려는 시늉은 했겠지만 어차피 형의 명령 체계에 종속된 요원들인지라 이레귤러를 함부로 해하진 못했을거예요.”

   “아니오, 너무도 큰 은혜가 되었소. 덕분에 인격적인 대우와 적법한 재판을 받게 되었소. 인류연합이 알게 모르게 당신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에 내가 실험체가 아닌 인격체로서 존중받은 것이오.”

   진정성 넘치는 진중한 감사 표현에 윤혁은 쑥스러워했다.

   “물론 윤혁 당신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주님께서는 또다른 방법으로 나를 구하셨을 거요. 하지만 그분께서 당신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게 은혜를 베푼 것 또한 사실이오. 그러니 나는 주님과 당신 모두에게 감사하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넓디 넓은 우주 가운데 하필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속 깊은 친구가 주어진 것이야말로 주님께 찬양을 돌려야 할 일이라고. 스테판과 같은 진국인 사람을 찾으려면 우주 전역을 모래 사장 뒤지듯 뒤져도 모자라겠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으면 그를 만날 수 있었을까?

   “아니에요, 저야말로요. 당신이 제 친구라 영광이에요.”

   스테판은 말 대신 나직한 웃음으로써 응답했다.

   “당신과의 약속은 꼭 지키겠소.”

   “약속이라뇨?”

   “이런! 벌써 잊었소? 여행 막바지에 약속하지 않았소?”

   그때 번뜩 기억이 스쳤다. 윤혁은 선교 여행이 끝날 무렵 자신의 가장 큰 근심을 정직하게 친구들 앞에서 토로했었다. 그는 재혁을 어둠의 길에서 구출해내겠다는 다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친구들은 아무런 군말이나 권면도 없이 그 험난한 여정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감사하긴 했으나 그래도 그때는 그저 예의상의 대답인 줄로 알았건만, 적어도 스테판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진지하게 오랫동안 약속을 곱씹고 있었을 줄이야.

   “너무 부담 갖지는 마세요. 저는 마음만으로도 고마운걸요.”

   하지만 스테판의 표정은 결전에 나서는 용사처럼 진지했다.

   “나는 약속을 목숨처럼 귀히 생각하오.”

   “스테판 씨!”

   “주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오.”

   만류하려던 윤혁의 말문이 단숨에 막혔다.

   “나도 그분을 본받아 친구와의 약속을 꼭 지켜내고 싶소.”

   과연 그의 말에는 장난 따위는 한 줌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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