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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08회 아벨의 후예 Ch 47. 필라델피아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5.18 | 회차평점 0 0

 

 

 

 

*

 

 

 

 

 

   이렇듯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종교개혁과 선교 활동을 독려하는 와중에도 리온은 끝내 전면에 나서기는 거절했다. 이는 사역팀을 이끌기 시작하면서부터 주께 받은 당부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초인들이 자신을 이용하거나 방해하려고 공작을 행할 것을 두려워해서이기도 했다. 그는 친구인 윤혁이 겪은 고생을 기억했다. 아직은 정면으로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L은 날이 갈수록 여러 일꾼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 그는 주목받지는 않았으나 개혁자에게 시나브로 영향을 주었다. 크게 주목받는 뛰어난 영웅은 아니었지만, 놀라우리만큼 바른 혜안으로 판 전체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어내는 숨은 영웅이었다. 적잖은 지도자들이 차츰 이 정체 모를 조언자를 주목했다.

일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그를 종용했다.

“왜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묻혀있는 겁니까(요7:4)?”

“저희는 이런 소문까지도 들었습니다. 당신이 실은 지구에서 왔으며 머나먼 고대에 지구로부터 우주 쪽에 복음을 전달해 준 초기 세대의 선도자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물론, 이건 논란이 분분한 소문이었다. 어찌 머나먼 고대의 사람이 여태 활동하는 게 가능한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지구와 우주의 시간축 비틀림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노화를 막는 의학 기술로 긴 세월을 버텨온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심지어 동면 되었다가 이제야 깨어난 것은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지구 역사의 상당 부분이 이미 인류연합과 진실을 강제로 은폐하는 통일시스템에 의해 미궁에 빠져버렸다. 우주의 시간축 역시 타임필드로 인해 더는 균일하지 않고 상대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초기 선교 역사의 진상을 올바르게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리온이 드러내어 밝히지 않았는데도 그의 정체에 근접하게 다가간 이들이 몇몇 있었다.

   “아직은 당신들에게 다 밝힐 수 없습니다.”

   리온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사르디스를 베일로 삼아 자신을 감췄다.

   “하나님께서는 저더러 아직은 은밀히 활동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아직 그는 자신을 드러낼 허락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정말로 초기 세대 선교의 주역이었다면, 설령 주역은 아닐지라도 그 세대의 일원이었다면……, 복음서에 기록된 사도들에 버금가는 정통성과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랑을 종용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준이 될 권위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교황청들이 잠시 수그리고 있지만, 언제 다시금 힘을 되찾을지 모릅니다. 아니, 저들보다 더 악랄한 새로운 거짓말쟁이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르죠.”

   “그런 자들에 대항하려면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이제 리온이 나서지 않았는데도 적잖은 이들이 나서서 요청했다. 초대 교회 시절 사도권을 보호하려 했던 바울처럼, L에게도 전면에 나서서 진리의 편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대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는 부탁이 쇄도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한다고 해서 따라줄 수는 없었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마음속으로 씨름하며 기도했다.

   “만일 제가 저 자신을 공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당신께서는 저를 향해 어떤 계획을 품고 있으신지요?”

   [아직은 더 기다려라.]

   “그 말씀은 전면에 공개적으로 나서야 할 차례가 올 것이라는 뜻입니까?”

   [머지않아 나의 뜻을 분간하게 되리라.]

   기도 응답은 조금 애매모호했다.

   [나는 너에게 외현적인 영광의 자리를 허락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만일 네가 전면에 나서서 활약해야만 할 때가 온다면, 그 형태는 네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기쁨과 승리의 자리가 아니라 수치와 비방의 자리가 될 것이다. 내가 걸어갔던 그 자리와 마찬가지로 무너지고 부서지고 망가지고 곤욕을 치르는 길이 될 것이다.]

   말씀의 무게가 크게 무거워서 리온은 잠시 심란함을 느꼈다.

   “그러면 그때는 언제입니까?”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조심히 되물었다.

   [다시 지시해 주겠다. 나의 시계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주님께서는 제게 순교를 뜻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혹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순교 방식을 기대했더냐?]

   난해한 질문이 다시금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차라리 순교를 당하는 편이 깨끗할지도 모르겠구나. 네게는 차라리 그편이 더 마음 편하겠지. 하지만 내가 네게 내려놓도록 요구하는 것들에는 그러한 ‘거룩하고 영화로운 죽음에 대한 기대’도 포함된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운명은 그런 게 아니란다.]

   “그렇다면…….”

   그때 성령님께서 불현듯 리온의 마음에 장차 임할 불길한 일을 예고해 주셨다. 명확한 그림이 아닌, 안개와도 같이 불분명한 청사진이었다. 리온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동화 속에나 나올 용감한 자기희생적 영웅이 선보이는 장렬한 마무리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 길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결국, 그날의 리온 마흐무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야 말았다.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드릴 것을 요구받았을 때의 심란함이 그에게 임했다(창 22:2).

 

 

 

 

 

 

 

*

 

 

 

 

 

   성운은 보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카이젤이 나긋나긋한 어투로 말했다.

   “어째서 리온 마흐무드를 전면에 내세울 것을 제안한 것이지?”

   “그 사람은 현시대 우주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 옛날, 마르틴 루터나 장 칼뱅처럼 말입니다. 더구나 그는 보스의 이복동생과 함께 하늘도시의 막힌 포교의 길을 뚫었던 위용을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저들의 멘토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실제로 저들의 먼 조상들마저 그에게서 교리를 들었을 테니까요.”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왜 굳이 지금 그걸 내세워야 하냐는 말이다.”

   카이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단순히 서파(西派)를 견제할 목적인가?”

   “그들은 이미 보스의 손아귀에 있으니 얼마든 보스께서 주물럭거릴 수 있으시겠죠. 고작 티아라의 사상을 견제하는 일이나 하려고 이걸 제안한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자들이 인류연합 측에 유익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나?”

   성운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사실 그런 측면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솔직해서 좋군.”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 부분은 내가 맞춰보지.”

   카이젤의 금안이 성운의 갈색 눈동자를 관통하듯 마주하여 주시했다. 딱히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존재감만으로 엄청난 크기의 위압감의 격차가 생생히 전달되었다. 성운은 두려움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갈트론 때문인가?”

   “정확하십니다.”

   피식 웃음을 흘린 카이젤. 성운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더욱 굳었다.

   “어지간히도 싫어하는 모양이로군.”

   “그의 가치관은 제 사상과는 도무지 공존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사로운 감정 때문은 아닙니다. 보스께도 필시 유익이 되지 못할 자입니다. 이제까지는 그의 행동을 역이용하여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셨지만, 앞으로는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요가 없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갈트론의 철학은 있으나 마나 한 계륵이 됩니다. 차라리 그 사고뭉치에게 ‘그 족쇄’를 씌워버리시면…….”

   그러자 카이젤이 중간에 그의 말을 잘랐다.

   “갈트론을 ‘램프의 지니’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후일 내가 시기를 정한다.”

   “……죄송합니다.”

   “미안하지만 네가 결정할 일은 아니야.”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그러자 보스는 부하에게 자애로운 어투로 기회를 주었다.

   “뭐, 그래도 네가 그 시기를 앞당기는 일에 기여할 수는 있겠지, 유성운.”

   “그렇지 않아도 ‘남파(南派)’의 이용 가치를 모조리 취한 뒤 그 주축인 갈트론을 용도 폐기할 계획을 하나 세웠습니다. 갈트론은 필시 제일 먼저 기독교 세력을 공격할 겁니다. 몰락하는 교황청보다야 그쪽에 날을 세울 것입니다.”

   “왜 그렇게 판단했지? 그는 티아라에게도 날을 세우지 않던가?”

   “사부(師傅)가 아닌 사형(師兄) 쪽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으음.”

   성운에게 계속 말하도록 허가가 주어졌다.

   “리온 마흐무드 목사가 종교개혁자들과 우주 선교의 선두주자로 나서 기독교인들을 모아줄 구심점이 된다면, 필시 갈트론의 관심을 끌어모을 강력한 유인용 미끼가 될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갈트론의 적극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겠죠.”

   “참으로 너다운 발상이로군.”

   “보스께서도 그리 생각하셨던 것 아니었습니까?”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심 궁금하긴 했다. 티아라가 키워낸 두 제자. 하나는 최상위 초인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인이다. 하나는 혁명과 혼동을 일으키는 사도, 다른 하나는 복음의 사도. 하나는 양아버지마저도 혀를 내두른 사고뭉치, 그리고 하나는 재혁마저 인정한 선지자. 둘의 충돌은 참으로 흥미로울 것이다. 그래도 내심 선지자가 안전하기를 바랐기에 갈트론 같은 변태를 대적자로 붙여주는 일은 양심 때문에 망설여졌다.

   -므에에에엥.

   마침 애완용으로 거둬들인 작은 회색 아기양이 곁에 있던 중 심통이 났는지 카이젤의 종아리를 뿔로 콩하고 찍었다. 물론 제복에는 흠집 하지 나지 않았다. 카이젤은 조심스럽게 아기 양의 머리에 손을 뻗어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그다음, 네가 생각하는 결말은 어떻지, 유성운?”

   “아뢰옵기는 황송하오나…….”

   성운은 다시 멈칫했다. 그러다가 최대한 신중하게 다시 입을 뗐다. 그 계략을 들은 카이젤의 표정이 묘한 흥미에 젖어 들었다.

 

 

 

 

 

 

 

*

 

 

 

 

 

   유리스에게 유기당한 불쌍한 애완견들, 즉 교황들은 비밀리에 시뮬레이션 우주상에 모여 비상 공의회를 나누었다. 여전히 유리스에게 충성하는 교황들이 대다수였지만, 정작 수프림 팝인 유리스는 시간이나 질질 끌며 그들을 이용하기만 했다. 개혁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할 방안은 전혀 제시하지도 않은 채.

   답답한 마음에 몇몇, 몇몇이라 해도 수백만 명은 족히 넘지만, 교황들은 그녀의 진영에서 이탈했다. 아예 노골적인 적대 노선을 취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이들도 종교개혁 세력과 RS-월드 후폭풍의 영향을 감당하느라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수많은 교황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그중 몇몇은 자기들의 종교를 포교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몇몇은 아예 힘을 모아서 반칙에 가까운 음모를 작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의회의 성취는 지지부진했다. 지휘해 주던 두뇌인 유리스가 그들을 내다 버렸으니 제대로 의견이 도출될 리가 없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버림받은 자들의 공의회가 이끄는 배는 아예 산을 넘어 은하 너머로 향했다. 서로를 헐뜯는 다툼이 한창 진행되던 중, 낯선 목소리가 회의 참석자들의 뇌리에 침투했다. 텔레파시였다.

   “이런, 이런, 유리스가 낳고 버린 폐기물들이 여기 집합해 있었군.”

   대놓고 모욕을 늘려놓는 목소리. 발끈하는 감정이 곳곳에서 솟구쳤으나 누구 하나 감히 제대로 나서려는 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에게서는 짙은 광기와 강렬한 카리스마, 그리고 일반인 따위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초능력과 사념파가 분출되었다.

   ‘저, 저분은?’

   ‘왜 하필 이곳에?’

   흡사 마피아들을 광기만으로 압도하는 도심지의 연쇄살인마, 살인 광대 같았다. 그 낯선 손님의 아우라는 곧 형체화되어 눈에 보이는 사람 형체가 되었다. 가면과 제복을 입은 모습, 인류연합의 정식 간부라는 뜻이었다. 더욱이 직위로 보아 최상위 초인 같았다.

   교황들은 공포감에 일제히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상대는 일반적인 간부와는 달리 몹시 건들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불량스러워 보였다. 제복도 앞섶의 단추를 대놓고 풀어 헤친 채 단단한 대흉근을 드러낸 모습이 퇴폐적이었다.

   “그토록 위세 등등하시던 자들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셨을까?”

   거듭되는 모욕에도 누구 하나 답하지 못했다.

   “뭐, 그러면 내가 좀 너희를 주워서 접수해도 되려나?”

   그러자 겁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한 변방 지역의 교황이 대들었다.

   “당신은 뉘신 데 우리에게 이토록 모욕적인 발언을 하시는 겁니까?”

   “오호라.”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끄아아악.”

   사내는 그 교황을 순식간에 시뮬레이션 우주 속에 던져 봉인해 버렸다. 그 폭력적인 광기와 살벌한 분위기에 일순간 모두가 압도당했다.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하관을 통해 사악한 미소가 드러났다. 이윽고 가면의 투명한 부분으로 눈이 드러났다. 흰자위는 검었고 그 한가운데 녹색 눈동자가 형형히 빛나며 박혀있었다. 그 섬뜩한 외양에 모두가 기겁했다.

   “설마!”

   “저건 현자의 눈?”

   “그렇다면 저분께서……, 설마 수프림 팝과 동격인 ‘철인왕’이란 말인가?”

   근육질의 건장한 그 낯선 사내는 큰소리로 폭소하며 모두를 멸시하였다.

   “크큭, 정답이다!”

   우월감에 충만한 갈트론이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예고 없이 최면을 걸었다.

   “리포머들 때문에 다들 피똥을 싸고 있는 모양이야.”

   “그, 그건!”

   “너희들이 노는 꼴이 너무 한심해서 구경해 줄 수가 있어야지. 보아하니 유리스가 너희 유기견들을 길거리에 버린듯한데, 내가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너희를 구제해 줄까 해. 너희 생각은 어떤지?”

   갈트론은 씩 웃으며 제안했다.

   “아 물론 너희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는 사실은 이해하겠지.”

   모두가 공포감으로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좋아. 앞으로 1년 안에 ‘그 낡은 구태 종교’를 이 우주상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려 줄게.”

   “뭐라고? 그, 그게 무슨……?”

   교황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왜? 내가 못 할 것 같아? 이봐, 얼간이들. 솔직히 그런 하잘것없는 시시한 싸움은 프레임 전쟁 몇 차례만 제대로 벌이면 순식간이야.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혁명적이고 폭력적인 것, 파괴적이고 뒤집는 것에 심취하기 마련이라고. 솔직히 집단 정신 지배까지 갈 것도 없이 몇 번의 합법적인 세뇌만 거치면 영적 세계란 금세 정복되기 마련이지.”

   기독교 세계가 아닌 영적 세계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갈트론이 적성 요소로 염두에 둔 대상은 특정 교리라기보다는 초월적 세계의 의지가 인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 자체인 듯했다.

   “설마 당신은, 당신의 그 유물론을 이 싸움판에 끌어들이시겠다는 의도입니까?”

   “어이, 이봐.”

   차갑게 경고 조로 기강을 잡는 갈트론.

   “실패자들이 잔말이 많군. 판에 끼워주니 정말로 너희가 동료인 줄로 착각하는 모양이네. 너희 소모품들은 잠자코 따라와 줬으면 좋겠는데.”

   칼도 없이 느껴지는 살의가 담긴 섬뜩한 경고가 주어지자, 모두가 입을 닫았다.

   “너희가 정말로 주시해야 할 적은 지금 잘나가는 리포머들이 아니야.”

   “…….”

   갈트론은 자신이 획득한 사르디스의 흔적 데이터를 훤히 펼쳐 보였다.

   소위 L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남긴 발자취가 가득했다.

   “진정으로 골치 아픈 적은 여기 따로 있지.”

   그는 사악하고 음흉한 웃음을 마구 흘리며 작게 속삭이듯 읊조렸다.

   “난 이 인간이 어서 모두 앞에 드러나기를 원해. 그래서 승부수를 걸어볼 작정이야. 내가 원하는 혁명도 실현할 겸, 너희가 원하는 대로 개혁자들도 무력화시키고, 겸사겸사 이 L이라는 녀석과 겨뤄볼까 해. 이 진짜배기 녀석이 제 발로 튀어나올 때까지 기독교 세력을 극한의 핀치에 몰아넣을 거야.”

   갈트론은 L이 남긴 데이터들을 자신의 카드 속에 새겨 봉인했다. 그 후, 그는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후 평소에 휴대하던 단도형 나이프로 내리찍었다. 그의 섬뜩한 살기와 무시무시한 광기 앞에 교황들은 숨도 못 쉰 채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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