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72회 아벨의 후예 Ch 12. 실험체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19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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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윤혁은 일부러 형 앞에서 화제를 돌렸다.
“퀘이사 프로젝트……, 73개의 퀘이사로 만들어낸 그 괴물, 거리와 무관하게 행성혼과 항성혼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하셨었죠?”
“천체혼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낫겠군.”
“혹시 그 가운데 지구의 혼도 포함되나요?”
예리한 동생의 지적에 형은 슬며시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 완전히 구분되는 별도의 계열이야. 지구만은 특별하지. 지구혼은 천체혼의 카테고리에 들지 않아. 나머지 천체들도 항성, 위성, 행성, 블랙홀, 중성자성 등 어느 쪽이냐에 따라 조금씩은 서로서로 다르지만, 지구혼과의 차이만큼 이질적인 차이는 아냐.”
“그럴 줄 알았어요.”
첨단 과학을 겉핥기식으로만 아는 윤혁이 어떻게 그런 초월적 영역의 전문 지식을 짐작했을까? 그 비결은 간단했다. 창세기 기록된 창조 기사를 몇 번씩이나 읽으면서 곱씹고 묵상한 덕분이었다. 윤혁은 그 단순한 기록을 읽을 때마다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다. 예컨대 그는 지구만은 나머지 별들과 다르게 별도의 날에 창조된 사실을 눈여겨봤다.
“그러면 지구혼은 퀘이사-II로 완벽히 조종하지 못하나요?”
“그래, 천체혼만큼 만만하지는 않지. 그래서 제로원의 강화가 필요했다.”
“제로원이란 지구혼을 지배하고 종속시키기 위한 물건이었군요.”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목적이 되었지. 하지만 그런 목적성은 개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제로원을 만들어낸 덕분에 지구혼을 발견했고 그 뒤에 그 혼을 제어하기 위한 개조를 시행했지.”
“그렇다면 테라포밍된 외계 행성은 아무리 정밀하게 교정해도 지구와 완전히 같아지기는 어렵겠군요. 불가피하게 미묘한 환경 변화가 발생하겠군요. 아니 설령 물리적 환경 자체까지 완전히 똑같아지더라도…….”
“지구혼과 인간혼의 깊은 상호작용까지 재현할 수는 없지. 물론 그 교류가 부재한 것만으로 신체적인 무리가 생기지는 않지만, 분명 가족을 잃은 것과 맞먹는 공허감 정도는 발생하지.”
귀소 본능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정의된 공복감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뭐, 그래도 육체적 생존이나 정신 활동은 정상적으로 가능해.”
다음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윤혁은 형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체격 차와 질량이 커서 그런지 오히려 윤혁이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고 말았다. 카이젤은 우스꽝스러운 꼴이 된 동생을 계속해서 너그러운 자태와 느긋한 말로 자극하였다.
“충격적인가?”
“그걸 아시면서도 사람들을 우주로 내보냅니까?”
“말했잖아. 생존은 가능하다고.”
“그러면 하늘도시들은 대체 무슨 수로 그 기나긴 세월을 견뎌온 거죠? 수천, 수만 세대가 지구혼과의 교류도 없이 그 세월을 견디는 동안 그 고통을 무슨 수로 해소해낸 겁니까?”
“하늘도시는 기본적으로 제로원의 복제본으로 만들어졌다. 즉 지구혼과 원격공명이 가능하지. 그렇기에 귀소 본능도 어느 정도는 해결되었던 거다. 허나 테라포밍 행성은 그렇지 못하지.”
즉 지금까지는 우주 인류를 둥지 속에서 품어주었다면 이제는 절벽 밑으로 떨어트리는 훈련을 시행할 차례였다.
“말했잖아. 귀소 본능이라는 욕구 단 하나만 충족되지 않을 뿐이야. 허나 사람은 언제까지고 지구에 종속된 존재로 남아서는 안돼. 마치 부모 치마폭에서 영원히 머무르는 아이가 없듯 말이야. 능히 어디에서든 살아갈 잠재력이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해.”
그럼에도 윤혁의 눈은 여전히 의분으로 이글거렸다.
“환경은요?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낯선 환경에 던져져 부적응으로 무더기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설마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상으로 환경 적응 실험을 수행하려고 ‘라와 가이아’ 프로젝트를 기획한 겁니까? 당신이 구성해놓은 새로운 외계행성에 사람들을 심어놓고 제대로 진화하는지 여부를 살펴보려고?”
“내가 완성한 피코머신이라면 대부분 치료는 가능해. 오로지 결격 사유가 분명한 부적응자들만 죽는 거다. 마치 늙은 인간이 온갖 치료에도 불구하고 죽는 것처럼. 그런 재해까지 지도자 탓으로 돌리는 건 어불성설로 보이는군. 나름대로 최신 의료 혜택까지 줘가며 최선을 다했으니 책임을 전가하기는 어렵지.”
“책임이 없다고요? 그들이 살 터는 당신이 닦아놓은 행성들이잖습니까?”
자꾸 객체화하여 부르는 동생의 어투가 슬슬 카이젤은 짜증이 났다.
“어차피 제 수명이 다하여 죽을 사람들을 두 번째 기회삼아 심어놓았을 뿐이지.”
카이젤은 자기 옷을 붙잡은 동생의 손을 가볍게 툭 쳐냈다. 윤혁은 뒤로 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찧고 얼얼한 고통을 느끼는 와중, 그제야 윤혁은 자신의 형이 얼마나 크고 무시무시한 사람인지를 체감했다. 자신 위로 드리워진 큰 그림자. 폭발적으로 뿜어지는 위압감에 겁난 그는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네 표현을 빌리자면 ‘천수를 다하고 순리대로 죽었어야 할’ 사람들에게 인도적인 차원의 혜택을 베풀어 회춘시키고 되살려주었을 뿐이야. 단지 그 대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갈 기회를 주었지.
사람이 아예 살지 못할 험한 환경에 던져놓은 것도 아니야. 그곳들은 어디까지나 지구와 99.99% 이상 유사한 환경으로 재조정된 테라포밍 행성이야. 언젠가 인류는 비단 그런 순한 곳뿐만 아니라 우주 어디에 던져지든 살아남을만큼 자라나야 할 의무가 있다. 환경이 조금 불편해졌다고 빌빌거리면 곤란해.”
카이젤의 엄격한 표정 속에는 과연 아기새에게 나는 법을 훈련시키고자 일부러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독수리 어미를 연상시키는 냉정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뒤틀린 사랑이라고 표현해야 하려나. 그것은 미워하는 감정인지 관심인지 혹은 형벌인지, 온갖 모습으로 뒤범벅된 탓에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좋든 싫든 인구는 지금도 폭증하고 있다. 이제 인류는 하늘도시나 지구에 의존하는 실태에서 벗어나 모든 환경 속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 돼. 어느 날 갑자기 생태계 터전이 모조리 파괴되면 이대로 아무것도 못해보고 멸종할 생각인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여 바퀴벌레보다 끈질긴 생명력을 얻어야 마땅하다. 우주 그 어느 곳에서도 살아남도록.”
그의 판단에 지구란 그간 인류를 보호하고 보살펴온 둥지인 동시에 인류의 도약 가능성을 제한하는 족쇄였다. 땅의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라. 그는 이 명령을 원전의 문맥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해내었다. 인류는 마땅히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승격되어야 한다.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물리적이고 실존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러한 승격에는 신체적인 진보라는 요소도 포함되었다. 자연발생적인 진화는 불가능하니 인간 스스로의 능동적인 노력을 통해서라도 이뤄내야 한다. 노화와 신체적 죽음이라는 장벽을 뛰어넘고, 지구 이외의 폭넓은 환경에서의 생존 능력을 획득하고, 나아가 질병이나 부상도 겪지 않는 금강불괴와 만독불침의 상태까지 이르러야 한다. 아니, 그의 목표는 이미 그 너머에 닿아있었다.
“사랑하는 동생아.”
나긋나긋한 카이젤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냉정하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
“넌 말기 환자의 입에서 호흡기를 떼내는 것을 살인이라고 보는가?”
거침없는 질문에 윤혁은 순간적으로 당혹감에 휩싸여 얼굴을 굳혔다. 머리가 하얗게 굳어버렸다. 판단의 회로가 냉각제로 처리된 듯 마비된 기분이랄까. 대답하기 어려운 건 둘째치고 자신을 논리적 절벽으로 내몰아 앞뒤 막힌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형의 의도가 훤히 느껴졌다.
“적극적인 의미의 살인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살인이 될 수 있지. 더 연명할 수 있는데도 방치한 셈이니까. 소생을 거두는 행위를 살인이라 보는 데는 누구든 동의할 수 있을테지.
그렇다면 인간의 노력은 어느 정도의 선까지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적법한 것일까? 기술과 지식의 여력이 닿는 한 죽음과 끝까지 투쟁해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죽음과 노화, 나아가 환경 부적응이라는 근본적 원인에까지 맞설 능력이 쥐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가?”
만약 노화를 원천적으로 막아내는 것을 넘어 역행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도 오로지 불법이 아닌 합법적 기술력만으로. 그때는 행동하지 않는 것이 죄악일까? 억지로 연명하는 것이 죄악일까? 쉽사리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죽음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선물인가, 아니면 죄로 인한 저주의 결과인가. 윤혁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죽음은 최초의 창조에서 아예 고려되지 않았던 요소였다. 그것은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 될, 선한 계획 밖의 존재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려는 합법적 노력 자체를 악하게 보시지는 않는다. 지금까지는 단지 육신적 죽음 자체를 회피할 능력이 없었기에 죽음이 마땅한 섭리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하지만 만일 기술로 노화를 치유할 수 있다면? 나아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할 불사의 몸을 얻을 수 있다면?’
그 힘을 취하는 것이 죄일까? 생물학적인 한계 극복을 죄라고 정의하자니 하나님께서 일부러 인간을 죽음에 가둬두려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또한 만약 인간이 의학의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죽음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면, 똑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노화와 환경 부적응도 힘이 닿는 한 막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마음대로 불사를 추구하려는 것이 마치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몸이 불로불사가 되더라도 영혼이 죽어있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게다가 최후의 심판이 이르면 그런 노력은 아무짝에도 의미 없는 허사가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지 육체가 죽고 사는 문제에는 궁극적인 가치가 없다. 육체는 어차피 마지막 날 모두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어떤 곳에서 영원을 맞느냐가 관건이지 않은가.
‘형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생(生)을 위한 투쟁일까, 아니면 그 이상일까?’
두려웠다. 저 사람은 정말로 단순히 인간의 생명을 구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선을 뛰어넘어 인간의 영원한 자율성을 취하려는 것인가? 윤혁은 상대방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자 그는 동생의 생각을 훤히 읽은 듯 대답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죽음을 부과했지. 나는 그 제약을 부정해줄 생각이다. 우리의 가능성을 막는 것은 그 어떤 금제라도 내버려 두지 않아. 우리는 우주든 상위 차원이든 가지 못할 장소가 없어야 하며, 한 포기의 풀처럼 사라지는 덧없음도 이겨내야 한다. 우리는 그토록 무자비하게 흐르던 시간마저 제어했다.”
그의 말은 결코 거짓말이나 허세가 아니었다. 일단 타임필드라는 기술이 그 증거물이 아니겠는가. 신 외에는 누구도 감히 쥐지 못할 줄로 알았던 영역, 이제 그는 그 권역마저 감히 침범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카이젤 라흐블뤼크라는 자의 능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인간의 승리’를 상징하는 능력. 이제 무엇이 그를 제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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