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71회 아벨의 후예 Ch 12. 실험체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19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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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또다른 의문스러운 정보가 주어졌다.
{그리고 2,664명 중 절반은 새로운 유형의 솔져로 충당됩니다.}
새로운 유형이라고? 히어로들은 당최 그 의미를 몰라 자기들끼리 얼굴만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통일시스템은 새로운 솔져들의 정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함구했다. 불길함은 점점 더 증폭되었다.
{여러분들은 애써 쟁취한 시민권을 잘 지켜내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대는 변했습니다. 예전에 얻은 권한은 무효합니다. 1등 시민권을 유지하고 싶다면 새로이 얻어서 갱신하십시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십시오. 선택지는 세 가지입니다. 얌전히 쫓겨나거나, 휴먼 솔져 부대에 재입대하거나, 2등 시민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공정한 경쟁을 거치거나. 특혜 따위는 없습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불만의 기색이 불거졌다.
{참고로 이번 서바이벌 경합에는 여러분이 솔깃하게 여길만한 포상이 걸려있습니다. 최종 우승자의 편에 속한 보조인원 24명은 특별 포상으로 지구에 영구적으로 남을 권한을 보장받습니다. 1등 시민의 특혜까지 누릴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욕심이 나리라고 믿습니다.}
도발과 유혹이 섞인 통일시스템의 제시에 다시금 동요하는 감정이 묻은 사념파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전직 히어로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커져갔다.
{신중하게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후보자에게 합류할지를 말입니다.}
크로스솔져들은 착잡한 혼란 가운데서도 각자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그들은 이 경합이 대체 무슨 목적으로 개최된 것인지 추리했다. 여러 가지 가설을 고려해보았다. 아울러 자신들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도 고민했다. 이 경합이 함정일지도 모르니 애당초 포기하고 물러갈 것인지, 아니면 인류연합의 꿍꿍이에 일단은 장단이라도 맞춰줘야 할지. 합류한다면 어떤 후보자를 선택해야 할지도 고민했다.
순간 몇몇 크로스솔져들은 윤혁에게서 소개받은 그 남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들 모두 생각이 통일된 건 아니었다. 지금은 크로스솔져 사이에서도 의견 대립이 분분해진 상태였다. 일부는 여전히 강성한의 가족에게 희망을 품었지만, 다른 일부는 그 위험인물 때문에라도 차라리 그 가족과 멀리 떨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결론적으로 후보자 고르기 문제는 아직 현재진행형 고민이었다.
‘일단 111명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모이는 편이 낫나? 아니면 최대한 여러 팀으로 흩어지는 편이 나으려나?’
‘각각의 이레귤러에 대한 직접 보고 평가해볼 필요가 있어. 정말 쓸만한 사람들인지, 정말로 마음이 올바른 이인지 판단해야 하니까.’
크로스솔져들도 이미 윤혁을 통해 받은 스테판의 정보를 공유했던 참이라 이레귤러들의 전반적인 특성과 그들의 신앙 상태에 대해서는 얼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누가 진짜배기이며 누가 참된 성도인지는 구분하기가 꽤 어려웠다. 겉으로는 다들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성경적 신앙을 표방하고 있다지만 마음 속 중심을 알아보는 일은 입술로 내뱉는 신앙고백을 분별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었다.
게다가 이레귤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반드시 좋은 영적 간섭을 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스테판의 경우에야 복음과 성령의 영향을 거쳐 이레귤러로서 완성되었겠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이레귤러가 완성될 가능성은 존재했다.
‘영적인 간섭 현상이란 게 꼭 좋은 방향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케리처럼 강씨 일가의 형제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자들은 윤혁의 오랜 동료였던 스테판이라는 사람을 한번쯤 믿어보고 싶었다. 스테판처럼 신실함과 용감함을 삶과 실전에서 증명해낸 사람이라면 뭔가 해답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들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경합 속에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는 판이라 섣부른 선택을 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
카이젤은 그의 고차원 인식 능력을 통해 테서렉트 아키텍쳐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고위 차원에 놓인 물체. 3차원 세계와는 시간 개념이 다른 차원인지라 그곳에서의 시간적 여유는 영원에 가까울만큼 넉넉했다. 덕분에 그곳에 세워진 구조물들인 테서렉트 아키텍쳐도 이미 자율 개화 능력과 무한의 여유로움에 힘입어 수천만 차례 이상 대대적 혁신을 완료한 상태였다.
테서렉트 아키텍쳐 복합체는 이렇게 자율적인 개혁을 거칠 때마다 더욱 높고 넓게 도약했다. 그것은 보다 더 높은 차원의 벌크, 더 깊은 근원부의 소스, 더 진실도가 높은 리얼리티을 향해 무성히 가지를 뻗어나갔다. n차원에서 2n차원의 세계로, 다시금 3n차원의 세계로 도약하였다. 마치 이는 평면이 개화하여 입체가 되는 현상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단순히 정복한 차원축 개수만 늘려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구조물이 잠식한 영역의 너비 또한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테서렉트 아키텍쳐에 침식된 은하의 개수는 이미 3억을 넘겼다. 이는 구조물의 지지대가 될, 각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도 3억 개 이상 확보되었다는 뜻. 지지대의 증가는 확장 가능 범위의 증가를 의미했다.
마침내 이러한 대대적인 증축과 확장에 힘입어 이제 카이젤은 제3의 눈에 의지하지 않고도 일상생활 중 자연스레 고차원 세계를 인지할 역량을 얻게 되었다. 이제 그가 창조한 초차원 구조체의 영향이 닿는 곳이면 우주든 어디든 그의 눈과 손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73,005,600번째 업그레이드 완료……, 하지만.”
그는 한 끝의 작은 부족함을 느끼고는 깊이 고민하였다.
“아직까지 ‘바인(Vine)’을 심기에는 부족한가? 지금 내구도로는 무리겠군.”
다른 초인들이 생각하기에는 테서렉트 아키텍쳐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식을 뛰어넘는 두려움이겠지만, 카이젤은 그 너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지금보다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손가락을 닿게 할 수 있는 영역.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비전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가동되고 있었다.
“형!”
그렇게 고민하던 중, 늘 반갑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의 의식과 인지를 3차원의 낮은 세계쪽으로 다시 끌어내렸다. 카이젤은 테서렉트 아키텍쳐나 바인 같은 괴이한 것들을 언제 감상했냐는 듯 능청스럽게 싱글거리며 윤혁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래, 무슨 일이지?”
“…….”
그의 동생은 마치 일생일대의 결정이라도 한 듯 표정이 사뭇 무겁고 심각해 보였다. 카이젤은 과연 동생이 또 무슨 귀여운 항변을 내놓을지 약간 궁금해졌다. 그는 도발하듯 슬쩍 건드려보았다.
“왜 그리 심각한데?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어?”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존댓말이 나오자 카이젤은 미간을 찌푸렸다. 윤혁은 지금 이 자리를 공적인 대면으로 인식하는 중이었다. 즉 지금의 그의 모습은 형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며 정식으로 인류연합 대표를 맞상대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상당히 중대한 각오로 중요한 이슈를 걸고 나온 모양이다.
“말해봐.”
카이젤은 그에 응수하여 평상시의 냉정하고 차디찬 어투로 응수했다. 윤혁은 말을 어떻게 정리정돈해서 나타날지를 고민하며 잠시 머뭇거렸다.
“심각한 일인가 보군.”
“네, 우주 인류 프로젝트……, 그 두 번째 단계에 관해서 묻고 싶습니다.”
“흠.”
벌써 뭔가를 알아차린 모양이군. 하긴 지금쯤이면 벌써 전반적으로 소문이 났을 테니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카이젤은 여유로이 다음 대화를 기대하였다.
“현실 세계의 변화에 민첩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좋은 태도야.”
동생의 표정에는 깊은 의구심과 경계심이 녹아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윤혁은 카이젤의 태도가 석연치 않아 보일 때마다 저런 긴장한 표정으로 반응해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항변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윤혁의 패턴이었다.
‘평정심을 잃었군. 이렇게 속이 잘 보여서야 원.’
하기야 이해는 갔다. 우주 인류 프로젝트 2단계는 1단계인 하늘도시 경영보다도 더 냉정한 제도이니, 진실을 안 동생으로서는 저런 반응을 보여야겠지. 그렇다면 윤혁은 과연 무슨 대답으로 응수할 생각일까? 선뜻 예측하지 못하는 수수께끼란 이런 면에서 꽤 흥미진진했다.
‘그래. 우주 인류 프로젝트는 총 4단계.’
제1단계, 하늘도시 프로젝트.
인구수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표식을 완성한다.
제2단계, 외계행성 프로젝트.
구축된 우주 인류의 완전한 물리 적응 능력을 완성해낸다.
제3단계, 방주 프로젝트.
가시우주의 한계를 넘어 인류 문명의 범주를 무한의 권역으로 확대한다.
제4단계, 대우주 종족으로 번창한 인류를 담아낼 ‘그릇’을 양산해낸다.
일반인이야 잘 모르지만, 초인들에게는 이 4단계의 프로토콜은 공공연히 알려진 상태였다. 전면개방의 시대가 펼쳐짐과 동시에 제1단계는 완수되었다. 현재 제2단계가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 목표는 단순하다. 인간이라는 종족을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 시간적 제약이란 노화를, 공간적 제약은 환경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는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우주 공간 어디든 맨몸으로 활보 가능한 불사신 종족으로 인류를 탈바꿈하겠다는 뜻이다. 표면상의 이유로는 다행성 개척종으로 적응력을 높이겠다는 소극적 목적만 드러냈지만 카이젤의 진정한 의도는 종족 차원의 궁극적 승화였다.
동생은 과연 어느 부분까지 인지하고 있을까?
“저와 예전에 처음으로 식사하셨던 때를 기억하시는지요?”
“물론이지.”
“그날 식사 자리에서 무엇을 주제로 토론했었는지도요?”
“피코머신에 대해서였지.”
“정확히는 불로불사에 관해서였죠.”
“네 철학적인 견해가 나름 인상적이었지.”
그 당시의 윤혁은 피코머신이라는 의료기기가 단순히 노화를 막거나 역행시키는 목적의 도구라고만 생각했다. 그때는 순진했었다. 하지만 이후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차츰 더 깊고 상세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이오닉 솔져 같은 예시를 본 뒤 피코머신이 강력한 신체 능력이나 이능력으로도 발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인체를 불사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 별도의 영양이나 에너지의 섭취가 없이도 영구적으로 기능과 형태를 유지하게 해줄 능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너는 여전히 불로불사의 힘이 거북한가?”
“…….”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이었다. 윤혁은 분명 죽음을 악 혹은 악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이생에서 인간의 힘으로 이룩한 불로불사는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무의미를 넘어서 어쩌면 악할지도 모르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그의 관점을 타인에게 납득시키려면 종교적인 해석을 활용해야만 했다. 같은 신앙관을 지니지 않은 사람에게는 백날 그런 식으로 설명해도 궤변처럼 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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