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70회 아벨의 후예 Ch 12. 실험체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07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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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동생에게 열등감을 알게 모르게 많이 품었습니다.”
먼저 재현은 자신의 숨기고픈 부족한 옛 모습을 고백하였다.
늘 모든 것을 압도적으로 잘했으나 일부러 형을 의식하여 재능을 감추었던 동생, 수현. 그런 모습은 재현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재현더러 잘난 동생 발목이나 잡는 놈이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랬기에 동생은 자랑스러우면서도 내심 속이 상하게끔 하는, 복합적인 감정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예전의 저는 온전한 사랑을 할 능력이 없던 인간이었는지도 몰라요. 사고를 겪은 뒤 회복기를 가지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신이 살아계신다면 저 같은 녀석도 온전한 한 작품으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어쩌면 그가 나를 버리지 않았기에 지금껏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어요.”
그 후, 그는 운명처럼 강성한이라는 사람과 만나게 되었고 복음을 들을 기회도 얻었다. 재현은 그때 그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늘 애정 결핍에 찌들어 인정에 목말라 있던 영혼이 변화하였다. 더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사랑의 실존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아봐 주신 것만으로도 가슴이 편안했다.
“그러자 자연히 동생과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태도도 달라졌어요. 동생에게 품어왔던 쓴 뿌리나 열등감은 녹아내리듯 없어졌죠. 오히려 그 아이를 진심으로 품어주고 돕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어떻게든 기회가 닿는다면 주님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죠.”
지현도 비슷한 사정이었기에 공감했다. 그는 사실 어린 시절부터 성운을 무서워했다. 겉과 속이 똑같은 단순하고 순수한 작은 형들과는 달리, 큰형은 그야말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무저갱 같은 사람이었다. 사고방식도 보통 사람과는 달랐고, 생각의 깊이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렴풋이나마 지현은 초인과 일반인의 막대한 격차를 인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도지를 읽고 예수님을 알게 된 뒤 지현은 성운 또한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그러듯 큰형도 그저 하나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불쌍한 사람 중 하나였다.
마음가짐이 그렇게 변화하자 이전에 느껴온 두려움은 눈 녹듯 소멸하였다. 오히려 부드러운 마음씨와 친절한 태도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성운도 차차 막내에게 말을 편하게 터놓으며 그의 친절을 받아주었다. 이로써 지현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사랑을 받는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까지 바꿔놓을 힘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만일 형이 주님 보시기에 그릇된 행동을 범한다면……, 제가 직접 희생해서라도 본보기를 보여줄 생각이에요. 그가 그것을 보고 뉘우치거나,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부끄러워하도록. 말로 복음이 먹히지 않는다면 행동으로도 대응해야죠.”
그러자 이에 재현도 깊이 동조하며 맞장구쳤다.
“지현이 말이 맞아요. 우리는 주님을 위해 형제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지, 형제에게 휘둘려 살아갈 생각은 없어요. 그들이 반대하더라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형제가 그릇된 길에 계속 머무르도록 내버려 두면 그것이야말로 사랑과 가장 거리가 먼 행동일 겁니다.”
리온은 속으로 크게 놀랐지만, 표정을 태연히 갈무리하였다.
“설령 그들이 끝까지 돌이키지 않더라도요?”
“음……, 그런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만일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닐까요? 그때는 저의 영혼을 구원해주신 것만으로도 영원히 주님께 감사해야겠죠. 그리고 안 좋은 미래를 미리 고민하며 두려워하고 싶지는 않아요.”
재현이 명쾌하게 정답을 말해버리자 리온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자신도 미리 상대의 연약한 자질을 염려하기보다는 먼저 기회를 주고 함께 행동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의 아니게 두 분을 시험해야 했습니다. 무례하게 가정사까지 거론했으니 상당히 불쾌하게 느끼셨을 줄 압니다.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이에 두 청년의 진지했던 표정이 편안해졌다.
“그, 그러면?”
“저희는 합격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두 분을 동료로서 섬기겠습니다.”
이내 무거웠던 분위기가 걷히며 웃음꽃이 활짝 폈다. 공기가 평온하고 따뜻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리온은 두 사람이 기쁨에 너무 들뜨지 않도록 쓴소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몇 달간 이것 저것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제자로 살아가는 길과 그 훈련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부분적으로만 작동하는 보통의 사제 관계와 달리 주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길이란 자기 삶의 전 영역을 내맡기고 복종하는 훈련이니까요. 지금 상태로는 본격적인 영적 전투에 임할 수 없습니다. 아마 각오를 단단히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둘이 한목소리로 당당히 열창하자 리온은 한 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재산 환원은 굳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소속된 팀은 항상 재물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를 원동력으로 움직이거든요. 굳이 기부를 하고 싶거든 마침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베푸시면 됩니다.”
한창 지구 선교에 힘쓰는 중인 가난한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재현과 지현은 흔쾌히 대답하며 기뻐했다. 이렇게 우주 교회 전체를 교정할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필 지구 교회의 사역팀이 결성되었다.
*
수백 명의 사람이 낯선 공간에 소환되었다. 아공간도 던전도 변형된 공간도 아닌 장소. 시뮬레이션 우주나 오버랩 월드 또한 아니었다. 그곳은 통일시스템이 독립적으로 생성해낸 특수 영역이었다.
이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곳에 흩어져 지내던 중 불현듯 깅제로 워프 되어 이곳에 도달했다. 강력한 마인드컨트롤이 발동되고 있는 것인지 서로 잡담은커녕 눈짓이나 사인을 주고받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통일시스템이 자신들에게 무슨 짓을 또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이 사람들은 전직 히어로즈 멤버였다. 곧 이들은 우주 인류로 태어나 휴먼 솔져로 활동하다가 운 좋게 시민권을 얻어 지구에 정착했던 히어로들이었다. 크로스솔져 66명도 이들 중 포함되었다. 스위치는 꺼졌다지만 이들에게는 표식의 잔흔이 남아있었고 그 속에는 워프 마커도 남아있었다. 바로 그 마커 때문에 통일시스템의 능력으로 이들을 우주 저편에서 이편까지 순식간에 옮기는 일이 가능했다.
이전에 유성운과 크리슈나 칼라만트라가 각기 다른 역할의 대표가 되어 지구에서 운영하던 히어로즈 제도는 휴먼 솔져 제도 내부로 흡수되었다. 때문에 히어로의 대다수는 졸지에 다시 실직자가 되었다. 일부는 휴먼 솔져 부속으로 재편성된 히어로즈 부대에 재입대하였다. 나머지는 하염없이 세월만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지구에 머무르던 실직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하던 중이었다. 그들 귀에도 여러 소문은 착실히 들려왔다. 인류연합과 U-society가 과거 그들이 태어난 고향이었던 하늘도시들을 Upol이라는 새 이름의 행정구역으로 재편하고 사람들에게 2등 시민권을 제공했다는 소식, 개방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던 우주 인류의 문명, 대대적으로 재개될 징조가 보이는 정신적 육체적 인류 진화 프로젝트에 관해서까지.
조만간 저 너머의 2등 시민 중 지구에 거할 1등 시민이 선발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흐름이었다. 이는 기껏 힘들게 노력해서 지구에 들어온 자들이 다시 쫓겨나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원래 지구에 살던 자들이야 귀소 본능이란 게 얼마나 강력한지 잘 모를 테니 쫓겨나도 고통이 덜하겠지만, 어렵하리 지구 입성에 성공한 경험이 있던 히어로들은 다시 쫓겨난다고 생각하니 몹시 죽을상이 되었다.
바로 이런 때에 달콤한 음성이 그들 귀에 속삭였다.
{여러분들에게도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통일시스템은 장차 있을 Irregular Survival 111 프로젝트에 관해 부분적이나마 히어로들에게 정보를 공개하였다. 물론 이레귤러들이 공지 받은 메시지와는 부분적으로 내용이 달랐다. 정확히는 각 그룹에 공개한 내용이 달랐다.
전직 히어로들은 지금 온 메시지가 시사하는 바를 잘 이해하지 못해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크로스솔져들은 그 심연의 저의를 대번 알아차리고는 치를 떨었다.
‘기어코 저지르겠다는 뜻인가.’
‘설마 우리와 이레귤러들을 한꺼번에 겨냥할 줄이야.’
‘기독교적 가치를 윤리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겠다는 선언이군.’
‘성한 아저씨의 아들이 끝내 이렇게 나오는군.’
이번에 추가된 플레이어들인 전직 히어로들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 이들은 경합의 후보 선수로 나아갈 진짜 주연 플레이어들인 이레귤러들을 곁에서 보조해주는 역할이었다.
{후보자 1인당 총 24명의 보조인원이 배치됩니다. 매칭은 보조인원이 원하는 후보자를 택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입니다. 111명의 이레귤러에 대한 정보는 한번에 공개되지 않고 시간차를 두고 여러 단계에 걸쳐 조금씩 제공될 것입니다. 같은 후보자에 다수의 보조인원이 몰리면 여러분의 이전 실적이 당락에 반영됩니다. 물론 통일시스템의 주권적인 판단도 개입될 수 있습니다.}
이는 풀어서 해석하면 한 마디로 시스템의 마음대로 매칭하겠다는 뜻이었다. 불공정성이 대놓고 개입될 것을 밝힌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울러 히어로들이 어떤 이레귤러를 선호하는지를 눈여겨보아 성향 정보를 캐내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히어로들은 불안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몇몇은 의구심을 품었다. 만약 111명의 이레귤러 각자에게 24명씩 히어로 보조자가 붙여진다면 산술적으로 총 2,664명의 히어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인원수는 기껏해야 그 삼분의 일 남짓했다. 남은 인원의 충원은 어찌 되는 건지 궁금했으나 누구도 감히 입을 열어 통일시스템에게 질문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마인드 리딩으로 이들의 생각을 읽어낸 시스템이 답을 해주었다.
{보조인원의 일부는 최근 우주에서 새로 선발된 휴먼 솔져에서 충당할 예정입니다. 대부분 휴먼 솔져 군대 내부에서는 하위권이지만 여러분하고 비교하면 별 손색은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최근에는 이전에 히어로들이 휴먼 솔져로 복역하던 과거 시절에 비해 전반적인 교육 및 선발 시스템의 개량이 이뤄졌다. 그 덕인지 오늘날의 휴먼 솔져들은 이전의 솔져보다 압도적으로 탁월했다. 아마 초월 진화의 표식도 여기에 크게 한몫하였으리라.
어쨌건 시스템의 조롱을 들은 히어로들은 속으로 내심 이를 갈며 분해했다. 한때 최고의 베테랑으로 불리던 자신들이었거늘. 그러나 현 군대 기준으로는 자격 미달의 약자에 불과하다는 시스템의 조롱이 현실임을 알기에 분해도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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