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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82회 아벨의 후예 Ch 14. 각자의 출발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19 | 회차평점 0 0

 

 

*

 

 

 

 

 

   윤혁은 새로이 재질이 바뀐 육체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다행히 그의 경건한 영적 활기와 풍부한 감성은 일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또 기본적인 생리 욕구도 정상적이었다. 오감은 더 풍성해졌고 몸의 피로는 말끔히 사라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때때로 염려도 들었다. 재혁은 알트루즘이 행성 범위에서만 작동하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에 오차가 있다면? 혹 그것의 기능이 확대되거나 증폭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컨대 만일 한 은하에 속한 외계행성 전체로부터 사람들의 육체적 부적응이 전가되어 온다면?

   ‘나는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주님께서는 온 만물은 물론 시간을 넘어 모든 시간 선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영원한 형벌을 능히 담당하셨다. 물론 그 무한한 흡수는 그분께서 무한한 존재인 신이기에 가능했다. 다만, 고난 앞에서 의연했던 그분의 태도를, 그 인내의 길을 기꺼이 따라갈 수 있는지 자문해보니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 분명 윤혁은 아직 그분의 전부를 본받을 만큼 용맹하지 못했다.

   ‘내 선택이 지혜로운 것이었을까?’

   이제껏 윤혁은 판단할 때 늘 성경적인 가치관을 기초로 삼았다. 이 원칙만은 지금도 고수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 한 권이 모든 상황에 대해 일일이 지시해주는 매뉴얼이 됨을 의미하진 않았다.

   고대에 쓰여진 성경이기에 분명 상황과 문맥의 한계 안에 갇힌 채 서술된다. 미래 세계의 상세한 물리적 상황까지 모두 기록돼 있지는 않다. 영적 진리에 있어서 절대적 기준이 됨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이지만, 성경의 원리를 구체적인 생활에 적용하려면 지혜와 분별력과 자유의지가 필요했다.

   예컨대 이번처럼 알트루즘을 이식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는 문제는 좀처럼 어느 쪽이 지혜로운지 윤혁으로서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내가 혹시 실수한 것은 아니겠지?’

   의심의 마음이 들자 저도 모르게 기운이 빠지는 감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회하면 무엇하겠는가. 이미 선택해버린지라 돌이킬 도리는 없었다. 앞으로 이 결정으로 파생될 일들은 온전히 윤혁의 책임이다. 선택할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영광인 동시에 큰 부담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윤혁 님.”

   불꽃을 연상시키는 붉은 색 머리카락을 지닌 한 미남자가 길을 가던 중 나타나 윤혁을 맞이하였다. 루비 빛깔의 동공이 인상적이었다. 직감적으로 윤혁은 상대가 초인임을 느꼈다. 얼핏 느껴지는 바로는 최소 상급 초인인 듯했다.

   “저는 인류연합 대표님을 모시는 직속 비서 데미안 룩스입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우이신 강윤혁님을 보호하기 위해 저를 파견하셨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비서관님.”

   왠지 모르게 부담감과 거리낌이 들었다. 지킨다고 표현했지만 아마 감시하는 쪽에 가까우리라. 거절할 권리는 없을 것이 뻔했다. 아마 보호한다는 대상은 윤혁 자체만이 전부는 아니리라. 알트루즘은 엄연히 메이저급 초지능체의 일부분. 그러니 인류연합 측에서도 특급 보호 대상으로 여길 것이 분명했다. 어느새 물건으로 취급받는 신세에 처해졌다고 생각이 드니 슬퍼졌다.

   “강윤혁님.”

   “편하게 불러주세요.”

   “네, 강윤혁씨.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당신은 원정대 팀원으로 합류하여 여러 은하들을 순회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물론 그 여정에 같이 참여할 계획이고요. 그 이유는 이미 공지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윤혁이 알트루즘을 이식한 목적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 일에 뛰어들 때가 이르렀다. 이식까지 완수한 지금 무섭다고 피하는 것은 어불성설. 이제 곧 미지의 고난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염려로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윤혁은 끝까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는 곧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 전부를 주님의 계획에 내맡겼다. 설령 자신의 판단 속에 실수가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또한 앞으로 여러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할지라도, 그 부분들마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리라 믿고 불안을 내려놓았다.

   “여행은 얼마나 오래 진행됩니까?”

   “일이 얼마나 수월하게 풀리느냐에 달렸습니다.”

   개략적인 계획의 틀은 이러하였다. 원정대는 한 행성 당 최대 사흘을 머무를 예정이었다. 중간 중간에 은하와 은하 사이 공간, 별과 별 사이 공간, 혹은 상위 차원이나 웜홀 내부에서 수일 이상을 보낼 수도 있다. 데미안이라는 이름의 그 비서관은 구체적으로 그렇게 계획이 잡힌 이유는 굳이 설명해주지 않았다.

   “제 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나요?”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가 파견된 겁니다.”

   “그 말인즉……, 위험 요소가 존재하긴 한다는 뜻이네요.”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요. 알트루즘에 흥미를 보이는 자들이 몇 있습니다. 물론 대표님께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긴 하나 강윤혁씨의 안위까지 신경 쓰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되려 그들은 대표님께서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유약해지는 것을 원치 않아 하니 당신을 거슬리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데미안의 어투는 참으로 미묘했다. 제삼자의 생각을 전달하는 와중에 본인도 은연 중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그도 윤혁을 카이젤의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데미안의 얼굴 뒤에 숨겨진 가면을 어렴풋이 느낀 윤혁은 긴장했다.

   “죄송하지만 유약해지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네요. 사람다움을 갖춰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일개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뜬금없는 대답에 윤혁은 기가 막혀 답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럼, 사람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이미 같은 종(種)으로 보기에 그분은 너무 많이 나아간 듯합니다만.”

   순간적으로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며 스파크가 튀었다. 윤혁은 기분이 상했다. 비서라는 자가 대체 상관을 어찌 생각하는 것인가. 사람이 아니라니. 비방의 의미보다는 숭배의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형을 인외의 존재로 취급하는 태도는 썩 마음에 안 들었다.

   “네, 뭐,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정은 언제쯤 떠나게 되나요?”

   “12월 중순쯤입니다. 미리 가족 친지들에게 인사를 해두시죠.”

   “알겠습니다.”

   날짜가 절묘했다. 본의 아니게 올해는 형의 생일선물로 동생의 심장을 선물해준 격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뜻함이 심긴다면 좋겠다만. 생물학적인 심장은 그저 혈액을 돌리는 동역학적 펌프일뿐 감정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아쉬었다.

   현재로써 윤혁이 기대하는 바는 그저 자신이 이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한 희생에서 벗어나 생명의 기회를 얻는 일뿐이었다.

   “목숨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최고의 의료진이 동행할 것이고 무엇보다 인류의 영토 전역에는 대표님의 감시와 권능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제가 그분의 권위를 빌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조건이면 최상위 초인이 방해해도 제가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름 안심시켜주는 말이었음에도 윤혁의 기분은 썩 상쾌치 못했다. 진과의 계약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교훈이 하나 있었다. 일반인은 초인과는는 되도록 관계를 맺지 않는 편이 낫다. 진도 윤혁의 이용 가치가 다하자 가차 없이 내버리고 칼리드와 손을 잡았었지 않았던가. 그러니 다른 초인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데미안 비서관님은 형의 수족이었지.’

   어떤 의미에서 장기적으로 가장 위험한 상대는 일개 최상위 초인이 아닌 카이젤 본인이다. 그런 카이젤의 손발이 자신을 감시하는 상황은 썩 반길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비서관의 존재가 주는 부담감 이전에 윤혁은 형의 일부를 이식받은 이후로 내내 살얼음판 위에 놓인 기분이었다. 전에는 그 불편한 거물로부터 물리적으로라도 조금 거리를 둘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해졌으니까.

   ‘내가 똑바로 일을 못 해낸다면 형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갖겠지.’

   이런 생각에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한편 데미안은 자신의 주인의 외양을 아주 조금 닮은 눈앞의 청년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면밀히 관찰하였다. 한없이 강력한 제 주인과는 달리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존재였다. 몸도 썩 강하지 않고 머리는 기껏해야 일반인 수재보다 조금 못한 수준이며 외모도 그분에 비하면 초라했다.

   ‘이해하기 어렵군. 역시 겉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이건가.’

   고작 이런 범부가 불과 3년 만에 하늘도시 전역에 거쳐 그런 엄청난 규모의 변혁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니. 쉬이 믿기 어려웠다. 그 소문을 들었을 적에는 과연 동생도 그 대단한 카이젤을 닮아 일정 부분 비범함과 특출함을 지닌 사내라 그런가보다 하고 기대했건만, 막상 실제 모습을 확인해보니 그 기대는 솔직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그는 며칠 전 나눴던 주인과의 대화를 회상해보았다.

   그날 카이젤은 데미안에게 외계행성들과 관련된 브리핑 데이터를 넘겨주었다. 그와 동시에 강윤혁이라는 인간을 데리고 거쳐 갈 여행길을 미리 잘 닦아둘 것을 지시했다. 단순한 임무는 아니었다. 이 계획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피코머신 프로젝트의 장기적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잘하면 우주 인류 프로젝트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카이젤을 거듭 주의를 당부했다.

   “이번 기회에 조금은 속죄할 수 있겠군.”

   그때 혼잣말로 카이젤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속죄라면, 무엇을 말입니까?”

   “아, 피코머신 기술을 남용한 건에 대해서 말이야.”

   언터쳐블 테크놀로지 중 하나인 피코머신. 과연 그 이름값에 걸맞게 피코머신은 실로 놀라운 기능을 자랑했다. 너무도 섬세하고 완벽한 미세 조작 기능 덕에 갖가지 불가능한 일들도 가능케하였다. 이는 활용도의 무궁무진함을 의미했고 온갖 남용에 실제 투입되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인류연합은 여러 일들을 위한 해결사로서 이 기술을 애용했다. 예를 들어서 갈트론이 다양한 생물학적 성별의 축을 재창조해내거나, 에녹이 TUNER를 이용해 실험체들과 실험체 종족을 인위적으로 특정한 목적대로 진화시키거나, 태양을 삼킨 늑대가 기괴한 형태의 ‘종의 기원’을 실현했을 때. 그 모든 프로젝트에서 피코머신 기술은 약방의 감초마냥 이용되었다.

   선을 넘는 행동, 이를테면 이종족을 창작하거나 인간을 개조하거나 인간과 다른 존재를 섞는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기술적으로 막히면 즉각 지체없이 피코머신에 손을 뻗치는 초인들이 제법 많았다.

   이런 생물학적인 응용에만 접목되면 그나마 다행이려니와, 불행히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피코머신의 기괴 응용 방식에 종종 차원 기술이나 물리 조작 기술까지 더해지기도 했다. 이 경우 상식을 뛰어넘는 별의별 작품이 만들어지곤 했다. 이렇듯 최근 들어 생명 윤리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온갖 괴이한 존재들이 우주에 범람하게 된 데는 만병통치약인 피코머신 기술을 발명한 카이젤의 책임이 컸다.

   “특별히 하데스 챔버에 봉인되었다가 지금에서야 풀려난 우주 인류, 그들은 그런 프로젝트들의 영향을 너무 오랫동안 많이 받았다. 그 탓에 축적된 생물학적 변이가 크지.”

   카이젤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그들이 인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남은 것은 사실상 기적과도 같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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