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81회 아벨의 후예 Ch 14. 각자의 출발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04 | 회차평점 0 0

 

 

 

 

 

 

Chapter 14. 각자의 출발

 

 

 

 

 

 

 

   그 무렵 레우벤 몰데카이의 인생에 커다란 격변의 흐름이 다가왔다.

   원래의 그의 삶의 궤적은 그리 흥미롭거나 극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소속 상 유대교 신자였다. 그러나 온건하고 중립적인 편이었다. 종교심이 아주 투철하지는 않았으나 무신론자들처럼 아주 세속적이지도 않았다. 또한 메시아닉 유대인이나 위버멘쉬 추종자들이 대립을 세울 때도 그는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켜왔다. 한 마디로 극명히 편이 갈라지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었다.

   불의의 사태로 섬에 정착한 뒤 지금까지 눌러 앉게 된 데에는 이런 성향도 한 몫 하였다. 잠깐 기억상실에 휘말린 탓에 새 정착지에 발이 묶인 영향도 있었으나 다시 기억을 되찾은 뒤로도, 고향을 다시 방문해 그곳의 소식들을 파악한 뒤로도, 그는 거주지를 옮길 생각을 않았고 끝내 섬을 새 터전으로 택했다. 아무래도 대립에 휘말리는 일에는 신물이 나서 그랬으리라.

   또는 아픔에 대한 의도적인 망각을 택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고향 땅을 다시 밟았을 때 아내가 종교 분쟁에 휘말려 죽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던 그는 비극적인 충격을 회피하고자 한 나머지 마음 한켠에 묻어버렸다. 자연히 옛 고향 땅을 밟고픈 생각은 다시 들지 않게 되었다.

   그저 그는 자신이 거둬들인 소녀 레리엔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잠잠히 외딴섬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훗날 레리엔은 그의 품을 떠나 잠시 세상 밖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크게 품었던 비전과는 달리 현실은 엄격했고 그녀는 세력 경쟁에서 밀려나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입양을 통해 맺어진 두 부녀는 비슷한 처지의 쓸쓸한 모습이 된 채 다시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레우벤은 그녀와 함께 하와이에 머무르며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심심하고 쓸쓸했던 그의 주변에도 작고 소소한 변화가 나타났다. 레리엔이 인류애에 기반하여 받아들인 난민들, 그 사람들이 때마침 옛 동포 출신들이 아니던가. 고향을 피하던 그도 내심 동향민들에게 그리움은 있었던지 그의 마음 가운데 반가움의 감정이 스며들었다. 딸의 적극적인 선행에 미치지는 못할지라도 그는 자기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난민들을 따뜻하고 후히 대우하였다.

   어쩌면 그 디아스포라 유대 난민들이 아내와 같은 처지의 약자들, 종교로 인하여 따돌림과 손해를 입던 자들이어서 더욱 연민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들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점을 쉽사리 수용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일례로 그에게는 삼위일체의 교리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울러 이스라엘 국가의 영광을 설립하는 데 실패한 젊은 고대 랍비가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인정하려는 의향도 없었다. 그는 그런 엉뚱한 주장을 종종 몇몇 이웃에게서 들어오긴 했지만 10년 이상 그 말들을 무시한 채로 잘만 살아왔다. 그가 파란만장한 경험을 겪어온 건 사실이었으나 딱히 그의 사고 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 풍파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런 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근 며칠 사이 강렬한 계시라고 해도 좋을, 중대한 내적 체험을 연거푸 겪었다. 초자연적인 경험은 아니었고 그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요소들에서 스쳐오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들의 인생이 그의 생각을 움직인 산들바람의 근원지였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갔었을 것들이 그의 잔잔했던 삶에 아지랑이를 일으켰다.

   최근 어느 날, 그는 섬 외곽 지역의 길을 거닐던 중, 밭에서 일하던 주민과 대화를 나눌 기회을 얻었다. 형편도 어려워 보이고 고생 꽤나 했을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의 얼굴에는 이생에서 찾아보기 힘든 평온함이 깃들어있었다.

   레우벤은 그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이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슈아의 은혜를 믿고 새로이 태어나긴 전, 내 삶은 각박하고 고달팠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그분의 영이 자리 잡고 생명을 얻자 찬양과 기쁨이 솟구쳐나오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말입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날의 짧은 대화는 레우벤의 뇌리에 적잖은 충격을 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는 레우벤에게 “당신은 당신 자신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문득 말문이 막힌 채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레우벤은 딱히 남에게 피해끼친 적 없이 살아왔다. 특별히 악행을 행 기억도 없었다. 하지만 천국에 들어갈만큼 선을 행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이웃은 “누구도 자기 선행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다고 나선다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죄라는 문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레우벤은 문득 이 사람과의 대화 가운데 어느 누군가가 자신을 간절히 찾고 있는 중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의 그는 그 정체 모를 부름에 외면으로 대응하고 싶었다. 이는 염려 때문이었다. 자칫 한 번 발을 디디면 되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직감이 그를 가로막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레우벤은 마을 공터에서 노래하는 소년들에게 그들이 찬양하는 대상인 예슈아라는 사람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소년들은 “이미 구약 성경이 그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그 책을 찬찬히 살펴보시오.”라고 말했다.

   기막힐 노릇이었다. 레우벤이 아는 예슈아란 그저 2천 년 전 잠시 이스라엘이라는 땅을 밟다간 역사 속 인물, 혹은 훌륭한 도덕 선생일 뿐이었다. 그런데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사용한다는 신약도 아니고 유대교인들의 타나크, 기독교인들 표현대로라면 구약 성경이, 그것도 유대인들이 가장 아끼는 토라(모세오경)가 일개 한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니! 쉬이 믿겨지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 레우벤은 그 세 번의 계시 같은 묘한 경험을 애써 외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또한 간단치 않았다. 그러던 그는 우연히 누군가가 두고 간 낡은 신약 성경책을 발견하여 주워 들었다. 이는 행인들을 위해 믿음의 선배들이 마을 어귀에 비치해둔 선물이었다.

   레우벤은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뭔가에 홀린 듯 그 책을 펼쳤다. 그때 복음서의 한 페이지가 펼쳐졌다. 베드로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자기 스승을 비겁하게 세 번이나 부인하는 수치스러운 기록이 적혀있었다. 순간적으로 레우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도 며칠 전부터 누군가의 부르는 소리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그는 찬찬히 책을 정독했다. 앞에서부터 맨 끝장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예슈아를 따르던 제자들이 모두 유대인이었음을, 또한 이 복음이라는 말씀이 유대 민족과 밀접하게 얽혀있음을 깨달았다. 지금껏 그는 유대교라는 낡은 관습에 얽매여 복음에 무관심으로만 응수했건만, 이제 그의 고리타분한 편견이 산산이 깨어졌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읽으면서 그는 예슈아의 가르침 앞에 전율하였다. 신적 권위가 피부로 느껴졌다. 요한복음을 펼치는 순간, 그의 완고했던 마음에 거부하지 못할 현실 직시가 와닿았다. 이제까지 조상들과 자신이 무의식 중 찾아왔던 진리가 이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그는 신약 성경 전체를 며칠간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었다. 끝으로 계시록에 도달한 순간 레우벤은 당혹하며 경악했다. 현 세상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정확히 묘사한 예언서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구약부터 신약까지, 성서의 모든 부분들이 퍼즐 조각이 되어 계시록이라는 접합점으로 수렴한 뒤 연결되고 맞춰져 비로소 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을 눈앞에서 생생히 체험했다.

   몹시 두려웠다. 성경은 레우벤을 향해 ‘너는 의인이 아닌 죄인이니라’ 라고 증언하였다. 예슈아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던 바리새파 위선자들을 엄격히 꾸짖었었다. 이것은 비단 그들만을 위한 꾸지람이 아니었다.

   레우벤은 성경을 통해 전달된 예슈아의 질책을 듣고 선택해야 했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부패한 존재인지 바라보고 그 내면의 현실을 직시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일부러 외면할 것인가. 전 같았으면 관성대로 행동했겠지만 이미 한 번 진실의 권능을 본 뒤인지라 전자의 선택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뒤이어 심각한 고뇌와 갈등이 밀려왔다. 성경에는 예슈아를 따르려면 반드시 세상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고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자기 마음속의 왕좌 위에서 메시아이자 하나님이신 그분 이외에 다른 것들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털어내어 그것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한 치의 남김 없이 참된 주인에게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예슈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소개하였다. 그리고 그분은 성경 기록 앞에 마음이 벌거벗겨진 레우벤에게 철저한 결단을 요구했다. 하나님이기에, 또한 창조주이자 죄를 심판하시기에 합당한 절대자이기에,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한 당사자이기에, 그분은 기꺼이 모든 것을 내놓도록 요구할 자격을 소유하고 있었다.

   [너는 나를 필요로 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게 문을 열어라. 네가 그러지 아니하면 나는 네게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며 너는 나를 따를 수 없다.]

   이것이 비가역적인 선택임이 분명했다. 한 번 문을 열면 두 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어쩌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용서란 너무도 두려운 것이었다. 빚지는 것이 무서운 것과 같은 원리였다. 영원 그 자체를 빚진 자로서 자신의 주도권을 영원히 하나님과 예슈아께 속박당할 것이 두려웠다. 이것은 자아에 대한 사형 선고였다.

   ‘어떻게 하지?’

   레우벤은 밤새 일생 최대의 문제를 두고 씨름을 하였다. 절망에 비례하여 고뇌가 커져갔다. 갖가지 구차한 변명이 떠올랐다. 어쩌면 수십 년간 함께했던 소중한 딸이 자신과 멀어질지도 모른다. 훗날 고향에 대한 향수가 일어나도 종교적 문제로 인해 이스라엘로 되돌아갈 길이 막힐지도 모른다. 비록 당장 핍박이 면전에 놓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택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비용을 철저하게 계산해야만 했다.

   기나긴 씨름의 승리자는 그가 아닌 그리스도였다. 그분은 끝내 저항하던 레우벤의 문을 활짝 열고 그의 심장을 정복하였다. 그 즉시 새 주인은 지금껏 낡은 집에 또아리를 틀었던 우상들을 깡그리 몰살하였다. 자기 사랑, 가족, 인정, 명예,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던 자부심 등등. 레우벤의 예상대로 돌아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셈이었다. 그는 성령의 포로가 되었다.

다음 날, 레우벤은 용기를 내어 섬의 주민들을 만났다. 그는 자신에게 발생한 영적 혁명에 관해 솔직하게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잠자코 경청하던 많은 이들이 그 회심의 간증에 감동을 받았다. 이 간증의 소문은 순식간에 섬 전역에 퍼져나갔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전에는 레우벤과 주민들이 은인과 수혜자로서 비대칭적 관계를 유지했다면, 이제는 한 마음을 나눈 형제의 관계가 진전하였다. 새로이 형성된 교제는 양측 모두에 유익을 주었다. 레우벤은 사람들과 영적 대화를 나누며 성경 속에 담긴 비밀들을 더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은 한층 더 강렬한 불길이 되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며칠 후, 이들의 교제는 부차적인 유익들도 낳았다. 숨겨진 과거의 진실들이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입을 통해 레우벤에게 전달되었다. 이는 그가 그들의 지난 사정에 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덕이었다. 그들의 지난 어려운 사정을 듣던 중 레우벤은 자신의 아내에 대한 소식 중 몰랐던 부분을 더 알게 되었다.

   이미 아나스타샤의 정보 전달 덕에 레우벤의 옛 일과 가정사에 대해 알고 있던 주민들은 말을 꺼내기 적합한 타이밍이 이르렀을 때 조심스레 그의 아내의 사정을 일러주었다. 그녀가 핍박을 받게 된 경위, 순교로 희생된 과정,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녀가 죽기 전에 동포들에게 맡겼던 그 아이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상처의 고름을 터뜨리는 과정에서 레우벤은 해소감과 더불어 한 줄기 소망을 얻었다.

   ‘등불 밑이 어두웠구나.’

   레리엔과 자매처럼 지내던 그 소녀, 루디아. 그녀가 바로 죽은 아내가 세상에 남긴 유품이었구나. 절제된 경탄의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왜 자신이 아무 인연도 없던 루디아에게서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익숙한 포근함을 느꼈는지를.

   이것은 성경이 거짓말을 이르지 않는다는 여러 증거 중 하나였다. 예슈아께서는 그분을 위해 기꺼이 가족과 재산을 포기하는 이에게는 내세에는 영생을, 현세에서는 포기했던 것의 여러 배를 주겠노라고 약속했었다. 그 선언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다음 생에서의 천국은 물론, 그분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새 가족들을 선물해주셨다.

 

 

 

 

 

 

 

 

(다음 회차에서 계속)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구원자로서만 받아들이고 주(주인)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법이지요
이전회

480회 아벨의 후예 Ch 13. 에고이즘과 알트루즘 (6)
등록일 2025-05-30 | 조회수 67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482회 아벨의 후예 Ch 14. 각자의 출발 (2)
등록일 2025-06-19 | 조회수 53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