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92회 아벨의 후예 Ch 17. 기억상실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11 | 회차평점 0 0

 

 

 

 

 

 

 

*

 

 

 

 

 

   행성 Planet-151,030의 환경은 대체로 황량했다. 일부 열대우림과 온대 지방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표는 사막 지대였다. 단순한 사하라 사막 수준을 넘어 화성이나 금성에 근접해 보이는 혹독한 지역도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모든 지역에 사람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지구보다 현저히 낮아 보였다. 적잖은 이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 생활하는 중이었다.

   “윤혁아, 괜찮겠어?”

   “걱정 마, 너야말로 절대로 슈트 벗으면 안 돼.”

   루디아가 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주님께서 직접 내린 시험은 그녀와의 접촉을 피하는 것. 어느 쪽의 이유건 윤혁과 루디아는 일단은 각자도생을 해야 했다.

루디아는 윤혁의 안색을 면밀히 살폈다. 이 행성에 착륙한 이후로 윤혁은 빠르게 핼쑥해지고 있었다. 환경 부적응이야 피코머신 덕분에 견딜 수 있다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알트루즘이었다.

   ‘불안정성 흡수인가?’

   행성혼이 존재하는 외계행성에 발을 디디는 바람에 알트루즘이 행성 전역의 생체 불안정성을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하필 행성혼과 접촉한 시점에 고통이 밀려든 이유는 이러했다. 본래 행성혼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행성 개간 작업인 라&가이아 프로젝트, 그런데 그것은 동시에 피코머신 프로젝트이나 이터널바이탈과도 긴밀하게 얽혀있었다. 이는 셋 모두 일차적 목적이 인간의 우주화이기 때문이었다.

   윤혁은 몇 차례나 콜록거렸다. 그중 몇 번은 피가 입에서 나왔다. 루디아는 깜짝 놀라서 그와 접촉하여 도우려 하였으나 우주 슈트를 벗으면 호흡 곤란이 올 거라는 경고하며 윤혁이 만류했다. 다행히 심장 덕에 재생 속도가 점점 가속되며 조금은 나아졌지만, 손상 속도와 재생 속도가 엇비슷했기에 윤혁의 몸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거듭 유지했다.

   “난 괜찮으니, 어서 가자.”

   둘은 차량을 타고 Planet-151,030의 대륙들을 모두 순회하였다. 워낙 속력이 빠른 덕에 행성 전체를 둘러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태를 관찰하였다. 전반적으로 평가하자면 이러했다. 만일 21세기의 지구가 환경 재난으로 멸망하여 오로지 소수의 생존자만 간간히 살아가는 모습이 된다면? 고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 배경이 딱 이곳의 모습과 비슷했다.

   차이를 들자면 그 재난 영화에서의 배경은 아름답던 지구가 퇴보해서 이뤄진 상태라면, 이곳은 그 반대였다. 원래는 금성이나 수성처럼 생명체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겠지만 그나마 테라포밍 덕택에 이 정도가 되었으리라. 아직도 개선해야 할 것들이 많아 갈 길은 멀어보였다.

   “왜 환경조성이 다 완료된 다음에 사람들을 투입하지 않고 이런 이른 시기에 사람들을 살게 하였을까?”

   루디아는 이곳의 인구 정착 제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환경조성이 어려운 일이라 오래 걸리는 것인지도 모르지. 원래 지구는 하나님께서 무한히 정교한 미세조정을 통해 완성해두신 행성이잖아. 인간의 기술로는 그 솜씨를 모방하는 것조차도 가벼운 일이 아니겠지.”

   “아무리 그렇다지만…….”

   루디아는 기가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진짜 목적은 일부러 혹독한 환경을 시험대로 삼아 인류를 진보시키려는 것이겠지. 이곳에서 소수를 희생시켜서 온 우주의 인류 생존율을 높이려고…….’

   이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형의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 불쾌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곳에서 무의미하게 영혼들이 죽어 나가는 일을 최대한 막아야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는 자기만의 방식을 내려놓고 주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룻, 내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돼.”

   “하지만.”

   “잠깐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불사신의 몸은 거뜬히 유지될 수 있을 테지. 오히려 정작 큰 문제는 이곳 사람들이야. 내가 자진해서 희생하려 했던 이유도 바로 저들 때문이었어. 연약한 나 혼자로는 무리야. 그들에게는 네 상냥함도 필요해. 그러니 이제는 나와 함께 그들을 도와줬으면 해.”

   이에 루디아는 조용히 동조하였다. 내심 여전히 윤혁을 향한 염려가 남았으나, 그의 굳건한 내면을 믿기에 더 재촉하지는 않았다. 루디아는 사고의 틀을 바꾸었다. 이번 기회에 윤혁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신은 그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보조자가 되어주자.

   ‘꿈에서 주님이 당부하신대로라면……, 지금처럼 염려에 사로잡힌 채 오감에만 의존하려 한다면 오히려 윤혁에게 도움이 못 될 가능성이 커. 잘 할 수 있을까?’

   사실 루디아도 잠들어 있던 동안 희미하게 들리는 예슈아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 그분은 소년을 맡기노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동시에 충고하셨다. 그녀가 이식받은 능력이 아닌, 그녀 내면에 담긴 본연적 사랑, 신에게서 선물 받은 그 사랑을 무기로 삼을 것을 당부하셨다.

   [의학적 수단을 부정하라는 뜻은 아니란다. 나는 그것 또한 능력의 통로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뜻과 무관한 인간적 수단은 그 의미를 쉽게 잃는단다. 그러니 너는 더 온전한 마음이 될 때까지는 염려를 내려놓고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도록 하여라. 그 후에야 네가 그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세미한 음성을 그녀는 새기고 또 새겼다.

   윤혁과 루디아는 이윽고 여러 도시와 마을들을 돌아다녔다. 과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과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편안한 지구나 Upol에 머무르고만 있었다면 평생 깨닫고 공감하지 못했을 장면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윤혁의 개입이 낳은 유익이었다. 확실히 프로젝트가 헛것은 아니었는지 그가 지나가는 지역마다 적응력과 회복력이 급증하였다. 알트루즘이 내뿜는 일종의 영구적인 교정 효과가 윤혁을 교두보로 그가 닿는 발자취를 중심축으로 사방으로 확산되었다. 다만 아직 힘 다루는데 미숙해서인지 효력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크흑.”

   그 와중에 부작용으로 발생한 통증은 상당했다. 윤혁은 여러 번 주저앉았다. 루디아는 그를 당장 돕지 못하는 상황과 마주하자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윤혁은 억지로라도 이겨내고자 필사적으로 의지력을 발휘했다. 그의 내면에는 꺾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둘은 행인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마음 같아서는 행성에 설치된 거대 콜로니 안으로 들어가 우주 인류 프로젝트에 대한 직접적인 단서를 캐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은 접근 금지 구역이었다. 하는 수 없이 황량한 벌판과 그곳에 세워진 마을들을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외부 세계에서는 행성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는 듯했다. 첨단과학의 산물까지도. 그러나 거주 이전의 권한까지 100%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행성 밖으로 나가는 것만큼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 행성은 그들이 짊어져야 할 몫의 짐이었다.

   윤혁은 현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이곳 사람들 중 적잖은 수가 과거 하늘도시의 구(舊)주민들이라는 점이었다. 대화 맥락으로 미뤄보건대 아마 하데스 챔버에서 동면 상태로 있다가 피코머신의 도움으로 회춘하여 이 행성으로 이송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동면 해제 후 콜로니로 옮겨져 모종의 실험과 교육을 거친 이후 콜로니 밖의 행성 지표면으로 방생된 듯했다. 예측건대 콜로니 내부에서는 다세대의 번식을 거쳐 종족적 신체 특성을 행성에 적응시키는 실험을 시행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흥미롭게도 이곳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상당량 지워진 상태였다. 하늘도시의 존재조차도 몰랐으며 그곳에서 겪었던 자신의 이전 인생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다시말해 기억 상실증의 상태에 놓인 환자들이었다.

   ‘하늘도시 주민이 아니라 행성 내 콜로니 내부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들인가?’

   그런 이들도 있긴 하겠지. 하늘도시에서 살았던 경험이 아예 없었을지도? 그게 아니라면 하데스 챔버에서 콜로니로 옮겨진 후 너무 오랫동안 타임필드 안에서 살아온 바람에 하늘도시에서의 기억을 다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치우기에도 석연치 않은 게, 그들에게는 콜로니 안에서 생활했던 기억마저도 흐릿한 윤곽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지워진 상태였다. 노화되었던 몸이 젊은 몸으로 회춘하고 재생되는 과정에서 이전 뇌의 메모리마저도 리셋되기라도 한 것일까?

   “이거 심각한 문제인걸.”

   윤혁은 점차 심각한 현실을 자각했다.

   “어떤 점에서?”

   “하데스 챔버 안에는 복음 확산의 역사를 겪어 온 산증인들, 즉 예수님을 전하거나 전해들은 하늘도시 주민들이 잠들어 있었지. 우리 2차 여행 때, 막바지쯤에는 하늘도시들 거의 전부가 복음화되었잖아.”

   “그랬었지?”

   “그 후로도 하늘도시 안에서는 타임필드가 가동되었지. 못해도 수천, 수만 년 이상의 시간은 더 흘렀을 거야. 그렇다면 그 사이에 막대한 수효의 인간이 탄생했었겠지. 누적된 숫자로는 현재 Upol에 돌아다니는 2등 시민의 총 수보다 많을걸.”

   윤혁의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그 태어난 인간들이 다 어디로 가고 일부만 지금의 하늘도시에 남았을까? 머릿수 차이는 다 어디로 흘러갔겠냔 말이지? 표식이 있으니 죽지는 못할테고, 전부 동면 되었다는 뜻이잖아.”

   “그렇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되었을 거야.”

   그의 논리 전개는 전적으로 옳았다. 하데스 챔버에 적립된 인구는 현재 Upol들에 존재하는 자유 시민의 인구수의 수백 내지 수천 배는 족히 이르렀다. 그중 대다수가 전면개방 직전 몇 달 동안 탄생한 무리다. 즉 복음이 융성하던 때에 살아갔던 이들이고 따라서 대부분 복음을 전해 들었으리라.

   들었다고 해서 다 믿지는 않았으리라. 허나 보수적으로 어림해서 대략 1%만 회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엄청난 수효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또 다른 한 사건의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스테판은 칼리드에게 붙잡혀있을 동안, 다른 한 변동을 발견하였다. 칼리드 자신도 막바지에 그 사태의 존재를 순순히 자백했었고.

   “우리가 칼리드에게 패해 궁지에 몰렸던 그날, 그는 하늘도시들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거짓 휴거로 납치하려 했어. 하지만 실패로 귀결되었지. 오히려 그의 자충수로 인해 하데스 챔버들 전체로 복음이 더욱 확산되고 말았어.”

   칼리드와 스테판의 증언이 맞다면, 하데스 챔버 내부에 잠들어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시뮬레이션 우주라는 독특한 매개물을 통해 잠든 상태에서마저도 하데스 챔버 전체에 복음과 진리를 확산시키는 데 이바지를 했었다.

   요컨대 동면되었던 인간들 중 그리스도인의 비율은 최소 1% 이상은 될 것이다. 통계적으로 보아서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제법 많은 수는 나타나야 정상인 셈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신앙의 기억을 유지한 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만일 그리스도인들마저 기억을 잃었다면?”

   불길한 가정이 스쳐가자 루디아의 얼굴은 염려로 인해 하얗게 질렸다. 자신이 그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니 심히 무서웠다. 만약 자신이 치매 같은 질병에 걸려서 기억들과 지식을 잊어버린다면? 다른 기억은 다 잃더라도 잊어서는 안될 진리, 곧 자신이 죄인으로서 주님께 구원받았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다 보니 윤혁도 마음이 우울해졌다.

   “난 기억의 상실이 구원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 성령께서는 두뇌가 아니라 영혼 속에 함께 하시니까. 그러니 설령 뇌를 다쳐서 모든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영혼의 소생된 상태에는 변화가 없으리라고 생각해. 하지만…….”

   윤혁은 머뭇거렸지만 루디아는 뒤에 나올 대답을 알아차렸다.

   “이웃에게 주님을 소개해주지는 못하게 되겠지. 그걸 염려한 거지, 윤혁아?”

   “그렇겠지.”

   그렇다 한들, 지금 와서 둘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무슨 수로 기억을 되살려낸단 말인가. 숫자가 수천해(垓)를 넘는 외계행성의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갈 수도 없거늘. 속상한 맘으로 기도하던 중 윤혁의 심장에 한 말씀이 들려왔다.

   [너를 내 일꾼으로 삼겠다. 너는 사람들의 상한 심령을 고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널 다스리도록 기회를 주겠느냐?]

 

 

 

 

 

 

 

 

 

(다음 회차에 계속)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신학적으로 꽤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이전회

491회 아벨의 후예 Ch 17. 기억상실 (1)
등록일 2025-07-09 | 조회수 6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등록일 | 조회수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