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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91회 아벨의 후예 Ch 17. 기억상실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09 | 회차평점 0 0

 

 

 

 

 

Chapter 17. Intergalactic : 기억상실

 

 

 

 

 

 

 

   잠깐 잠을 자던 중 윤혁은 선명하게 들리는 생각 속의 음성을 듣고 눈을 떴다. 그것은 영혼 가장 깊은 심원에 닿는 소리였다. 인류의 하찮은 과학 기술이나 초자연계의 간섭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격이 다른, 작고 섬세하지만 곧고 명쾌한 음성이었다.

   [귀를 기울이거라, 얘야.]

   본능적으로 솟구치는 경외심 덕에 별다른 의심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존재감만으로도 증명되는 자. 이상하게도 아무런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다. 어린양을 향해 목자가 속삭이는 듯한 감각.

   윤혁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소유한 주인에게 응답받기 위해 곧바로 마음속 모든 부분을 상대방의 음성에 집중하였다. 종종 그도 살면서 그의 임재를 느껴오긴 했으나 지금처럼 뚜렷하고 분명했던 적은 없었다.

   “말씀하시옵소서.”

   [나는 네가 네 모든 삶을 걸고 내게 나아오기를 요구한다.]

   대답하려던 차에 윤혁은 문득 막막해지는 심정으로 인해 망설여졌다. 자신은 정말로 온전히 자신의 전부를 그분께 허락했는가. 저도 모르게 인생의 핸들을 자신이 움켜쥐려고 집착하지 않았던가. 주인께서 종의 마음 상태의 현주소를 비춰주자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미약함, 스스로를 의지하려는 아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끄럽습니다. 당신의 정확한 꾸짖음으로 인해 마음이 아픕니다.”

   [참된 훈계에는 아픔이 따른단다. 그러나 이제 눈을 들어보거라.]

   윤혁의 옆자리에는 루디아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착륙하기 전날 밤부터 계속해서 긴장한 탓에 잠을 내내 못 이루었는지 지금의 그녀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윤혁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다시금 주인이 말하였다.

   [네게는 나보다 그녀를 더 의지하려는 마음이 숨겨져있구나.]

   “하, 하지만…….”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돕고 신뢰하는 것은 좋은 일이란다. 하지만 의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네 삶의 모든 영역은 나의 생각과 뜻으로 내가 주관한단다. 기억나지 않더냐. 종종 네 마음속의 감춰둔 한 부분이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붙들고 의지하려 했던 순간들이 있었지.]

   주인께서는 윤혁이 오로지 진정한 주인만을 전적으로 붙들고 의지해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자유의지를 결박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윤혁은 그 명령을 도무지 거절할 수 없었다. 거역할 엄두가 나지 않다고 해야 옳으려나.

   [모래로 아름다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으나, 그 위에 집을 짓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네가 믿는 진정한 반석은 무엇이더냐.]

   “……죄송합니다.”

   [혹시 묻고 싶던 것은 없더냐.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었느냐.]

   정작 윤혁 본인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지만, 듣는 주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그것을 기억하셨다는 사실에 속으로 내심 놀라며 윤혁은 주섬주섬 조심스레 의문을 그분 앞에 내어보였다.

   “룻에게 자꾸만 의지하고픈 마음, 혹 그게 제가 그녀가 획득한 기능과 힘에 의지하려는 충동일까요. 예전에 제가 커버넌트 링에 얽매였던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는 저 자신에 죄책감이 듭니다.”

   지금은 버리긴 했지만, 그 커버넌트 링의 유혹은 분명 상당했었다.

   [마음속에 염려가 일고 있구나. 그녀를 배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도. 정직하게 너 자신을 돌아보거라.]

   “그녀와 함께하는 게 잘못된 일일까요?”

   [아니, 그렇진 않다. 하지만 타인을 의지하는 자세가 왜곡된다면 넘어짐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너희 둘 다 잠시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이 상황을 내게 맡겨 보아라. 행동을 멈추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지금 네가 어떤 손을 붙잡고 있는지 살펴보고 다시금 나와의 동행을 시작하라는 뜻이다.]

   주인은 자비로이 손을 내밀었다. 윤혁은 불현듯 그것을 붙잡았다. 실제로 물리적인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써. 그러자 곧장 실천적인 명령이 주어졌다.

   [이 행성에서는 그녀와 긴밀히 접촉하지 말거라.]

   금식 선포였다.

   “그, 그건…….”

   그녀의 회복 작용을 전이받지 못하게끔 하는 명령.

   [네가 내게 의탁하는 마음을 항시 유지할 지 시험해보겠다. 네가 어떤 고통 가운데 있더라도 내가 너를 지키겠다. 설령 네 심장 속 그 물체가 고장 나더라도. 그러니 인간의 알량한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덮지 말거라.]

   혹시 주님께서는 그와 루디아의 선택에 처음부터 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꾸짖고 계신 걸까? 몸속에 그 물체를 심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후회감이 밀려왔다.어디에서 어긋난 것인가. 혹 카이젤 그자의 기술을 빌린 게 문제였을까. 알트루즘도 커버넌트도 결국은 그 사람의 솜씨에서 유래한 것이지 않은가.

   [후회하고 있구나. 내가 그때 명료하게 답해주지 않아 답답했느냐.]

   주인은 영혼의 가장 깊은 속면을 정확히 꿰뚫었다.

   [사실 내 응답은 언제든 준비되어있단다. 하지만 때때로 마음속의 자아가 그것을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지. 주인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할 때도 가끔씩 자기의 방식이나 자기의 의지에 휘둘릴 때가 많구나. 네 생각이, 자기 자신의 자아가 우상이 되기가 너무 쉽지.]

   윤혁은 말대답을 하려는 욕구를 포기하고 잠잠히 충고를 받아들였다.

   [네가 네 몸을 희생하려 했을 때, 네게 분명 선한 의지와 의로운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의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는 욕구도 짐짓 숨어있었단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의로움을 실현하려 했어. 하지만 내게 묻지 않은 채 행동으로 옮긴 이타심은 왜곡되기가 쉽단다.]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넌 너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지레 겁을 먹었지. 네 형을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랬기에 그가 제시한 의견을 무작정 따를 수밖에 없었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입장인 내 답변은 듣지 못했어.]

   “하지만 제가 그런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혜의 근원이 함께 하고 있거늘 어찌 못하겠느냐. 나의 눈에는 네 형도, 너도, 별반 차이가 없는 존재란다. 조금만 나를 믿었다면 더 알려주었을 터.]

  “제 선택은 실수였을까요. 만약 그러면 어찌 되돌려야 할까요?”

   잠깐동안 침묵이 임하는 동안 윤혁은 죄송스러운 마음에 잠잠히 기다렸다. 한참 동안 묵상 기도를 한 끝에야 주인께서 대답을 일러주었다.

   [발람에게 이렇게 말했었지. 출발한 길을 되돌이키지 말라고. 설령 네 실수가 분명 있었더라도 나의 주권을 통해 그것을 사용할 생각이다. 이제 네가 할 일은 나를 의지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일뿐이란다. 너에게 전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일단 지금 당장 받은 명령은 다음과 같았다. 루디아의 힘을 빌리지 말라. 그녀와 길을 같이 하되 신체접촉을 통한 도움은 피하라. 다시금 명령이 내려와 접촉이 허락될 때까지는 잠깐의 거리를 유지하라. 대신 믿음으로써 고통을 인내하라. 실수에 대한 책임을 치르겠다고 다짐한 것을 이 자리에서 증명해보여라. 그러면 모든 뒷일을 책임져주겠다. 쉬운 요구는 아니었다.

   윤혁은 결심하고 고백했다.

   “이제야 죄책감이 정리되어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어쩌면 저는 무심코 그녀를 이용하고픈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생각은 순수하게 그녀를 돕고 지키고 위하려는 생각뿐입니다.”

   주인께서는 그 속을 보셨는지 흡족해하며 다른 것도 알려주었다.

   [조만간 나는 그녀도 성장시킬 것이다. 그래서 더는 외부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도 내 도움만으로 동료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심어줄 것이다. 물론 너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두 사람 모두를 궁극적으로 위하는 방향이었다.

   [그렇게 성장하게 되면 너희 사이에서 이뤄지는 치유는 직접 접촉이나 정형화된 기술이라는, 획일화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다. 너희 실수마저도 내가 선하게 바꾸어 다시 이용할 것이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다른 권면의 명령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네 형과는 적당한 거리를 늘 유지하라. 그에게 영향을 주되 너는 영향을 받지 말거라. 그를 절대 두려워하지 말아라. 오히려 그가 너를 두려워하고 있단다.]

순간 윤혁은 눈 내리던 길에서 형이 뒷걸음질 쳤던 장면을 떠올렸다.

   “설마…….”

   [그때 나는 아주 잠깐 그에게 내 임재를 통해 경고하였다. 너는 불법의 비밀을 봉쇄하는 내 억제력의 통로, 그렇기에 인간들의 왕은 다른 어떤 이들보다 너의 영을 더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지. 그것이 그가 내 면전에 직접 노출되어 압도된 이유다.]

   윤혁의 눈앞에 아주 빠르게 어떤 비전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일종의 비유적인 그림, 쌍성계의 두 천체였다. 하나는 초거대 질량의 블랙홀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거체 주변을 작지만 밝은 항성 하나가 돌고 있었다. 한없이 무겁고 거대한 죽은 별과 살아 움직이는 작은 별. 의미심장했다.

   ‘저게 설마……, 형의 영혼과 나의 영혼?’

    주님께서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명령을 덧붙였다.

   [나는 네가 나의 청지기로서 온전히 충성하기를 원한다.]

   “처, 청지기라면……, 재물과 소유에 대한 권한을 주님께 이양하라는 명령이신지요? 하지만 저는 이미 주님께 소유권을 인정해드렸는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성령께서 즉시 윤혁의 마음을 뒤집어 보여주었다.

   물론 윤혁은 재물을 탐하지는 않았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했고 가치 있는 일, 예컨대 이웃을 구제하는 일에 후히 손을 벌렸다. 하지만 정말로 소유의 전부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포기했을까? 혹시 ‘내 것의 전부를 드립니다’라고 고백하는 와중에 무심코 ‘내 것’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틀린 말이었네요. 애초에 드린다고 자부할 자격도 없었어요.”

   처음부터 모든 것은 그의 것이 아닌, 주님의 소유였지 않은가.

   여기까지 깨달은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바르게 자기 자신을 고친 자만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법. 그제야 주인께서는 다음 단계를 제시하셨다.

   [최근 네게 많은 재물이 주어졌었지.]

   주인께서는 그의 삶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철저히 기억하는 중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뿌리 깊이 박혀 있단다. 그렇기에 더욱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넘어지기 쉽지.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너에게 네가 얻은 재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겠다. 넌 내 뜻에 순종할 마음이 있느냐.]

중대하고 무거운 질문이었다. 윤혁은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한 후 답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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