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96회 아벨의 후예 Ch 18. 에고(Ego)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21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에고는 윤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터널바이탈의 분리된 흰 성분. 알트루즘.”

   명칭의 뜻은 이타주의, 기능은 인간과 타자 사이의 조화와 균형 조성. 하지만 본디 인간의 이타주의란 그 기원이 이기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법이다. 타자를 향한 사랑과 희생도 결국은 자기 사랑에서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트루즘이 기본적으로 에고이즘에 예속된 이유도 그와 맥락이 일치한다.

   결국, 인류가 자연과의 균형, 그리고 인간 사회 내부에서의 개인 간의 조화를 추구하더라도 그 본심과 목적은 종족의 번성과 번영이다. 적자생존의 논리 속에서 나무가 열매를 만들어내는 본래의 목적이 과육 자체를 베푸는 것이 아닌 씨앗을 퍼뜨리는 데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네 심장, 네 알트루즘은……, 다르군. 열매의 존재 목적이 씨 퍼뜨리기가 아닌 과육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군. 다른 존재를 먹여 살리는 게 나무의 본질이라는 건가? 나무의 존재의의를 자기 종족 보존이 아니라 농부를 기쁘게 하는 데서 발견하려는 셈이로군. 희한해.”

   “그 당연한 진리를 이제야 아셨습니까?”

   예수님은 그에게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나무와 나뭇가지의 존재의의를 가르쳐주셨다. 무릇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란 참된 이타심, 곧 남을 이롭게 하는 이웃 사랑을 상징한다. 나무의 열매 맺음이란 곧 자신의 양분을 희생해서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행위이니까.

   농부는 그렇게 나무가 자신에게 주어진 참된 존재의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면 기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농부는 나무를 더욱더 풍성하게 자라도록 도와준다. 즉 나무의 생존은 본인의 진화론적 생존 투쟁이 아닌, 주인인 농부가 얼마나 귀하게 보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적자생존을 맹신하는 진화론은 이렇게 가르친다. 열매란 그저 씨앗을 잘 퍼뜨리기 위해 진화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나무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유익을 베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타심도 이기심을 돕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그 본말을 뒤짚는다. 성경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의 존재의의는 서로를 사랑하고 베푸는 데 있으며 농부이신 창조주를 만족시키는 데 있음을 선언한다. 즉 씨앗은 열매의 존재 본질이 아니며 열매가 본질이다. 씨앗은 그저 묵묵히 과육을 베풀었을 때 창조주가 그 베풂에 대해 보상하고 칭찬해주기 위해 주신 수단일 뿐이다. 이것이 윤혁이 믿는 가치관이었다.

   “네 도덕관은 인본주의 철학이 아니라 신본주의에 기반하고 있었군.”

   “깨닫는 게 늦군요.”

   “초자연에 대한 숭상이라. 그래. 그것이 네 알트루즘이 특이했던 이유였어.”

   에고는 추리했다. 그랬던 원리로군. 저 청년의 힘이 저 거대한 아틀라스를 순식간에 복구시킨 것도 그런 이유로 인함이었어. 피조물을 인간을 위한 일개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고 창조주의 보살핌 대상으로 인정했기에, 어그러진 피조 세계 속 희생자들을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허튼 사고방식이로군. 초자연 숭배라니, 인간을 노예로 몰락시킬 생각인가?”

   “당신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오히려 인간 자신만을 사랑하려고 집착하는 그 추악한 자아야말로 인간을 죄악의 노예로 전락시킨 장본인입니다.”

   “네 신념이 승리할지, 우리의 시험이 너를 꺾을지 궁금하군. 앞으로 잘 지켜보겠다. 부디 네가 꼴사나운 몰골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군. 너무 일찍 꺾이면 재미가 없으니까.”

   에고는 이 말을 마침으로 대기권 밖으로 상승하였다. 하늘을 바라보니 여전히 거인 아틀라스는 구슬프게 울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 불쌍한 것들은 앞으로도 자기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무의미한 일생을 반복하겠지. 창조주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인간들의 무엄함이 저런 불행을 낳았다.

   “미안해, 지금 내 능력으로는 너희를 풀어줄 수 없어.”

   그런 개혁은 당장 윤혁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그런 일에 시간을 빼앗길 여유도 없다. 물리적 피조계의 회복은 그의 능력 밖의 영역이니까. 심장에 심긴 알트루즘의 힘도 어디까지나 형의 일부분이니 저 거인을 돕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겠지. 쓰디쓴 현실의 맛은 참으로 고역스러웠다.

 

 

 

 

 

 

 

*

 

 

 

 

 

 

   이동하기로 약속된 시간에 이르자 인터갤럭틱 호는 윤혁과 루디아를 차량과 함께 회수했다. 에고와의 대면은 윤혁과 루디아 둘 모두에게 찜찜한 뒷맛과 장차 다가올 시험에 대해 불길함을 남겼다. 일개 의식체 파편에 불과한 에고조차도 저러한 압박감을 주었으니 만일 본체가 직접 강림한다면 어떻게 될까?

   ‘강력했어.’

   에고는 이제껏 윤혁이 만나온 진, 스튜아, 칼리드, 성운과 같은 최상위 초인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느낌이었다. 심지어 이치죠우지 카가미와도 상당히 달랐다. 그들은 비록 오만했으나 인간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 해석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에고는 전혀 인간 같지 않았다. 그자의 말마따나 인류라는 종족이 지닌 거대한 의식체계 일부분이 아바타처럼 형상화된 존재 같았다.

   ‘설마 문자 그대로 인류의 에고 그 자체는 아니겠지?’

   걱정거리를 잠시 뒤로 제쳐둔 채 윤혁은 곤한 몸을 회복하고자 잠들었다. 행성 전역을 순회하느라 그의 육신은 쇠잔해진 상태였다. 알트루즘은 천천히 그의 세포들을 재생시켰다. 루디아는 윤혁에게 받은 부탁대로 우주선으로 복귀하기 전까지는 그를 접촉을 통해 돕고픈 바람을 애써 참아다. 우주선에 합류하자마자 곧바로 윤혁은 연구동에 옮겨졌고 사흘 밤낮 치료를 받았다.

   “행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겪었니?”

   데이터를 재점검하는 내내 태헌은 놀란 눈이 되었다.

   “그게…….”

   “아, 곤란하면 굳이 말 안 해도 돼. 다른 게 아니라 피코머신의 작동 패턴이 완전히 달라져서 그래. 뭐라고 해야 하려나, 훨씬 더 고차원적으로 진화했달까.”

   태헌은 컴퓨터 홀로그램 자료를 통해 개략적인 윤혁의 신체 변화 양상을 알려주었다. 단순히 고생만 죽도록 드는 임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래도 뭔가 그럴 듯한 유용성과 의미는 담겨있긴 한 모양이었다. 윤혁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고생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전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청지기의 역할이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주님은 청지기 일을 맡기긴 하셨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방법을 일러주시지는 않았다. 윤혁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그날 저녁, 연구동에서 쉬며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던 도중에 내면에서 울리는 깨달음이 그 해답을 알려주었다.

   [가장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거라. 구체적인 방법은 내가 때에 따라 일러줄 것이다. 단 한 톨만큼의 재물도 네 소유권을 주장하지 말거라. 네가 충분히 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그때는 더 큰 임무를 기꺼이 맡기마.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일에 참예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외람되오나 주님, 어떤 임무가 더 큰 임무입니까?”

   [네가 원하던 일이다. 생명을 구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더냐. 네가 재물에 대한 온전한 청지기가 된다면 생명에 대해서도 청지기가 될 기회를 주겠다. 그때부터는 네 생명은 온전히 내 뜻대로만 사용해야 한다. 내가 거두기를 원하면 거두고 유지하기를 원하면 유지해야 한다.]

   전에 내려진 명령보다 더 엄숙한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를 전하는 주인의 음성은 부드럽고 자상하고 따뜻했다. 자유의지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라 사랑 어린 권면, 열린 마음과 순종의 길로 이끄는 초대장처럼 느껴졌다.

   윤혁은 진정한 이타주의가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이 지어낸 ‘성숙한 방어기제’로서의 이타주의나 이기주의의 야누스적 면모로서의 이타주의가 아닌, 십자가에서의 자기희생에서 나타난 이타주의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제가 감히 그 일을 맡아도 괜찮을까요?”

   [나는 네가 나를 본받기를 원한다. 네게 그 특권을 베풀기를 바란다.]

   이에 윤혁은 거스르려는 육신적인 본성을 내려놓고 잠잠히 마음을 가다듬고 정리하였다. 언제든 희생이 요구될 수 있다. 생명에 대한 집착을 주님께 맡기자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마음속 풍파와 동요가 가라앉았다. 형을 반드시 막아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인한 집착, 인류연합에 대한 의로운 분노, 친구들과 가족들의 미래에 대한 염려까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하다.’

   다음 행선지까지 이동하는 동안, 우주선은 웜홀, 초대질량 블랙홀, 벌크, 다른 차원의 멤브레인, 시뮬레이션 우주, 상위 리얼리티, 상위 차원 속의 테서렉트 아키텍쳐 등 여러 영역을 횡단했다. 차원과 차원, 세계와 세계, 우주와 우주를 넘나들며 시공간 개념은 매우 흐릿해졌다. 시간 오류 상쇄를 위한 타임필드도 거듭 가동되었다. 이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비율도 시시각각 변화하였다.

   그렇게 우주선 안에서 측정 불능의 지루하고도 모호한 세월이 흘렀다.

   이 과정에서 윤혁은 숱한 실험을 거쳤다. 때로는 극렬한 고통이 괴롭혔고 때로는 찰나의 달콤한 휴식이 찾아왔다. 그의 신체 속 생명력은 점차 질겨졌고 그에 비례하여 예전의 속성을 탈피하여 불사신에 가까워지는 속도는 가속되었다.

   이런 변화는 윤혁에게 허전함과 상실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영혼이 불변의 든든한 손길에 붙들려있음을 확신했다. 어떤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도 자신 안에 거하시는 그분은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잠깐의 실수, 순간적인 고난, 언뜻 보기에는 잘못되어가는 것 같아 보이는 일조차도 위대한 선의 일부로 합력하여 윤혁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설계해나가실 것이다.

   [이제 그 아이에게 손을 대거라.]

   예슈아의 영이 루디아의 영을 통해 그녀에게 명하였다. 허락함을 얻은 루디아는 숙소로 돌아온 윤혁의 목을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메만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예전에는 접촉할 때마다 전후에 극명한 변화가 나타났었건만, 이번에는 그런 극명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자연스럽지가 않아.’

   커버넌트 오브젝트의 강제적인 특수 작용은 옅어졌지만 오히려 효력의 긍정적인 면은 증폭된 듯했다. 윤혁은 루디아와의 정서적 교류를 통해 안정감을 얻은 것인지 빠르게 혈색이 좋아졌다.

   ‘오브젝트의 힘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야.’

   분명 전에 커버넌트와 알트루즘의 상호작용에서 나왔던 긍정적 효력은 어느 정도 보존되었지만, 대신에 그 수단으로서 ‘접촉’ 같은 마술적 행위나 ‘힘의 전이’ 같은 인간적인 도구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 듯했다. 그제야 루디아는 깨달았다. 치유의 현상이란 특정 행위, 특정 힘, 특정 도구, 혹은 특정 정서 교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물론 그런 것들도 수단으로써 이용될 수는 있겠지.’

   그러나 피조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의 근원은 죄와 죄의 결과. 따라서 인간의 기술이나 각종 의학의 수단들을 활용하기에 앞서서 그런 것들의 근본을 끊어내는 일은 주님에게서 도움을 찾아야 한다. 루디아는 의술 또한 그분에게서 온 일반 은총으로서의 선물임을 다시금 되새겼다.

   ‘내가 믿는 모든 수단을 향한 집념을 내려놓고 그분께 그 수단들을 맡겨드려야 했어.’

   이렇듯 루디아와 윤혁은 성장했다. 앞으로도 둘에게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바로잡아야 할 일들도 산적해 있다. 비록 재능으로도, 강함으로도 내세울 것 없는 둘이었지만, 그들을 자신들을 세워주신 분의 뜻을 믿고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내던졌다.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495회 아벨의 후예 Ch 18. 에고(Ego) (2)
등록일 2025-07-19 | 조회수 25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497회 아벨의 후예 Ch 19. 첫 사랑 (1)
등록일 2025-07-23 | 조회수 26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