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97회 아벨의 후예 Ch 19. 첫 사랑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23 | 회차평점 ![]() |
Chapter 19. Reformation : 첫사랑
리온, 재현, 지현, 그리고 찬영, 이렇게 넷으로 구성된 사역팀은 지구 기준 12월 말 무렵 본 행성을 떠났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는 하늘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던 우주 행정구역 Upol으로 이동하였다.
사실 사역팀이 속한 지구 시민들의 세계와 Upol의 우주 시민, 이 두 사회 그룹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통제 장벽이 있었다. 즉 양쪽 세계 사이에서의 정보 교류는 제약을 받고 있었다.
우주 인류에게는 지구라는 세계가 마치 동화 속의 이야기, 환상 속의 유니콘, 오래된 전설처럼 다가왔다. 그들 속의 귀소 본능 때문에 지구라는 세계에 관심은 가졌지만, 그곳은 극소수의 선택받은 승리자를 제외하면 넘볼 수 없는 낙원이요 성지였다.
때문에 무성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별의별 근거 없는 소문만 자라났다. 어떤 우주 시민들은 마치 여우가 ‘저 포도는 필시 신맛일 것이다’라고 외치며 정신 승리를 행하듯, ‘지구는 이미 오래전 멸망했으며 잔해만 남았거나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프로파간다용 허상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에 비해 지구 쪽은 그나마 좀 나았다. 그들에게는 우주 쪽 소식이 상당히 잘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도 어디까지나 고위 관료 한정이었다. U-society나 인류연합 중추부의 ‘세계를 다스리는 자’들 말이다. 이들은 1조 개의 Upol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손바닥 내려다보듯 낱낱이 알았다. 물론 데이터가 방대했기에 모든 정보를 일시에 파악할 수 있는 존재는 수장뿐이었지만.
민간인들은 달랐다. 그들의 정보력은 우주 시민보다도 형편 없었다. 그런 고로 그들에게는 머지않아 지구에서 축출될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다. 평범한 이는 1등 시민 자격을 유지할 권한이 없다. 고로 정보로부터도 격리되었다.
지난 몇 년간 하늘도시들에서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자세히 아는 이는 지구 시민 중에서는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리온은 선교 여행을 통해 그곳들을 직접 방문했기에 사정이 나았지만, 그도 지금의 Upol들의 실태에 대해서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교통의 경우, 역시 통제의 영향을 받았고 철저히 단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우주 식민지나 다름없는 Upol에서 2등 시민이 지구로 건너오는 일은 불가능했다. 현재 태양계는 겹겹이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심지어 강력한 결계가 쳐진 상태라 태양계와 지구의 관측조차도 외부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극소수의 선택받은 천재, 경쟁에서 이기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승리자에게만 지구로의 이주권이 주어졌다. 그거솓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하지만 역으로 지구로부터 바깥 세계로 나가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손쉬웠다. 다시 돌아올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나 혹은 김찬영씨는 사실상 외계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겠지.’
리온은 이렇게 각오했다. 그래도 다른 둘은 조금 상황이 나으리라 기대되었다.
‘천재현 씨나 유지현 씨는 내몰릴 일이 없을 거야. 두 사람은 U-society 정식회원을 친형제로 두고 있으니까. 강재혁 대표님 본인도 틀림없이 윤혁을 곁에 두려 할 테니 본인과 비슷한 류인 지배 계급에게는 직계가족을 거둘 권리를 주겠지.’
실제로 나중에 리온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물론 그것은 조금 후일의 일이다.
여하튼 시작할 무렵, 행로를 정하기 위해 사역팀은 몇몇 우주정거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그들은 지도들을 살펴보며 계획을 구성하였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자 그들은 곧 이웃 은하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우리 은하 Upol을 떠나기 전 거친 마지막 우주정거장에서 보낸 마지막 밤, 리온은 어떤 중요한 체험을 겪었다. 그것은 그의 영혼 내면의 울림을 통해 전달되어 온 주님의 깨우침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네게 당부할 말이 있다. 말할 기회를 주겠느냐.]
늘 예민하게 영적 울림을 인지해왔던 리온은 놀라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부디 종께 말씀해주십시오.”
그 허락에 반응하여 주인은 선명한 음성으로 앞으로의 길을 지시해주었다.
[네 동기를 읽었다. 네게 열심히 일하려는 마음이 있음도 보았다. 하지만 한 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 나는 네가 주인공의 자리에 오르지 않기를 원한다.]
“그것은 이미 각오하고 결심했던 일입니다.”
[너 자신을 순수하게 되돌아보거라. 나는 네가 인지하지 못한 너 자신의 모습을 너보다 더 잘 알고 있단다. 네게는 ‘내가 아니면 주님의 일을 완수할 수 없다’라는 자아의 생각의 흔적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구나.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없단다.]
영혼을 꿰뚫는 신의 판단에 리온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지만 주인의 말씀대로였다. 신실한 성도조차도 쉽게 빠지는 두 가지 우상이 있다고 했던가.
그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일꾼. 무릇 사람이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늘 불안증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대리자를 자꾸만 하나님과 일치시켜 생각하려는 본능이 있다. 심지어 일꾼 본인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여긴다. 모세와 같은 위대한 일꾼이 유대인들에게 우상화된 것도 바로 그 탓이었다.
다른 한 우상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된 자기 생각, 자기 야망이었다. 신실한 종들도 때로는 자아의 유혹에 넘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영웅이 되어 위대한 종교적 사명을 성취해내겠다는 야망,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겠다는 생각, 자기 의를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고픈 생각 같은 것들 말이다.
리온이라고 이런 것들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아마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 두 가지 우상을 미리 철저히 뽑아 제거하지 않으면 자칫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지고 사람이 영광을 독식하는 불상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위대하지도 못하고 거룩하지도 못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제가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방법을 인도해주시옵소서.”
[만일 가르쳐준다면 너는 따르겠느냐.]
가볍게 흔쾌히 대답할 수 있는 무게의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겠습니다.”
[고맙다.]
그 짧은 질의 응답 과정에서 자아 속의 많은 것이 내려놓아진 게 느껴졌다.
[나는 너를 높이지 않고 너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고자 한다. 이미 우주의 전역에는 나의 뜻을 따를 훌륭한 일꾼들이 많이 심겨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용기를 내지 못했거나, 승리의 단서를 얻지 못했거나, 두려움과 의심에 가둬진 바람에 아직 내 도구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너는 그들을 거대한 불로 각성시킬 불씨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너 자신에게는 영광을 돌리지 말거라.]
이어서 주님께서는 리온이 혹여 빠지기 쉬운 다른 종류의 유혹의 가능성도 미리 차단하셨다. 그분은 단순히 리온의 활약상을 높아짐만 막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일으켜 세울 제자 혹은 사역자의 활약상도 제한하시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잘 가르쳐서, 혹은 인재를 잘 선택해서 일을 잘 완성했노라는 자기만족마저도 막기 위함이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리온과 그의 동료들이 조용하고 묵묵하게 뿌려놓은 사역의 결실이 시나브로 다른 사람에게 도미노처럼 번지고 번짐으로써 어느 순간에 놀라운 일로 이어지게 이끌겠노라고 약속하셨다.
[교묘한 섭리를 사용할 것이다. 어찌나 교묘하고 은밀한지 너 자신도 네가 배후에서 일들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치 못하도록 만들 생각이다. 오른손이 한 선행을 왼손조차도 모르게 해주겠노라.]
그분의 가르침은 명백했다. 높아지기 위해서는 필히 낮아져야 한다. 아니, 그런 가르침을 역이용하여 높아지기를 원하는 의도로 일부러 낮아지려 하는, 그런 요행조차 허용되지 않음을 선포하셨다. 그분은 높아지고픈 동기 자체를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삭제할 것을 요구하셨다. ‘나는 망해야 하리라’하고 말했던 세례 요한처럼.
천국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리온에게는 단 한 점의 인간적인 영광도 미리 맛보도록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리온에게 요구된 십자가였다. 하지만 리온 본인도 이를 기뻐하는 바였다. 바리새인들처럼 겉보기의 선행으로 상을 미리 받아버린다면 영원한 세상 속에서는 도리어 손실이 될테니까.
“말씀을 잘 따르겠습니다. 이 미약한 저는 흔들리기 쉽습니다. 내일의 제가 어떤 동기를 품을지 저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은 다 아십니다. 저의 마음을 마귀와 육신과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해주세요.”
[그래, 내가 지켜주마. 단, 너 역시도 한 가지를 기억하라. 이 비결은 네 속에서 일어나는 열정이 나에게서 온 것인지 네 자아의 속임수에서 온 것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이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조언은 생각 외로 매우 구체적이고 면밀했다.
[앞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는 그 어떤 의견을 제시하건 대소를 막론하고 내가 붙여준 너의 동료들과 무조건 상의하거라. 그들과의 토론에서 반대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그때 네 마음에 시기나 반발심이 일어나거나 혹은 그들을 설득하겠다는 명목으로 너도 모르게 거짓을 섞어 넣고픈 유혹이 들거든 네 의견을 포기하거라. 그것은 내게서 온 지혜가 아니다.]
이것은 아주 새로운 특별 계시가 아니었다. 애초에 야고보서를 통해서 성경 말씀에 기록된 계시였으며 지금의 말씀도 그 성경 기록을 통해서 전달된 자각이었다. 주님께서는 이 사역팀을 세울 때 단순히 리온의 권위만 세워주지는 않았다. 그분은 동료 셋에게도 동등한 존엄성을 허락하셨다. 비록 권위를 지닌 리더는 리온일지언정 동료들의 의견을 묵살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두 아이가 세상이 만든 힘에 의존하지 않도록 당부시키거라.]
누구라고 콕 집어서 지칭하지는 않았어도 대강 문맥상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현과 지현, 두 사람을 말하는 바이리라. 재현의 경우에 그 힘이란 물리적인 초능력과 파워, 지현의 경우는 지식이나 재력이 되겠지. 주님께서도 그런 힘을 아예 금하지는 않았으나 의존에 빠지는 것은 경계할 것을 명하셨다.
[너는 앞으로 내가 지시하는 장소로 이동해라. 네가 움직여야 할 때마다 내가 세미한 목소리를 통해 가르쳐주겠다. 한 선교지에 머무는 동안에는 네 자율과 선택을 존중하마. 다만, 다가갈 이는 내가 가르쳐주겠다. 내가 소개해주는 자들은 반드시 방문하도록 하여라.]
주님의 주권과 리온의 자유의지, 이 둘은 적절한 하모니를 이루어 앞으로의 여정을 태피스트리처럼 조성해나갈 것이다. 예고를 들은 리온은 내심 염려가 되었다. 과연 자신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원수나 자아의 소리에 속아 넘어가면 안될 터인데.
‘아니, 내가 정말 염려하는 것은 목소리를 분별치 못하는 상황이 아니야.’
차라리 애매할 때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으니 보류해보겠다’ 라고 늑장부릴 수 있겠지. 하지만 정작 괴로운 딜레마는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도 명백한 목소리로 들릴 때이리라. 그때는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과 달라도 복종해야 할 테니까.
때로는 그 섭리의 불구름 기둥은 자신을 예측하지 못한 곳,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곳으로도 몰아갈 것이다. 그때마다 한 점 의심 없이 순종할 수 있을까. 결의를 다지려 해도 온전한 자신감이 들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어. 불확실성은 불확실성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수밖에.’
여러 고민 섞인 각오를 품은 채, 리온의 사역팀은 우리 은하를 넘어 인근 은하계에 위치한 Upol 밀집 구역으로 이동하였다. 그 동안, 리온은 꾸준히 말씀을 묵상하며 깊은 기도에 전념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실 세부 지시사항을 기대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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