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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08회 아벨의 후예 Ch 22. 슈퍼에고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18 | 회차평점 0 0

 

 

 

 

 

 

*

 

 

 

 

 

   그날 저녁, 윤혁과 루디아는 지역 대표들에게 법적인 해결로 접근해보자고 제안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울러 둘은 다른 대안도 하나 세워보았다. 보통 가정 폭력이 상습적으로 행해지는 경우 피해자를 임시적으로 가해자로부터 떨어트려 놓듯, 독재 정권의 처분에 대해서 해결이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는 주민들을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키는 방법 역시 고려할 수 있었다.

   윤혁이 즉각 데미안에게 질문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 선에서 결정해줄 사항은 아닙니다. 대표님과 이야기하시겠습니까?”

   의외로 진척이 빨랐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몇 초 만에 카이젤이 텔레파시로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을 옮겨놓겠다? 뭐, 조금 절차가 복잡하긴 해도 불가능하진 않아. 특례로 처리해줄 수는 있지.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네게 부과된다.”

   “어떤 대가죠?”

   “주민들의 피코머신은 자기들이 거하는 행성의 행성혼과 일정 부분 동기화되어있어. 그런데 행성혼이란 본래 지문과도 같아서 각각의 행성마다 혼의 성질이 다르지. 그렇기에 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키면 내가 원래 계획했던 프로세스가 어그러져.

물론 결국 다 해결은 되겠지. 하지만 어쨌건 목표치에 이르기 위한 진행 속도를 만회하려면 네가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오랫동안 더 많은 임무를 짊어져야 해. 내가 미리 짜놓은 스케쥴은 나름 네 몸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었거든.”

   잠깐의 망설임 이후 윤혁이 형에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제가 책임질게요.”

   “알겠다. 다만, 숙려할 시간을 주지. 복잡한 문제니 다시금 찬찬히 고민해봐.”

   고생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예고에 심적 부담도 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설령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편리하게 폭력을 동원하고픈 유혹에 빠지지 않고 빠져나갈 길이 생겼으니. 나름 잘 해결된 듯했다.

   이틀 동안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겪은 윤혁은 회복할 겸 잠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 직후 그는 다시금 곤경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이번에는 형보다 더 높은 권위의 명령이 간섭해왔다.

   [네 선택은 잘 알겠다. 나름 지혜로운 판단이구나. 하지만 내게 좀 더 구체적으로 묻지 않아서 아쉬웠다. 내가 준비한 계획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단다.]

   속삭이는 듯한 주님의 은밀한 음성은 다시금 윤혁을 딜레마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벳에돔의 집에 언약궤가 놓였을 때의 사건(대상 13:14)을 기억하느냐?]

   “네, 주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속한 모든 소유에 축복을 내리셨죠.”

   [내 임재가 거하는 너의 몸에도 동일한 역할을 둘 생각이다.]

   “제 몸이라뇨? 무슨 역할을?”

   [언약궤의 역할 말이다. 지금부터는 네가 발을 디디는 행성마다 내가 복을 내리겠다. 마음과 영혼의 축복은 물론이고 건강이 회복되는 축복, 사회 질서와 정의가 회복되는 축복, 심지어는 물질적인 풍요까지도. 네 형이 지극히 어리석은 자가 아닌 이상 내 개입을 곧장 눈치챌 정도로 두드러지는 복을 붓겠다.]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계획에 윤혁은 화들짝 놀랐다.

   “저, 정말이십니까?”

   [내 말은 내 입에서 나가는 즉시 모든 일을 확정적으로 이룬다. 나는 그 누구와도 농담을 하지 않는다. 지금 네가 밟고 있는 땅부터 당장 그 규칙을 적용할 생각이다. 네가 만일 저들을 다른 행성에 옮겨놓는다면 그들은 그 복을 누릴 기회를 잃게 되겠지.]

   이것은 엄청난 믿음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 무력 혁명을 사용하는 일은 부적절하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 선언하신 대로라면 주민들을 바깥으로 빼내는 것은 도리어 저들에게 불이익이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면 이 사람들을 끝까지 이곳에 내버려 둬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것인가? 어쩌면 인터갤럭틱 호 뒤에 따라온 외부 함대의 등장을 감지한 이곳의 괴뢰정부가 분풀이로 주민들에게 행패를 부릴지도 모르는데.

   잠에서 깨어난 즉시 윤혁은 루디아에게 이 일을 털어놓고 상의했다. 둘 다 선뜻 결정하기 어려워했다. 과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더러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처럼, 지금도 그분께서 믿음의 시험을 주고 계심은 분명했다.

   ‘어려운 시험이로구나.’ 

   아무리 그 순간은 불합리해 보이는 명령이더라도 최후의 순간에는 그분의 선함과 신실함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것을 그들로서는 어떻게든 붙들고 믿어야 했다. 성경의 예화들을 읽었을 때는 자신도 꼭 그리 하리라고 마음의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자기 문제가 되자 믿음이란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내가 철혈여제라는 그 초인과 만나서 시간을 끌어볼게.”   

   윤혁은 하나님께서 직접 뜻을 이루실 때까지 잠시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문제의 그 위험 세력과 담판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그로서는 나름대로 영적 믿음과 주체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조화시킨 결단이었다. 하지만 루디아가 만류했다.

   “전에 그 에고라는 자만 해도 너를 그토록 함부로 다뤘는데 하물며 괴뢰정부 수장이라니. 윤혁아, 너무 위험해. 아무리 네가 용감하다 해도 조금만 몸을 아껴줘.”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철혈여제가 당장 저 8천 개 행성의 주민들에게 무슨 행패를 벌일지 모르잖아. 이게 그나마 최선의 방법일거라고 생각해.”

   루디아는 그래도 동의가 되지 않는 지 고개를 저었다.

   “혹시라도 네가 네 신분을 믿고 그러는 거라면 부탁인데…….”

   “아니야, 난 형의 권위 같은 건 의지하지 않아. 그 사람은 내게 시련과 유혹의 걸림돌이 될뿐 내게 결정적인 도움은 주지 않을 거야. 이건 순전히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판단해서 내린 내 자유의지의 산물일 뿐이야.”

   의외로 윤혁은 완고했다. 이상하게도 루디아는 분이나 짜증을 내고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비록 의견은 어긋났을지언정 그의 의견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고보서를 통해 하나님에게서 온 지혜와 사탄적인 지혜를 구분하는 비결을 배웠던 루디아는 윤혁의 발상이 그릇된 지혜가 아님을 분별할 수 있었다. 결국, 마음은 내키지 않아도 그녀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윤혁과 루디아는 떠나기 전 마지막 사흘째에는 행성 지역 대표들을 만나지 않고 곧바로 소형 우주선을 타고 웜홀로 나아갔다. 웜홀들은 거미줄처럼 하나의 중심점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8천 개의 행성으로 뻗은 웜홀들이 맞닿아있는 중심, 곧 철혈여제가 머무르고 있는 본거지로 그들은 향했다. 우주선에 인류연합의 인증 코드가 있었기에 그들의 진로를 방해할만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 본거지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행성형 구조물이었다. 정확히는 우주 요새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듯했다. 부피는 목성에 육박하는 수준이었으며 밀도는 통상의 암석형 행성을 뛰어넘었다. 보통이라면 자체 중력 때문에 형태 유지가 안 되었겠지만, 이미 인류 문명은 중력의 본질을 제어하고 조종하는 가공할 수준의 기술력을 발전시킨 지 오래기에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인류연합 측에서 파견된 우주선의 접근을 확인했는지 그 인공 행성에서 한 물체가 튀어나와 초광속으로 다가왔다. 언뜻 보기에도 엄청난 수준의 무력을 보유한 괴물로 보였다. 그것은 여성형 사람 형상을 취하고 있었는데 온통 철갑 아머로 몸을 두르고 있어서 얼굴도 맨살도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생체 신호는 감지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에너지와 함께 초고밀도로 응축된 초능력이 느껴졌다. 그 물체는 윤혁과 루디아가 탑승한 우주선을 손톱 끝으로 멈춰 세웠다.

   “내 권역에는 무슨 볼일이지?”

   그녀, 철혈여제의 목소리는 냉담하고 싸늘했다.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윤혁은 우주선의 통신 장비를 통해 그녀에게 대답했다.

   “음, 그러고 보니 너는…….”

   철혈여제는 투시력인지 뭔지 모종의 방법으로 우주선에 탑승한 자의 정보를 대강 파악해낸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3대째 위버멘쉬, 그분의 동생이로군.”

   윤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인들은 항상 나를 볼 때 그 사람을 통해서만 바라보는구나.’

   이젠 별 기대도 들지 않는지 윤혁은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래, 룩이 예전에 너를 구해줬을 때 내가 2세대 초인들을 부추겼지.”

   “응?”

   난데없는 철혈여제의 폭탄선언. 윤혁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몇 년 전에 태헌과 자신이 지구에서 있었을 때 갑작스럽게 인형들에게 포위당했던 바가 있었다. 그때 룩, 즉 큐오즈린이 나타나 압도적인 힘으로 인형들을 박살 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찌 그럴 수 있었나 의문이었다. 2세대들이 간덩어리가 부은 나머지 이성을 잃었던 건가? 아무리 정보력이 형편없다 손 쳐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실력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다니. 설마 인형들만으로 룩을 이길 수 있다고 착각했던 건가? 물론 그때 당시에는 초능력이 개발되기 이전이었다지만 룩은 그런 힘 없이도 무려 셀러스티언을 사냥할 만큼 강력한 실력자다.

   “그들이 당신하고 연루되었습니까?”

   “나름 초인이라던 그 작자들이 왜 그렇게까지 정보통에 어두웠을까? 그들은 얼티밋 워리어의 전력도, 위버멘쉬가 보유한 생체 기술력도 파악이 안 됐단 말이지. 실은 내가 정체를 감춘 채 원로회의 2세대 초인들에게 몰래 접근해서 그들을 부추겼단다. 그리고 그들에게 거짓 정보를 주어 세뇌했지.”

   “왜 그렇게 하셨죠?”

   “마도왕(魔道王) 지그문트의 사주를 받았단다. 지그문트는 3대째 위버멘쉬, 그분의 지시를 받아 2세대 잔챙이들을 처분하는 역할을 자처했거든. 난 지그문트의 제의를 받고 이중스파이가 되었어. 남은 2세대를 청소하기 위한 스파이 말야.”

   “형과 그 누구냐, 지그문트라는 자는 왜 그들을 싫어했죠? 형의 어머니도 2세대였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형네 어머님이 그들의 음모에 휘말려 돌아가셔서?”

   “크하하하.”

   철혈여제는 금속 재질의 꺼림칙한 음성을 내며 깔깔 웃어젖혔다.

  “순진한 꼬마구나. 위버멘쉬는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안단다. 그는 철저히 자신이 세운 법률과 규칙 안에서만 움직여. 단지 그 법이 성문화된 법률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정교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되어있을 뿐이야.

   그는 그 법칙을 판결문의 근거로 삼아서 2세대 초인들의 권력을 빼앗았지. 우리 초인들은 단지 2세대 꼰대들이 그 법칙에 제 발로 걸리도록 유도했을 뿐이고.”

들으면서 윤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게 법치 사회입니까?”

   “보통은 그런 걸 독재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인류연합의 법에 관해서는 도통 아는게 없구나, 순진한 꼬마 녀석. 너는 여전히 민주주의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있구나. 시대가 뒤바뀐지가 언제인데 말야.”

   여러모로 정신이 어질어질한 대화였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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