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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07회 아벨의 후예 Ch 22. 슈퍼에고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1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런 건 좀 진작 알려주시지.”

   ‘아니 어쩌면 일부러 형이 이곳에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네.’

   분명 조금 전 데미안은 정치적 의도라는 말을 언급했다. 인터갤럭틱 호의 예정 이동 경로에는 단순하게 피코머신 시스템과 우주 인류 프로젝트를 온전히 완성하려는 목적 이외의 다른 계획이 반영되어 있다고 했다. 그 말인즉 카이젤은 윤혁이 일부러 이 군벌 지배지역을 거쳐가기를 원했다는 뜻이다.

   ‘불길한걸.’

   그 예상대로 데미안의 다음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안심하시죠. 강윤혁님과 제가 이 팀에 있으니 우리 쪽도 무력 사용 여건은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네?”

   잘못 들었겠지? 분명 ‘무력’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포함되었던 것 같은데?

   “말 그대로입니다. 알트루즘은 인류연합의 일급 보호 대상입니다. 그것을 훼손하거나 탈취하려고 시도한다면 얼마든지 정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제가 동행하고 있으니 대표님의 권위를 일부분 빌릴 수도 있습니다.”

   윤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다음 내용을 듣기가 두려웠다.

   “원하신다면 강윤혁님은 적절한 빌미를 대서 이곳 군벌 구역에 무력을 행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인터갤럭틱 호의 후방에는 대함대가 불가시 모드 상태로 대기 중입니다. 말하자면 쿠데타로 철혈여제의 세력을 박살 낼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왜 하필 저한테 이런 사실을 알려주시는 거죠?”

   무력 사용이니 쿠데타니 폭력이니, 하나 같이 윤혁으로서는 좀처럼 입에 담을 엄두를 내지 못할 단어들이었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한 자신에게 어찌하여 그런 무시무시한 짐을 얹어준단 말인가.

   “곧 자세히 알게 될 겁니다. 아마 머잖아 제 제안이 생각날 겁니다.”

   윤혁은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갈망했다.

 

 

 

 

 

 

 

 

*

 

 

 

 

 

   루디아는 수심 가득한 윤혁의 표정을 눈치챘다.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캐물었다. 윤혁은 이 지역에 자리한 ‘군벌 독재 체계’의 존재에 대해서만 말해주었다. 무력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해두고 함구했다.

   처음에 윤혁은 억울한 심정이었다. 왜 자신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행성에 착륙한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곧 Planet-676,232의 모든 지역에서부터 대표단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행성 바깥에서 구원자가 내려왔다는 계시를 받고 모여들었던 차였다. 윤혁으로서는 생각하기도 몹시 피곤한 일이지만, 당연히 그들이 지칭한 구원자란 윤혁 일행이었다.

   “당신들이 바깥에서 오셨다는 그분들입니까?”

   윤혁과 루디아는 황당한 심정을 보류하고 일단 그렇다고 답했다. 일일이 해명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는 것이 더 정신적인 피로감을 줄 것 같았다.

   “제발 우리를 도와주시지요.”

   열댓 명의 지역 대표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 뒤에 기다리던 다른 대표들도 같이 무릎을 꿇고 조공에 합류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정을 고백하여다. 몹시 충격적인 내용이 그들 입에서 나왔다.

   “어젯밤 주민들이 단체로 꿈 속 계시를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각기 다른 이들이 꾼 꿈의 내용이 서로 일관성 있게 연결되었죠.”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주더라고요. 지난 몇 달간 이 행성을 지배해온 포악한 독재자를 몰아내줄 위대한 해방자께서 행성에 당도했다고 말입니다.”

   “모든 정황을 돌아보니 당신들이야말로 그 해방자임이 분명합니다.”

   “부디 저희를 내다 버리지 말아주세요.”

   “이제 살길은 당신들밖에 없습니다.”

   윤혁은 당혹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대체 자신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그냥 외면하자니 왜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구는 지 그들의 사정이 궁금했다. 그래서 자세한 정황을 여쭤보았다. 그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앙은 약 반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반년 전, 이 행성의 상공에 거대한 관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각각의 관문 너머로는 각기 다른 형태의 땅들이 보였다. 또한 메뚜기 떼를 연상시키는 무수한 군단이 관문들을 통해 각 세계를 넘나들며 대기권을 횡단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모종의 침탈 행위가 개시될 것을 깨달은 주민들. Planet-676,232도 과연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거대한 군단이 웜홀을 넘어 이 행성을 공격했다. 일개 주민들에게 무력이 있을 턱은 없었다.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했다. 그런데 그 군단은 영리하게도 행성 설치된 콜로니들은 일절 공격하지 않았다. 그곳은 자신의 권한이 닿지 않는 영역임을 알았던 것이다. 대신 나머지 지표면에서는 활보가 허락된 모양이었다. 그들은 만만한 곳을 향해 마음놓고 침탈의 야욕을 뻗쳤다.   

   “그 이후로 우리를 포함한 저 관문 너머의 행성들은 독재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뻔한 레퍼토리였다. 점령 이후 통제 사회가 실현되었다. 자유와 권리는 축소되었다. 주거는 물론 모든 삶의 부분이 감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점령자들도 사형집행권까진 없는지 인간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감옥에서는 갖가지 정신 조작 실험이 감행되었다.

   심지어 경제생활도 점령자들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상부에 충성하지 않는 자에게는 경제권 박탈이라는 채찍이 내려졌다. 이것은 그야말로 지구 역사 속의 제3세계의 저열한 독재 정부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제발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저 침탈자들을 물리쳐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저희는 당신들에게 부탁드리려고 오는 과정에서도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제 지역 대표들은 윤혁 앞에서 큰 절까지 하였다. 뭘 해줘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기에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저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외면할 엄두도 쉬이 나지 않았다.

   “일단 절하지 말고 일어나세요. 저희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윤혁이 지역 대표들을 만류했다.

   “맞아요, 우리가 여러분의 치유를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력을 사용할 권한이 있는 건 아니에요.”

   루디아도 거들었다.

   허나 윤혁은 이 말을 들으면서 마음속이 불편했다. 루디아는 데미안이 윤혁에게 전한 비밀 윤혁을 몰라서 저렇게 말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윤혁에게는 현재 저들에게 시혜를 베풀 한 가지 반칙 카드가 있었다.

   ‘설마 데미안이 말했던 게 이런 의미였나.’

   빌고 있는 이들이 너무도 절실해 보였다. 그냥 방관하고 외면하면 저들은 또 반란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험한 꼴을 당하게 되겠지. 하도 절절하게 매달리길래 가슴이 아팠다.

우선 둘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의 변명을 한 후 빠져나왔다.

   그날 루디아와 윤혁은 사람들에게 꿈에서 계시를 주었다는 존재가 누구일지 고민해보았다. 시뮬레이션 우주 같은 것을 이용해서 통일시스템이나 인류연합 측에서 부추긴 것일까? 그게 아니면 혹시라도 악한 영들이 장난이라도 친 것일까? 분간이 어려웠다. 누가 되었건 윤혁 일행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분명했다.

   “악한 영들이 우리를 유혹하려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

   “유혹이라니? 무엇으로부터 유혹을 받는다는 건데?”

   “그게.”

   하는 수 없이 윤혁은 루디아에게 데미안이 언급한 무력 이야기를 터놓았다.

   “형이나 비서관은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려고 내 손에 총을 쥐여준 게 아닌가 싶어. 이유는 모르긴 해도 저런 독재 정권을 초인들이 제멋대로 만들도록 허락한데도 모종의 의도가 있겠지. 형 꿍꿍이를 내가 어떻게 다 이해하겠냐만은.”

   “아무리 그래도 어쩜 그렇게 무시무시한 발상을…….”

   “어쩌겠어.”

   사실 주민들이 묘사한 독재 정권의 실태를 들었을 때는 윤혁도 갈등했다. 저런 악한 정권이라면 무력으로라도 무너뜨리는 게 옳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독재 정부라 해도 구성 요소는 주로 무인 시스템으로 구성되어있을 테니 폭력을 써서 무너뜨려도 인명 피해는 없겠지. 그려면 충분히 정당화되지 않을까?

   하지만 어쨌건 그런 결정을 내리면 필연적으로 윤혁은 자기 손을 더럽혀야만 한다. 데미안은 분명 윤혁의 존재 그 자체가 이곳에서의 무력 행사의 결정적인 허락 요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즉 방앗쇠를 쥔 건 엄연히 윤혁. 그가 이번 결정을 내리면 결단코 방앗쇠를 향해 손가락을 뻗은 책임을 회피치 못할 것이다.

   루디아는 이런 점을 이해했기에 곧바로 우려를 나타냈다.

   “윤혁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과거 로마 정부를 무력으로 물리쳐달라고 예슈아께 외쳤지만 주님은 그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았어. 너도 잊은 건 아니겠지? 적어도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우리 성도들의 손으로 무력 혁명을 하는 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야.”

   물론 윤혁의 양심에 비춰도 그 판단이 옳았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 라고 하셨던가. 성경은 정당방위를 제외하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인 폭력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까지 하셨지. 특히 상대가 정부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시민불복종으로 양심적으로 항거할 수는 있으나 쿠데타는 그리스도인의 옵션이 아니다.

   실제로 지구 역사를 둘러봐도 답은 분명했다. 부당한 정부를 뒤엎는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유혈혁명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몇몇 경우만 봐도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대체로 무력으로 악한 세대를 몰아낸 뒤 자리 잡은 신세력은 다시금 자신들 스스로 새로운 악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최소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런 혁명의 자리에 참여할 소명이 없다.

   ‘하지만 정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하지만 늘 그렇듯 애매모호한 딜레마의 상황은 존재하는 법.

   ‘내버려 두면 폭력과 악의 확산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게 뻔히 보여서 미리 선제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라면?’

   막상 ‘비폭력의 원칙’을 고수하려고 해도 현실 세상에서는 이를 엄격히 적용하기에 녹록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강도가 선량한 시민의 목숨을 해하려 할 때, 나라 간의 전쟁이 벌어져 어쩔 수 없이 수비전을 벌여야 할 때, 테러리스트를 진압해야 할 때 등. 이런 상황에서는 꼭 정당방위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무력 개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정당한 전쟁, 정당한 싸움이란 존재할까? 이 질문은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기독교인들의 풀리지 않는 숙제임이 분명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분명 ‘정의로운 전쟁’이 존재한다는 게 맞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러면 정당한 싸움과 그렇지 않은 싸움을 무슨 기준으로 구분한단 말인가. 인간의 얄팍한 판단력으로 칼로 두부 자르듯 선명하게 경계를 그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뇌하던 윤혁에게 루디아가 간단명료한 해답을 제시하였다.

   “네가 나서지 않아도 인류연합은 그 괴뢰정부를 진압할 수 있잖아?”

   “그, 그거야 그렇지.”

   생각해보니 그 말이 옳았다. 아무리 날뛰는 것 같아보이는 저들도 사실상 철저히 인류연합의 통제 아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인류연합은 자신들이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너에게 판단을 떠넘긴 걸까? 좀 무책임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솔직히 그들 책임이잖아.”

   그 순간 머리가 맑아지며 전류가 뇌 신경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들었다.

   “그들은 왜 괴뢰정부가 불법에 가까운 행위를 벌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바로 개입하려 하지 않았을까? 혹시 우리는 그저 더 큰 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넌 어때.”

   윤혁은 극히 동감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지금까지는 이 중요한 포인트를 간과했던 건지 원.’

   사실 인류연합의 법체계가 근본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있는지 부끄럽지만 윤혁은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도 나름 구체적으로 성문화된 헌법이나 법률이 있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무법 상태였으면 현재의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일단 그 법률의 실체와 체계적 원리부터 뜯어보고 분석하는 게 순서상 먼저가 아닐까? 그래야 지금의 저 괴뢰정부가 진짜 정부인 인류연합의 법을 어기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이건 우리가 판단할 사항이 아니었어. 21세기 당시의 불완전한 UN 때와는 달라. 엄연히 단일정부가 인류를 지배하는 상황이니 그 단일정부의 시스템 내에서 법적으로 분석했어야 했던 문제였어.

   헌데 우리는 지금 인류연합 법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잖아. 하마터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우리 스스로 도의적 책임을 짊어지고 자충수를 둘뻔 했네.”

   윤혁은 그제야 무엇을 해야 할지 대강 깨달았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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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회 아벨의 후예 Ch 22. 슈퍼에고 (1)
등록일 2025-08-13 | 조회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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