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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06회 아벨의 후예 Ch 22. 슈퍼에고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13 | 회차평점 0 0

 

 

 

 

 

 

Chapter 22. Intergalactic : 슈퍼에고(super-ego)

 

 

 

 

 

 

   전에 생전 처음으로 윤혁이 우주로 나갔던 몇 년 전 그날, 그는 형과 함께 ‘천 개 행성의 도시’라는 특수 축조물을 목격한 바 있었다. 그것은 분명 무인 시설물이었다. 이후 윤혁은 선교팀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때, 인공 다중우주 형태의 하늘도시도 본 적 있었다. 웜홀과는 조금 다른 오로라 구조물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던 세계였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지금 그의 눈 앞에 펼쳐진 행성도 그리 신비롭지는 않았다.

   ‘웜홀을 통해서 서로 다른 수천 개의 행성을 연결해놓았다라.’

   사실 웜홀 구조물 그 자체는 별로 특이할 게 없다. 게이트를 축조할 때마다 활용하는 물리적 자원이 바로 인공 웜홀이니까. 다만, 이 행성에 있는 웜홀은 일반적으로 게이트에서 쓰이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게이트는 시공간 안정화를 이유로 평소에는 오직 실낱같은 틈만 열려있다가 물체가 순간이동을 하려는 시점에만 틈이 크게 벌어진다. 사실 요새 인류연합이 사용하는 인간 교통 활동의 통제 정책도 이 원리에 상당부분 기반을 두었다. 허가된 코드의 인증, ‘소속의 표식’의 활성화, 인과율 승인 같은 몇몇 요소가 맞물려야만 게이트의 틈이 벌어지고 원거리 이동이 허락되게 해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 외계행성의 대기권은 수천 개의 외계행성과 ‘상시 벌어진 상태’의 웜홀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현 수준에서 저런 기술을 못 구현할 이유는 없겠지만…….’

   아주 불가능한 기술은 아니다.

   실제로 은하와 은하 사이를 잇는 인공 웜홀의 경우 지름만 수천 광년에 이르는 영역을 아우른다. 그렇기에 그런 웜홀의 경우 게이트에 쓰이는 것들보다 들어가기가 용이하다. 심지어 입구가 아니라 웜홀이 드리워진 구역만 잘 찾아내면 어디서든 은하 간 게이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칼라비-야우 차원과 상위 차원 등 복잡한 추가적인 물리 요소를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하 간 게이트란 대단한 고비용의 인프라이다. 그런 큰 스케일의 목적도 아닌 주제에 일개 항성계 구역들을 상시 연결하려는 목적 하나로 상시 유지되는 웜홀 구조물을 쓴다는 것은 흔한 광경은 아니었다.

   “윤혁아, 몸은 괜찮겠어?”

   “응, 워낙 훈련을 많이 받다 보니까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어제 의료진에서 일하는 친한 선배가 그러던데 처음보다 몸 상태가 안정되었대. 재생 속도도 높아졌고 피코머신에 내장된 방정식의 오차율이 급감했다더라. 게다가 생체 오류의 제거율도 정확성이 거의 100%에 수렴하고 있다더라.”

   루디아는 의학 용어에 미숙해서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강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만간 더 험난한 시험들이 닥쳐올 테니 계속해서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윤혁은 일부러 그런 친구를 안심시켜보기 위해 이두박근을 과시하며 장난스레 농담도 던져 보았다.

   “몸 상태가 좋다 보니 근육도 좀 붙은 것 같아. 한 번 눌러볼래?”

   “아, 아니, 괜찮아.”

   루디아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이 고개를 돌렸다.

 

   이후 소형 셔틀을 타고 땅에 착륙한 루디아와 윤혁. 이내 대기권에 떠 있는 수천 개의 웜홀이 보였다. 오로라마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보통 자연 상태의 웜홀은 불안정성이 높다던데 어찌나 기술력이 진화했는지 전혀 부자연스러움이나 불안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에 하늘도시 속 인공 다중우주에서 보았던 그 오로라 게이트와 비슷하게 지금 이 행성의 인공 웜홀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한 듯했다. 발전기와 플랜트가 여럿 매달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실용성도 꽤 되는 것 같았다.

   이곳 주민들의 생활은 어딘가 모르게 억눌려 보였다. 마치 무서운 독재자의 지배를 받는 국가의 주민들에게서나 찾아볼 법한 절망감, 무기력함, 어두움이 표정에 깃들어 있었다.

   이는 대단히 낯선 장면이었다. 비록 인류연합이 강력한 세계 단일정부이자 궁극 시스템이며, 위버멘쉬도 이례 없는 절대권력의 독재자라고는 하지만, 지금껏 하늘도시건 지구의 민간 세계건 외계행성이건, 주민들이 인류연합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비상식적으로 거대한 권력에 인본주의적 색채가 강하다지만 나름 통치자로서 도덕적 선(線)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원래 나랏님이 정치를 너무 잘하면 사람들은 누가 나랏님인줄도 모른다지 않는가.

   고로 이곳은 무언가 다른 존재에게 핍박이나 억압을 당하는 것 같았다.

   차를 타고 행성을 순회하던 중 다시금 텔레파시 신호가 당도했다.

   “비서관님?”

   윤혁은 무슨 일이라도 발생했나 싶어서 재빨리 수신을 허가했다.

   “강윤혁님.”

   “무슨 일이시죠?”

   “참고로 이건 대표님의 전언이 아니라 제 독단적인 메시지입니다.”

   잠깐 가슴이 철렁거렸다.

   “말씀해주시죠.”

   데미안은 계속 대답을 이었다.

   “대표님께서는 강윤혁님이 거쳐 가실 행로를 미리 전부 정해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곳들 가운데 몇몇은 의도적으로 지정된 좌표가 있어 보입니다. 단순한 무작위 배치에 기인한 여행 코스는 아니라는 뜻이죠.”

   “그거야…….”

   윤혁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아무래도 최적의 효율로 알트루즘을 요긴하게 활용하려면 형 입장에서도 아무 행성에나, 아무 순서로나 배치할 수는 없겠지. 나름대로 자신이 잘 모르는 기괴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경로를 정했으리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데미안의 초조한 어투를 보아 그게 다는 아닌 듯했다.

   “주된 임무만을 위해서 그런 의도가 반영된 것은 아닙니다.”

   “네? ‘주된’이라면, 제 임무에 사람들 구하는 것 말고 다른 게 있단 뜻인가요?”

   “부차적인 목적, 이를테면 정치적인 목적도 여행 계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윤혁은 대체 데미안이 말하는 정치적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알 길이 없어 어안이 벙벙했다. 당혹감에 얼굴이 굳어드는 윤혁의 모습에 루디아까지도 의아해했다.

   “이해가 안 돼서 그런데,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먼저 이곳 Planet-676,232를 포함하여 형성된 웜홀 기반 연결형 행성 연합체가 최근 들어 어떤 복잡다단한 정치적 상황에 휘말렸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히 알려주었다.

   “전면개방의 시대에 이른 후, 초인들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통일시스템의 등장으로 인해 일반인 사회를 지배할 권한과 명분은 약화되었지만, 그 대신 인류연합이 드넓은 우주 방방곡곡을 정복한 덕에 활동 무대는 넓어졌죠.

   더욱이 우주 인류 확대로 인해 다스릴 신민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바람에 초인들은 자연스레 그들을 인도하고 돕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카이젤의 정치 사상대로 초인들이 전제군주 역할을 도맡았다면, 이제는 전제군주 역은 카이젤 하나에게 집중시키고 나머지 초인은 레리엔이나 티아라의 방식대로 사람들을 돕는 현자에 가까운 역할로 배치되었다. 카이젤로서는 나름대로 옛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버무린 절충안을 도입한 셈이었다.

   현재 대체로 초인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2등 시민들이 거주하는 Upol 지역. 사실 이곳만 해도 인구도 해(垓) 단위에 이르렀고 지금까지도 급증하는 중이라 초인들이 할 일은 차고도 넘쳤다. Upol은 기본적으로 자치권이 허락된, 이른바 유사 민주주의가 전제 정치와 겹쳐 공존하는 세상이었기에 초인들이 무소불위의 행패를 부릴 수는 없었다. 설령 그런 일을 하더라도 통일시스템 권한에 대한 월권으로 간주되기에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 독재적인 성향의 초인들은 아예 눈을 돌려서 외계행성 쪽에 눈독을 들이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습니다. 그곳들은 개인적 차원의 정치 개입에 대한 통일시스템의 제약이 비교적 적기 때문이죠.”

   우주 시대 이전의 지구의 역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은 있었다. 선진화된 지역에서는 군벌들이 쉬이 폭력 정치를 행하지 못했다. 반면 제3세계의 낙후된 곳에서는 못된 정치가나 독재자가 잘 등장하곤 했다.

   우습게도 우주 시대가 도래한 근래도 비슷한 일이 재현되는 판국이었다. Upol에는 평화의 사자 내지는 현자로 위장하여 다가온 초인들이 여러 가지 지식이나 도움을 주면서 환심을 샀다. 하지만 동일한 초인들이 외계행성으로 찾아올 때는 대체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을 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별히 수도 은하인 Galaxy-0로부터 거리가 먼 시골 은하의 경우가 이런 경향성이 더 심했다. 외곽 지역에 자리를 틀고 독재자로 군림한 초인들은 인류연합의 눈에 어긋나지 않도록 아슬아슬한 선을 지켜가며 폭정을 즐겼다. 대놓고 학살을 벌이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민주적인 가치관 아래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와 평등의 박탈이 자행되었다.

   그나마 자치권이라도 있는 Upol과는 확연히 다른 처지였다.

   “2등 시민들도 인류연합의 절대적 지배 아래 놓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의 자유는 누리도록 풀어진 바 되었죠. 하지만 외계행성에 거주하는 자들에게는 아직 시민권이 없습니다. 적어도 우주 인류 프로젝트 3단계가 개시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러한 신분상의 이유 때문에 자유와 평등의 박탈이 좀 더 용이하다고 한다. 마치 선교 여행 당시에 보았던 하늘도시와 비슷한 처지였다. 카뮈네라의 거짓 신들, 칼티엔뉴르의 마법, 요가플레임의 초능력 등, 그들도 그때는 인류연합의 기술과 미혹에 농락당하며 살았었지.

   다시금 그 시절 보았던 장면들이 떠오르자 윤혁의 주먹에 핏줄이 섰다. 인류연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기야 지금의 외계행성 주민들은 생명을 보존할 권리마저도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은 판국이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데미안의 경고는 지금부터가 핵심이었다.

   “외계행성 지역들을 침탈한 초인 중 특히 주의해야 할 여섯 명이 있습니다.”

   “여섯이요?”

   “네, 전부 다 SSS 클래스, 최상위 초인입니다.”

   갑자기 골머리가 지끈거렸다.

   ‘SSS라고?’

   한 명만으로도 골치 아픈 그 강적들을 여섯이나?

   “스물네 명이 전부가 아니었습니까? 형이 그렇게 말하던데요?”

   “그건 SSS클래스 최상위 초인 중에서도 특별히 더 뛰어난 인재들만을 추린 숫자입니다. 줄여서 TFE라고 하죠. 그들은 대표님의 신뢰를 받는 부관들입니다. 하지만 그 영광의 반열에 못 들어간 자들도 있습니다. 최소한 50명 이상의 SSS 클래스 초인들이 TFE에 들지 못한 채 좌천되었습니다.”

   물론 좌천이라고는 해도 SS 클래스 이하보다는 큰 권력을 지녔다나.

   ‘그걸 두고 좌천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불성설 아닌가? 그저 지구에서 떨어진 지방 쪽으로 나갔을 뿐인데.’

   여하튼 데미안은 그 문제의 주의 대상 여섯을 일러주었다.

   “철혈여제, 마의(魔衣) 현모, 밤의 여왕, 소서리스, 피닉스, 카르카스.”

   “전부 괴상한 이름뿐이네요.”

   “이름이 아니라 이명(異名)입니다. 본명은 사정상 없거나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현존하는 3세대 초인은 보통 최소 하나 이상의 이명을 두는 관습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1세대가 개인별 코드네임을 지었고, 2세대가 자신만의 독특한 라스트네임 및 고유 언어를 창작해내어 가문을 만든 것과 비슷하게 3세대도 하나의 관습을 지니고 있다나. 윤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한심한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유치하게 말이지.

   “아무튼, 현재 강윤혁님이 거하고 계신 이 은하계, Gal-C-5,008,956에는 외계행성 8천 개를 연결해서 생성된 군벌 지배구역이 하나 있습니다. 철혈여제께서 그곳을 다스리고 계시죠.”

   “설마 그곳이.”

   “네, 지금 밟고 계신 이 Planet-676,232도 그 구역의 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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