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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05회 아벨의 후예 Ch 21. 수치심의 극복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11 | 회차평점 0 0

 

 

 

 

 

 

 

*

 

 

 

 

 

 

 

   윤혁이 열흘 간 연구시설에 갇혀있는 동안 루디아는 쓸쓸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다. 겔다가 옆에서 돌봐주긴 했으나 윤혁이 보고픈 생각이 들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근심이 들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커버넌트로 인해 카이젤로부터 부여된 특수 권한이 있었기에 윤혁 곁으로 바로 찾아갈 수도 있었다. 비상시에 치유 속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은 되려 윤혁을 믿어주지 못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서 꺼려졌다.

   그는 실험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항상 그녀를 안심시켰다. “괜찮을 거야.” 전에도 수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매번 건강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굳게 믿으며 버텼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또다시 흔들리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렇게 어느덧 마음속에 커져 버린 그의 존재감을 발견하는 루디아였다.

   ‘찾아가더라도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겠지?’

   친구가 실험 중에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장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 또한 초라한 몰골을 자신 앞에서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루디아 스스로도 그의 무방비한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예전에 납치당한 그를 구하러 갔을 때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용맹한 마음만 들었거늘, 지금은 왜 이리도 의식되는 것인가. 아직 친구 이상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상태이거늘.

   ‘너무 감정만 앞서나가서는 안 돼.’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곁에 머무르며 평생 서로 상대방의 삶을 돌보는 식의 인생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확인조차 해보지 못한 그 마음의 진위 때문에 그녀는 내심 시무룩해졌다.

   ‘묵상에 열중하자.’

   그녀는 깨끗한 정신으로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열흘 간 말씀을 묵상하였다. 특히 지구에 남아있는 동포들과 먼 곳으로 떠나 사역 중인 리온 일행을 위해서는 시간을 떼어 중보 기도를 하였다. 특히 옛 하늘도시 구역들은 지금 한창 기독교가 부흥 중이었기에 더욱 많은 기도가 필요했다.

   부디 그 불길이 꺼지지 말고 활활 타오르기를. 세상의 핍박에 굴하지 않기를. 사람들이 그릇된 사상에 물들지 않기를. 교회가 타락하거나 변질되지 않기를. 타락해도 다시 개혁하기를.

   그녀의 기도는 쉼 새 없이 이어졌다. 기도를 하다 보면 거듭 새로운 기도 주제가 생각났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 교회를 위한 기도, 세상을 위한 기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 세상의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 아가씨를 위한 기도까지.

   종종 유혹도 은밀히 찾아왔다. 카이젤은 커버넌트의 힘을 매개체로 이용해 루디아에게 가끔씩 텔레파시나 아바타로 메시지를 보냈다. 세상의 권세와 부를 모두 소유한 그자는 여러 의미로 위험했다.

   그는 루디아에게도 동생에게처럼 많은 부의 기회를 내밀었다. 비록 루디아는 유대인이라 자본 포인트 시스템에 속하지 않았지만, 카이젤이 레리엔으로부터 카리스마타를 복사해낸 덕분에 이 문제는 손쉽게 해결되었다. 그는 “일단 갖고 있으면 나중에 동포들을 돕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서 경제적 지원으로 꼬드겼다. 반쯤 강제로 떠밀어주었다고 해야 하겠지.

   하지만 루디아는 자신이 그것을 쥐려 하지 않았고 대신 윤혁이 취했던 방식 그대로 모든 소득을 외계행성 주민들에게 베푸는 식으로 환원했다. 그녀는 동포들이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게 의존하기를 원치 않았다.

   ‘대표님도 참 안타까운 사람이야.’

   루디아도 지난 선교 여행 막바지에 윤혁의 소원을 들었다. 또 자신도 그의 짐을 짊어지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은 거짓 없이 진실했기에 그녀는 윤혁과 피를 나눈 형을 안타까이 여겼다. 또한 동정심 많은 그녀는 처음 그 사람과 만났을 때의 그 처참했던 장면을 잊지 않았다. 몸이야 회복되었겠지만, 정신적 트라우마는 아마 지금도 잔재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사람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텅 빈 듯 공허한 인상을 주었다. 훌륭한 체격, 눈부실 정도로 잘생긴 외모, 넘볼 수 없는 지혜, 세계 제일의 부와 명예와 권력과 권능을 지닌, 그야말로 궁극의 솔로몬 왕과도 같았지만, 그 금빛 눈은 늘 굶주렸다. 윤혁이 왜 자기 형을 애달파하는 지 이해가 되었다. 겔다 아주머니가 그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윤혁이의 기도를 나도 짊어지겠어.’

그녀는 더욱 굳게 각오를 다졌다.

 

 

 

 

 

 

 

 

*

 

 

 

 

 

   열흘이 지나간 뒤, 다시금 행성에 착륙할 차례가 되었다. 윤혁은 그사이 곤욕스러우면서도 나름 은혜로운 시간을 체험했다.

   처음 나흘간은 태헌과 똑바로 눈 마주치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수치스러워서 몸을 가리고 싶었지만, 결박된 상태이기에 불가능했다. 차라리 알트루즘의 폭주로 체내에 부담이 가해지면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을 잊을 수 있었다. 전에는 실험 중 갑자기 고통이 엄습할까 봐 불안했는데 이젠 고통이 반가울 지경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신 것도 나름 은혜구나 싶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적응이 되자 태헌과 예전처럼 웃으며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의 그 엉뚱한 면은 여전했지만, 엘리트답지 않은 인간미가 돋보였다. 윤혁의 곤경스러운 심정을 알아차리더니 전문가답게 자연스럽게 맞대응해줬다. 그래서 이제는 무방비한 맨몸으로도 의사 선생님을 편히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선교 여행에 대한 신앙 간증도 공유하였고 하나님을 간접적으로나마 소개할 기회도 아주 조금씩 얻었다.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았지만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아직 이번 미션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좀 익숙해지려나.’

   캡슐에서 나와 몸을 추스르려던 차에 윤혁의 영 내부에 다시금 말씀의 강한 진동이 임했다. 왠지 그는 자신의 심장이 평소보다 크게 두근거리는 것을 감지했다. 상의를 차려입기 전에 윤혁은 자신의 가슴쪽을 살펴보았다. 심장, 아니 알트루즘. 이제는 자신과 한 몸이 되어버린 물건이 흐릿이 감지되었다.

   [네 몸과 영과 혼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너를 거룩하게 지어갈 것이다. 영혼뿐 아니라 몸까지도. 너희는 몸의 영화(glorification)를 부활에만 한정 지어서 생각하지만, 나는 마지막 날의 부활이 이르기 이전에도 부활의 영광을 얼마든지 맛보게 해줄 수 있다(요11:24-25).]

   “그거야 그렇지만…….”

   윤혁은 그 말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였다. 실제로 말세의 부활을 맞기 이전에 이 세상 삶에서부터 신적 치유의 은혜를 맛보는 신자들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축복이 아닌 드문 예외이긴 하지만.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권세와 회복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리라. 나사로가 최후 부활 때 입을 은혜를 아주 조금 미리 맛보았듯, 주님은 언제든 이곳에서도 기적을 보여주실 수 있다.

   [원래라면 심장 속의 저것은 너의 일부가 아니었어야 했다. 허나 너는 이미 선택을 해버렸고 되돌이킬 수는 없게 되었다. 나는 이미 네 일부가 된 저것을 너의 일부분으로 오롯이 인정하겠다. 단, 그 소유권은 내가 취하겠다. 너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완벽히 새로운 성질로 바꿔 저것을 재창조하겠다.]

   “주님의 지혜로운 인도를 따르겠습니다, 주님.”

   [잘 생각했다. 먼저 너는 알트루즘의 제어권을 내게 넘겨라.]

   “제어권이라면, 제가 이걸 의식적으로 다룰 수 있었단 말입니까? 무의식중에 작동하는 줄로만 알았는데요.”

   [아니, 저것은 주인의 제어를 따른다. 그리고 주인의 사상도 반영하지. 지금까지는 네 육신과 옛 사람이 아닌, 네 속사람(inner new person)이 저것을 제어해왔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되도록 유도해왔다.]

   그랬던 것이구나. 그래서 에고가 그토록 신기해했구나. 하기야 세상의 고매한 철학적 가치관이 아닌, 성령으로 거듭난 인격체가 알트루즘에 손을 댈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그자들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니 그런 신비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치도 못할 것이다.

   ‘내 속사람이 주님을 대신해서 저것을 운용해왔다고?’

   [그래. 그러나 이젠 그 정도 수준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아예 내게 제어권을 넘겨라. 네 거듭난 영이 아닌, 나 자신이 직접 그걸 사용하겠다.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방향과는 무관하게 내가 내 때에 맞춰 그것을 작동시킬 것이다. 때로는 물리법칙 안에서 섭리를 통해, 때로는 법칙을 초월해서 기적으로 다루리라.]

   이 제안은 심각한 도전이었다. 알트루즘의 통제권을 앗아가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짊어지는 이타적인 행동의 주도권마저도 윤혁 마음대로가 아닌 주님의 의지대로 조절하리라는 선포니까. 분명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요구하실 때가 찾아오리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즉각 어디선가 정체 모를 속삭임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렇다. 이제 너는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것이다. 억울하지도 않느냐? 제 자신의 운명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다니 말이지. 가여워라.>>

   그러나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으리라’라는 말씀이 떠오르자 스며드는 유혹도 손쉽게 무찌를 수 있었다. 지금은 고통스럽고 쓰라리겠지만, 이 고난을 이겨내면 알트루즘은 온전히 주께 바쳐진 거룩한 산 제물이 될 것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탈취물을 바쳤듯, 인간의 기술로 빚어낸 아성도 주님의 제단 위에 던져지리라. 그럼 알트루즘도 그분의 표현대로 완벽히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지 않을까.

   [그야 물론이다. 아울러 나는 알트루즘과 그것의 다른 반쪽과의 연결고리도 끊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네가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네 형의 정신세계에 영향력을 행사되도록 역전시키기 위함이다.]

   이 응답과 약속이 윤혁에게 확고한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에고의 말대로 알트루즘의 본질은 결국 에고이즘에 종속되어 있다. 인간 세상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타심을 품어도 그 본질은 자기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신의 품성에 담긴 이타심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신께서는 자신의 생명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였다. 신의 생명보다 인간이 더 값지기 때문은 결단코 아니다. 인간의 가치가 아무리 고귀하다 한들 신의 형상은 신 그 자체에 비하면 한없이 무가치한 것. 그 위대한 희생의 사랑은 오로지 그분의 본성이 궁극의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윤혁의 심장에 심긴 알트루즘도 완벽한 사랑의 성질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었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가치가 덜한 것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닌, 가치가 없는 것마저도 희생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사랑. 윤혁에게는 그 마음이 절실했다.

   ‘해보자.’

 

   주님 앞에서 그렇게 서원을 마친 윤혁은 루디아와 재회했다. 열흘 간 중보 기도에 힘쓰는 동안 강건해진 루디아는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강인해 보였다. 그녀의 영혼은 그야말로 생령처럼 살아 숨 쉬는 듯했고 윤혁도 루디아의 눈에서 은혜의 깊이를 발견했다. 둘은 포옹을 통해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나 잠깐의 해후의 순간은 찰나에 지나갔다. 이제 다시금 다음 외계행성을 밟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새 목적지인 은하계 Gal-C-5,008,956에 당도한 인터갤럭틱 호는 여러 항성계 중에서 은하 외곽에서 공전 중인 어느 한 곳을 택했다.

   백 개가 넘는 행성이 해당 항성계의 중앙 항성 주위를 공전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거주 가능한 외계행성, Planet-676,232이 있었다. 두 사람의 이번 방문지가 될 그곳은 다소 특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 형질이란 대기권에 상시 개방되어 있는 웜홀들이었다. 해당 행성은 웜홀들은 통해 수천 개의 각기 다른 좌표의 외계행성과 원격으로 맞닿아 있었다.

 

   두 사람이 행성으로 막 착륙하려던 찰나에.

   “강윤혁님.”

   데미안 비서관의 아바타가 텔레파시로 경고를 전해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곳에는 위험 요소가 제법 많습니다. 시비가 붙지 않도록 조심하시죠.”

   구체적으로 무엇이 위험하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나 꺼림칙한 예감이 들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혁은 의심과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루디아와 함께 행성으로 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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