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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31회 아벨의 후예 Ch 27. 반셈족주의의 종말 (6)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1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한동안 잠잠했던 반셈족주의의 횃불이 다시금 붙었다.

   기껏 복음을 전하러 찾아온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온갖 욕설과 폭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제 눈이 멀 대로 멀어진 사람들은 이 사태를 낳은 우주 인류와 인류연합을 미워하는 대신에 유대인들에게 짜증을 냈다. 마치 모든 일이 그들의 탓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자는 아예 저들이 자신들을 쫓아내도록 사주했을 거라고 모함했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고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망발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대인들을 향해서만큼은 인류의 이성은 항상 그런 왜곡된 방향으로 작동해 왔었고, 이는 역사 속에서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구 원주민들이 모두 우주 변방으로 떠난다고 하자. 그러면 유대인들은 반셈족주의의 저주로부터 마침내 해방될 것인가. 이것은 저주의 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저주의 시작인가.”

   주범이자 책임자인 카이젤은 집무실에 앉아 무덤덤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거리며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지구 원주민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딱히 개인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원한이 있다면 우주 인류 쪽에 있었다. 애초에 자신은 지구 인류에게서 났었고 어머니는 유대인의 혈통을 일부 지니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와 별개로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참으로 가관이라는 감상은 들었다.

   그동안 핍박하고 외면해왔던 이방인들이 지구 밖으로 신세 좋게 쫓겨나면 이제 유대인들은 고민을 내려놓게 될까.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 들어올 우주 인류도 똑같은 차별의 길을 걸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주 인류에게는 자신이 우수한 인간이라는 헛된 자부심까지 있다. 가난하고 하찮아 보이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꼴불견으로 보일 것이다. 그나마 이전에는 유대 민족이 지구의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영리했다지만, 지금부터 들어올 새 주민들은 하나 하나가 초인에 버금가는 종족이다. 즉 유대인들은 실력에 있어서도 열세가 될 것이며 수에서도, 위치에서도 밀리게 되며, 그 와중에 동일한 차별 대우는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반셈족주의,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루디아라는 소녀는 계약을 제안했을 때 이런 상황을 고려하기나 했을지. 지구에 남아서 선교하는 제사장 민족의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부담스러운 짐인지 깨닫고 있었을까. 그랬건 그렇지 못했건 어느 쪽이든 그녀도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은 감당해야겠지.

 

 

 

 

 

 

 

 

 

*

 

 

 

 

 

 

   아직 겸손한 태도를 상실하지 않은 몇몇 이레귤러들이 있었다. 그들은 난장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곤고함 가운데에도 여러 가지 정보를 면밀히 관찰하더니 한 가지 지혜로운 계책을 생각해내었다. 그들은 현재 이 그래프의 영향력이 단순히 지구 인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알아차렸다.

   “우주 인류쪽이 받는 처우도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 이건가?”

   “그렇군, 지구 인류를 심판하는 저 그래프의 어느 한 지점이 임계치 이상 ‘혜택’ 쪽으로 치우치면 그 지점에 대응되는 국가나 민족의 고유 권역을 침략한 우주 인류 군집은 역소환되어 장벽 뒤로 밀려나가는군.”

   제법 영리한 발견이었다. 뜻을 함께하기로 결의한 후보자들은 합심하여 이 부분을 공략한 대응 전략을 펼쳐나갔다. 그들은 그래프의 고저(高低)가 엎치락뒤치락 오르내리도록 개입하였다. 즉 여러 개의 지점을 맡은 뒤 한 시점에는 어느 한 부분을 올리고 다른 부분을 내렸으며, 다른 시점에는 반대로 다른 부분의 높이를 올렸다. 그들은 저글링을 하듯 정교하게 아슬아슬한 조정을 반복했다.

   그러자 천지합일의 여파로 소환된 침략형 우주 인류 문명, 곧 공중섬과 외계 문명들이 역소환장에 노출되어 하나씩 바깥 궤도로 밀려났다. 지지부진한 속도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이런 식으로 질질 끌다 보면 지구 인류가 허무하게 터전을 빼앗기는 일을 조금이나마 지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후보자들이 이런 기대로 마지막 희망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 협응 또한 완전하지 않았다. 불협화음을 발생시키는 이들도 상당했다. 어떤 후보자들은 협조적이지 않은 태도로 굴었다. 그들은 유대인 전도자들이 지구인들에게서 냉대받고 멸시받는 모습을 보더니 마음을 돌이켰다. 차라리 쓸모없는 지구 인류를 모조리 내쫓도록 방치하는 게 합당치 않냐면서.

   이에 다시금 의견 충돌이 번져나갔다. 그리고 후보자들간의 의견 충돌은 그래프 가상공간 속에서는 실제 무력전으로 반영되었다.

   지구에 강림한 우주 인류는 일이 자기들 생각만큼 시원시원하게 전개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조바심에 애가 탔다. 그래서 그들은 이레귤러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아울러 인류연합의 지도자에게 탄원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소서. 죽기까지 충성하겠나이다. 카이젤이 계획했던 대로, 레리엔이 예견했던 대로 일이 흘러갔다. 후보자들이 나름 굴려보았다는 잔머리는 되려 우주 인류로 하여금 인류연합의 은총과 자비에 의지하고 복종하게끔 하는 결과를 낳았다.

   배후에서 이레귤러들의 잔꾀를 묵인해주던 통일시스템은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였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재롱잔치는 이미 질릴 정도로 충분히 구경했다. 지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그것은 곧바로 다음 단계 프로세스를 발동하였다.

   {지구 해체 제6단계 발동.}

   {제로원, 행성 침식 프로세스 발동.}

   수년간 감춰진 비밀의 도시, 아엘브론과 레뮬로스. 두 도시를 외부로부터 가리는 결계가 마침내 해체되더니 두 도시의 위용이 만방에 드러났다. 마법이 펼쳐지기라도 하듯 두 도시는 자신의 지평을 스스로 넓혀 사방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공간 자체를 침식하면서 문명계를 잠식했다. 마치 행성 전체가 두 도시와 동화되는 듯했다.

   일부러 지구 인류가 이 상황에 적응할 숙려기간을 주겠다는 의도인 것인지 제로원의 도시들은 지구를 한꺼번에 전부 다 침식하지는 않았다. 현재까지는 정확히 33%만큼의 시공간만을 잠식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나머지 부분도 모조리 먹히는 것은 확정이었다.

   사실 제로원은 이미 오래 전 지구보다 앞서 우주 인류와의 문명 통합을 마친 뒤였다. 현재 그곳은 선발되어 들여온 우주 인류로만 채워져 있었다. 인류연합은 그간 징검다리 권역과 Upol 전역의 주요 실력자들을 눈여겨본 뒤 제로원의 입주권자로 스카웃한 상태였다. 비유컨대 지금 우주 문명에서 내려온 자들이 정규 채용 임원이라면, 이전에 제로원에 받아들여진 이들은 특별 채용 임원이었다.

   그리고 그간 제로원 안에서만 활동하도록 제약을 받았던 특별 채용 직원들에게는 마침내 제로원을 넘어 모든 지구의 땅들이 허락되었다. 이렇게 안과 밖에서 밀려든 우주 인류는 지구 주민들이 거닐던 장을 모조리 차지하였다.

   어처구니가 없는 이 슬픈 현장 속에서 스테판은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묻고 싶소. 당신은 왜 그리 우주 인류를 미워하는 것이오?’

   모두가 혼돈에 잠겨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스테판만은 홀로 핵심에 근접하게 다가갔다. 인류연합의 수장,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수수께끼의 남자. 그러나 스테판의 눈에는 그자의 행동이 영 석연치 않았다. 그가 이 판을 벌인 목적이 정말로 지구 인류에게 수치를 주기 위함일까? 오히려 스테판이 보기에 그 사람은 우주 인류에게 이 행성을 넘겨주기를 몹시 마지못해 하는 것 같았다.

   왜일까? 인류의 보편적 지구 회귀 본능을 알았던 자이다. 그걸 알았다면 진작부터 우주 인류에게 땅을 조금씩 나눠주었더라면 해결되었을 텐데. 왜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알면서도 이 같은 사달을 만들었는가. 일부러 우주 인류의 숫자를 지구 공간의 확장력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과대하게 증식시켜놓고 그간 지구의 땅을 아무도 밟지 못하게끔 억제해둔 연유는 무엇인가.

   그의 행보는 마치 하기 꺼려하는 일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미뤄뒀다가 마지못해서 시늉만 내는 모양새 같았다. 그자를 책망해야 한다면 진정 비판해야 할 점은 지구 원주민을 향한 태도가 아닌, 도리어 지금껏 우주 인류를 다뤄왔던 태도이리라. 기나긴 세월 권리를 제한받아온 우주 인류는 화를 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원주민들의 축출만을 바라보며 고소해하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정작 자신들을 억압했던 존재를 향해서는 숭배를 드러낸 채로 말이다.

   아울러 스테판은 그자를 향해 진지하게 한 가지를 더 질문하고 싶었다.

   ‘왜 당신은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행하셨던 섭리를 모방하시오? 그대가 얼마나 위대한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그대는 신이 아닌 인간이지 않소?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두 부류를 모두 사랑하셨지만, 반대로 그대는 지구 인류와 우주 인류 둘을 모두 미워하고 있소. 대체 왜란 말이오?’

   사랑을 저울로 삼아 인류를 다스리지 않고, 되려 증오심이라는 추를 사용해 인류를 저울질하는 인간. 증오는 마치 칼집이 없는 검과 같아서 검을 쥔 자 또한 고통을 받게 한다. 그 강한 인간의 영혼 속에 얼마나 고뇌의 흉터가 가득할지 상상해보았다. 그렇게 돌아보니 한 인간의 가련한 영적 실태가 피부로 느껴져 도리어 측은지심이 들 지경이었다.

 

 

 

 

 

 

 

 

 

*

 

 

 

 

 

   상처뿐이던 1차 경합은 시작으로부터 정확히 2주 만에 종결되었다. 점수는 무자비하게 매겨졌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도 철저히 보응 되었다. 후보자 중 다수가 탈락되었고 예고대로 정확히 70인만이 남았다.

   스테판은 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테판과 떨어진 42명의 크로스솔져들이 보조인원으로 배치된 팀들도 다행히 탈락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특수 넘버를 눈여겨본 레리엔과 아나스타샤의 혜안이 입증된 셈이었다.

   하지만 누가 떨어지고 붙었느냐를 떠나서 모두가 패배자나 다름없었다.

   스테판이 아닌 후보자에게 배치된 42명의 크로스솔져들. 그들은 이번 경합 내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감시만 했다. 그들은 자기에게 배당된 이레귤러와 자기 팀에 속한 나머지 보조 인원들을 주시했다.

   과연 전직 히어로 출신들인 보조 인원들은 내심 크로스솔져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까마귀 무리에 섞인 백로는 눈에 튀는 법. 사실 크로스솔져들은 이전의 냉전 때도 일반 히어로와는 확연히 다른, 사람의 이기적 본성을 뛰어넘은 의로운 모습을 많이 보이곤 했다. 이러한 행적들이 히어로들의 시샘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따. 그들은 ‘저 녀석들은 자기들끼리만 의로운 잘난 놈들이다’라고 쑥덕였다. 이 때문에 크로스솔져들은 히어로 출신 보조인원과 친해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작 그들보다 골치 아픈 문제는 따로 있었다. 보조 인원의 구성을 보면 히어로 출신과 크로스솔져 출신을 합해도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 가까이 되는 인원, 이들은 정체를 좀처럼 밝히지 않았다. 이들은 같은 팀원과도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외모나 말이나 행동을 보면 영락없는 인간이었지만, 수상쩍은 느낌이 진했다.

   이번 경합 때도 그들은 싸움 도중 유난히 기묘한 능력과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고 이를 통해 경쟁 팀에 있던 히어로들을 곤경에 몰아넣었다. 정황 상 그마저도 제 실력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초능력을 다룰 줄 안다는 히어로들마저도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할 정도였으니.

   그때에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히어로들은 그들에게 정체를 물었다. 놈들은 자세한 설명 대신 이렇게만 스스로를 소개했다.

   “우리는 폰(pawn)이야.”

   그 괴이 멤버들 모두 하나같이 자신을 폰이라 불렀다. 체스판의 졸병. 그것 외에 다른 한 공통점이 있었다. 외양이었다. 그들은 눈동자가 하나같이 금빛이었다. 그리고 한쪽 눈에는 푸른색 원형 고리가, 다른 쪽 눈에는 붉은색 원형 고리가 희미하게 겹쳐져 있었다. 아직 이런 인간을 만나본 적이 없던 크로스솔져들로서는 짙은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지구 원주민들의 운명은 모두의 예견대로 공평한 패배로 이어졌다. 그래프는 후보자들의 치열한 다툼에 휘말려 모두 소모되었다. 이에 대다수 원주민은 일찌감찌 특혜 받기를 포기하고 적절히 사회경제적 보상을 수령한 뒤 얌전히 정부 명령대로 우주로 이주하였다. 불과 몇 주 만에 원주민의 99.9%가 떠나갔다. 지구는 바야흐로 새 시대의 기로를 맞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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