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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32회 아벨의 후예 Ch 28. 멜카드제윈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17 | 회차평점 0 0

 

 

 

 

 

 

 

Chapter 28. Intergalactic : 멜카드제윈

 

 

 

 

 

 

 

 

   슈퍼에고와의 대면 이후 윤혁은 한동안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법과 도덕, 윤리. 이 심오한 주제에 대한 고뇌가 거듭 그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그렇다. 인류는 아담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나름대로 열심히 법이며 도덕이며 윤리를 구축해왔다. 종교를 통해서건 철학을 통해서건, 혹은 국가 체계를 통해서건. 다양한 주체가 윤리를 구축했다. 그러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핵심은 늘 비슷했다.

   ‘인간의 자연법, 곧 양심 때문이지.’

   성경에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롬 2:14-15)” 라고 기록되어 있듯,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느껴질 수 있도록 공통적으로 양심을 내면에 심어주셨다. 만약 만물이 무작위적 우연의 법칙으로 저절로 만들어졌다면 이런 일을 설명할 방도는 없겠지. 인간의 양심의 분명 신의 존재를 증거하는 증거물임이 틀림없다.

   과거 혹자는 이런 인류 보편적 도덕심이 단지 종족 번식 및 종족 질서 유지를 위해서 인간들이 우연히 고안해낸 창작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논리로는 문명인이나 미개인이나 선한 사람이나 악인이나, 마음속에 보편적인 윤리를 품는 이유를 설명해내지 못한다. 윤리가 우연히 진화되어 만들어졌다면 개인들과 집단들의 윤리는 공통점이나 동질성이 없이 제각각이어야 할 테니까. 이렇듯 윤리란 인간에게 절대자의 존재를 계시해왔고 그분을 경외하게 해왔다.

   그런데 만약 사람이 자연적 윤리, 곧 하나님께서 심어 넣어준 본능 대신 자신이 발명한 윤리를 보편화하고 재구축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아가 새로 구축된 그 윤리를 전 우주의 법령으로 새긴다면. 이것이야말로 ‘불법의 비밀(살후 2:7)’이라고 칭하기에 부족함 없지 않은가.

   윤혁의 형이 벌인 일들, 그 사람이 만들어낸 여섯 개의 메이저급 중추, 그것들이 다스리는 범우주적 시스템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운용 질서를 관통하는 강력하고 체계적인 Constitution Set들까지, 이런 것들을 하나님을 떠나 인위적으로 창조해내는 것이야말로 불법의 행로가 아닐까? 근심이 되었다.

   ‘스스로 만물의 법칙이자 질서이자 세계인 존재로 화하게다고?’

   게다가 카이젤은 단순히 인류 사회를 이끄는 도덕 윤리나 법만 바꾸는 데서만 멈추고 있지 않다. 그는 환상계, 기계들의 사회, 상위 차원과 하위 차원의 물리법칙, 심지어 정보계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자신의 룰을 강제 적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계의 법칙인 도덕법을 넘어 물질계의 물리법칙까지 강탈하여 하나님 대신 자신의 소유로 삼겠다고 나서는 격이다. 인간의 힘으로 신을 몰아내고 우주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도 적나라하지 않은가.

   ‘너무 늦기 전에 다시 돌이키도록 해야 해.’

   가족으로서 몹시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들었다. 나중에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무슨 낯으로 뵙겠는가. 윤혁은 고심 끝에 성경 말씀을 고찰하고 연구하며 수차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전 경험처럼 그분의 지시가 뚜렷하지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는 한참을 매달린 끝에야 세미한 마음의 음성과 말씀의 조명을 통해 응답을 얻었다.

   [이제까지는 내 뜻을 잘 순종하고 따라주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의무감이나 복종하려는 의지만으로 나를 따르는 경지를 뛰어넘기를 원한다. 나는 네가 천국을 향한 순수한 기쁨의 소망, 그리고 나를 향한 애정어린 사랑으로 내 길을 따라오기를 원한다.]

   윤혁은 ‘저는 이미 그렇게 해오지 않았던가요?’라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양심이 그를 찔렀다. 지난날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정말 100% 순수한 자발적인 마음에서만 우러나온 것인지 성찰의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의무감에서부터 나온 순종에 의지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혹시 나를 희생하고 자아를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일했던 걸까?’

   만일 이미 주님께 받은 은혜와 앞으로 누리게 될 장엄한 천국 소망을 굳건히 확신하고 의지했더라면, 굳이 억지로 따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죄와 자아의 본성을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문득 평화를 누릴 기회를 생각보다 많이 놓쳐온 것이 아닌가 후회가 들었다.

   [강성한의 아들, 강윤혁.]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나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가(요 21:15)?]

   베드로에게 던져졌던 그 질문이 동일하게 그에게도 주어졌다.

   너는 가족, 친구, 동역자, 이웃, 그 어떤 이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그분은 단순히 [네가 경외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다. 전자는 너무도 쉽게 답할 수 있음을 아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런 강요도 없이 윤혁에게 순전한 사랑을 부탁하셨다. 순종이란 자기 의지로 억지로 행할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당신이 저를 무한히 사랑하셨음은 잘 압니다.”

   자신감이 없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비해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너무도 왜소하고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꼭 보이고 싶었다. 비록 그것이 너무 작은 나머지 주님의 전능한 눈을 통해서만 관측이 가능할 정도로 미세하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그 심정을 이해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면 나의 그 마음이 지금 온전히 네 가슴속 깊이 와닿느냐?]

   이것도 큰 도전이 되는 물음이었다. 그래, 모든 것을 내주신 위대한 사랑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때때로 그 놀라운 감격을 잊어버리는 부끄러운 모습도 엄연한 사실이다. 마음속에서 다른 어떤 욕망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려는 영적 열심이 지배력을 행사할 때만 비로소 이 질문에 떳떳하게 답할 수 있으리라.

   [네가 의심과 싸우고 있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다오. 나는 언제나 너와 동행하고 교제를 나누기를 기뻐한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나의 모든 것을 주고서 구해냈기 때문이다. 내 약속은 끊어지지 않는다. 물질도, 영도, 선함도, 악함도, 그 무엇도 너를 내게서 끊을 수 없다. 그러니 내 품으로 계속 다가오거라. 나의 마음을 너에게도 주겠다.]

   인간은 그의 창조자의 고백을 말없이 묵묵히 경청했다.

 

 

 

 

 

 

 

 

*

 

 

 

 

 

   이제 루디아는 커버넌트의 힘을 다루는 데 익숙해진 모양인지 윤혁과 따로 접촉하지 않아도 치유 작용을 일으키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아직은 거리나 감정의 영향을 받긴 했다. 가까이 있을 때나 감정적으로 깊은 연민과 애틋함을 품을 때에는 치유의 위력이 더 증폭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접촉에 의존할 생각은 없었다.

   루디아는 이제 굳이 알트루즘이니 커버넌트니 하는 인간이 만든 요소의 중요성을 신경 쓰거나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 세상의 기술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지이리라.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이다. 자연 만물도, 인간의 창조성도, 그 선물들 이전에 그것을 주신 분을 기억할 때 인간은 평강을 누릴 수 있다. 루디아는 이러한 깨달음을 확실하게 체감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는 그 어떤 물리적 도구나 인간적인 노력을 활용하건, 혹은 초자연적인 기적의 혜택을 누리건, 한 사람이 삶을 살아내고 또 연약한 사람이 치유를 얻는 일들에 있어서 모든 구체적인 절차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음을 배웠다.

   체험과 연단을 통해 지혜를 배운 덕분인지 두 사람의 마음의 연합은 이전보다 더욱 순수하고 깊어졌다.

   “항상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도움을 입을 때마다 윤혁은 말버릇처럼 고백했다.

   “난 네가 좋으니까.”

   루디아는 그때마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

   아직 윤혁은 루디아의 고백을 친구로서의 친애 정도로 받아들였다. 둘은 수년 이상 함께 목숨을 걸어온 소중한 동료였다. 또 같은 주님을 믿는 형제자매이기도 했다. 소망과 비전을 공유한 사이이기도 하고. 그래서 아직은 우정이라는 차원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루디아의 마음은 그보다 더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그가 이전보다 깊게 새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점차 자신의 감정 앞에 정직해졌다. 그러나 그런 심경 변화를 완전히 드러내놓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 오해되거나 그릇된 방향으로 오인될 수도 있으니 아직은 걸음걸이를 늦추고 천천히 상대를 이해하고 싶었다.

   “너는 우리 모두를 신실하게 도와주었지.”

   루디아는 얼마 전 유대인들과 위버멘쉬 사이에서 맺어진 계약을 상기시켰다. 그 일이 무사히, 원할히 성사된 데는 윤혁의 공로가 컸다. 그가 형의 양심을 적극적으로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유대 민족은 어영부영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나중에는 큰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느끼는 마음의 무게감이 어쩌면 부채감으로 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며 애써 조급함을 달랬다.

   “그러니 나도 네가 하려는 일이라면 뭐든 도울게.”

   윤혁은 되려 별 일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고마워.”

   “아, 말이 나와서 그런데 말이지.”

   그녀의 궁금증이 다른 쪽으로 쏠렸다.

   “지금쯤 지구 쪽은 어떻게 되었을까?”

   “음, 여행 떠나기 전에 아나스타샤 씨한테 여쭤봤는데, 그분은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동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예측하셨어. 우리가 알던 지구와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른다더라.”

   직접 눈으로 보진 못했어도 일이 썩 긍정적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은 쉽게 짐작되었다. 그런 격변 속에서도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은 무사히 견디고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한 가지는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이스라엘의 보호를 미리 확보해두길 잘했네.”

   “그러게.”

   “역시 아나스타샤 씨의 통찰력은 남다르단 말이지. 책사가 훌륭하니 확실히 든든해. 룻 네게 커버넌트 계약 조항을 알려준 것도 아나스탸샤 씨였었지?”

   “응, 맞아.”

   이렇게 두 사람이 고향 생각을 하며 두런두런 대화하는 그 시각에도 인터갤럭틱 호는 계속해서 지구와의 거리를 벌려나가고 있었다.

 

 

 

 

 

 

 

 

*

 

 

 

 

 

   여러 차례의 진료를 거치다보니 태헌과 윤혁은 치료 중에도 편안히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분위기가 유해졌다. 영락없이 생체 연구의 실험체 신세인지라 창피한 처지이긴 했으나 윤혁은 부끄러움을 의식하지 않고 용감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태헌도 실험을 감시하는 도중에는 오직 윤혁에게만 집중해야 했기에 본의 아니게 윤혁의 말을 경청하며 그의 대화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는 몇 가지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네 심장의 성질이 서서히 변하는 것 같아.”

   “정말요?”

   “그래, 사실 실험 초기부터 확인해봤는데 네 심장은 보통 인간과는 달리 특수한 입자를 생성해 전신으로 순환시키는 성질을 보였지.”

   “그럼 최근 나타난 변화는 또 다른 것이란 말씀인가요?”

   “응, 특수 입자를 생성해내고 소멸시키는 심장의 생리 패턴, 그 패턴 자체가 초기 상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는 중이야. 마치 심장이 자체적으로 진화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야.”

   설명의 맥락을 보건대 알트루즘이 변형을 일으키는 중인 모양이었다. 약간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태헌이 모든 변화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재확인해서 인증해주자 그제야 윤혁도 안도하였다.

   “아무래도 네 생명력이 정말 강한 모양이야. 마치 네 건강한 정신과 의지를 심장이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자기 성질로 취하는 것만 같아.”

   “의사 선생님의 표현이라기에는 서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이네요.”

   “객관적인 분석을 사용하려 해도 이렇게 밖에는 설명이 안 될 듯해. 솔직히 지금 내가 다루는 연구 대상은 현대과학의 지식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영역의 현상이라서 말이지.”

   태헌은 윤혁을 보면서 차차 영성이라는 현상에 관심이 생겼다. 객관적인 데이터로 정형화된 관측 데이터를 보고서야 그는 흥미가 동했다. 이전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들에는 무관심했다. 하지만 이제 강윤혁이라는 인간의 내면에 담긴 순결한 품성과 인품이 궁금해졌다. 그 근원은 무엇일까.

   덕분에 윤혁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걸어온 지난 세월의 길들에 대해 간증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물론 제대로 된 간증을 하려면 신학적인 강론도 동반되어야 했고 아직 그곳까지 나아가기는 무리였다. 그래도 대화가 이렇게 진척된 것은 괄목할 성과였다. 주님과의 동행이 갖는 실재성을 엿보여주기에는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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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회 아벨의 후예 Ch 27. 반셈족주의의 종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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