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33회 아벨의 후예 Ch 28. 멜카드제윈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20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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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인터갤럭틱 호는 수십 개의 행성을 거쳤다. 각 행성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사흘씩. 여행을 거치며 윤혁과 루디아는 다양한 시련을 이겨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점차 성장했다.
윤혁은 역경과 어려움을 사랑으로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아울러 물리적으로 갖가지 다양한 환경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했다. 그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분자생물학적으로 온전해졌으며 외부 병원체나 내부의 변질을 미리 대비하는 강력한 보호 능력을 갖추게 됐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바도 이뤄지고 카이젤의 목표치도 그런대로 채워진 셈이었다.
아울러 루디아는 윤혁을 도울 치유 능력을 계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에게 강력한 정신적 지지대가 되어줄 만큼의 영적인 역량도 획득했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던 중, 인터갤럭틱 호는 Gal-T-7,111,222라는 은하계에 당도했다. 우주선은 그 은하의 외곽에 있는 작은 행성인 Planet-1,556,987에 두 사람을 내려주었다.
Planet-1,556,987은 정글로 뒤덮인 행성으로 이제까지 보아온 황량한 행성들에 비하면 사람에게 호의적인 환경이었다. 너무 호의적이다 못해 지구 고대 생태계에 가까운 환경이 조성된 게 문제라면 였다. 이 행성 위에는 지구에서는 화석으로밖에 보지 못했던 고대 생명체들이 우글거리듯 번창하였다. 당연히 그중에는 공룡도 있었다.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진 풍경에 윤혁과 루디아는 입을 떡 벌렸다.
“쥬, 쥬라기 공원인가?”
“세상에나, 공룡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어!”
별의별 희한한 일을 구경하는 이번 여행이었다. 황홀경에 빠진 채 고대 생명체들을 구경하는 둘에게 보조 인공지능이 개략적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되었던 건가.”
예상은 하긴 했지만 과연 그 생명체들은 이미 멸종해버린 지구의 고대 종(種)들을 유전공학의 힘으로 되살려낸 복원체들이었다.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지만 의외로 화석이라는 것에는 고대 생명체의 유전자 중 많은 부분이 온존되어 있다고 한다. 훼손된 부분이 많아서 활용하기는 어렵다지만 그조차도 최근 인류가 획득한 역사 관측 기술을 이용하면 해결이 가능하다나. 시간축 미세 간섭 및 시공간 카피 기술을 통해 화석 속의 잔여물을 기본틀로 삼아 고대 생물 유전자의 완벽한 염기서열 단위로 초정밀 복구하는 원리라고 한다.
“정말 기발한 기술이 다 있네.”
루디아는 용들에게 시선을 빼앗긴 채 중얼거렸다.
“공룡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는걸.”
윤혁의 감탄에 루디아가 웃으며 대꾸했다.
“흐음, 성경에는 공룡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정말? 어디에 쓰여 있는데?”
“용들 말이야. 욥기서나 이사야서에도 베헤못(욥 40장), 리워야단(욥 41장), 날아다니는 불 뱀(사 14:29) 등이 언급되어 있잖아. 그런 생물들이 아무래도 공룡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내 생각엔 그래.”
“그런가? 솔직히 공룡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진 않았었는데. 용이란 게 비유가 아니었단 말이지.”
공룡뿐 아니라 온갖 거대한 고대 생명체들이 잔뜩 널린 진기한 풍경. 눈으로 직접 보니 공룡 도감 같은 상상도에 묘사된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할까나.
안내원 인공지능은 또 한 가지의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역사 관측 기술을 이용해 측정한 결과, 지금 복원된 생명체들의 원본이 되었던 종들의 서식 연대는 대체로 1만 년 이내라는 사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 종들이 멸종될 때 남은 시신을 분석한 결과 죽음의 원인은 수장(水葬)에 가까움으로 드러났다.
“설마……!”
루디아는 입을 크게 벌리며 놀랐다.
“그렇군, 역시 창세기 대홍수 때 몰살당한 생명체들이었어!”
윤혁도 감탄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소위 그 ‘역사 관측’이라는 신세대 테크놀로지가 몹시 신비롭게 여겨졌다. 윤혁은 인공지능에게 역사 관측의 원리를 물어보았다. 워낙 최첨단이다 보니 하위 인공지능으로서는 그 부분에 과문하였고 따라서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긴 어려웠다.
대신에 인공지능은 더 흥미로운 다른 정보를 알려주었다.
{참고로 역사 관측 기술은 우주와 지구의 모든 영역에 모든 시간대에 걸쳐 적용이 가능하지만, 기이하게도 AD 90년 이전 시간대의 인간 세상의 역사만은 관측하지 못하는 한계점을 갖습니다.}
“음? 정말로?”
{네, 인간 사회와 분리된 영역, 이를테면 은하계 저편이나 지구 중심에 대해서는 AD 90년 이전에도 초정밀 단위의 정확한 정보 관측이 가능합니다만, 기이하게도 물리적인 한계가 없음에도 인간 역사에만은 일종의 ‘베일’이 덮여 있습니다.}
“특이하네. 무슨 원리일까?”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 힘이 가로막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자연계에 대해서는 무제한 관측이 가능한건가?”
{아닙니다. BC 이전으로도 관측은 가능하지만, 자연계 또한 앞서 말씀드린 홍수 침몰에 의한 대멸종으로 추정되는 사건 이전으로는 관측되지 않습니다.}
“허어.”
단순한 과학적인 단서만 갖고는 그 일관성을 짚어낼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생각해볼 단서라면 성경적 힌트 정도? AD 90년이라면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이 마지막 말씀인 계시록을 작성한 연대와 대략 비슷하다. 그리고 홍수 침몰이란 당연히 노아의 때를 의미하는 것일테지.
아무래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지구의 역사, 우주의 역사, 인류의 역사를 각기 다른 종류의 베일 쏙에 싸서 감춰두려고 작정하기라도 한 모양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 역사는 성경의 정경이 완성된 시점 이후로만, 자연의 역사는 노아의 홍수 이후로만 감찰이 허락되는, 짜맞춘 듯한 현상이 벌어질 리가 없잖는가.
의미심장한 이야기에 윤혁과 루디아의 머릿속에는 여러 궁금증이 솟구쳤다.
“하나님의 권능이 인류 역사의 시간축을 붙들고 계신 걸까?”
“아무래도 그럴지도 모르지.”
윤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역사의 저편을 손바닥으로 가려 에워싼다면, 그 존재는 비인격적인 힘이라기보다는 인격적인 존재일테고, 그런 강력한 능을 지닌 이는 하나뿐이겠지. 하지만 그분이 자신의 기이한 행적들을 행하시는 방식을 인간인 그들이 어찌 다 이해하겠는가.
“그나저나 이곳 생태계도 오롯이 지구 출신 생명체로만 구성되어있네?”
루디아는 의외로 ‘이질적인’ 생물 군집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인공생명체가 자연 생태계에 섞여 들어가면 균형이 깨질 테니까.”
“하긴. 맞아, 그러고보니 네가 이야기 해줬었지. 흠, 어디였더라?”
“테라 아일랜드라고 불렸던 하늘도시?”
“맞아. 기억났어.”
루디아는 옛 기억을 더듬어갔다.
“전에 간 그곳에서는 인위적인 자연계가 구축되어 있었지. 인간 문명이나 온건한 지구 계열 생태계와는 아예 공존할 수 없었던 위협적인 환경이었어.”
“그래, 완벽하게 외부와 더불어 조화 및 공생을 이루는 생태계는 오직 창조주께서만 지으실 수 있지. 인간이 만들어낸 괴이체들은 철저한 통제 없이는 그저 불균형만 생산하지. 그런 건 축복받은 피조물이 아닌, 그저 기괴한 노예에 불과해.”
“그렇게 생각해보니 인간이 만든 이종족들이 너무 불쌍한걸.”
루디아의 씁쓸한 평가에 윤혁도 동감하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지금부터라도 바로잡도록 노력해야지. 어쩌겠어.”
하루 동안 두 사람은 행성 전방을 순회하였다.
그곳은 놀라우리만큼 자연환경이 잘 조성된 곳이었다. 이미 몇 년 전에 하늘도시를 여럿 방문해봤기에 인류의 인공 환경 조성 기술이 얼마나 발달되었는가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전 지식을 감안하고도 놀라웠다. 외부 보호 장치에 의해 환경을 유지하는 하늘도시와 달리, 테라포밍된 행성의 환경은 별도의 유지 장치 없이도 자연적 자정 작용만으로 균형이 유지되었다.
사실 하늘도시 유지에 필요한 자원이라고 해도 어차피 무한에 가까우리만큼 자원 공급이 넉넉한데 뭔 차이가 있으랴. 효용성으로는 어차피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으리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 애초에 자원 효율성이란 경제적으로 빠듯할 때에나 의미 있는 개념이니까.
다만 효율성 밖에도 주목할 점이 있었다. 테라포밍된 외계행성 쪽은 하늘도시와는 달리 신의 창조 질서의 원형에 좀 더 근접하게 모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성과였다.
이곳 행성 주민들은 인류연합 측에서 제공하는 각종 첨단 기술 문명의 도움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그들은 그 기술력으로 행성 생태계의 거대 생명체를 다스렸다. 공룡처럼 거대한 동물들이 마치 정신 지배라도 당하는 것마냥 온순하게 인간에게 복종하는 광경을 보니 참으로 경이로웠다.
‘혹시 저 생명체들도 인공생명체들처럼 인비저블 마인드의 지배를 받는 건가?’
윤혁의 추측은 충분히 일리 있는 추론이었다. 만약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공생명체들은 자연적인 창조물이 아니다. 하지만 저 복원체들은 엄연히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계의 일원. 인간은 동물에 대한 다스림도 문명의 힘을 빌려 억지로 재탈환한 셈이다.
‘에덴동산에서 원죄로 인해 인간이 잃어버린 요소는 여러 가지이지만 영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두 가지를 꼽자면 육체적 불사와 동식물에 대한 통솔권이다.’
그중 벌써 육체적 불사는 이터널바이탈을 통해 억지로 재구현해냈다. 그것도 모자라 잃어버린 동물들에 대한 지배권도 인비저블 마인드로 구현해내었다.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고 걱정되는 일이기도 했다. 죄에 대한 처벌로써 상실한 것들을 인간이 자력으로 억지로 되찾으려 시도한다면? 과연 그 행태는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윤혁의 상상력과 사고력은 좀 더 다양한 곳으로 뻗었다.
‘그러고 보니 동물에게도 혼이 존재한다고 했었지.’
그는 형 곁에서 어깨 너머로 전해들은 지식을 떠올렸다. 사실 성경에서는 어렴풋하게만 제시된 개념이지만, 최근 인류의 지식은 실제적으로 이 내용들을 증명해내기 이르렀다. 이를테면 자연계의 피조물들 중 인간 외의 존재에게도 혼이라는 요소가 내포되었다는 점.
천체혼, 지구혼, 동물혼, 인간혼, 이렇게 총 네 종류의 혼(魂)이 존재한다고 한다. 식물이나 박테리아 같은 원시적 생명체들에게는 별도의 혼이 없다. 이들은 지구혼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반면, 동물에게는 객체마다 별도의 혼이 따로 있다고 한다. 식물과 동물이 왜 그렇게 다른지는 모른다. 식물은 셋째 날의 창조에 속한 질서이고, 동물은 다섯째와 여섯째 날의 질서에 속한 피조물이니 그런 특성이 반영된 것일까?
그리고 동물혼이나 사람의 혼은 오로지 지구혼과만 깊은 상호작용을 한다고 들었다. 천체들도 각자 혼을 지녔으나 그런 천체혼은 인간혼과 동물혼과 공명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것이 우주 인류에게도 귀소 본능이 발생하는 원인이라고 했다.
물론 지구혼의 영향력도 지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주 전역에 어느 정도는 확산되어 편재되었기에 거리적으로 지구에서 동떨어진 곳에 서식하는 인간이라고 해서 생존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 불이익이 따르는 것도 아니며 그저 어렴풋한 불만족감이 본능적으로 생기는 불편 정도만 든다나.
이런 배경지식이 있기에 눈앞의 광경은 이질적이었다.
‘지구와 멀리 떨어진 이런 행성에서 이렇게까지 균형 잡힌 생태계가 구성되다니. 게다가 동물들의 먹이사슬도 대단히 안정적이다.’
사실 물리적인 환경만 잘 조성되면 식물이나 동물이 지구 밖에서 못 자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전에 순회한 하늘도시들에서도 경작지나 논밭이나 숲이라면 숱하게 보아왔다. 그럼에도 어떤 행성의 생물 생태계가 지구 수준의 높은 자정 작용과 균형력을 유지하려면 에너지의 지속적 투입이 요구된다. 그냥 내버려 두면 생태계의 무질서도가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 역시 열역학 제2 법칙이라 불리는 무질서의 법칙의 지배 아래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물리 법칙 이외에도 지구혼이라는 변수가 있다. 지구혼의 영향 덕에 지구는 생태계의 자체 복원 경향성이 여타 우주 좌표들보다 훨씬 강력하다. 설령 인위적으로 물리적 환경을 동일하게 맞춰두어도 외계 행성은 여기에 비할 수는 없다. 이것이 열역학과는 별개로 지구가 소유한 경쟁력이며 이는 이미 초인들의 연구로 증명된 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Planet-1,556,987은 그 상식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거의 지구에 근접할 정도로 균형력과 자정 능력이 뛰어난 듯 보였다. 지난번에 윤혁이 방문한 행성들과는 달리 별도의 지속성 테라포밍 장치가 있지도 않은데도.
‘혹시 이 행성의 행성혼 속에는 내가 모르는 변수가 포함되어 있는 건가?’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윤혁은 조용히 의문을 곱씹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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