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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34회 아벨의 후예 Ch 28. 멜카드제윈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22 | 회차평점 0 0

 

 

 

 

 

 

 

*

 

 

 

 

 

 

   그날 밤, 윤혁은 꿈에서 거대 파충류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고대 생물들의 포효가 온갖 음색을 아우르며 뒤섞였다. 구슬픈 소리, 무언가에 억눌린 듯한 억압된 소리, 먹이를 찾아 헤매는 굶주림의 울음소리. 일일이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소리들이 뇌리에 스며들었다.

   어째서 이렇게 예민해진 것인가. 신체 변화 이후 감지 능력 자체도 대폭 성장했는지 윤혁은 하나하나의 음성을 구분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귀가 예민해진 만큼 시각도 첨예해졌다. 평생 알지도, 구분하지 못했던 저주파와 고주파의 파동이 하나씩 선명하게 인지되었다. 마치 첨단 컴퓨터 수천 개와 관측 장비들이 몸과 융합한 것 같은 체험이었다.

   꿈속에서 파충류들의 포효에 시달리던 윤혁은 번쩍 눈을 떴다. 그는 곧 현실에서도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았다. 자신의 감각 능력이 비약적으로, 그리고 비가역적으로 향상되었다.

   ‘쳇.’

   곧 사방에서 정보들의 향연이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뭇잎들이 제각기 춤추며 흔들리는 패턴, 저 멀리 참새가 날갯짓하는 소리, 바람의 향방, 곤충의 페로몬 향기까지, 주변의 데이터들이 휘몰아치며 윤혁의 뇌리를 산만케 했다.

   참다 못해 고통스러워서 속으로 ‘그만!’ 이라고 외치자 시청각 정보들이 이내 잦아들었다. 속이 진정되자 곧 정보의 폭풍은 사라지고 본래 그가 느끼던 주파수의 감각들만 남았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잠깐의 방심이 틈 타자 또다시 감각들의 폭풍이 몰려왔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윤혁은 새로워진 몸에 익숙해졌다. 그의 본능과 육체는 꼭 필요한 정보만 남기고 나머지를 필터링하는 요령에 능숙해졌다.

   ‘원리를 모르겠군. 몸이 진화하는 것도 아니고. 피코머신의 영향인가?’

   아무래도 피코머신의 기능이란 숙주를 불사신으로 만드는 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감각을 무제한으로 향상시킨다고? 완전 생물이라도 창조할 생각인가. 카이젤의 야망과 지략이라면 그런 도전을 벌여도 이상하지는 않겠지.

   안타깝게도 윤혁에게는 무수한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할만한 인지능력이 없었고 그걸 추구할 의지도 없었다. 그는 잠잠히 감각 능력을 봉인했다. 만약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몇 초만 더 감각의 홍수를 유지했더라면 그는 자신의 분수를 모른 대가로 정신이 붕괴되었으리라.

   ‘형은 평소에도 이런 레벨의 감각 능력을 상시 유지하는 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 전 잠시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제한된 구역에 대한 관측만으로도 이렇게 탈진할 지경이거늘, 수억 개의 은하와 그보다 넓은 상위 차원들을 매일같이 초정밀 단위로 관찰한다면? 그 상태로 보통 인간보다 긴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려나. 아직 미치지 않고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초인 노릇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일까.

   바로 그때 다시금 무언가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꿈에서 들렸던 것과 같은 용의 포효였다. 이번에는 인위적으로 감각을 억누르려고 시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사그라지지 않는 소리에 놀란 윤혁은 황급히 루디아를 깨웠다.

   “어서 일어나. 뭔가 위험한 존재가 다가오고 있어!”

   “으음, 뭐라고?”

   “용……, 잘은 모르겠지만, 용과 비슷한 생명체들이야.”

   “공룡 말이야? 하지만 계측 장비에는 아무것도 안 나타났는걸.”

   루디아는 슈트에 설치된 광역 감지기를 점검해보았다.

   “너는 혹시 저 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

   “무슨 소리?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예상대로 이 감지 현상은 루디아에게는 없고 윤혁에게만 나타난 모양이었다. 아마도 피코머신이나 알트루즘이 그 감지 능력의 근원이리라. 하지만 광역 감지기에도 탐지되지 않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들의 좌표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분명히 이 행성 내에 거하는 생명체라면 탐지되었을 터인데.

   ‘불가시 모드? 아니면 차원 이면에 숨어든 생명체인가?’

   그렇다면 공룡 같은 자연 생명체는 아닐 것이다. 인공생명체나 이종족이려나?

   “일단 자리를 뜨는 게 좋겠어.”

   “알았어, 어서 가자.”

   그렇게 바이크를 타고 이동하던 중, 윤혁의 감각 기관에 다시금 방대한 정보가 흡수되었다. 그는 견디기 힘든 혼잡감을 느낀 나머지 정신이 휘청하였다. 재빨리 루디아가 곁에서 부축하였다. 그가 붙잡고 있던 조종석의 제어권은 자동으로 인공지능에게로 넘어갔다.

   “대체 무슨 일이야?”

   “거대한 용들이 보여.”

   순간, 루디아는 혹시 윤혁이 영(靈)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몇 분 만에 심령 현상이 아님이 드러났다. 이내 인공지능도 저 멀리서 무언가를 관측하고는 신호를 냈다. 윤혁이 보고 있는 것은 영이 아닌 물리적 실체들이었다.

   {행성 10광년 내 거리로 거대 물체들의 접근을 위성이 보고했습니다.}

   {초광역 검색 가동.}

   {위상 공간, 오버랩 필드, 칼라비-야우 차원, 강제 검색.}

   {다수의 거대 생명체들이 준동하고 있습니다.}

   루디아는 인공지능들이 남발하는 전문 용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윤혁은 대강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통상 공간의 아랫면, 복합형 차원계의 수면 아래에서 어떤 물체들이 움직이는 중이다. 이 행성을 향해 괴물들이 돌진해온다.

   {종족 위험도 분류.}

   {난이도 최상: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

   순간 두 사람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다음 순간, 윤혁의 시야가 흐려지더니 차원 저편의 광활한 공간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수십 광년의 거리가 광학적 한계를 넘어 두 사람의 시야에 들어왔다. 빛의 속도는 저 거리를 찰나의 시간만에 가로지르지 못하니, 이 차원은 통상 차원이 아님이 분명했다.

   이내 괴물들의 본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용(龍)!’

   우아하고 위엄 넘치는 웅장한 생명체들이었다. 어느 하나 똑같은 것 없는 개성 넘치는 모양새, 넘쳐흐르는 힘과 카리스마, 별도 집어삼킬 법한 무시무시한 체구까지. 지금껏 윤혁이 상상해온 용의 개념을 초월하는 거대한 유사 용족이 차원 이면의 공간을 수놓았다. 그것들은 뭔가 미끼 냄새를 맡고 이 행성에 다가온 듯했다.

   -혼의 공명?

   -혼의 형질을 바꾸는 변수가 출현했다.

   -강력한 능력이 함께하고 있군.

   윤혁은 용들의 눈, 아니 놈들의 관측 기관이 자신을 향함을 깨달았다. 생리적인 공포감에 몸이 굳었다. 야생 호랑이를 산에서 마주친 것보다 열 배는 더한 긴장감이 들었다. 용들 중 몇몇이 눈에서 섬광을 내뿜었다. 그러자 마법에라도 걸린 듯 바이크가 허공에 멈춰버렸다. 관성조차 없이 자연스레.

   잠시 후, 하늘 위에 떠 있는 달인, Planet-1,556,987의 제5 위성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달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거구의 파충류들이 발톱으로 달을 여의주마냥 쥐었다. 이 충격에 대한 반사 반응으로 행성을 보호하던 중력 상쇄 장치가 투명의 옷을 벗고 형체를 드러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땅꾼 노릇도 참 피곤하네.”

   그때 바이크 바로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뱀들 쫓아내는 것도 고역이다. 요양하러 왔더니 무슨 고생이냐.”

   루디아와 윤혁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두운 밤이어서 그런지 실루엣밖에 안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꽤 체격이 좋은 것을 보아 성인 남성이었다. 그자는 한쪽 손가락을 튕겨 스냅을 일으켰다. 그러자 곧 행성 전체에서 녹색의 결계가 솟구쳤다.

   ‘마술?’

   결계는 그물마냥 무한정 확장되고 분지되더니 대기권을 넘어 위성 궤도까지 휘어 삼켰다. 하늘 끝까지 뻗쳐진 빛의 그물은 공간의 벽을 찢고 차원 너머까지 다가갔다. 그 그물에 걸린 용들은 최면에라도 걸린 듯 얌전해졌다.

   “착하지, 착하지.”

   낯선 남자는 자장가 부르듯 달콤한 중저음으로 읊조렸다. 그러자 정말로 마법에라도 걸린 양, 당장 행성으로 돌진할 기세였던 용들이 얌전해졌다. 그들은 말없이 끔뻑끔뻑 거리더니 하나둘씩 스르르 물러났다. 낯선 남자는 이제 바이크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바이크를 봉쇄하던 보이지 않는 용들의 힘을 해제하더니 망가진 부위를 툭툭 건드렸다. 이내 훼손 부위가 몇 초 만에 복원되었다.

   ‘초능력?’

   윤혁과 루디아를 태운 바이크는 사내와 함께 지면에 안전히 착지했다. 용들이 물러나자 다시 통상 공간이 돌아왔다. 달빛이 나타났고 사내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상의를 걸치지 않은 채 낡은 바지 한 장만 입고 있는, 가벼운 차림의 젊은 남자였다. 옅은 녹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서글서글하고 편안한 느낌의 이목구비를 지닌 훤칠한 미남이었다. 체격은 윤혁을 가볍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 순간, 인터갤럭틱 호를 수호하던 데미안의 아바타는 번쩍 각성했다.

   “멜카드제윈? 대표님께서 강윤혁님을 여기 파견한 게 저자 때문인가?”

   데미안이 인터갤럭틱 호에 황급히 명령을 내리자 작은 셔틀 하나가 행성 지면 쪽으로 고속 방출되었다.

 

   한편 지상에 내려온 윤혁은 코앞에서 자기를 위아래로 빤히 바라보는 녹색 머리 남자 앞에 선 채 난처한 기분으로 머뭇거렸다. 남자는 윤혁을 마치 곤충학자가 개미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세히 쳐다보았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긴장한 루디아가 윤혁 곁에 척 달라붙었다.

   “으음.”

   “누, 누구시죠?”

   “어째 내가 아는 사람이랑 조금 닮았네.” 

   녹색 머리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다친 데는 없구나?”

   “아, 네, 뭐. 그런데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신지요?”

   “나? 아, 여기 행성지기야. 일용직이긴 하지만. 주민들한테는 드래곤 로드니, 뭐니 하는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그냥 땅꾼이라고 불러도 돼. 입에도 착 달라붙고.”

   남자의 이미지는 익살스럽고 허울 없는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는 강아지를 쓰다듬듯 윤혁의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처음 만난 주제에 마치 귀여운 동생을 대하듯 하는 태도였다.

   “조금 전에 달에 나타난 그 용의 정체는 뭔가요?”

   어색함을 깨트리고자 루디아가 화제를 돌려 질문을 던졌다.

   “아, 걔내들? 조금 위험한 녀석들이야. 이래봬도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로 분류되는 종족인데, 무려 행성혼의 형질 변화를 보조해주는 녀석들이지.”

   “행성혼의 형질 변화라고요?”

   윤혁이 몹시 놀라서 묻자 남자가 피식 웃었다.

   “아, 그게 말이지. 설명하면 좀 복잡한데…….”

   그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곳 Planet-1,556,987은 실험체야. 행성혼을 지구혼과 유사한 성질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채택된 실험체지. 내가 그 프로젝트에서 주 관리자 역을 맡게 됐어. 하여간 그 녀석도 참 짖궂다니까. 평생 전원생활만 하고 싶었는데 귀찮은 일을 맡기고 말이야.”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둘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렇게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중, 작은 바이크 한 대가 어디선가 날아왔다. 남자는 탑승자를 보더니 막역한 죽마고우를 만났을 때처럼 반가운 표정을 내비쳤다.

   “겔러트 씨?”

   윤혁과 루디아는 바이크를 탄 겔다를 발견하고는 당황하여 동시에 외쳤다. 겔다는 남자 쪽을 향해 먼저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선생님.”

   “이야, 너 겔다 맞지?”

   둘은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로 보였다.

   “그 몸은……, 아, 여사님 사고 때 휘말려서 그렇게 된 건가?”

   “유감스럽게 됐네요.”

   남자는 겔다에게 가볍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겔다는 윤혁과 루디아 쪽을 돌아보더니 상황을 해명하였다.

   “윤혁 도련님, 루디아 아가씨, 이분은 카이 도련님의 두 살 시절 선생님이세요.”

   바통을 이어받은 녹색 머리 사내는 가볍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였다.

   “안녕, 동생. 내 이름은 멜카드제윈 테일란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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