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44회 아벨의 후예 Ch 31. 인본주의와의 타협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1.14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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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 Reformation: 인본주의와의 타협
뉴스에서는 연일 사교 집단과 부정부패를 저지른 종교 집단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이 대대적으로 해산되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집회를 금지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선량한 교회들도 영향을 전혀 안 받지는 않았지만, 처단당한 존재들은 모두 성경적 세계관을 떠나 배교한 세력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량한 교회는 결코 악을 행치 않고 거짓말이나 선전 선동을 일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성령의 인도가 없는 가짜들은 항상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설령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더라도 그 깊은 내부에는 거짓이 가득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사회 유지를 위해 통일시스템의 블랙리스트에 계수되었다.
최근 개량된 고도의 마인드컨트롤 기술인 마인드 리딩 테크놀로지가 통일시스템 내부에 도입되면서 이제 거짓을 상습적으로 행하는 자들은 심판을 피할 길이 원천 봉쇄되고 말았다. 재현과 지현과 찬영은 그 통쾌한 모습을 보고 기뻐했으나 리온은 마냥 즐거워하지만은 않았다.
‘지금이야 정의가 집행되지. 허나 훗날 저 위험천만한 시스템의 칼날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한다면?’
섬뜩한 미래에 대한 상상에 리온은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훗날 인류연합이 본격적으로 핍박을 가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칼리드 때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고통이 될 것이 눈에 선했다.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의 일에 기쁨으로 정진해야겠지만, 현실 속에서는 필시 순교보다도 더 처절한 고난을 겪게 되리라.
‘목만 베이면 다행이지. 정작 염려해야 할 건 실험체로 이용당하는 상황…….’
지금의 세상은 복제 인격 제조 기술, 신체 융합, 정신 조작 및 뇌 조작, 클론 제작 등 온갖 정신 나간 스케일의 테크놀로지들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의 육체와 정신이 저러한 기술들의 희생양이 되어 오염되고 모욕당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미래인가. 혹 그들이 성도들의 뇌리에 강제로 주님을 배반하게끔 명령어를 심어 넣는다면? 성령님의 보호와 인치심이 있으니 구원이 훼손되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일이 시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몹시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라(마 6:34)]
하나님께서는 그런 리온의 걱정들까지 이미 간파하신 것일까.
[정작 오늘 네가 집중해서 상대해야 할 난관은 따로 있느니라.]
그분은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상기시킴으로써 다시금 리온이 고민을 멈추도록 도와주셨다. 그분은 다시금 리온으로 하여금 싸움터를 옮기도록 지시하셨다. 지금까지는 기독교 계열 이단을 대적하여 기도를 해왔다면, 이제는 노선을 바꿔 인본주의와 결탁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맞상대하도록 부르셨다.
인본주의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류의 타락 이후로 인류 역사와 늘 함께했던 철학으로 지구 시대와 우주 시대 모두를 아울러 강건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발흥과 더불어 더욱 강성해진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 이것은 근래 초인들의 등장으로 인하여 새로운 레벨로 도약하였다.
초대째 위버멘쉬 또한 본질상 인본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지혜로 인류를 구원해 내리라는 신념 아래에 움직였다. 그는 지나치게 걸출한 철인으로 실제로 어마어마한 성과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가 죽은 이후 그가 건설한 세계는 무너졌다. 만일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인본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인식했다면 좋았을 터이지만 안타깝게도 인류는 그리 현명하지 못했다.
이후 이어진 혼돈의 시대는 그야말로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리가 실현된 결과였다. 그 시절 일반인은 물론 1세대보다 더 진화했다던 2세대 초인마저도 어리석음의 늪에 깊이 빠졌다. 그들은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했다(삿 21:25).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의 본모습이리라.
현시대 인류의 지배자는 더한 존재였으니, 그는 그야말로 인본주의라는 철학 그 자체가 성육신한 무언가였다. 그렇다고 마냥 그를 비판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비판을 마음껏 던지기에 그는 너무나도 유능했다. 22세기 인류는 그의 지도에 힘입어 모든 기존 한계를 뛰어넘었고 이윽고 정말로 드넓은 우주를 지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토록 찬란한 물질문명의 개화를 이룩했으니 인간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인본주의가 정당성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연히 인류연합의 정치철학 내부에는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짙게 녹아 들었다. 정치만의 문제라면 다행이었겠지만, 진정한 참극은 바로 교회들마저 이 사상에 스며들었다는 점이었다. 적잖은 교회가 인본주의적 철학과 이성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 복음을 희석하였다.
사실 이미 지구 시대 때부터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21세기만 해도 소위 말하는 자유주의(liberal) 신학자들이 선두 주자로 나서서 복음에 물을 타 중탕시키고, 희석시키고,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그리고 이곳 우주 인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극적인 복음 전파가 완료된 지 몇 년이나 지났다고 금세 그때와 같은 역사가 버젓이 반복되었다.
우주 시대의 자유주의 신학은 지구 시대의 그것보다 한 수 더 교묘한 것이었다. 십자가 복음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되 인류만의 유토피아를 위한 수단 정도로 재해석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신성을 부정하거나 인정하더라도 의미를 수축시켰다.
나아가 그들은 성경의 절대성과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에 일정 부분은 신적 영감이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했으나, 성경이 완전무결한 기록이며 모든 부분에 궁극적인 신적 권위가 담겨있다는 사실은 부정했다. ‘어떻게 인간이 받아쓴 책이 완전할 수 있겠는가’ 혹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책이 충분히 변질될 수 있다’라던가 하는 말들로. 또는 ‘이 길에도 가치가 있지만, 어찌 이것만 절대적이겠는가’라면서 구원의 유일성에 대한 담론을 비판했다. 그들은 ‘말씀을 통해 주님의 계시를 받는다’라는 개념을 극도로 거북해하며 부정했다. 이들에게 성경 말씀은 어디까지나 그저 듣기 좋은 인간적인 교훈이며 유익한 가르침에 불과했다.
일찍이 리온은 말씀을 묵상하며 이런 류의 인간들에 대한 경고를 많이 들었다.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사 6:9~10)]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
간단치는 않겠지만, 인본주의적 신학은 반드시 대적해야 할 암적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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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단과의 전쟁 때와 달리 이번 맞대결은 그리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애초에 인본주의란 사회 전반에 팽배한 풍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인류연합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인본주의 신학 진영인지라 도무지 한 번에 무너뜨리는 게 불가능했다.
리온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 아직은 이들을 무찌를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주님께서도 저 신학이 세상 멸망 때까지 꾸준히 팽배할 것임을 가르쳐 주셨다. 복음을 벗어난 가짜 신학은 장차 한꺼번에 사탄의 세력에 흡수되어 하나가 될 것이다. 계시록 말씀도 그렇게 증언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당장 일이 암울하게 흘러간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리라. 주님께서는 그런 마음을 주어 리온을 격려하셨다. 당장의 적에 맞서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끝까지 견디라(마 24:13). 이것이 그분의 권고였다.
[자유주의나 인본주의도 결국은 이단 종교와 다를 바 없느니라.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사람들이 미신으로 여기느냐 지성적이라고 여기느냐의 차이다만, 나의 시선에서는 그 둘 다 똑같이 가증한 것이니라.]
리온은 페르가몬에서 작성했던 편지를 더욱 확장하였다. 그는 여기에 성경에 대한 개략적인 주석을 더하였다. 바쁜 과정이었다. 낮에는 여행지에서 사역을 이어졌고 밤에는 저술 작업에 힘썼다. 온갖 신학적 잡음이 가득한 시대에 오로지 성령의 메시지만을 순수하게 전하기 위해서 그는 묵상하고 공부한 내용을 최선을 다해 정리했다.
한편 그는 온라인상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다. 토론과 변증을 통해 회의감으로 젖은 지성인들과 일반 교인들을 올바르고 합리적인 신앙 위에 세우도록 노력하였다. 이러한 용감한 도전은 큰 귀감이 되어 각지의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변질된 신학에 맞설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차차 우주 온라인 네트워크상에서도 성경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전하는 학자들이 수없이 출현했다. 온갖 혼란스럽고 불분명한 성경 해석으로 염증을 느끼던 교인들은 이들의 순결한 훈계를 발견하고는 사막 속에서의 목마름 가운데 단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인본주의와 결탁한 신학을 제거하기란 부족했다. 되려 그들은 나날이 번창하고 확장되었다. 그들은 성경을 말씀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적인 해석법을 경멸하고 비웃었다. 많은 이들은 성경 해석을 철저하게 상징적으로만 환원시켰다.
물론 성경에는 역사적이고 서술적인 기록과 더불어 시적, 은유적 표현이 공존한다. 이것을 잘 구분하는 지혜가 중요함은 리온도 인정하는 바였다. 문제는 인본주의 신학자들이 신적 권위를 부정하기 위해 이 논리를 남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진지하게 믿지 않았고 일개 문학을 보듯 이해했다. 다수의 교인이 이런 해석법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애초에 영혼의 구원보다는 현세적 복에 마음을 뺏긴 이들이기에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나 사모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리온은 조금씩 지쳐갔다. 비록 우주 곳곳의 Upol들마다 같은 뜻을 가진 동지들이 영적 싸움에 정진하고 있다지만, 그런 사실을 앎에도 홀로 내버려진 듯한 착각이 그를 괴롭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자주 들었다. 임무에는 변함없이 충실히 임했지만, 그의 능력적 한계는 분명히 느껴졌다.
더욱이 요행을 바라기도 어려웠다. 하나님께서는 지난번과 같은 눈에 띄는 극명한 변화를 당장 보여주실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한 영혼, 한 영혼씩,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가.’
의미 없는 싸움은 아니리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그가 적의 바리케이드에 묶여 있는 이 순간에도 인본주의 신학자들은 갖가지 세속적 철학, 거짓 종교, 유물론적 사상을 은근슬쩍 끌어들여 종교적 간음을 범하고 있었다. 불가피한 배교의 물결을 바라봐야 하는 심정은 답답했다.
“괜찮으세요?”
힘이 빠진 채 거리를 걷는 리온의 어깨를 익숙한 손길이 붙잡아주었다.
“재현 씨?”
“요새 너무 무리하셨어요. 쉬면서 하세요.”
“할 일이 가득한데 어찌 저 혼자서만 편하게 지내겠어요.”
“세상에 목사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훌륭한 일꾼도 있는걸요.”
재현의 상냥하고 다정한 표정을 보며 위로하는 말을 들으니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저 사람은 한결같다. 언제나 변함없이 든든한 존재감이다. 함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을 상기시켜준다.
문득 자신이 처음 재현의 동역을 거절하려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구태여 주님께서 그를 부추겨 사역에 참여하도록 이끄신 이유가 이런 면 때문일까.
“힘들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그래도 나이로는 제가 더 어른이잖아요.”
“하긴 그렇네요.”
종종 잊게 된다. 한참 연상이라는 사실을. 워낙 아이처럼 간사함 한 점 없는 순수한 사람인지라.
재현은 기력이 떨어진 리온을 옆에서 어깨로 부축하며 걸었다. 그는 동료를 숙소 안까지 친절히 모셔다주었다. 마치 자기 자식을 돌보는 유모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떠올리게 했다. 거절하고 싶어도 그 친절함에 미안해서인지 차마 떨치지 못했다.
“재현 씨는 왜 여기서 고생하는 길을 택하셨나요?”
“네?”
리온은 저도 모르게 상대의 마음을 시험해보고 말았다.
“아, 그게……, 사실 그렇잖아요. 지구에 남았다면 편히 지내실 수도 있는데. 가족 중 유력 인사도 있으니 지구에서 쫓겨날 염려도 없고요. 여기서 저랑 같이 다녀서는 내내 핍박에, 곤경만 잔뜩 겪잖아요. 이단들의 초능력 공격이 빗발치는 날이면 항상 천재현 씨만 앞서서 고생이고요.”
“음, 그러네요.”
재현은 대수롭지 않아 하며 질문을 곱씹었다.
“그러는 목사님은 왜 고생을 자처하는 길을 선택하셨나요?”
“저는…….”
리온은 머뭇거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적당할까?
“저야 주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이끄시고 명령하셨으니까요. 애초에 핍박이라면 이미 이전부터 많이 겪어서 이골이 났고…….”
“그러면 저라고 그러지 말아야 할 특별한 면제 사유가 있을까요?”
“모든 그리스도인이 꼭 전업 선교사나 목사가 될 필요는 없어요.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만 섬겨도 주님께서 질책하시지는 않을 텐데.”
“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하늘나라 군인으로서 저만 안전지대에 두고 싶지는 않아서요. 남들은 다 힘겹게 분투하는데 혼자서 후방에 물러나서 쉬면 무엇 하겠어요.”
“천재현 씨.”
순간 재현의 태도가 너무도 어른스럽고 훌륭하게 느껴졌다. 자신보다도 더. 어쩌면 저런 훌륭한 사람이야말로 자신 같은 부족한 존재에게는 과분한 은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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