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57회 아벨의 후예 Ch 34. 타야테라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22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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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 Reformation: 타야테라(Thyateira)
어느덧 수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여러 은하단을 거쳐 거처를 옮겨 다니던 리온 일행. 그들은 각 지역의 신학계와 접촉하여 그곳에 횡행하는 인본주의적 신학 진영과 대치를 벌였다. 주님께서는 리온에게 지혜로운 말씀으로 길을 가르쳐주셨다. 그분은 리온을 인도하여 꼭 필요한 곳에서 꼭 필요한 조력자들을, 곧 훌륭한 성품과 겸손한 신앙심을 지닌 인물을 만나도록 하셨다. 또한 그런 자들의 용기와 의지력을 일깨우도록 격려와 위로의 말을 리온의 입에 심으셨다.
동시에 격려만으로는 각성이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때때로 성령께서 직접 강력하게 입술의 권세를 움직이셔서 꾸짖음도 주셨다. 주의 종들의 활동이 시급한 상황이 닥쳐왔는데 연약한 영혼들의 요청을 외면한 채 초야에만 묻혀 지낸다면 하나님께 받을 상급을 잃으리라. 리온은 점잖게 꾸짖었다. 이에 진정으로 하나님께 뜻있던 자들은 영적인 나태에서 번쩍 깨어나 종교 개혁에 몸을 내던졌다.
자유주의와 인본주의 신학 진영과의 치열한 접전은 끝이 보일 기미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인류연합의 사상과 정치력을 뒤쫓던 아부쟁이들이었다. 그러니 정부가 자기 손으로 그 하수인들을 내칠 이유도 없었다. 이들의 제거는 결코 요행으로 이뤄질 계제가 아니었다.
인본주의적 신학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선한 성품에 대해서는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분들의 성품을 자신들의 인생 깊숙이 적용하기는 은근슬쩍 거부하였다.
그들은 심판이라는 단어도, 죄라는 단어도 몹시도 꺼렸다. 그들은 절대적 심판의 위중함을 자꾸만 물을 타 희석하여 완화하려 하였고 성경을 그저 인륜과 도덕의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사람들은 그들을 양심적이고 좋은 종교인이라 칭찬했으나 리온은 그 더러운 실체를 간파하고 있었다. 저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인격적 관계도 없는, 천국과 무관한 자들임을.
[이제 싸움터를 옮기거라. 네가 필요한 자리가 하나 있느니라. 지금껏 네가 꾸준히 저술해온 글들, 네가 각 지역에서 이끌어왔던 사역, 네가 얻은 제자들, 그 모두 다른 이들에게 계승하여 넘기라. 그들이 인본주의와의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명시적으로 두드러진 수확도 거두지 못한 채 고생만 했건만, 주님은 다시 리온더러 전략적 후퇴를 명하셨다. 그가 뿌려놓은 씨를 뒤에 남겨두고 추수를 타인에게 넘기도록 지시하셨다. 마음속에서는 약간 미련도 남았다. 나름 열심히 해왔으니 그래도 결실을 자기 눈으로 조금이라도 보고픈 욕심도 일었다. 하지만 리온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의미 없이 명령하시지 않음을 알았기에 자기 뜻을 내려놓았다.
“하나님, 제가 정말 이곳을 떠나도 괜찮겠습니까?”
[훗날 용감한 나의 종들이 일어나 이 일을 마무리하리라. 그러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인류 숭배와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 수가 적으리라.]
막상 무거운 예언이긴 했으나 그래도 이런 말씀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방식으로 타작마당의 키질이 이뤄지리라고 리온은 믿었다. 심판의 때가 가까워지면 거짓된 신학자들은 모두 적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여기며 숭배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이르면 누가 참된 진리의 편인지 명확해지겠지.
리온은 다시금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앞날의 향방을 여쭈었다.
“주님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응답이 돌아왔다.
[장로의 유전(마 15:2-3)으로 내 완전한 율례를 대체하려는 자들이 있다.]
언뜻 듣기에는 주님께서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을 지목한 듯했다.
“혹시 종교적인 열정이 강한 종교인들을 말씀이십니까?”
어느 정도는 정답에 다가갔다.
[그들은 나의 은혜로써 구원을 모독하여 인간의 알량한 행위를 믿는 자들이다.]
순간 리온의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과거의 유물이 된 로마 교황청의 교회였다. 비록 오래 전에 초인들에 의해 해산당한 탓에 우주 시대에는 남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하늘도시에까지 포교 행위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 배후에 꿈틀거리던 영적 세력은 활동을 멈추지 않은 모양이다. 율법주의적인 행위 구원을 믿는 그 거짓된 사상의 망령은 현재까지도 만연했다.
‘성녀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리온의 옛 사부는 그의 가장 끈질긴 오랜 적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모든 종교와 사상은 하나로 통한다는 통합주의를 외치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의와 선행을 대단히 강조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사실 속세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녀는 의인으로 분류될 만했다. 누가 그녀처럼 선행으로 자신을 뽐내겠는가. 티아라는 무수한 선행과 봉사와 구제를 행하여 자신의 공적을 쌓았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의로운 공적의 외적인 분량만 놓고 보면 감히 그녀 앞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리라. 그녀가 복음주의 기독교계 진영을 위선자로 취급하며 마음껏 농락하는 데는 이런 뒷배도 있었다.
‘이상하군. 개방 이후로는 사부가 우주 쪽에서 너무 조용하다.’
그러고 보니 왜 그녀는 전면에서 활동하지 않는 것일까? 그야말로 최고의 무대가 그녀를 위해 마련되었건만. 어쩌면 강재혁 대표에게서 모종의 협박이나 제약의 명령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온은 아주 순진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여러 우주 지역을 활보하면서 동행자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 덕에 그는 그녀 자체는 아닐지라도 그녀의 사상을 잇는 망령은 여전히 Upol 곳곳에 널리 팽배해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이미 새로운 형태의 교황청들이 우후죽순 우주 각지에서 출현한 지 오래였다.
그것들은 과거의 로마 교황청과는 다르다. 그만큼 다양성에 있어서 우월하다. 무려 1조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오늘날이다. 그 세계 하나하나가 과거의 지구보다 훨씬 더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곳에서 출현한 교황의 수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았다.
‘주님께서는 내가 교황청들과 싸우기를 원하시는 걸까?’
17세기의 마르틴 루터는 기껏해야 유럽 지역 하나 다스리던 교황청 하나와 맞서는 데 평생 노고를 바쳐야만 했었다. 하물며 지금은 압도적인 교구를 다스리는 교황들이 억 단위 이상의 수효로 출현한 때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아마 주님이 주신 임무란 그 교황청들 모두와 일일이 맞서 싸우라는 의미는 아닐 듯 하였다. 리온은 새로이 받은 임무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묵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자유주의 진영과의 투쟁을 마무리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기존 임무는 타인에게 인수인계하면서 동시에 교황청들의 사상에 관해 조사작업에 착수했다.
*
내내 지쳐있던 목사님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동료들은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현은 부담감과 고민을 계속 안고 있었다. 일단 친동생에게 얼마 전 들은 계약 제안이 자꾸만 마음에 밟혔다. 위버멘쉬, 그 강력한 초인들의 왕이 내민 계약을 덥석 잡아도 되는 걸까.
‘사실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니까.’
강윤혁군이나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도 그 사람과 계약을 맺긴 했다. 그렇다면 수현이 언급한 문제의 ‘특수 계약’이란 것도 그 자체로 악한 속성을 띤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중립적인 실체이리라. 심히 발전된 과학 기술의 연장선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계약맺어야 할 상대의 위치와 존재감이 마음에 걸렸다. 강윤혁에게는 가족이고 유대인들에게는 은혜를 빚진 채무자이다 보니 그들에게는 쉬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카이젤. 하지만 이런 조건은 재현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에게 카이젤은 인류를 이끄는 최강의 독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대로 냉큼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특수 속성을 이양한다면? 자신이야 상관 없지만 그 특성과 왕의 잠재력이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면? 훗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않겠는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수현이, 아무래도 뭔가를 숨기는 것만 같아.’
아무래도 동생과 수십 년간 함께 자라온 형제이기에 그 정도는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초인이고 천재라고는 하지만, 가족은 교묘한 거짓말도 느낄 수 있다. 만약 수현의 무모함으로 그에게 일이 생긴다면 자신은 그 무게감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무슨 고민 있으세요, 형?”
지현이 뭔가를 눈치챘는지 재현의 낯을 살피며 물었다.
“아, 아니. 별일 아니야.”
“별일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사람의 심리를 민감히 간파하는 지현인지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지현도 못 본 척 하고는 싶었지만, 재현이 내내 고심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걸려서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동료끼리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하지만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제 떠납시다.”
본격적으로 리온은 임무 내용의 전환을 보고했다. 그가 받은 기도 응답에 포함된 내용은 아직 어느 위치로 이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시뿐이었다. 구체적으로 교황청들을 상대로 어떻게 대적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저 [때가 차면 보게 되리라] 라는 짧은 가르침만 돌아왔다. 막막함과 걱정을 뒤로하고 일행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
그렇게 지구 교회 사역팀은 Upol-23,091에 당도했다.
그들은 먼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Upol의 23번째 구각 외면으로 향한 뒤 그곳의 중심 도시인 타야테라 시(市)로 이동했다. 일단 하나님의 인도가 드러난 부분은 여기까지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다. 일단 일행은 숙소를 잡고 기도와 성경 묵상에 힘썼다. 아울러 자료 조사 및 저술 활동, 장차 일의 전략 수립에도 전념했다. 리온이 주축이 되어 업무를 진행하였고 지현이 곁에서 이를 보조해주었다.
그러던 중, 나흘째에 이르렀다.
돌연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자가 이 판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리온 마흐무드, 천재현, 유지현, 김찬영.}
{‘그분’께서 네 사람을 소환하셨습니다.}
시스템의 메시지가 넷에게 동시 도달했다. 발신원은 인류연합의 중추인 통일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기업 내지는 서브 시스템 쪽에서 온 신호 같았다. 일제히 분위기는 긴장감으로 굳었다.
지금까지는 인류연합이 직접 간섭하지 않았었다. 다행히 리온의 활동이 대외적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항상 일을 크게 벌인 쪽은 지구 교회의 영향으로 각성한 현지의 다른 일꾼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하면 인류연합의 감시를 잘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어떡하죠?”
찬영이 염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별 방법이 있겠습니까? 불복한다면 연행될 텐데요.”
상대는 무려 우주를 통솔하는 세계 단일정부의 한 일원이다. 애초에 도주란 선택지에 없었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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