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56회 아벨의 후예 Ch 33. 세미온 (5)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17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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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파파는 우리의 카리스마타를 흡수한 이후로 거듭 분석하여 활용법을 정립하였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족쇄의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단다.”
“그것이 지금의 잘 정립된 표식 체계…….”
“물론 처음부터 지금처럼 완벽하지는 않았지. 서서히 시간을 들여가며 업그레이드하여 나온 게 지금의 결과물이란다. 그래도 표식의 초기 개발단계 때는 우리의 고유 능력이 상당한 이바지를 하였지.”
과연 세미온과 동료들이 공유한 그 고유 재능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열쇠였다. 과연 개량된 표식은 효력을 증명해보였고 이후의 우주 인류 세대 가운데서는 반역이나 통제 불능 현상이 일절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면 일부 우주 인류는 카이젤의 제어를 벗어나 드넓은 우주로 흩어질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첫 단추를 능숙하게 채운 덕에 미래의 방향성은 독재자의 완벽한 승리로 확정되었다. 그 결과, 1조 개의 하늘도시와 수억 개 은하의 외계행성들이 인류의 터전으로 건설되는 동안 인류연합의 통제에서 자유를 얻은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헬리웃이라는 그 초인은 말이다.”
세미온의 말이 귀의 흥미를 잡아 당겼다.
“우리가 우주 인류로부터 흡수한 자아와 초자아와 이드의 흔적, 그 축적된 액기스의 일부를 주입함으로써 각성시킨 샘플 중 하나였지.”
언젠가 헬리웃 본인이 자신이 특이 케이스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내막이 있었던 건가?’
“나는 어떻게 하면 우주 인류의 초인 각성을 안정적으로 이뤄낼지 그 수확 방법을 연구했다.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거쳤지. 말하자면 놈은 그 과정에서 나온 우리의 실패작 중 하나였단다. 우리에게서 나온 양분을 트리거 삼아 각성한 미완성작이지. 어찌어찌 살아남긴 했다만.”
결과적으로 헬리웃 같은 실패작 각성체들은 처치가 곤란한 애물단지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위적 각성 과정에서 세미온 일행과 불가피하게 접촉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는 보안 상 베일 뒤의 존재로 남아야 할 그들 셋에게는 곤란한 문제였다.
자기들의 실패작에 대한 뒤처리 겸 주입해준 액기스도 회수하기 위해 세미온 일행은 파파에게 수차례 이상 실패작들을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카이젤은 아무리 실패작이라 할지라도 이미 각성한 초인에 대한 소유권은 넘겨주지 않았다. 그래서 회수는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로 멈췄고 미해결 과제로 남았다.
얼마 전에 넘겨 받은 헬리웃을 제외하면.
긴 이야기가 정리되자 루디아와 윤혁은 충격으로 얼빠진 상태가 되었다.
“뭐, 파파께서도 이런 놈은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하셔서 그런지 내게 순순히 넘겨주신 모양이구나. 때마침 너희 둘을 좀 잘 봐주라고 뇌물 겸 보내셨겠지.”
세미온은 바닥에 기절해있는 헬리웃의 육체를 경멸하듯 즈려밟으며 중얼거렸다.
“조금 놀랐겠구나, 얘들아.”
긴장한 윤혁은 마른침을 목으로 넘겼다.
“너희가 그토록 미워했던 무한 통제 시스템이 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내게 화날 만도 하지. 이해한단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필요악이었음을 이해해다오.”
윤혁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저 여인이 형을 부추겨 전 우주 인류의 노예화에 앞장섰다는 말이 아닌가. 자신들과 같은 뿌리를 지닌 동포들의 후예를 상대로 말이다. 현재 통용되는 보편 표식도 저자의 입김이 닿은 작품이다. 자칫 더 발전하면 짐승의 표의 토대가 될지도 모르는 그 위험한 물건을!
‘게다가 족쇄를 더듬어서 관리자를 찾는다고?’
몹시 불쾌했다. 인간은 원죄와 양심을 통해 어둠 속에서 물건을 더듬어 찾듯이 창조주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부터 주께서 그렇게 의도하신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저자들이 카이젤을 발견하고 교접한 과정은 바로 이런 계시의 원리를 악의적으로 모방한 것처럼 보여 몹시 꺼림칙했다.
‘말하자면 저들에게 있어서 신이란 바로 형인 셈이겠군.’
즉 세미온은 이제껏 카이젤을 우주 인류 위에 신처럼 군림하도록 유도한 셈이다. 그들은 우상의 권위를 강화한 샤먼들이다. 우주 인류의 미래를 영적으로 탁하고 암울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부추긴 주범이 지금 윤혁과 루디아의 눈앞에 있었다. 차분한 표정으로 감정을 억제하였으나 속에서는 분노가 끓었다.
“우리는 파파와 함께 상의해서 그분의 우주 인류 프로젝트를 총 4단계로 나누어 구상했지. 첫 단계는 하늘도시 프로젝트, 두 번째 단계는 외계행성 프로젝트였지.”
세미온은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까 네게 분신들의 종류의 그 원리에 대해서 알려주었지.”
“그렇습니다.”
“지구혼도 말이다, 일종의 분신을 생성할 수 있단다. 인간만 분신을 갖는 게 아니야. 아바타에 비유되는 것이 하늘도시, 클론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외계행성이란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일단 잠잠히 들어보았다.
“파파는 지금도 나름대로 열심히 지구혼의 보편화를 위해 노력 중이시란다. 하늘도시가 지구혼의 속성을 공명을 통해 공유 받는 효율을 높이도록, 외계행성의 경우 최대한 지구혼과 같은 속성으로 영구적 변화를 유발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지. 아마 그 멜카드제윈이라는 초인에게서도 들었을 테지.”
윤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과정은 더 진화된 종족으로 거듭날 인류를 위해 터를 닦는 작업이란다. 인류는 곧 신인류로 승격될 예정이지.”
우주 인류 1단계 프로젝트를 통해 인구를 대량 증식시키고 우주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과 신체적, 정신적 잠재력을 극대화한다. 아울러 이들을 통제할 표식의 효력도 확실하게 정립한다.
그리고 2단계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전 우주 인류 구성원의 완벽한 환경 적응 능력과 불사 능력을 획득한다. 그리고 전자아 훈련을 보편화 하여 일반인 또한 초인에 버금가는 경지로 안정적으로 육성시킨다. 나아가 인간이 이종족과 인외의 존재들을 통제할 품격과 능력을 갖추도록 종족적 차원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우리의 계획 속에는 이런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있지. 그 하나하나에 우리의 입김과 의견이 반영되었단다. 물론 큰 줄기와 구체적인 계획 구현은 파파께서 주축이 되어 주도했지만, 우리도 나름 한몫 거들었지.”
“그, 그런…….”
참담함에 질린 루디아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윤혁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 채 상대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3단계와 4단계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실 작정이죠?”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구나. 많은 부분을 누설해줄 수는 없단다, 얘야. 하지만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니? 네가 몇 달 후에 있을 내기에 참여하겠다면 나도 아주 조금은 네게 궁금증을 풀 힌트를 주마.”
잠시 고민의 시간이 흘렀다. 윤혁은 마지못해 승낙의 표시를 하였다.
“좋습니다.”
세미온은 이에 응답하여 작은 단서를 하나 주었다.
“조만간 파파는 우주를 정복할 예정이란다.”
“이미 한창 정복하시던 중 아니었습니까?”
“고작해야 수억 개 은하를 먹는 것으로 만족할 분은 아니시지. 그분은 가시우주의 경계를 돌파할 거야. 그걸 위한 물건도 이미 다 마련되어 있지. QUASAR 프로젝트란 것도 사실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발판에 불과하단다.”
“너무 거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군요.”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주제 말이다. 지구혼의 분신을 만드는 것.”
“그게 왜?”
“만약에 무제한으로 분신을 양산해내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어떨 것 같으냐. 지구혼 본체의 소모 작용 없이 지구혼과 똑같은 혼을 담은 천체를 무한대로 양산할 수 있다면? 그것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존 천체를 소모하지 않고도.”
“말도 안 돼.”
제아무리 인류의 능력이 발전했어도 그런 허무맹랑한 일이 가능하겠는가. 윤혁은 고개를 내저으며 단칼에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글쎄? 동물에게도 엄연히 혼이 있지. 하지만 그 동물들을 복제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지. 그렇다면 혼의 복제도 이론상 불가능한 일은 아닐테지.”
“지구혼이나 천체혼은 동물의 혼과는 성질이 다르잖습니까.”
동물과 천체는 존재하는 목적과 양태가 다르다. 창조주에 의해 다른 목적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적 명령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넷째 날의 창조물인 하늘의 천체들은 번식과는 무관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생명 공학의 복제 기술도 오로지 동물의 혼에만 적용될 수 있으리라.
윤혁이 이렇게 입 속에서 근질거리는 반박의 말로 고민하고 있을 그때.
“후후, 너는 Quasar-I의 자녀에 대해서는 못 들었구나.”
느닷없는 세미온의 반박에 윤혁은 얼어붙은 채 대꾸를 멈췄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의 고정 관념에 금이 갔다. 잊고 있었다. 형과 레리엔은 Quasar-I은 자기 자신에 대한 복제형 유닛을 무제한 양산 가능한 존재라고 말했었다. 고작 첫 번째 모델도 그러하다면 더 진화하여 천체혼에 대한 지배력까지 얻은 QUASAR-II의 경우는 어떨까. 그 괴물도 자녀를 양산하거나 자가 복제를 하는 게 가능한건가?
그것이 참이라는 가정 하에 참으로 두려운 미래가 아른거렸다.
“게다가 파파는 우리와는 달리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분신’을 만드는 데도 성공했단다. 그런 그가 지구혼에 대해서 성취를 거두지 못할 리가 있겠니.”
세미온이 한 마디를 덧붙여 논거의 쐐기를 박았다.
“완전한 분신이요?”
“그래, 클론 카테고리와 아바타 카테고리로 나뉘는 분신계 기술, 각 카테고리로부터 오로지 장점만을 뽑아내 극대화해 합친 작품이 존재한다. 본체의 체력과 정신력 소모 없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며, 자율적으로 진화하고 사고하되 본체에 철저히 종속된, 마치 꿈과 같은 모델 말이다. 그런 창조를 성공했으니 지구혼이나 항성혼도 양산형 생산이 불가능하리라는 법은 없겠지.”
머릿속에서 섬뜩한 상상도가 전개되었다. 퀘이사 엔진 같은 괴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수가 불어나는 모습, 인류가 항성혼과 행성혼을 마치 동물을 유전자 기술로 복제하듯 대량 양산하는 모습, 그리고 지구혼도 복제되어 마침내 유사(類似) 지구들이 온 우주를 채우는 모습. 저런 창조급의 경지가 한 인간의 성취로 말미암아 실현된 세상이라면? 위버멘쉬는 신처럼 경배받아도 이상치 않다.
‘설마 그런 일이 가능키나 할까.’
애써 불가능하다고 부인해보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현 세상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마냥 불가능하다고 치부하기는 힘들었다. 그 전에 궁금했다. 대체 세미온과 그의 일당, 그리고 카이젤은 무슨 미래를 구상하는 것일까. 인류가 제한 없이 무한정 증식하는 세계? 자원의 제한도 영토의 제한도 없는 세계?
‘정말로 창조주께 대항이라도 할 심산인가?’
돌이 심장 위에 얹힌 듯한 무거운 기분이었다. 만약 형이 자신 옆에 있다면 그를 엄하고 호되게 꾸짖어서라도 자신이 얼마나 광기에 사로잡혀 책임질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그 섬뜩한 금색 눈동자의 심연을 직면했을 때 자신에게 그럴 용기가 발휘될까. 고통스러운 고뇌에 소리 없는 아우성이 목구멍에서 맴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 이제 대화는 끝이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구나.”
무거운 마음에 어두운 표정을 짓는 두 아이를 흥미롭다는 듯 관망하던 세미온은 마침내 맺음말을 던졌다. 그는 눈을 살짝 돌려 시선을 옮겼다. 윤혁과 루디아는 그녀의 눈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연 포탈이 열리더니 인터갤럭틱 호가 정박한 위치로 곧장 연결되는 GTX 통로가 생성되었다.
“내 말동무가 되어준 보답이란다. 최대한 빠른 직통 지름길을 열어주겠다. 자, 그러면 약속대로 다음번에 만나자꾸나. 그때는 내 형제들도 함께 만나지.”
감당할 확신이 없는 버거운 약속에 속박된 윤혁은 차마 대답할 기분이 나지 않았는지 잠잠히 뒤돌아섰다.
“어서 가자, 룻.”
“응.”
둘은 세미온이 마련해준 교통편을 타고 함선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내 지루한 인생을 즐거움으로 들뜨게 해줄 장난감을 찾았구나.”
세미온은 떠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탐욕스레 혀를 날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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