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73회 아벨의 후예 Ch 38. 배우,스토리,테마,세계관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2.06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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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룰에 대한 해설이 이어졌다. 네크로-슈퍼휴먼은 능력을 평가하는 악역 배우이다. 1등 시민은 평가당하는 주연배우이다.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용도로 이용당할 부류가 있었다. 그들의 위치는 애매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실험군에 대비되는 ‘대조군’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편이 나으리라. 이들은 바로 경합에 보조인원으로 참여한 히어로와 크로스솔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와의 물리적 대결을 매개로 하여 RS-월드에 미리 입장했어. 지금쯤 RS-월드를 구성하는 세포가 되었겠지. 그 속에서 무수한 화신체들로 분지되어 다중 존재의 양상을 취하고 있을 거야.”}
1등 시민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구에 당도한 후발주자라면, 휴먼 솔져 출신의 히어로들은 그 이전 세대에 미리 몇 가지 편법을 통해서 지구 시민권을 얻은 존재들이다. 그러다 보니 지시적으로나 능력으로나 지금의 1등 시민은 경쟁력에서 히어로를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둘 다 북파(北派)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으나, 아무래도 후발주자 쪽이 더 질 좋고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으니까.
히어로와 현 지구 시민, 두 부류의 차이점을 들자면 서파와 동파 중 어느 쪽 영향을 더 받았느냐의 여부였다. 1등 시민들은 티아라와 유리스의 사상에 자주 노출되었던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이 Upol에서 출생할 당시에는 하늘도시 전 지역이 복음화된 상태였지만, 이들은 여기에 해당 사항이 적었다. 애초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자아를 부정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초능력을 거절했기에 1등 시민이 되기 위한 후보자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즉 징검다리 권역을 거쳐 지구까지 올라간 이들은 모두 불신자일 수밖에 없었다.
유리스와 그녀가 만들어낸 교황들은 종교와 초능력, 그리고 인간의 초월적 진화라는 세 테마를 하나로 묶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1등 시민이 되려는 우주 인류 개체들의 정신적 지주가 쉽게 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해서 1등 시민이 된 이들도 결과적으로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철저하게 능력과 지혜만 중시하는 인류연합 식의 노선을 따른 자들이 있는가 하면, 성녀와 유리스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인류애와 화합을 중시하는 부류도 있었다.
반면, 휴먼 솔져 출신의 히어로들은 달랐다. 그들은 지구에 정착한 후, 강성한과 접촉함으로써 그의 신앙관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다수의 히어로들은 그의 전도를 듣고도 거절했지만, 일부는 받아들였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했다. 이 분기점에서 크로스솔져와 나머지 히어로가 나뉘게 된 것이다.
이는 일찍이 기록된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비유(마 21:28-31)와도 어느 정도는 유사성이 있었다. 복음이 최대로 융성한 시대의 Upol에서 출발했던 1등 시민들은 정작 올바른 길을 저버리고 이세벨의 길(계2:21)을 기꺼이 택했다. 반면, 미복음화 시절의 하늘도시에서 출발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히어로들은 지구에 도달한 뒤 그 길을 받아들였다.
카이젤은 이런 여러 가지 변수들을 치밀하게 고려한 뒤에, 히어로와 1등 시민을 서로 대조군으로 설정하는 편이 좋겠다고 여겼다.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복잡한 계산이 이루어졌는지는 일일이 묘사하지 못한다. 여하튼 히어로들과 크로스솔져들은 그의 실험을 위한 훌륭한 희생양이 되었다.
*
RS-월드 내부.
이곳의 존재 양태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지구가 속한 통상 차원을 자아낸 근원인, 좀 더 높은 층에 위치한 근원(Source), 그리고 좀 더 높은 층의 현실(reality), 이 두 상위 축 세계가 아자토스의 꿈을 통해서 그의 강력한 지배권 아래에 통제된다. 이 일에서부터 모든 확장 전개가 시작된다.
본래 소스에서는 무수히 많은 홀로그래피들이 생성될 수 있다. 지구가 속한 차원도 말하자면 홀로그래피인데, 자신의 부모 격의 소스에서 나온 여러 형제 중 고작 하나에 불과하다. 평상시에 나머지 형제 홀로그래피들은 드러나지 않고 봉인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부모 격 소스에 카이젤의 의식이 닿으면서 격변이 일어났으니 소스에서 나온 모든 홀로그래피들이 동시 활성화된 현상이었다.
각 홀로그래피는 서로 상이한 물리 법칙과 만물 구성 원리로 운영된다. 그것들을 한꺼번에 움직였으니 마법 같은 대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각각의 형제 홀로그래피들에는 이번 게임의 주연배우들이 주입되는 데 정확히는 그 주연배우들에서 파생되어 생성된 화신들이 하나씩 삽입된다.
한편, 리얼리티에서도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이 생성된다. 인간이 접하는 현실은 그중 지극히 작은 하나일 뿐이다. 각각의 리얼리티는 자기에게 부속된 여러 시뮬레이션들을 다스리되 ‘스토리’, ‘세계관’, ‘테마’라는 이름의 변수를 매개로 제어한다. 또한 때로는 여러 개의 평행한 리얼리티들이 마치 남녀가 결혼하듯이 화합을 하여 하위 시뮬레이션들을 생성하는 일도 벌어진다.
평상시에는 리얼리티-시뮬레이션 축 가운데 인간이 활동하는 일련의 높이 좌표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 곧 상위계와 하위계 모두는 비활성화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에 RS-월드가 전개되면서 잠겨있던 영역의 잠금 해제가 이뤄졌다. 소위 말하는 ‘평행 우주’의 개념이 실체화되는 셈이다.
이렇듯 본질상 RS-월드는 높은 세계 밑에 하위 세계가 존재하는 직렬연결과 병렬연결의 무한 연쇄, 곧 하나의 세계에서 무수한 세계가 분지되는 멀티버스적인 속성을 띠고 있었다.
평행한 여러 세계들은 저마다 물리적 실존 양식을 다양하게 띠고 있었다. 이는 홀로그래피가 소스에서 생성될 때는 관여되는 방정식이 있는데, 이 방정식은 무수한 변칙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체로 된 몸체가 존재하는 세계관이 있는가 하면, 기체 상태, 심지어는 정보 상태로 생명체들이 실존하는 세계관도 존재했다.
주연배우들은 이런 현상 덕에 온갖 종류의 몸을 동시에 입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각 세계마다 최소한 하나 이상의 화신을 두었고 그 모두는 각 세계에 특화된 존재 양태를 머금었다. 때로는 분신술처럼 한 세계에 여러 화신이 투입되는 경우도 있었다. 각각의 화신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지만, 동시에 엄연히 본체와 더불어 한 존재였기에 여럿이서 통합된 정신 활동을 수행하기도 했다.
때때로 서로 다른 주연배우의 화신이 뒤섞여서 혼합된 화신이 만들어지는 현상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그리고 화신들은 더 나아가 하위계로의 재생산까지 시행했다. 그들도 꿈을 통해서 자신이 속한 위상보다 아래쪽의 세계에 더 하위 단계인 화신을 삽입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더 상위인 화신이 ‘성좌’가 되었고 상대적으로 하위의 화신은 ‘아바타’가 되었다. 무분별하게 화신이 화신을 낳고, 그것이 또다시 화신을 낳는 혼돈의 연쇄가 이어진 것이다.
주연배우의 기억 및 관념 속에 거하던 가상의 존재들도 모두 실체화되었다. 쉽게 말해 한 사람의 상상 속 망상이 현실화된 것이다.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인공생명체나 인공 지능, 심지어 별이나 동물 같은 자연물까지 포함해서. 이것들은 분류상 NPC 크리쳐가 되었다.
RS-월드는 통상의 보고 듣고 만져지는 현실보다 ‘진짜 현실’에 더욱 근접한 계이다. 그러므로 S-unvs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NPC들도 엄연한 실존하는 존재로서 존재성을 입게 되었다. 더 나아가 심지어는 NPC가 스스로 하위 세계에 화신을 형성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대혼돈의 과정이 반복되자 RS-월드가 온갖 주민들로 채워졌다. 원래는 무한히 넓은 나머지 어떻게 채워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 규모였는데 순식간에 북적이게 되었다.
{심도 3,098,234에 도달합니다.}
아자토스(카이젤)가 깊은 수면에 잠길수록 그가 건설한 RS-월드는 축 상의 더 높은 좌표상에 존재하는 리얼리티와 소스를 향해서 상승했다. 그 여파로 RS-월드에 내포된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의 너비 또한 한도 끝도 없이 수직 방향과 수평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심도 100,000,000에 도달합니다.}
꿈의 진행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되었다. 수면 심도가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한 단계 더 높은 근진계가 활성화되었다. 리얼리티 축과 소스 축 방향으로의 확장이 이뤄지자, 그 여파로 벌크 방향으로의 확장도 자연스레 이뤄졌다. 이제 멀티버스 속에 포함된 세계들 중 대부분이 원본 지구를 뛰어넘어 무한 부피의 공간, 더 나아가 11차원 이상의 차원수를 지닌 벌크로 확장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무수한 패러렐 월드와 멀티버스에 색채를 입혀 구축하려면 히어로, 1등 시민, 네크로-슈퍼휴먼, 이들 세 부류의 배우의 역할이 모두 필요했다. 이들은 스토리 속에 포함된 ‘캐릭터’ 역할을 맡은 아바타, 아니면 스토리를 관전하면서 이야기를 조작하는 ‘관찰자’, 이 두 가지 역할을 맡았다. 배우들의 화신은 거하는 세계의 심도에 따라 어떤 때는 캐릭터 입장을 맡았고 때로는 관찰자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RS-월드 내부의 계들을 더 의미 있고 조직적인 내용으로 채우려면 ‘캐릭터’나 ‘관찰자’들 만으로는 부족했다. ‘세계관’이라는 요소를 누군가가 채워 넣어야 했다.
여기서 ‘세계관’이란 해당 세계의 피조물들의 배열 및 작동 패턴, 역사, 자연법칙, 세계의 구성요소와 거주민, 도덕률, 개체들끼리의 상호작용 규칙, 실존과 허상의 경계, 그리고 지식 정보의 총합을 말한다. 그 기반이 되는 모델 자체는 인간계가 속한 원래의 우주이지만, 여기에 다양한 홀로그래피, 다양한 시뮬레이션 세계들의 특이적 속성이 곁들여지면 독창적인 변주곡으로 재탄생한다.
세계관을 구축하는 일은 전적으로 아자토스의 역할이었다. 그는 인간의 궤를 벗어난 방대한 연산을 거쳐 자신이 지은 RS-월드를 온갖 세계관들로 풍성히 채웠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불충분했다. 두 가지 요소가 더 요구된다.
-{“보여주지. 지금 우리가 위치한 곳을.”}
폰들은 경합 후보자들의 인식 체계를 높은 영역으로 견인하였다. 이에 곧 RS-월드의 전체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흡사 하늘을 향해서 솟구치는 투명한 막과 같은 모양이었다. 막은 산처럼 불룩 솟아있었다. 막 아래에는 마치 뇌 신경계처럼 생긴 복잡한 구조체가 촘촘한 그물망 네트워크를 이루며 얽혀 있었다.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를 시각화한 지도였다. 상위 세계에서 하위 세계가 분지되는 구조가 선명히 보였다.
현재 폰들과 이레귤러들은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같은 무언가에 위치해 있었다. 막으로 된 거대한 산의 중심축을 따라 솟구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다. 엄밀히 말해서 모양은 엘리베이터와는 달랐으나, 개념으로는 머릿속에 그렇게 저절로 인지되었다. 아자토스의 수면 심도가 증가할 때마다 엘리베이터는 서서히 높은 영역으로 승천하고 있었다.
막의 면 아래쪽에 위치한 세계는 확장 중인 RS-월드, 그리고 막 위쪽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막으로부터 머리카락처럼 생긴 수많은 다발들이 튀어나와 서로 얽히고설키고 분지되고 융합되는 모양이 보였다. 그것들은 마치 온갖 정보와 개념 덩어리가 형상화된 물건 같았다. 머리카락처럼 생긴 그것들은 무수한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들에 파고들어 휘감거나 간섭하더니 이내 중심축인 엘리베이터로 몰려들어 한 점에 수렴하였다. 다발들이 수렴한 그 응집점에는 840명의 폰들이 위치해있었다.
-{“우리의 역할은 두 가지다. 먼저, 리얼리티-시뮬레이션 축 상에서 형성된 패러렐 월드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생성하는 자, 즉 ‘스토리 제너레이터’ 역이다. 물론 스토리의 주축을 창조하시는 건 킹이시지만, 양념을 곁들이고 다양성과 개성을 부여하는 작업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지.”}
-{“그리고 소스-홀로그래피 축 상에서 형성된 ‘멀티버스(multiverse)’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질서 추출자’, 다른 말로 ‘벌목-건축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몹시 낯선 설명이 거듭 이어졌다. 다만 개념 자체가 해석되어 그대로 뇌리로 주입되었기에 모두들 어렵지 않게 이해하였다.
말하자면 저 폰들은 여러 평행 세계에서 형성된 세계관에 풍부한 이야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꾼’들이다. 동시에 각기 자연법칙 체계가 다른 여러 홀로그래피들에서 고유한 ‘자연 질서’를 추출한 뒤 그것으로 ‘인공 질서’라는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흡사 나무를 베어다가 목제 건물을 짓는 것처럼. 즉 저들은 창조주께서 만들어놓으신 상위 차원이 RS-월드 영역 속으로 흡수될 때, 원 재료를 개조하고 가공하여 ‘인간 문명의 근간’과 ‘지식 체계’를 생성하는 일꾼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들어왔지?”
데이빗이 모두를 대표하여 질문했다.
-{“너희는 우리와 본질적으로 반대 역할에 속해. 우리를 만든 건 북(北)의 지배자, 반면 너희 이레귤러들을 탄생시킨 자는 남(南)쪽 사상의 시초. 우리는 질서와 규율과 통제와 지배를 수호한다. 너희는 혼돈적이며 예측불허한 변수이지.”}
-{“그러므로 우리가 ‘스토리’를 생성하면 너희는 ‘테마’를 생성한다.”}
“테마라고?”
후보자 중 한 명이 반문했다.
-{“해당 세계관을 움직이는 스피릿(spirit), 바로 ‘중심 사상’ 말이다.”}
본래 지어낸 가상의 작품에는 항상 테마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자유를 추구한다든지, 질서를 추구한다든지, 쾌락과 재미를 추구한다든지, 작가의 의지에 따라 테마가 세워진다. 이것은 창작자의 사상과 가치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RS-월드 속에 속한 부속 원소 세계들에도 테마라는 작동 원리는 필요하다.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자토스 본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레귤러들에게 ‘테마 제너레이터’의 역할이 맡겨졌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아직 폰들도 다 알지 못했다.
-{“이제 주연배우들과 우리와 너희의 역할을 설명해주었으니, 본격적으로 열심히 뛰놀 차례다. 말로만 해서는 이해가 안 될 거야. 직접 해봐야 느껴지겠지.”}
다시금 엘리베이터 영역 내부의 ‘법칙’과 ‘존재 양식’이 급변하였다.
“크윽.”
갑작스레 무수한 세계들이 각 후보자의 정신 속에서 동시에 인지되었다. 그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들의 본체는 여전히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으나 여러 정신세계가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마치 같은 정신을 공유하는 무수한 ‘나’들이 각기 다른 공간에 존재한 채 본체의 조종을 받는 듯한 구조였다. 흡사 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세포 자신만의 개별 공간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것은 테마를 만들어내기 위해 제공되는 보조용 정신 공간이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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