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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32회 아벨의 후예 Ch 53. 카이젤과 스테판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7.21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데이빗이 질문하였다.

 

 

“넘버 19와 넘버 103이 보았던 것이 뭔 줄 아세요?”

 

 

“지금 저 공허 너머에 있는 거대한 존재 말이오?”

 

 

“네, 저는 저 너머에 ‘무한한 우주적 공포의 현현’이 보여요. 넘버 19는 모든 인간을 미혹하는 ‘악한 구도자’, 곧 불교에서 간절히 고대하는 ‘마이트레야(彌勒)’의 실체를 보고야 말았죠. 한없이 거대한 손바닥 안에 인간들을 가둬두고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굴레를 씌우고 저항하는 자는 거짓된 자비로 농락하는 마이트레야. 그리고 넘버 103은 ‘신과 악마의 혼연일체’를 보았어요. 지구의 신비주의자들이 숭상하는 존재죠. 우상 숭배자들은 그걸 ‘아브락사스(Abraxas)’로 칭하며 칭송한다더군요.”

 

 

“흠.”

 

 

“당신은 그들은 본 것의 정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마도 내 보기에는 다 같은 하나의 대상에 연결되지 않을까 싶소.”

 

 

여기까지가 생각이 뻗을 수 있는 한계였다. 근진계 특유의 제약적 성질 때문인지 그 존재의 정체를 추리하는 사고 행위는 현재 후보자들 모두에게 금지되어 있었다. 마치 시스템이 두 사람의 정신에 일종의 빗장을 채워 ‘공허 너머의 거대한 존재’의 본질에 사고 체계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의 영역에서는 추리하는 사고 활동이 허락되었다.

 

 

“같은 대상을 여러 시선에서 관측한 것이라고요?”

 

 

“본래 우리도 나 자신을 정의할 때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거울로 삼지 않소? 자기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자는 없소. 누구나 거울이나 사진을 통해 자기 얼굴을 보오. 그리고 때때로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 자신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오.”

 

 

“그렇다면 우리도 각자 다른 거울일까요? 저 미지의 존재를 비추는? 우린 뭘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이번에도 시스템의 간섭으로 인해 사고 처리 과정에 제약이 걸려 더 나아가지 못했다. 데이빗은 그나마 추리할 수 있는 바를 스테판에게 공유하였다.

 

 

“넘버 19가 바라본 건, 아마도 일반적인 세상 사람, 곧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어떤 ‘특정 대상’을 바라본 시선을 반영한 내용입니다. 쉽게 말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편안하고 완벽한 번영의 세상을 이끌어낼 위대한 선각자, 정치적인 메시아, 누구도 정죄하지 않고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도록 허락해 줄 존재, 아마도 그런 망상과 욕망이 총결집되어 만들어진 형상이 아닐까 싶네요.”

 

 

데이빗은 ‘미륵’이야말로 그 욕망들의 결집을 가장 잘 나타낸 단어라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이상향은 자신들의 죄성에 의해 뒤틀린 신기루요 왜곡된 상이다.

 

 

회심하기 전의 넘버 19은 기질적으로 ‘대중’ 중 하나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지금껏 걸어온 행로와 그것을 뒤바꾼 체험이 함께 모인 덕분에 그는 분별력이 생겼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는 겉보기에 아름다운 마이트레야의 형상을 바라봄과 동시에 그 속의 검은 본질까지 함께 감지하는 게 가능했다.

 

 

그는 그 손바닥에서 벗어나 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더 나아가 대중의 그릇된 이상을 깨트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두 명의 신자의 힘으로는 대중의 집단 환상을 깨트릴 수 없었다. 끝내 넘버 19는 부처의 손안의 원숭이처럼 맥없이 쓰러지고야 말았다.

 

 

“반면 넘버 103이 바라본 건 대중이 아닌 소수의 엘리트, 선민의식에 젖은 자들이 상상한 ‘그 대상’입니다. 넘버 103은 본래 군인 출신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우수한 계층이었습니다. 자연스레 그 역시 엘리트들의 가치관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추구하는 상을 동일하게 보게 되었을지도요.”

 

 

“엘리트 계층이라면……, 현재의 ‘초인’들을 말하는 거요?”

 

 

“그들도 그중 일부겠죠. 가장 두드러지진 최상위 계층이랄까요.”

 

 

“초인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소?”

 

 

“위대한 승리자. 인류를 초월적 경지로 각성시킬 선두주자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아브락사스’라는 형태로 형이상학적인 묘사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신과 악마의 융합, 곧 도덕의 굴레를 깨트리고자 하는 초인들의 욕망을 반영한 판타지죠.

 

 

초인들과 차이가 있다면, 넘버 103은 거듭난 덕분인지 아브락사스의 사악한 본질까지 올바르게 감지한 것 같아요. 슬프게도 그는 ‘무한한 알껍데기’의 굴레에 질식당하여 스러지고야 말았습니다.”

 

 

데이빗은 이어서 자신이 직면한 ‘우주적 공포’, 곧 ‘끓어오르는 혼돈’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형상은 ‘인류의 피조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그 대상’의 모습이었다. 기계, 인공지능, 이종족, 인공생명체, 초차원 구조물 등 모든 만들어진 존재는 ‘그 대상’의 독재적이고 억압적이고 무시무시한 본질, 곧 공포와 악마적인 본질을 보고야 말았으리라. 그들은 오로지 무한한 두려움과 억압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리라.

 

 

“어쩌면 속기 쉬운 인간의 마음보다는 그들의 시선이 가장 정확한지도 모르죠.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하긴 데이빗 당신의 예민한 영적 감지 능력을 고려한다면, 당신이 바라본 ‘혼돈 너머의 존재’의 형태, 그리고 인공 피조물들이 바라본 ‘그 대상’의 모습이 가장 원래의 모습에 가까울지도 모르겠구려.”

 

 

스테판이 저 너머에서 감지해 낸 것은 고작 ‘인간’이었다. 수없이 많은 인격들의 복합체도 아닌, 그저 한 명의 인격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고 죄와 선의 문제로 헐떡거리는, 고뇌하는 영혼이었다. 크기와 밀도가 한도 끝도 없이 거대해 보일 뿐, 본질은 스테판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데이빗이 질문했다.

 

 

“제3 필드에서 당신은 어떤 순례길을 걷고 있습니까, 스테판?”

 

 

“순례길이라…….”

 

 

“저는 지금 억압하는 악몽을 보았습니다. 악몽의 연쇄가 무한히 이어져 있었죠. 마치 공포 신화 속의 창조자인 ‘끓어오르는 혼돈’ 아자토스가 꿈을 매개로 피조물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억압하는 장면이 연상되죠. 인류가 만들어낸 인조물들은 이런 꿈속에 갇힌 존재와 다를 바 없는 신세겠죠.”

 

 

“…….”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표식에 묶인 인간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이레귤러들이야 거기서 자유롭다지만, 나머지 우주 인류는 속박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해요. 겉으로만 자유로워 보이지 실상은 노예 상태죠.”

 

 

스테판은 짐짓 한참을 고민하더니 어렵사리 입을 뗐다.

 

 

“나도 이곳에서 당신과 비슷하게 악몽의 순례길을 걷고 있소. 하지만 당신이 묘사한 순례길과는 조금 초점이 다른 데 맞춰진 듯하오. 내가 본 것은 한 개인이 파괴되는 과정이었소. 어떤 인격이 처절히 부서지고 훼손되는, 그야말로 저주의 연쇄였소.”

 

 

그는 그 기억의 잔흔을 어렴풋이 느끼는 와중에 마치 자기 자신이 고통을 겪는 듯 괴로웠다.

 

 

 

 

 

 

 

 

*

 

 

 

 

 

이제 문을 넘어 제3 필드를 떠나갈 차례가 되었다. 기나긴 순례길을 거쳐 와서 그런지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깨달음이 스며들었다. 바로 문을 넘는 방법에 대한 해법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이치가 깨달아졌는지는 이해할 도리가 없었으나 현재로선 그걸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어깨에 짊어진 짐에는 나머지 다섯 명의 소원까지 함께 들어있었다. 어떻게든 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들은 그 ‘깨달음’대로 자신의 본체를 조작하여 문을 넘어서려고 했다. 아직 공허 너머의 저 존재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의 본체를 소각해서 발판으로, 아니 연료로 사용한다면 그 무한의 거리를 단축할 수 있으리라. 성공한다면 근진계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갈 테고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조차 없다.’

 

 

불투명한 미래. 짙은 긴장감과 두려움이 감돌았다. 스테판과 데이빗은 각자 문 넘기를 시도해 보았다. 이내 의식의 급격한 변화가 몰려오며 주변 환경에 대한 인지 정보가 뒤틀렸다. 그러나 둘은 끝내 문을 넘지 못했다. 하마터면 둘이 함께 소멸할 뻔했으나 다행히도 둘은 제3 필드의 공허로 되돌아왔다.

 

 

“방금 느끼셨죠?”

 

 

“그렇소.”

 

 

둘은 벌벌 떨었다. 문을 넘으려다가 실패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더 얻었다. 만약 두 명이 아니라 한 명이 도전했더라면 실패 시 꼼짝없이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지점에 세워진 ‘문’은 오로지 한 명만 살아남을 걸 상정하고 만들어진 시험인 듯했다.

 

 

“소원이라는 것의 원리……, 이제는 조금 알 법도 싶어요.”

 

 

데이빗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서움이 몰려오는 기분을 체감하며 벌벌 떨었다. 그것은 목숨을 잃거나 미래를 잃는 것 따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이 문을 넘을 때 소모되는 대가, 그것은 바로 근진계에서의 ‘본체’였다. 그걸 지불하고 문을 통과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소멸할까. 아니야, 그건 아니다.’

 

 

한 인간이 죄에서 구원을 받아 거듭날 때 그 영혼 내부에서는 ‘자아의 깨어짐’이 이뤄진다. 비유하자면 옛사람을 구성하는 ‘시커먼 혼’과 ‘시체로서의 영’이 파쇄되어 깨어지고 그 틈에 새로이 창조된 ‘맑은 혼’과 ‘살아 숨 쉬는 영’의 연합, 즉 새 사람이 자리하게 된다.

 

 

이렇게 두 본성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영적 성장과 성화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육신을 주인처럼 섬기는 시커먼 색의 타락한 옛 혼은 서서히 닳아 없어진다. 대신에 새로이 소생된 영과 그 지배를 받는 순결한 색의 혼은 자라난다. 그러다 몸을 떠날 때가 되면 온전히 검은 부분을 소멸시킨 채 흰 영혼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마치 번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듯.

 

 

그러나 땅에서 살아가는 도중에는 시커먼 영혼이 끊임없이 주도권을 찾고자 울부짖는다. 조금이라도 그 유혹에 넘어가면 시커먼 영혼이 자유의지를 부둥켜안게 된다. 그때만큼은 지속되던 흰 영혼의 성장이 잠시 지체된다.

 

 

이것은 그들이 이미 알던 신학적 진리를 시각적으로 깨닫게 된 바를 표현한 것이다. 두려운 부분은 여기에 있었다.

 

 

“이 문을 넘어서는 순간, 대상자의 ‘소원’의 주도권은 흰색 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검은 혼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흰색 혼이 쥐고 있던 ‘소원’이 이 문을 통과하는 대가로 인해 소실되고 말 겁니다.”

 

 

“과연, 뭔가가 이상하다 했더니, 그런 원리였던 것이구려.”

 

 

그렇다. 경기에 참여하기 전에는 기껏 열심을 다하여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마 6:33)를 계획하고 그걸 이루기 위한 소원을 품었건만, 이 문을 넘는 순간 아직 내면에 남아 있는 ‘육신의 자아’가 그 소원의 주도권을 빼앗게 된다. 그 끔찍한 사실을 깨닫게 되자 심각한 두려움이 임했다. 애초에 이 자리는 그리스도인의 의지가 승리할 수 없도록 예비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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