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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73회 [2부] 94화. 사상조작병기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07 | 회차평점 0 0

 

 

 

“잠시 후면 우리가 알던 세상은 사라진다.”

 

 

트라하는 악독한 기대감에 충만한 기쁨으로 흥얼거렸다.

 

 

“우리는 이 무덤에 묻혀 이만 지워지겠지. 하지만 그 뒤에 남겨질 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질 다가올 세대는 어떠할까? 그것을 무엇에 비유할까? 그것은 마치 파괴의 잔해 위에서 새로이 싹틀 생명, 곧 재창조에 비견될 수 있을 테지.”

 

 

사악한 그 귀족은 자신 옆에 선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세일린. 나와 네 조상들이 소망했던 세상이 열릴 것이다. 비록 우리 자신은 그 세상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승리를 쟁취하긴 했다.”

 

 

여인은 여전히 감정의 고저 없이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신세계 질서. 이제 굳이 브리튼 제국을 제거할 이유가 없어졌어. 어차피 지구의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이 저 나라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브리튼이라는 이름과 간판은 그대로 남겨두되 실상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재탄생할 큰 기회를 주면 그만이야.”

 

 

저주받은 이날 이후 모든 것이 땅으로 떨어지리라. 아니, 그것을 저주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입장에 따라 해석이 확연히 나뉘리라. 트라하가 보기에는 이것은 프로메테우스의 업적에 비견되는 위업이었다.

 

 

“더는 언약에 의존하지 않는 제국이 탄생한다. 신이 아닌,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만물을 지배하는 브리튼이 탄생하는 것이다. 힐렐의 약속대로 인류는 선악 나무의 열매를 자신 안에 받아들이고 새로운 ‘전시안(全視眼)’을 개안할 것이다. 독재자 히브리인들의 신을 거절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자주적 종족이 되겠지. 무너지고 새로 건설될 브리튼이 그 교두보요 씨앗이 될 것이다.”

 

 

사상조작병기는 그 기능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 정교한 마인드컨트롤이 불가능하고 일시적인 충격파만을 남길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이 충격파로 인해 영구적 후유증이 인류의 뇌리에 새겨지도록 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트라하가 미리 주입한 명령어는 어떤 특정 제국이나 시스템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정신 지배의 세뇌가 아니었다. 단지 선악과의 원리를 그대로 담아내었을 뿐이었다. 신의 지배를 거절하라. 신의 약속을 믿지 말아라. 인간 스스로 왕이 되어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라. 이것이 그가 새긴 전언이었고 이것의 충격은 두고두고 모두에게 깊은 상흔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아마 큰 혼돈이 일겠지.”

 

 

사상조작병기는 마음을 정밀하게 다스려주는 기계가 아니요, 마음속 창조 질서를 회복시켜 주는 마인드 퓨리파이어와도 완전히 다르다. 그것이 남기는 작용은 지극히 큰 혼돈에 기반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기계가 발산한 영향력은 수많은 고통을 남긴다. 아마 오늘 이후로 수많은 사람이 정신병과 트라우마, 분열과 반목, 증오와 혐오에 종노릇 하게 되리라.

 

 

트라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어차피 자신이 그 세상을 살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이념을 성취했다는 만족감으로 그는 충분했다. 인간의 이기심은 상대적으로 덜 심한 단계에서는 자기 자신의 몸을 위한 안위만을 찾는 법이다. 하지만 정말 중증으로 치달은 이기심의 말로는 결국 자기 몸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이념의 충족만을 위해 목숨도 내던지는 자리에 이르는 법이다.

 

 

“그 폐허 위의 세상을 다스리는 주역은 아마도 세일린, 그대의 자녀들이 되겠지.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형이라는 무거운 우상의 굴레에 종노릇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 스스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왕이 되어 브리튼을 강력한 열 개의 뿔의 제국으로 재편하게 되겠지.”

 

 

사실 트라하는 자신들 편에 속하는 가문들의 혈통적인 승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대대손손 자신들의 후손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뭣이 그리 중하겠는가. 설령 원수인 브라이틀란트 가문의 후손들이 왕이 된다고 해도 뭣이 문제이랴. 그들이 자신의 사상과 이념이 원하는 방향대로 완전히 뒤집힌 세상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면, 그 또한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리라.

 

 

물론 혈통적 승리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트라하는 세계 곳곳에 흩어진 자신의 씨앗들, 곧 사생아들의 가능성을 신뢰했다. 그들이 자신의 명예를 드높여주거나 회복시켜 줄 것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아이들이 자기 유지를 이어 힐렐의 계획대로 세상을 계몽시킨다면 만족스러우리라. 특별히 그는 황실 내에 심어둔 자기 후손에게 기대를 걸었다.

 

 

“내가 선물한 유전자로 제작한 네 아이, 그가 비록 지금은 피가 섞이지 않은 자기 형을 경배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 우상이 여기 묻혀 사라지고 나면 진정한 왕의 그릇답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세일린은 여전히 긍정도 부정도 없이 그 말을 듣기만 하였다.

 

 

“나도 내 나름의 야망을 이루고, 우리의 조상들 역시 이런 형태로나마 오랜 염원을 이루는 것이다. 아울러 너는 이본을 상대로 승리하는 셈이 되지. 그래. 세상은 그녀의 후손이 아니라 네 후손의 유업으로 주어질 것이야.”

 

 

이 말을 마친 후 그는 사악함이 가득한 높은 음색으로 크게 폭소하였다. 마치 인간이 아닌 악마가 들린 듯한 소스라치는 끔찍함이었다.

 

 

“발동해라.”

 

 

이미 그의 심장 속에 심겨진 초상 물질로 된 인조 기기가 바깥에서 전달되는 어떤 파동에 공명하였다. 차폐된 이 공간으로는 전자 신호는 일절 침투할 수 없지만 인간계의 과학적 이해를 벗어난 초상 물질 간의 상호작용은 다르다. 이 파동은 현재 비슷한 재질의 물질을 담은 기기들로부터 어떤 강력한 작용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렇다. 사상조작병기들이 미리 폭발이 지정된 시한폭탄처럼 최대 출력으로 활성화되었다.

 

 

“사실, 이런 방법은 원치 않았습니다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최대한 신속하게 승부를 맺도록 하죠.”

 

 

사상조작병기가 발산하는 사악한 사념파, 그것은 땅을 매질로 전달된다. 정확히는 지구라는 행성과 그 기초석인 대지 전체가 매질이다. 일반적으로 공중 권세를 잡은 악령들이 인간의 마음을 세상의 악에 종속시킬 때 사용하는 매질이 공기, 즉 전파들이 왕래하는 대기권임을 생각할 때 사상조작병기는 대단히 이질적인 축에 속했다.

 

 

사상조작병기는 이런 메커니즘 상 반드시 깊은 지하에 위치한다. 더욱이 발동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는 외부에서 감찰할 방도도 없다. 핵연료처럼 커다란 에너지 반응을 유발하지도, 특수 입자를 발원하지도 않는다. 지하 깊은 곳에 은밀히 지어지며 활성화 전에는 보통의 시설과 크게 구분되지도 않기에 은폐하기 쉽다. 브리튼의 최첨단 위성 감시 시스템마저 이것들을 이런 이유로 걸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활성화된 이후로는 사념파의 발원이 일정한 지정학적 패턴을 그려내기 때문에 진원지의 대략적인 역추적이 가능해진다. 즉 브리튼의 군대가 그것을 발견하여 무력화하거나 폭격으로 부수는 작전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설령 그렇게 노출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각각 시설의 완전한 수색과 진압에는 최소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출력과 효율성은 극대화한 ‘공명형’ 패턴의 ‘완성형 사상조작병기’가 육백 시설이나 마련된 상황이라면 일주일이란 골든타임을 넘겨도 한참 넘긴 시간이다.

 

 

브리튼 측에서 운 좋게 반 이상의 병기를 조기에 찾아낼 수도 있겠지. 허나 남은 절반으로도 세계 전체를 오염시키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찾아내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에 이미 세계는 비가역적인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핵무기를 뒤늦게 찾아내도 발사 버튼이 눌러진 뒤로는 때는 너무 늦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실 트라하는 이런 ‘전면전’보다는 좀 더 안전한 승리를 원하긴 했다. 사상조작병기로부터 직접 사념파를 발산하는 방식이 아닌, 사상조작병기와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속에 심겨진 초상 물질로 된 인공물을 공명시키는 방법이었다. 이런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인간들이 일종의 단말기가 되어 걸어 다니는 사념파 발원지가 될 수 있다. 위력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겠지만 장기전을 꾸준히 벌이는 데는 훨씬 더 유리한 전략이다.

 

 

만약 그 방법이 성공하였더라면 트라하는 자신의 남은 전 자산인 사상조작병기들을 전부 드러내는 일 없이 은밀하게 사상조작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으리라. 부분적으로 실패하더라도 거듭 반복하여 도전할 수 있었겠지. 또 설령 실패하더라도 후일을 기약한 채 사상조작병기 자체는 안전하게 온존하여 숨길 수 있었으리라.

 

 

다만 아쉽게도 그 옵션은 철저하게 실패로 끝났다. 지난 내란 때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여러 가지 조건들을 바꿔가며 실험하고 또 실험했지만, 끝내 사념의 파동은 매개체가 된 인간들의 뇌리를 자유로이 벗어나지 못한 채 숙주 속에 갇혀 메아리쳤다. 이것이 여섯 대조직의 반란이 완전한 실패로 끝난 이유였다. 시민들을 폭주시키거나 세뇌해야 하거늘, 도리어 범죄에 속한 주범들만 스스로 폭주하여 자멸하였고 브리튼은 뜻하지 않게 유익을 얻었다.

 

 

하지만 이 시행착오로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패들을 통해 몇 가지 교정을 이루었고 기계들에 내포된 오류들도 재조정하였다.

 

 

‘알렉시스님이 발전시켜 둔 인공지능 기술들을 몰래 훔쳐두길 잘했어.’

 

 

트라하 혼자만으로는 세계 각지에 설치한 기계를 다 교정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오늘날이 어떤 시대인가.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인공지능의 시대. 알렉시스와 그 부하들이 산업 혁명을 통해 인류 문명을 몇 단계 이상 올려놓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트라하에게 역시 유익한 부산물을 주었다. 인공지능 시스템과 유닛들이 자율적으로 사상조작병기들의 내부 구조를 교정하였고 덕분에 하루를 넘기기 전에 무기들의 최종 조율은 끝났다.

 

 

‘내란을 틈타 요정왕 플랫폼들의 내부 자산도 몰래 빼돌리려 했다만.’

 

 

그 부분은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대로 별 소득이 없었다. 내란이 하루 만에 끝난지라 시간이 촉박했으며 내내 무시했던 그 한반도라는 스테이트도 그리 치안이 만만치는 않았다. 만일 거기서 몰래 블랙스미스 플랫폼의 주요 유닛이나 중앙 통제 장치의 부품을 얻어내었다면 장기전을 펼칠 자산을 확충하였으리라.

 

 

‘물론 이렇게 된 이상 장기전은 물 건너 가게 되었지만.’

 

 

알렉시스가 늦게 깨어난다면 차라리 사상조작병기를 안전하게 숨긴 채 장기전을 펼쳐볼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요정왕의 힘을 얻는 데 실패한 데다 알렉시스가 깨어나 마스터들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트라하로서는 그런 옵션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한 번의 과감한 도박을 하기로 했다.

 

 

“자, 소감이 어떻습니까, 황태자 전하.”

 

 

배반자 마스터는 자신의 보스였던 제국의 왕에게 위선적인 공손함으로 예우를 갖추며 조롱하듯 질문하였다.

 

 

“너무 슬퍼하지는 마십시오. 당신이 떠난 이후로도 브리튼은 잔존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황제를 신뢰하지 않겠죠. 오랜 유산이었던 언약도 이제 파기되는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들을, 아들들이 아버지를 대적하는 피의 동족 잔상이 시작됩니다. 당신의 가족들, 신하들, 시민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고 끝내 남은 승리자들이 완전히 다른 철학의 세계를 건설하겠죠. 만일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그 장면을 본다면 그것도 나름 재밌는…….”

 

 

“쫑알쫑알 떠들어대는 걸 계속 들어주기가 피곤하네.”

 

 

싸늘하게 얼어붙은 목소리가 흥에 겨운 악인의 목소리를 자르며 개입했다.

 

 

“트라하 폰 바이스하우프트. 만약 네가 나의 기분을 몹시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칭찬해 주지.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둔 게 사실이니까. 나는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지 않아.”

 

 

내내 화를 억제하며 고통스러운 번뇌를 억누르고 있던 알렉시스가 침묵을 깨트렸다. 그의 말대로 그의 모습은 대단히 피곤해 보였다. 정신적인 피로가 그를 심히 짓누르는 것이 현격히 보였다. 이슬람을 상대할 때도 늘 여유만만했던 그가 초조함 내지는 불안감으로 인해 심기가 매우 불쾌해져 있었다.

 

 

트라하는 확실히 상대의 역린을 올바르게 공격하였다. 가족에 대한 망측한 망발을 던져 기분을 잔뜩 상하게 했다. 세일린을 미끼로 던져 배신감과 충격을 선사한 것도 매우 효과 만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지극히 사랑했던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충격적 진실로 고통을 준 건 화룡점정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알렉시스에게 타격을 주었는가. 그렇다. 이 부분에서는 트라하가 분명하게 선방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그러나 정작 트라하가 가장 기대하였던 한 방은 이런 치졸한 심리전이 아니었다. 진정한 목표는 어디까지나 사상조작병기의 발동을 통한 대국적 승리였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의외로 알렉시스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는 데 실패했다. 마지막 이 한 방은 알렉시스에게 별다른 데미지가 없었다.

 

 

“네가 준 공격은 내 어머니에 대한 정죄, 거기까지가 최선이었어. 인정한다. 그 부분은 내가 한 방 먹었어.”

 

 

하지만 사상조작병기를 통한 전세 역전?

 

 

“그 뒤에 늘어놓은 무기 자랑은 별로 놀랍지 않았단 말이지.”

 

 

피로와 짜증으로 잔뜩 눌려 있던 알렉시스의 고운 얼굴이 냉정한 지성의 빛을 베일 너머로 드러내었다. 희미하게 비친 그 짙은 위압감에 순간 트라하는 흠칫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본능적인 공포였다. 사자 앞에서 아무리 자랑을 해보아도 하이에나는 하이에나일 뿐이다.

 

 

‘내, 내가 겁을 먹었다고?’

 

 

그리고 그 공포는 착각이 아닌 올바른 반응이었다.

 

 

“트라하. 네 그 가찮은 작전은 이미 다 읽고 있었다. 이 덫 안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내릴 명령은 다 내렸고 안배할 것도 다 안배해 뒀다.”

 

 

 

 

 

육대주 곳곳에 세워진 육백 개의 병기들이 땅을 향해 죄악의 파동을 발산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악인이 뜻하던 대로 자유로이 세상에 전달되지 못했다. 상쇄하는 어떤 다른 힘들이 에워싸며 보이지 않는 그물을 만들어내었다. 무기들에서 발원된 힘은 가두리 양식장 안의 물고기마냥 일정 권역 이상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힘의 줄다리기에 밀려 권역 안에 국한되었다.

 

 

“말도 안 돼!”

 

 

심장에 느껴지는 반응을 통해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감지한 트라하는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방해물이 나타났다. 사상조작병기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길항하는 어떤 정체불명의 작용이 등장했다. 완벽하게 힘의 균형을 이룬 채 어떤 피해도 민간 세계로 흘러 나가지 못하게 하는 중이다.

 

 

“대-사상조작병기 프로토콜?”

 

 

알렉시스가 이미 세계 3차 대전 때도 활약한 바가 있기에 그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해 둔 건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3차 대전 당시 연방이 쓴 그 무기는 원시적인 프로토타입이었다. 더욱이 극미량의 초상 물질을 연소시켜 힘을 발동하는 그 병기와 달리 지금의 병기들은 천문학적인 초상 물질을 기반으로 최상의 마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거짓말! 자연계의 영역을 벗어난 이 파동을 길항한다는 건 불가능해!”

 

 

“트라하, 20년간 지속적으로 힘과 지식을 갈고닦아온 건 너만이 아니야.”

 

 

알렉시스는 청년 시절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사상조작병기를 만들도록 유도한 배후 세력이 존재한다. 그들이 필시 와신상담하여 언젠가는 다시 칼을 뽑을 것이다. 그는 이런 시나리오에 대비해 차근차근 많은 것을 준비해 왔다.

 

 

“너희가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췄다고 말했듯, 우리 쪽도 간신히 데드라인에 맞췄단 말이지.”

 

 

사상조작병기의 사념파에 대적하는 상쇄 파동 발생 장치, 두 권능의 충돌을 일정 권역 안에 가두는 범위 제한 장치, 대지의 사념파 매질 작용을 약화하는 장치, 커버넌트 그룹이 비밀리에 개발해 둔 대응책은 마인드 퓨리파이어 속의 백신 프로그램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장치들을 완성하는 데 필요했던 마지막 한 조각의 열쇠가 바로 회수된 마인드 퓨리파이어 본체들이었다. 쓸모를 다한 그 기계들을 굳이 부수지 않고서 리콜하여 모아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마인드 퓨리파이어와 인간의 긍정적 상호작용, 그 과정 전체를 기기 내부에 기록해 뒀다.’

 

 

여기에는 물론 마인드 퓨리파이어가 사람들의 뇌리에 일으킨 마지막 ‘백신 작용’도 포함된다. 이러한 상호작용 데이터는 사상조작병기 사념파를 상쇄할 기능을 완성하는 데 꼭 필요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교란하는 권능에 길항할 파동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네 비천한 뜻은 결코 원하는 대로 서지 못해.”

 

 

알렉시스는 여전히 마음이 노곤한 가운데에도 여유롭게 상대의 도발을 맞아주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지 못하는 현실이 괴로운 것이지, 앞으로 있을 일에 대응하는 것은 그리 큰 염려가 아니었다.

 

 

‘대응 무기 발명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좌표 수색은 어떻게 했지?’

 

 

트라하의 생각 속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그는 동요하는 마음을 최대한 통제하며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의문은 이것이었다. 설령 상쇄 파동 발생 장치와 그 보조 기구들을 통해 사상조작병기를 막아낼 수 있다고 치더라도, 그것들은 반드시 사상조작병기의 근거리에 가져가 사방을 에워싸도록 설치한 뒤에야 제대로 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런 고성능의 기계를 모든 곳에 설치해 두는 건 불가능해. 수량이 한정되었을 터다. 휴대가 가능한 장치겠지.’

 

 

즉 사념파가 발동되기 전에 대응 무기들을 신속하게 옮겨 사상조작병기가 있는 좌표에 설치해 둬야 한다. 브리튼 정부 측은 육백 개의 사상조작병기가 위치한 좌표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알렉시스라도 그건 불가능했으리라. 한데 내란을 끝낸 뒤 하루라는 촉박한 시간을 남겨두고 육백 개 좌표 전체를 특정하였다고? 게다가 꽤나 질량이 클 대-사상조작병기 상쇄 장치들을 사고 없이 안전하게 그곳까지 이동시켰다?

 

 

‘사전에 모든 좌표를 첩보로 알아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상대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읽은 알렉시스는 여전히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심하다는 듯 책망하였다.

 

 

“내 동생과 워쳐들이 이미 내가 깨어나기도 전에 너희의 전략 자산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트라하 너도 결국은 사람이니 거대한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수년에 걸쳐 인력을 운용하고 자원을 수송해야 했지. 아무리 비밀스럽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한들, 그런 큰일들에는 자취가 남기 마련이다. 나름 잘 숨긴 건 맞지만 워쳐들은 무의미해 보이는 작은 단서들도 절대 묵과하지 않아.”

 

 

분명 내란 전까지만 해도 브리튼이 그 사악한 무기들의 존재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워쳐들이 쌓아온 빅데이터, 그리고 그것을 해석해 줄 에쉬튼의 능력이 더해지자 의외로 추리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범위를 좁힌 후 첨단화된 위성 시스템의 보조까지 더해졌고 결국 브리튼은 적기를 놓치기 전에 모든 사상조작병기의 지하 좌표를 특정하였다.

 

 

“요정과 인간의 최후 동맹, 소설가 타킨의 이야기에 기록된 그 전쟁 서사시처럼, 너의 그 가련한 검은 탑들을 부수기 위해 내 사람들이 이미 움직였다.”

 

 

이미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모든 작전 명령은 전달되었다. 알렉시스의 지령을 받은 장교들, 그리고 황제가 파견한 특공대들은 커버넌트 그룹이 막 조율을 끝낸 비장의 상쇄 장치들을 대동한 채 적절한 시기에 각 좌표에 도착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 지하를 뚫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어느 곳도 놓치지 않고 상쇄 장치를 설치하여 가동까지 성사했다.

 

 

“시간이 누구 편일지, 그건 지켜봐야겠군.”

 

 

여유롭게 적수를 농락하는 알렉시스. 반대로 트라하는 분개를 삼키며 이를 갈았다. 이대로 적국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한 채 시간만 끌면 결국 모든 병기는 폭격이나 요원 침투로 제거될 것이다.

 

 

그러나 트라하는 그렇게 만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그 역시 수많은 책략을 꾸며낸 음모의 달인이었고, 알렉시스 같은 규격 외 거인만 아니었다면 브리튼과도 충분히 겨뤄볼 역량을 지닌 간교한 인물이었다.

 

 

“한 방 먹었군요. 하지만.”

 

 

이제 곧 잔인무도한 트롤리 게임이 시작되리라. 과연 제국은 달려오는 기차 앞의 두 기찻길 위에 놓인 사람 중 누구를 구해내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대를 위해 기꺼이 소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작은 무리도 구해내겠다는 무리한 욕심으로 소탐대실할 것인가?

 

 

“저도 나름 이 작전에 모든 사활을 걸었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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