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95회 [2부] 외전 11화. 정략결혼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2.21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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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슨 제블런 브라이틀란트 중장. 서른에 하나 모자란 풋내기이면서도 탁월한 무공과 천재적인 재능으로 승승장구하는 찬란한 신성(新星). 상부의 명령으로 이십대 초반부터 용병왕 행세를 하며 제국령 내 위험인자들을 통제해 온 그의 공로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많은 범죄 조직과 적국 잔당이 랜슨의 활약으로 소탕되었고 그의 청소 덕분에 3차 대전 당시 편입되어 불안정했던 외곽 영토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었다.
더욱이 이 젊고 수려하고 강인한 젊은이는 전 지구적인 내전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놓치지 않았다. 용병왕 겸 대령으로서는 북부 신대륙의 이슬람 원리주의 잔당을 소탕하였고 준장으로서는 에돔 및 두로 후손들의 사주를 받은 반동 세력을 진압하여 뉴욕 스테이트의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그리고 올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서 궐기한 ‘주체사상교 광란 세력’의 반란을 소멸하는 데 독보적인 공적을 세웠다. 이로써 그는 그의 젊은 혈기와 부족한 경험에 대해 우려를 표하던 노장들의 의심을 불식하였고 반박할 수 없이 확고한 입지를 군내에서 세웠다. 그가 단지 ‘황자’라는 신분을 지녔기에 특혜를 받은 게 아니냐는 동료 및 선배들의 반발이 구심점을 잃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선명한 공로들을 기반으로 표창을 받았고 중장 직급으로 승진하였다. 원래대로라면 대장 계급으로 승진할 예정이지만, 이 부분은 아직 그가 나이가 어린 탓에 잠시 보류되었다. 사교 활동을 통해 주요 인사의 지지 기반을 다지고 인맥을 강화하면 이 현실적이고 관례적인 문제도 금세 해결되리라.
알렉시스는 이 부분에서 돕기 위해 동생을 공식적으로 여러 중요한 자리에 데리고 가 힘을 실어주었다. 머리가 좋고 능력이 좋다고 해도 승진에는 정치적인 변수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명분을 확실하게 다지려면 기초부터 확실하게 해주는 편이 낫다. 황태자는 젊은 동생을 제국 내 주요 실력자들과 거장들과 연결해 주었다. 제 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황태자의 증언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보증 수표였기에 길은 순탄하게 뚫렸다.
랜슨 본인의 성격도 높은 자리에 거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많이 빚어졌다. 철이 좀 들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이제는 사회성의 재주도 곧장 잘 활용하였다. 높으신 분들에게도 공손해졌고 신뢰감을 주는 젊은이로서의 모습도 잘 연기하였다. 비위를 맞추는 건 그의 성정이 아니긴 해도 어쨌건 이 사회의 질서를 따르긴 해야 하니까 그도 형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너는 실력으로나 공적으로나 최고이니 마땅히 누릴 자격이 있어.”
알렉시스는 동생의 넓고 탄탄한 등을 커다란 손으로 거칠게 두드려주었다.
“황자라서 오른 게 아니라 네 실력으로 증명해 낸 표창장이잖아.”
“여전히 형의 전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나고, 너는 너야.”
알렉시스가 커뮤니스트 연방을 무너뜨려 제국을 세계 통일의 반열에 이르게 한 영웅들 중 하나임은 사실이다. 거기에 미칠 전쟁 영웅은 매카서 전 장군 등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없으리라. 하지만 평화의 시대에 세워진 랜슨의 공적이라고 해서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
“난 형을 보좌할 수 있으면 족해.”
“너는 이 나라의 안위를 지키는 기둥이 될 거야. 시민들이 내전 염려 없이 편안하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수문장인 셈이지.”
개인적으로 알렉시스는 동생이 생각보다 빨리 의젓하게 자라나 한 명의 장군 몫을 해낸 것이 자랑스러웠다. 큰형인 자신과 아버지의 이름을 생각해서 일부러 스스로 다듬고 채찍질하여 성장한 것일 테지. 그렇게 책임감을 보였으니 합당한 보상으로 채워주어야 황가의 명예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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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슨도 에드윈과 마찬가지로 정략결혼 관례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것은 황제나 황태자의 의지는 아니었고 랜슨 본인의 자원이었다. 사실 그는 황제의 친아들이기에 굳이 의무적으로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본인부터가 연애를 진득하게 하는 타입이 아니라 짧게 만나다 금방 헤어지는 타입이었고 로맨스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집안에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편을 택했다.
그런 그를 위해 황제가 예비한 집안은 브리튼 제국에서 가장 고상한 정치 명가로 명성이 자자한 가문이었다.
현 대의회장은 벌써 5선째 재임 중으로 북부 신대륙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신임도가 가장 높은 정치인이었다. 그의 가문부터가 여러 위인을 배출했던 이름값이 있었다. 인망이 두둑하고 덕스러운 지도자들이 그 가운데서 나왔고, 위인전에 나오는 의인들이 배출되었으며, 탁월한 공신들과 국가 개혁의 선두 주자들이 그 집안에서 수두룩하게 나왔다.
대의회장 본인은 60대에 거의 접어든 중년 정치인으로 그 품위와 기개, 청렴함과 지혜로 인해 다른 정치인들과는 차별화되는 평판을 얻었다. 영향력 면에서도 어찌나 탁월한지 매번 만장일치에 가깝게 의원들의 표를 받아 대의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황제 역시 그와 깊은 연을 맺기를 바라던 참이었다.
그런 대의회장에게 외동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이 아이를 얻은 이후 아내와 사별하였고 여태까지 재혼하지 않고 딸만 키우며 가정을 꾸려왔다. 딸의 이름은 엘로이즈. 박식한 두뇌와 진취적인 성품, 그리고 귀족답게 명예를 아는 여인이었다.
황제와 황태자는 대의회장과 몇 년 전쯤 상의하여 이미 황가의 아들 중 하나를 그의 딸에게로 장가보내기로 합의하였다. 마스터들처럼 치밀한 두뇌와 압도적 재능을 지닌 것은 아니나 대의회장과 그의 조상들의 단연코 두드러지는 장점은 인품이다. 더불어 그들 중 상당수가 보수적인 신앙관을 지닌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었으니 이보다 더 나은 사돈은 찾아보기 힘들리라.
망나니 용병왕으로서 과장된 악명을 떨치긴 했어도 랜슨도 엄연히 기독교인이고 성경적 세계관만은 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동생에게 엘로이즈는 꽤 괜찮은 짝이라고 알렉시스의 머릿속에서 계산되었다.
알렉시스가 마흔두 살, 랜슨이 스물아홉이던 해의 봄이 끝나고 6월에 접어들었다. 마침 랜슨과 다른 장군들의 활약으로 주체사상교와 신토이즘 종교의 반란이 순탄한 정리 수순에 접어들었고 지구 곳곳의 다른 종교들의 반란과 폭도도 치안 당국에 의해 80% 이상 정리되었다. 내란의 진동은 잔잔해졌고 의회들도 비상사태가 있기 이전의 온전한 균형 견제 시스템(Check and Balance)을 되찾았다.
대의 회장이 잠시 몸과 마음의 재정비를 위해 다른 이에게 직분을 위임하고 안식년에 들어갔을 때쯤, 알렉시스 황태자는 랜슨 중장에게도 포상 휴가를 허락하였다. 그때 그는 동생을 장차 사돈이 될 대의회장의 별장에 파견하였다. 본 건물 맞은편에는 손님의 숙식을 위한 부(附) 건물이 있었고 젊은 군인은 거기서 간만의 안락한 휴가를 만끽하였다. 인적이 드문 시골 지역에 자리한 곳으로 산과 숲과 호수와 맑은 강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휴양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랜슨은 이곳에서 한 달간 거하며 지친 심신을 위로하였다. 그는 홀로 숲을 거닐며 복잡한 생각을 비워내었고 시냇물에서 헤엄을 치며 넘치는 신체 에너지를 시원스레 방출하였다. 달리거나 등산하거나 나무를 타거나 물살을 가르는 등, 무엇이든 체력을 쓰는 일이라면 그의 취미이자 특기였다.
거세게 흐르는 하류를 역행하여 수 km를 진격한 그는 호흡을 고르며 수면 위에 몸을 띄웠다. 수풀이 진 땅에 이르자 그는 기력을 갈무리하기 위해 땅으로 올라왔다. 역동적으로 힘을 쏟아내느라 잔뜩 긴장된 온몸의 근육들이 두드러지게 부푼 채로 옅게 떨었다.
그곳에서 그는 엘로이즈를 처음 마주쳤다. 마련해 놓은 수건이 없어 수분이 증발하기를 기다리며 서늘한 공기 가운데서 떨던 그에게 그녀가 도움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는 약간 어색해하는 표정으로 수건을 받아 상체를 닦았다.
“처음 인사드리네요.”
두 사람은 간단한 소개를 나누었다. 워낙 유명한 집안 출신이라 둘 다 상대방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전혀 격식을 차리지 못한 만남이었으나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엘로이즈에게는 의외의 면모도 있었으니 소위 말하는 ‘밀리터리 마니아’였다. 폭력적인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게 생겼음에도 의외로 군사 작전이니 방산 산업, 첨단 무기니 군 체계 및 전략 등에 박식하고 관심도 많았다. 또한 랜슨이 대령 시절 익명의 용병왕으로 활동한 전적에 대해서도 그녀는 호기심을 많이 보였다. 그로서는 다소 창피한 풋내기 시절의 흑역사이지만, 의외로 그녀는 용병왕의 악명 같은 위명과 그 실상들에 대해 자세히 알았다.
“그 얘기는 우리 그만하죠.”
덩치가 산만큼 큰 근육질 남자가 무뚝뚝하게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다소 웃기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처럼 투박한 사람이 과연 당신 같은 교양 있는 분에게는 어울릴지 모르겠군요.”
“국가와 시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죠.”
“그것이 전쟁의 폭력성을 미화해 주지는 못합니다.”
의외로 랜슨은 천직이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무를 우상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필요악의 역할. 그게 그가 군이라는 시스템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국방은 신성하다느니, 고귀하다느니 하는 해석은 그의 지론과 거리가 멀었다. 어린 시절 그 신성하다는 책무를 성실하게 감당하고 돌아온 큰형이 큰 장애를 입는 걸 보았으니 무리는 아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폭력을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엘로이즈는 뿌리부터 브리튼 시민답게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비록 완벽한 국가는 역사 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이 악한 세상 속에서 그나마 작동하는 억제력이요 어둠 속의 등불이라면 이 나라가 아니겠는가. 대의회장인 아버지에게서 이 국가가 갖는 영적인 의미를 철저히 배웠으니, 그녀가 탄탄한 가치관을 소유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자신의 책무가 갖는 가치를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은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다. 비록 랜슨 자신도 군인의 직무를 평생토록 짊어질 생각은 없었지만, 과거의 공적이 새로운 의미로서 해석되는 듯하여 상쾌함을 느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휴가 내내 어울려 지냈고 급속도로 관계가 진전되었다. 구태여 황제가 나서서 연결해 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연합할 기세였다.
“그렇게 마음에 든다면 용기를 내보려무나.”
아버지는 넌지시 그의 등을 떠밀었다. 사돈으로서 손색이 없는 귀한 집안이기도 했고 아들이 좋다는데 더 물어 뭐하겠는가.
사나이답게 군인은 아버지의 말을 청종하여 그대로 직진하였다. 어차피 질질 끄는 연애에는 별로 큰 애착이 없기도 하고, 언젠가 가정을 이룰 생각이라면 확실하고 단호하게 나아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물론 사람을 신중하게 보고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엘로이즈는 요새 같은 세상에서도 흠결이 없다시피 한 희귀종이었기에 걸림돌은 없었다. 대의회장으로서도 국가를 위해 여러 차례 헌신한 건실한 젊은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황자라는 신분과 상관없이 능력으로 공로를 세워 승진한 실력자이니 퇴역 이후에도 가정을 잘 책임지겠지.
그리하여 몇 달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정략 결혼을 진행했다. 사실상 배후에서 집안들끼리 선을 봐서 연결해 놓은 관계이기는 해도 양쪽 다 불만은 없었다. 단정하고 영민하면서도 생각이 깊은 엘로이즈는 거칠게 살아온 남자의 눈에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비쳤고, 랜슨의 강인한 남성적인 든든함도 그녀의 마음에 맞았다.
결혼식장에서도 누구 하나 수군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딱 알맞은 상대. 누가 보아도 그렇게 해석되는, 매우 그림 좋은 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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