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81회 참회록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1.07 | 회차평점 0
|
어니스트 마이런의 인생에는 중요한 오명이 묻어 있다. 그가 평생 가장 크게 빚진 사람들을 배반한 비겁자라는 사실이 그의 수치였다. 그는 이에 대해 용서받았으나 오랜 시간 고통과 씨름하며 자기 자신과 겨루어야 했다.
라이텔바흐는 질문했다.
“네가 플레먼 군을 배신했었다고?”
책망의 어조라기보다는 호기심이 담긴 질문이었다.
“믿기가 어렵군.”
“제 이전의 모습을 모르시니까요.”
이 일은 16년 전에 있던 이야기다.
당시 스무 살의 플레먼은 막 성년이 되었다. 그의 집 옆에 있는 부속형 숙소에서 생활하던 어니스트는 아직 열일곱 살이었다.
두 사람 다 공교육 기관에 출석하지는 않았다. 플레먼의 집안 자체가 신분을 숨기고 숨어다니는 처지인지라 공적으로 정체가 노출되어서는 곤란한 탓이었다. 어니스트도 비슷한 출신이라 마찬가지였다. 다만, 플레먼의 경우 공부에 대한 열정이 그런대로 있던 편이라 독학으로 열심히 여러 서적을 섭렵했다. 어니스트에게도 친한 형으로서 이런저런 기본기를 가르쳐주곤 했지만, 어니스트는 공부에는 별로 재능이 없었다.
플레먼네 집은 이미 10년 이상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의 궤도에 진입했다. 그의 부모님은 대탈출부터 시작해 이민과 위장의 삶으로 점철된 고난의 여정을 무사히 극복하고 마침내 안정적인 삶에 자리 잡았다. 순탄하지 않던 위기의 나날은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잊힐 정도로 마음속에서 옅어졌다.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서 가업을 일구며 낯선 이방인으로 시작했던 힘겨운 초기 이민 생활. 이제 그 수고로운 여정에 결실이 맺혔다. 플레먼의 부모님이 시작했던 사업들이 그런대로 번창을 누렸고 집안의 부 역시 그런대로 넉넉한 수준이 되었다.
어니스트는 그런 그들의 곁에서 소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오랜 세월 은택을 누렸다. 이러한 기억은 그에게 두 가지 양가감정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고마움, 다른 한편으로는 부채감으로 인한 부담이었다.
플레먼의 가족들과 교류하면서 여러 좋은 점들이 있었다.
첫째는 세상의 풍파로부터의 보호였다. 여기서 말하는 풍파란 제도적인 핍박보다는 사상적, 이념적, 교육적인 차원의 시련이다. 세상은 이미 철저한 무신론적, 파시스트적 이념에 완전히 함락되었다. 신의 이름과 그분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모든 자리에서 금지되었다. 플레먼의 부모님이 플레먼이나 어니스트를 공교육 기관에 보내지 않던 또다른 이유였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여전히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보금자리가 이들 가정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재앙의 세계 대전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 강인함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몇 가지 경우는 가능했는데, 부모나 양육자가 자녀나 피 양육자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경우, 그리고 이미 복음에 대해 듣고 알고 지적으로는 동의하는 ‘거듭나지 못한 구도자’에게 복음을 반복적으로 다시 가르쳐주는 경우였다.
어니스트도 고아가 되기 이전에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났기에 이미 복음을 알았고 그런 그에게 플레먼의 집안이 이 세상에 몇 남지 않은 믿음의 가정이라는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말씀을 듣긴 했어도 여전히 어니스트는 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주님이란 대단히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하며 형이상학적인 존재였다. 그분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사역과 부활에 대한 의미를 교리적으로는 듣고 알았으나 그것이 자기 삶에 의미로서 심기는 데는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날, 위기의 시험이 닥쳐왔다.
당시 어니스트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언제까지고 플레먼네 부모님께 신세를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음이 무겁기는 해도 자립을 준비해야 했다. 그는 인근 여러 마을과 도시를 순회하며 여러 일터에서 작은 일들을 맡았다.
그가 본가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도시에서 길을 거닐던 중에 그는 낯익은 기시감을 느꼈다. 매우 익숙한 감각이었다. 섬뜩함을 주는 공포감과 모골이 송연해지는 압박감. 그것은 추적자의 향기였다. 게슈타포. 숙청자. 비밀경찰. 그와 그의 잃어버린 가족들이 구대륙에 머물던 시절에는 서민들에게 있어서 이들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없었다.
헬게이트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로는 게슈타포들의 악명이 조금 묻힌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세계를 휩쓴 초자연적인 재난으로 인해 정부의 강력함을 상징하던 철권 무력의 위상이 퇴색된 면이 없잖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이전 시대의 악몽을 기억하던 이들은 많았다.
사실 헬게이트 재난으로 인류의 인구가 3분의 1 이상 소실되면서 행정력도, 경찰력도 많이 약해졌다. 당장 인력이 부족한 데다 매년 터지는 재난을 수습하기도 바쁜 것이 현실이었다. 헌터들이 활약하긴 했으나 이들 또한 분주하게 자신을 소모하여 겨우겨우 막아내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세계 정부가 사실상 여러 권역으로 쪼개져 과두제 비슷하게 약체화되었다. 이런 때에 게슈타포들이 예전처럼 많이 활동할 리는 없다.
그러나 소수의 악질적인 독종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헬게이트 이전 시대에 수많은 반정부주의자들과 사상범들과 ‘소수 민족’들을 잡아 학살극에 넘겨주었던,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 그러한 악명 높은 베테랑 독종들은 여전히 정부에 종사하였다. 심지어 나이가 들어 늙은 뒤로도 그들의 흉악한 본성은 옅어지지 않고 더욱 교활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어니스트는 길가에서 오랜 악연을 마주했다. 그의 옆모습을 멀리서 본 순간 그는 트라우마로 인해 악몽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친부모님을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장본인. 그런 그가 아직 퇴역하지도 않았는지 총을 찬 채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사복도 아닌 제복 차림이었다. 눈에 띄는 차림은 아니었으나 직감적으로 어니스트는 그 사람이 여전히 세계 정부를 위해 종사하는 개임을 깨달았다.
불행히도 그로부터 몰래 도망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사냥감의 냄새를 잘 맡는 사냥개는 나약한 희생양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어니스트는 그 도시를 벗어나기도 전에 게슈타포에 덜미를 잡혔다. 이제는 60대의 노년이 된 그 사람은 여전히 장년 시절의 그 노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잊어버려 주기를 바랐건만, 그 남자는 어니스트에 대해서도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희생양을 죽이거나 체포했을 터인데, 어찌 그렇게 아무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총기를 들고 협박해오는 상대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어니스트는 공포감에 완전히 굴복하였다.
“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어제 적처럼 떠오르는군.”
다만, 그 게슈타포는 어니스트를 사냥하려는 열의가 가득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어니스트의 가족들이 ‘반정부적 종교’에 귀의한 사상범들임을 알았으나 그 자녀까지 전부 다 종교에 심취한 것은 아니리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저 사상범들의 자녀라면 충분히 그 이념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어니스트는 그가 찾으려는 일 순위 사냥감은 아니었다.
그 간악하고 두려운 자는 유도신문으로 어니스트를 천천히 파헤쳤다. 그는 공포를 무기로 삼아 상대를 무장 해제하였고 비열한 방법으로 내면의 약함 속에 파고들었다. 그는 먼저 어니스트가 사상범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니스트는 자신의 실체를 그 앞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아직 그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총기와 심문 앞에서 자신의 주를 부인하는 것은 너무도 즉각적이고 반사적이었다. 어차피 그분의 소유물이 되었던 적이 없었으니 정직한 답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대단히 슬픈 아이러니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니스트를 먼저 포획한 이유는 더 큰 것을 잡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와 연줄이 닿아있을지도 모르는 자들, 곧 ‘위장하여 은닉한 진짜 사상범들’을 색출하는 일이 그의 목적이었다. 밀고를 통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틈새를 찾아내고 그 틈을 이용해 숨은 ‘세계의 적’들을 일망타진하는 것. 어니스트는 이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이미 그의 양심은 더럽혀진 상태였다. 한 번 그리스도를 입으로 부인한 베드로 사도가 걷잡을 수 없는 죄악의 중력에 끌려 추락하고 또 추락했던 것처럼, 자괴감과 두려움에 무너진 약자의 마음은 포로처럼 적에게 이끌려갔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모든 정보를 내주어야만 했다.
결국, 플레먼의 집에 대한 정보가 누출되었다. 에이비슨이라는 패밀리네임은 어디까지나 위장이다. 플레먼과 그의 부모의 옛 이름과 성은 이미 잊힌 지 오래였고 사실상 그들이 지내던 본국에서는 기록상 사망 처리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지독한 게슈타포는 어떻게 감을 잡았는지 끝내 에이비슨 가의 옅은 자취에 능숙하게 도달했다.
어니스트에게서 정보를 빼낸 뒤 그자는 자신이 이전에 취합해 놓은 옛 데이터들에 기반해 에이비슨 가의 부부가 원래 어떤 자였을지를 추정해 냈다. 그자는 곧장 부부를 나포하여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미끼를 쓸 계책을 궁리했다.
불행 중에 다행인 부분이라면 그가 홀로 움직이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워낙 노련한 요원인 탓에 그 한 명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했다. 하지만 그가 추가로 다른 이들을 대동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즉 어니스트로서는 홀로 목숨을 건져 달아날 여지가 있었다.
“네게 보답해 주지.”
게슈타포는 어니스트에게 가혹한 은혜를 베풀었다.
“내가 그들을 처단할 때 네게는 잠시 먼 곳으로 도주할 기회를 주마. 다음번에 잡힌다면 또다시 너를 이용하겠지만, 그전까지는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부디 너로 인해 내가 더 많은 공적을 획득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굴욕적인 조롱이었다. 어니스트를 그가 놓아준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약해빠진 비겁자이며 공동체 내부를 파멸로 이끌 한심한 멍청이인 덕이었다. 그는 어니스트 같은 쭉정이를 내버려두면 알아서 더 많은 진짜배기가 파멸할 줄을 알았다. 슬프게도 이 사실을 어니스트 본인도 부인하지 못했다.
그자는 곧바로 처단 작업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며칠 간의 유보의 시간이 주어졌다. 약속대로 어니스트에게는 도주의 시간이 허락된 셈이다. 만일 이 기간에 어니스트가 모든 진실을 플레먼네 식구와 나눴다면 달라졌을까? 그런 가정법은 불합리하다. 어차피 이주민인 연약한 가정은 자신들을 해하려는 악의적인 폭력으로부터 재산이나 생명을 지키지 못했으리라. 설령 잠시 다른 지역으로 도주한다고 해도 금세 다시 덜미를 잡혔으리라.
“그 시절의 저는 바늘방석에 앉은 채 엄청난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무너져 내렸죠. 운명의 시간이 예측할 수 없이 다가오는 동안,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지옥 위에서 고통받는 기분이었어요.”
기나긴 이야기를 들은 라이텔바흐는 몹시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어니스트의 처지에 공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멸하거나 정죄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이었다. 이야기를 결말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는, 매우 무거운 묵상처럼 보였다.
“네가 플레먼 그 친구에게 빚졌다는 게 그런 뜻이었나?”
“아뇨.”
어니스트는 자조감 반 회한 반이 섞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가 전부는 아니었어요. 제 밑바닥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깊었으니까요.”
|
이전회
80회 참회록 (1) |
다음회
82회 참회록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