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90회 이터널 셀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1.04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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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더우드에는 라이텔바흐 소유의 운송기가 여러 기 정박되어 있었다. 대형 버스의 열 배 가까이 되는 부피의 에어크래프트 세 척. 하나는 일행을 운송하는 목적으로, 나머지 둘은 물품과 무기들을 운반하기 위한 용도였다.
“무기들을 일일이 들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네요.”
플레먼은 웨폰박스들이 대량 수납된 컨테이너 트랜스포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헌터들의 무기가 운용되는 방식을 제대로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전투하는 현장은 두 번 보았건만, 그 전투가 이뤄지기까지 배후의 지원은 이런 식으로 되는구나. 하기야 사람들은 평상시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들을 숨 쉬듯 활용하면서도 그것들이 만들어지고 전달되기까지의 매우 복잡다단한 시스템과 과학, 공학적 메커니즘은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가 무슨 게임 캐릭터도 아닌데, 인벤토리 같은 허상 공간 안에 무기를 수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하하, 하긴 그렇죠. 그런데 헌터님들은 워낙 강하다 보니 정말 그런 인벤토리를 달고 다닌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이미지였나요. 사실 우리도 헬게이트나 그 영향력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거의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안티-게이팅 에너지는 헬게이트와 무관한 물리계에는 아무 작용을 하지 않죠.”
라이텔바흐가 플레먼의 쓸데없는 질문을 능수능란하게 받아주었다.
“뭐, 헬게이트의 영향력이란 게 아예 제로인 공간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지만요.”
“네?”
“미약하지만 지구 전체는 아주 약한 수준의 ‘다크포스’에 오염되어 있긴 합니다. 아, 저번에 언뜻 말씀드렸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다크포스란 헬게이트가 현세에 착륙했을 때 발원하는 ‘기본 상호작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세의 3차원 물리계에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 존재하듯 말입니다.”
과학적인 설명이 등장하자 천연 문과인 플레먼의 머리는 어질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저희가 오염 상태에서 살고 있단 말씀이죠?”
“극미량입니다. 헬게이트 권역과 그 인근이 아닌 경우에는 너무도 그 양이 적어서 물질이 ‘심연독’으로 변환되는 연성 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현대 도시 문명이 건설된 이후 인간은 항상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었다. 오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평상시에도 미약한 타격은 받고 사는 셈이다. 또한 그 이전에도 ‘미생물’의 오염은 항상 도처에 존재했다. 오늘날은 그저 헬게이트라는 또다른 오염 근원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렇군요.”
플레먼은 시선을 돌려 라이텔바흐의 단단한 근육과 체격에 시선을 두었다.
“초인적인 힘은 적진 안에서만 발동된다고 해도, 똑똑하고 강한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잖습니까.”
“아아, 그건.”
라이텔바흐는 이해했다는 듯 상대의 시선을 의식했다.
“차차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일행은 에어크래프트에 탑승했다. 그 운송 시설은 여러 칸으로 되어 있었다. 세 길드장들과 아퀼라가 자리를 잡고 짐을 정리하는 동안 라이텔바흐와 플레먼은 휴식 공간에 앉아 잠시 여유 시간을 만끽했다.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라이텔바흐가 돌연 플레먼에게 질문하자 그는 난처해하며 머뭇거렸다.
“그게…….”
“당신 이름으로 된 발표된 곡들이 몇 개 있더군요.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이에 플레먼은 더욱 얼굴을 붉혔다. 어색해하는 모양이 재미있던 라이텔바흐는 더욱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 보였다.
“신기해서요. 아시다시피 저는 음악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공기의 진동이 자아내는 선율에 청각 기관을 공명하는 체험이 어떠한지, 최근에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음악 감상을 별로 안 즐기셨나요?”
“바쁘게 살다 보니 그랬습니다. 그래도 당신의 연주곡들은 귀를 즐겁게 하는 면이 있어서인지 종종 심신 안정을 위해 들으려 합니다.”
라이텔바흐는 최근 몇 개월간 간헐적으로 귀에 담았던 몇몇 선율들을 휘파람으로 흉내 냈다. 플레먼의 앨범 가운데는 피아노곡과 기타 독주곡이 있었고 목소리로써 표현한 노래들도 있었다. 대부분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양상이며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의미들을 담고 있었다.
“부끄럽네요.”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에커먼 총회장처럼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부럽더군요. 만일 나중에 제가 후원을 한다면 연주회를 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저는 낯을 많이 가려서요. 공동체 식구들과 친해지는데도 남들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많은 이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듯하네요.”
“흠, 그러면 한 사람을 위한 헌정 정도는 가능하실는지.”
라이텔바흐의 독백 같은 마지막 말에 플레먼은 의아해했다.
“아, 헌정이라면 너무 거창하려나. 그저 청중이 한 명이라면 큰 부담이 없지 않을지 해서 질문해 봤습니다.”
“그게 라이텔바흐 당신일까요?”
이에 라이텔바흐는 언어 대신 호쾌한 미소로 응답했다.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좋습니다.”
플레먼은 5분 정도를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다. 라이텔바흐는 뭐라도 건져 가지 않으면 자리를 피해주지 않을 기세였다. 하는 수 없이 플레먼은 청중이 한 명뿐임을 확인한 뒤 조심스레 하모니카를 꺼내 곡조 하나를 연주하였다. 라이텔바흐는 아무런 흐트러짐도 없이 눈을 그에게 고정하며 잠잠히 청취하였다.
“가사는요?”
부드러이 질문하는 라이텔바흐에게 플레먼은 대답 대신 노래로 응답했다.
작은 갈대 상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액을 칠하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흐르는구나.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동그란 눈으로 어미를 보는 아이와 입 맞추며,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했으리라.
정처 없이 강물에 흔들려 내려가는 그 상자를 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앉아 울었으리라.
네 삶의 참 주인이자 아비이신 그분, 그분의 손에 너의 삶을 맡기노라.
네 삶의 참된 주인이자 너를 이끄시는 주인, 그의 손에 너를 드린다.
라이텔바흐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에 홀린 듯 넋을 빼놓고 잠겨 들었다. 맥락을 알기 어려운 동화의 수수께끼,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의 영혼은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느끼는 듯했다. 난생처음 듣는 동화 속에서 그는 의문을 느꼈다. 왜지? 이 친밀감의 이유를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당신은 혹시.”
라이텔바흐는 겨우 입을 열었다. 묘한 울림에 혹한 나머지 머리가 평소처럼 민첩하게 구르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야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생각났다. 잠시 멍청해지는 마법에라도 걸렸던 것일까.
“신을 믿습니까?”
라이텔바흐가 말한 ‘신’이란 게 일반명사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플레먼은 멈칫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본능적인 위축됨. 상대가 라이텔바흐임에도 이 본능은 쉬이 극복되기 어려웠다.
“아, 미안합니다. 취조하려는 뜻이 아니에요, 플레먼. 그저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아.”
아직 신을 믿는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 산발적으로 존재한다. 그게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무관해서 그렇지. 비록 제3제국 이후로 종교들이 전반적으로 탄압 받기는 했으나 그게 멸종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반면에 기독교는 정말 완전히 세상에서 그 증거가 지워지다시피 했다.
“맞습니다.”
플레먼은 한참을 씨름한 끝에야 소극적인 태도로 인정했다.
“아, 그러면 당신은 이 세상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는 사람이겠군요.”
기본적으로 세계 정부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창조주의 실재를 믿으려는 사람이 살아가기란 매우 어려웠으리라. 라이텔바흐는 문득 플레먼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공감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타인에게 애정이 많지 않은 그에게 이런 반응이 나타나기란 참으로 의외인 일이다.
“네.”
“힘겨웠겠습니다.”
“견딜 만했습니다.”
플레먼의 마지막 말은 반쯤 진실이었다. 괴로운 시간은 길었으나 어쨌건 그와 형제들은 살아남았다. 이것만으로도 견뎌낸 것은 사실 아닌가. 다만, 영혼이 살해된 것 같은 고통, 곧 복음을 증언하여 나타내지 못하는 저주는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을 억누르는 중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정말로 ‘견딜 만했는지’에 대해서는 양심의 미약한 가책을 받았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하나만 더 질문해도 됩니까?”
라이텔바흐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음을 얹었다.
“네.”
“혹시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 그들의 가족들이 쫓기게 된 것도 그런 이유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요?”
라이텔바흐의 진단은 80% 정도 정확했다. 일단 종교적인 이유에서 그들이 사상범으로 몰리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라이텔바흐는 모든 종교 가운데 0순위로 핍박받는 대상인 ‘그리스도교’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직 다가가지 못했다. 플레먼은 일단 지금으로서는 여기까지만 알게 해줘도 충분하겠다고 판단했다.
“당신 추측이 옳아요.”
플레먼은 씁쓸한 목소리로 시인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는데 그 이유를 알아채기까지 몇 분의 시간이 걸렸다. 라이텔바흐에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노래를 통해서, 그리고 고백을 통해서도. 물론 성경이나 그리스도나 십자가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도 못했다. 그래도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것이 어디인가.
‘무슨 일일까?’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저주에 눌리고 있던 게 아니었나? 하나님을 용맹하게 전하지 못하는 저주. 그런데 라이텔바흐에게만은 면제라도 받은 건가?
*
출항한 에어크래프트들은 생각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미리 정해진 목표 지점을 향해 지체없이 비행한다기보다는 뭔가 이동하는 와중에 탐색을 하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라이텔바흐의 계획을 정확히 모르는 아퀼라와 플레먼은 의아해했다. 이에 라이텔바흐는 두 사람을 자신의 계측 실로 모셨다. 나머지 헌터들은 시설 정비를 위해 다른 칸에 있었다.
“여기서 편히 구경하시죠.”
플레먼과 아퀼라는 각종 특수 슈퍼컴퓨터로 즐비한 대형 제어실의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 공간은 흡사 미래형 최첨단 문명을 일부 옮겨놓은 것마냥 이색적이었다. 헌터 대부분이 최상위 엔지니어로서 자질을 갖췄다더니, 과연 그중에서 으뜸인 자의 소유물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인가. 둘이 궤가 다른 문명에 압도당한 사이에 라이텔바흐는 컴퓨터들이 방출하는 모든 신호를 동시다발적으로 읽었다.
“이 많은 데이터를 한 번에 읽는 일이 가능합니까?”
아퀼라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질문했다.
“가능합니다. 제가 초인이어서는 아니고, 나의 신경계에 삽입된 ‘이능의 근원’들 덕분이죠.”
“이능이요?”
플레먼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이터널 셀을 말하는 겁니다. 헌터 데이터 관련 문헌이나 논문을 읽어보셨다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군요.”
“아, 그렇긴 한데, 정확히 어떤 원리로 구동되는 물건인지는 모릅니다. 과학 쪽에 과문해서요.”
플레먼과 라이텔바흐가 주고받는 사이에 아퀼라는 귀를 쫑긋 세우고 대화 없이 정보에 이목을 기울였다. 탐색자로 오길 잘했다. 이 대목에서 뭔가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겠다.
“헌터의 이능 근원은 딱 세 가지입니다. 이터널 셀, 나노봇, 그리고 원료가 되는 힘인 안티-게이팅 에너지이죠. 안티-게이팅 에너지를 연료로 소모해 이능을 유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안티-게이팅 파워입니다.”
라이텔바흐는 기초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친절하게 A부터 Z까지 해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셋 모두 최초 발원한 물체는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기 몸뚱이와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하. 아, 잠시만, 라이텔바흐 당신은 4세대 헌터가 아니었던가요?”
전에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긴가민가했던 플레먼은 헷갈렸다. 아무래도 헌터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에 비해 기초 지식은 부족했으니 이해하지 못하고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맞습니다. 헌터로서는 그렇죠. 하지만 헌터가 되기 이전에 실험체로서 살아왔던 삶을 생각해야죠. 아직 헌터가 되기 이전부터 나는 나의 선배들이 완성되기 위한 원료로써 사용됐던 것입니다.”
“이런.”
아퀼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혀를 찼다. 라이텔바흐라는 저 남자에 대해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은 긍정적인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소한 저 사람이 세계 정부에 대해 용서하는 감정을 가질 리는 없겠지. 단 한 톨만큼도.
“여하튼, 유아 시절의 내 몸속에서 처음으로 그 세 가지 힘의 ‘원본’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는 내가 어렸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였는지는 모릅니다. 이후 원본은 안정적으로 분리되어 지금처럼 세 가지 힘이 되었습니다. 마치 피를 분리했을 때 혈구와 단백질과 액체로 나뉘듯 말입니다.”
오늘 라이텔바흐가 가르쳐주려는 부분은 그중 이터널 셀에 대한 것이었다.
“이터널 셀은 일종의 환영체에 가까운 실체입니다. 철저히 신경 세포 및 그 전기 현상에 유착된 채로만 존재할 수 있죠. 제 신체 속의 중추 및 말초 신경계의 모든 신경세포(neuron)과 아교세포(glial cell)의 표면 부와 내부에는 수억 개의 이너털 셀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플레먼은 엉뚱하게도 고래의 몸 위에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공생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이터널 셀은 기본적으로 반(半) 환영체이기에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그냥 생물학적으로 무해하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그들끼리 고유 신호 체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아울러 자신이 기생하는 뉴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죠. 심지어 뉴런과 뉴런 사이의 상호작용, 즉 시냅스에도 이터널 셀의 작용이 다양성을 늘려줍니다. 시냅스 안에서 원래라면 한 종류의 신호가 오갔을 것이, 이터널 셀까지 보조 작용을 하면 수억 배는 복잡한 신호 정보가 오가게 되죠.”
플레먼이 뭔 뜻인지 몰라 동공이 진동할 때, 눈치 좋은 아퀼라가 질문했다.
“결국, 지능이 몇 배 이상으로 상향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맞습니다. 하지만 생각하시는 것처럼 초인적인 기능은 아닙니다.”
라이텔바흐는 계측 컴퓨터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티-게이팅 에너지가 그러하듯, 이터널 셀도 헬게이트와 아무런 상관없는 세계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죠. 물론 신경계를 안정화해 주는 효력은 있습니다. 또 헬게이트 안에서 오랫동안 이터널 셀을 사용하다 보면 자연히 그것들이 부착된 뉴런의 안정성과 복잡성도 최적화됩니다. 두뇌가 레벨업 되는 효과라고 보면 되겠군요.”
그러다 보니 이터널 셀을 사용하지 못하는 평상시 외부 공간에서도 헌터들의 두뇌는 보통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똑똑하다. 아마 이터널 셀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그들의 두뇌는 일반인을 능가하는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그래도 꼭 쓸모가 헬게이트 안에서만 국한되는 건 아닙니다.”
“그건 왜일까요? 혹시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온 지구가 미약하게나마 ‘오염’된 것과 관련된 것인지?”
“꽤 정확하게 다가가셨습니다, 아퀼라.”
라이텔바흐는 피식 웃었다.
“다만 이 경우는 ‘물질 오염’보다는 ‘정보 오염’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겠군요.”
“정보 오염?”
“물리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에서도 정보는 흘러나온다지 않습니까. 헬게이트에서 나온 다크포스의 영향력은 꼭 물질에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시공간 연속체 그 자체에도 영향을 주며, 무엇보다 물질과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정보’를 방출하여 지구 인근을 가득 채웁니다.”
이것이 바로 라이텔바흐가 헬게이트 현상을 계측할 수 있는 비결이다.
“나와 헌터 사회가 발명한 계측 기구들은 기본적으로 전자 기술에 더하여 안티-게이팅 에너지의 운용을 접목한 것입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이 바깥 공간에서도 ‘미세한 오염’과의 상호작용을 유발해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죠.”
무엇보다 정보적 오염은 물질적 오염보다 범위가 넓고 보편적이다. 그래서 헌터웨폰 및 헌터용 보조 장비들도 헬게이트 밖에서 ‘정보적 상호작용’ 정도는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원리가 현세대 헌터들의 공간 계측 및 미래 예지의 기초 패러다임이다.
“계측기를 통해 수합되고 변환된 정보는 엄연히 헬게이트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터널 셀은 이것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헌터들은 바깥에서도 ‘헬게이트와 관련된 사고 활동’은 초인적인 수준까지 시행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는 그냥 좀 더 우수한 인간 정도라면, 헬게이트에 대해서만은 인간을 벗어난 지적 존재가 되는 셈이죠.”
지금도 그 일이 일어나는 중이다. 에어크래프트의 계측기는 북미와 시베리아 전역에 흩어진 보조 관측기들이 모아온 정보를 수신하는 중이었다. 그 정보는 더욱 정교하게 정렬되고 정제되어 라이텔바흐의 눈으로 흘러들었다.
“해부학을 공부하신 적이 없을 듯하여 죄송한데, 눈을 이루는 망막 안에는 세 층의 신경 세포 군집이 존재합니다. 눈이란 곧 뇌의 연장선과 같습니다. 당연히 망막 신경 세포의 몸체와 축삭줄기(axon)의 표면에도 이터널 셀들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헬게이트에서 생성된 정보 오염체의 99%가 일차적으로 흘러드는 헌터의 신체 장기는 눈이다. 고로 그들의 눈에는 엄청나게 강력한 이터널 셀 네트워크가 발달되어 있다. 특별히 그것이 이터널 셀 그 자체의 근원인 라이텔바흐라면. 그래서 그의 특수한 두 눈을 가리켜 헌터들은 ‘감찰안’과 ‘분석안’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붙였다.
“나의 눈은 헌터들이 발명한 모든 계측기와 인간 세계의 슈퍼컴퓨터 모두를 합친 것 이상의 연산력을 사용하는 천연 아티펙트(artifact)입니다.”
플레먼은 두려움이 마른침을 넘겼다. 모든 컴퓨터 정보가 흘러드는 라이텔바흐의 눈이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채도가 높고 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괜히 기분 탓에 느껴지는 착각일까?
“잠깐.”
라이텔바흐가 갑자기 뭔가를 발견한 것인지 멈칫하였다.
“이상하군요.”
그의 뇌에 존재하는 이터널 셀들이 계측 장비들과 공명하였다. 한참의 연산 후에 컴퓨터들에 담긴 정보들이 새로운 형태로 재배열되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두 일반인은 긴장하며 지켜보았다.
“이변(異變)이 벌어졌군. 그것도 이렇게나 빠르게.”
이변이라는 말에 플레먼은 지난번 일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 라이텔바흐의 머리는 팽팽히 회전하였다.
‘에이티피아의 영향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신속해.’
지난번에 벌어졌던 이변은 그래도 며칠 정도는 미리 앞서 읽을 수 있었다. 혹시 에이티피아가 더 많은 ‘면역자’들에게 전이되었기 때문에 이변도 범위가 더 커진 것일까?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예상 밖이었다. 이건 마치 아무런 징조조차 없이 개연성을 무시하고 헬게이트가 강림하는 것 같은 현상이다. 라이텔바흐의 눈을 그렇게 고의적으로 피해 갈 수 있는 이변이란 없다.
“어떤 위험한 실체가 이질적으로 개입한 모양입니다.”
계측기의 지도에 이제 아까와 전혀 다른 정보들이 표시되었다. 1시간 이내에 새로운 헬게이트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진격하는 이 경로를 주위로, 구 캐나다 지대와 알래스카 일대를 중심으로만. 너무도 노골적이고 이례적인 반동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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