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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99회 발레리안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3.08 | 회차평점 0 0

 

 

 

발레리안은 개인적으로 라이텔바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라이텔바흐가 있게 된 가장 중요한 공로는 발레리안에게 있다.

 

 

약 9년 전쯤에 네 명의 헌터 수장은 은밀히 이런 결의를 하였다. 세계 정부 측 연구자들이 지하 실험실에 가둬둔 ‘최초의 완성작’을 해방하자. 각자 목적하는 바는 달랐다. 누군가는 세계 정부 측이 지속적으로 인체실험 병기인 헌터를 양산하여 전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기를 원했다. 그렇게 해야 공급량이 제한되어 헌터들의 영향력과 입김이 강해질 테니까. 또한 누군가는 헌터들의 자체적인 세력 강화를 원했다. 그 실험체를 획득한다면 기존보다 무력 면에서나 기술 면에서나 진보할 것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어떤 수장은 순수하게 불의를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마음에서 이 작업을 결의했다. 그로서는 을(乙)의 위치에 놓인 마당에 직접 세계 정부에 반발감을 표출하지는 못하니 그들에게 골탕 먹임으로써 나름의 효율적이고 안전한 복수를 추구했을 것이다.

 

 

수장들은 직접 나서지는 않았고 대신 자신들 휘하의 헌터들과 그 외의 여러 동맹자들을 행동 대장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그들의 뜻을 집행하던 가장 핵심적 수행원이 바로 당시의 발레리안이었다. 4세대 헌터 중에서 가장 강하고 유능하며 무엇보다 정부 측과 잘 거래할 줄 아는 실리적인 성격이었기에 발레리안은 일을 뒤탈 없이 처리하는 데 적임자였다.

 

 

 

 

 

여차여차하여 이런저런 복잡한 일들이 겹쳤고 다행스럽게 사건은 ‘우연을 가장하여’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헌터들과 그 동맹자들이 배후에 있었음은 은폐되었고 발레리안은 기대대로 몰래 일을 처리하였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가동되던 실험실이 이유 모를 사고로 마비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발 된 재난 경보로 인해 관리자들이 혼비백산하여 자리를 비웠다.

 

 

빈틈이 생기자, 발레리안은 몰래 변장한 채 첩자처럼 침투하였다. 수용소 교도관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제복을 훔쳐 입고 직원증을 도용한 발레리안은 미리 확보한 정보에 의지하여 가장 중요한 곳으로 내려갔다. 각종 보안 장비가 있었으나 그는 미리 준비한 책략으로 그것들을 따돌리고 돌파했다.

 

 

 

 

 

그날 그는 심연을 떠올리게 하는 ‘사망의 음침한 그늘’ 같은 지하 감옥에 들어섰다.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피 냄새, 들러붙은 배변 오물의 냄새, 약품의 냄새에 토사물의 냄새까지, 온갖 분자들의 혼합물이 불쾌감을 극대화하였다. 그는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육중한 합금의 문을 열었다. 관이나 상자를 방불한 비좁은 공간에 한 포로가 결박되어 있었다.

 

 

“이건 좀 충격이군.”

 

 

발레리안은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견디기 어려웠는지 코를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눈으로 보기에 매우 꼴사나운 광경이었다. 포로의 외양은 일단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기억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그 시점에는 서른 살쯤이었으리라.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가 되었을 나이인데, 아직 사회화조차 되지 못한 결박된 포로. 마치 가둬두고 기른 짐승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저 상태로 모든 지식을 흡수했다고?”

 

 

양아버지인 감마 수장의 말에 따르면 이 포로는 인간의 지성을 한계 너머로 진화시키고자 하는 상층부의 탐욕스러운 실험에 희생양이 되었다. 정신이 분열될 정도로 많은 정보와 지식을 뇌 속에 주입받았다고 했다. 듣기로는 스스로 그 실험을 자처했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놀라운 건 보통 사람 같았으면 죽었을 분량의 강제 학습을 견뎌내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인류가 축적한 거의 모든 지식을 강제로 암기하고 소화한 괴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화된 지적 능력과는 별개로 존엄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 실험체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고문과 학대와 인체실험에 쓰이며 마루타가 되었다. 그 실험 중 몇 가지가 예기치 못한 ‘이변’을 일으켜 헌터들을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자원이 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발레리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세계 정부의 그 하찮고 가련한 기술력 수준으로는 헌터들의 몸에 심긴 그 ‘기적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리라. 설령 요행이 겹친다고 해도.

 

 

“신비롭단 말이지.”

 

 

자신들의 힘의 근원이 눈앞의 이 비참한 몰골의 짐승이라는 점을 묵상하자 복잡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얼핏 보아도 얼마나 존엄성을 철저히 짓밟혔을지 그림이 선명했다. 팔다리는 강제로 벌려진 채 사슬로 벽에 결박되어 편안히 잠자지도 못하는 상태이다. 어찌나 피곤해 보이는지 눈가에 눈그늘이 있었다. 수치스럽게 실오라기 한 올 없이 드러난 포로의 몸은 그 비참함을 더욱 가중하였다.

 

 

발레리안은 비정하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포로가 비굴해하건 말건 상관없이 그의 온몸을 차디찬 눈빛으로 훑으며 관찰하였다. 상처투성이에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마치 야생인 같았다. 그런 끔찍한 환경에서 자랐으면 뒤틀리고 왜소한 체구여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육체만은 완성형이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강건한 체형. 아마도 실험 때 우연히 만들어진 ‘그 기묘한 힘’이 그의 발육을 온전한 방향으로 도왔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군.”

 

 

발레리안은 그 불쌍한 포로를 방생하였다. 직접 풀어주기는 했으나 탈출하는 것은 알아서 하도록 방치했다. 포로는 발레리안의 은밀한 도움을 이용해 바닷물에 몸을 맡겼다. 감옥은 마침 섬 한 가운데 자리했고 달아날 곳은 많지 않았다. 발레리안은 해수에 투신한 그 다친 죄수가 헤엄치다가 지쳐 죽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포로는 살아남았고 델타 수장 측 세력에 의해 회수되었다.

 

 

 

 

 

 

 

 

 

 

 

*

 

 

 

 

 

그날의 꺼림칙한 만남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건만, 이제 라이텔바흐는 멀쩡한 상태로 사회화되어 발레리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올랐다.

 

 

모비딕 호의 사령부에 단둘이 앉은 두 사람 사이에 곱지 않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흘렀다. 흑발의 사내와 갈색 머리의 사내는 다리를 꼰 채 책상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발레르.”

 

 

둘 뿐인 자리가 되자 라이텔바흐는 경어체를 거두었다. 신경전이 오가는 사이이기는 해도 사적으로는 그런대로 친밀감이 없지는 않았다. 일단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즉 수준이 맞는 동료이기도 하고.

 

 

“감마 수장께서 시베리아로 널 파견하신 건가.”

 

 

“뻔한 걸 묻는군.”

 

 

“목적은 북쪽의 탑이겠지.”

 

 

발레리안은 퉁명스럽게 혀를 차며 무응답으로 응수했다.

 

 

“충분한 조사 없이 수색하다간 곤란에 처할 수 있다.”

 

 

라이텔바흐는 냉철하게, 그러나 그답지 않게 오지랖을 부렸다.

 

 

“탑의 주인은 네 생각 이상으로 치밀하고 계획적인 존재다. 아무리 네가 강력해도 혼자서는 위험해. 지금 동행 중인 보조 인원만으로는 대응에 충분치 않다.”

 

 

“불필요한 염려는 사양하지.”

 

 

손을 내젓는 발레리안.

 

 

“그렇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신중을 들여 자료를 수집하던 중이었으니까. 동쪽 탑의 잔해를 살피고 오던 참이었다.”

 

 

이에 라이텔바흐의 눈매가 꿈틀거리며 모양을 바꾸었다.

 

 

“동쪽 탑이라고? 그러면 중국 해안 지역을 거쳐서 배를 타고 올라온 건가.”

 

 

 

 

 

얼마 전에 라이텔바흐가 손수 무너뜨린 곳이다. 세미라미스와 담무스, 그리고 니므롯을 처형했던 무덤. 발레리안은 북쪽 탑을 수색하기 전에 혹시나 유용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지 하는 기대로 동쪽 탑의 잔해를 직접 방문했다. 그곳에서 발레리안은 한 가지 가설을 발견했다. 가능성이 매우 미약하기는 해도 고려해 볼 법한 가설이었다. 자신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라면 라이텔바흐는 더 많은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바닷길로 올라온 건가?”

 

 

“원래는 육로로 곧장 북상하려고 했었는데, 변수가 생겨서 말이지.”

 

 

발레리안은 툴툴거리듯 대답했다. 북상하던 중에 북극권 근처에서 가볍게 넘기지 못할 대규모 이변이 감지되었다. 라이텔바흐만큼은 아니어도 감지력과 이해력이 비상한 발레리안은 그 현상들 이면에 담긴 의미를 얼핏 가늠했다.

 

 

헬게이트가 지상에 출몰한 이래로 한 번도 결코 위반된 바 없는 ‘규칙’들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 규칙이 처음으로 여러 번 어겨졌다. 특히 베링 해협에 나타난 그 S+ 랭크 던전은 모든 상식을 깨부순 출현이었다. 난도 자체는 탑들이나 SSS 급 헬게이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예측 가능성이 전혀 없는 돌발 강림이란 점이 걸렸다.

 

 

발레리안은 심각성을 느끼고는 서둘러 진격 방향을 바꾸었다. 육로로 몽골 지역을 가로질러 시베리아로 향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한반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반도에 주둔하던 헌터들의 모비딕 호가 그를 마중하러 나왔다. 그대로 발레리안은 모비딕 호를 대동하여 러시아의 해안을 타고 북극해로 향하였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네가 이 일에 연루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이 들었다.”

 

 

그는 완곡어법 없이 곧장 직구를 던졌다.

 

 

“헬게이트의 행동을 예측하고 간접적으로 조정하거나 유도하는 우리 헌터들의 방식, 그건 네게서 유래한 전법이었지.”

 

 

라이텔바흐를 향해 던져진 날카로운 지적. 라이텔바흐는 태연스레 무표정을 유지하며 무덤덤하게 굴었다. 하지만 발레리안의 냉철함을 알기에 속에서는 그도 긴장감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래.”

 

 

발레리안의 시비는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다. 라이텔바흐가 방법론과 가능성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어떤 헌터도 헬게이트를 역이용하여 이이제이(以夷制夷)를 한다는 역발상을 떠올리거나 상상하지 못했다.

 

 

헬게이트는 본래 법칙상 아무런 예고 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전에 많은 지면에 흩어진 여러 패턴의 ‘정보체 잔흔’이 관측된다. 이는 비유컨대 전자와 같은 소립자가 ‘양자적 확률 구름’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다. 헬게이트 자신이, 혹은 그것을 낳을 유사-심연들이 마치 범인이 범행 전에 사전 예고를 하듯, 다크포스로 변질된 정보 오염체를 뿌림으로써 어떤 곳에서 어떤 헬게이트가 발생할지를 예고해 주는 격이다. 아마 이 현상은 헬게이트나 그것들의 근원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텔바흐는 이 정보 오염체의 확산, 배치, 농도 패턴을 읽어냄으로써 헬게이트에 대한 ‘일기예보’를 하는 방법론을 확립했다. 말이 방법론이지 계측 과정에서 라이텔바흐의 두 눈이 필요하기에 사실상 그 없이는 실행하지 못하는 전략이다.

 

 

나아가 그는 심지어 이 ‘헬게이트 식 확률 구름’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관측함으로써 양자적 확률을 ‘원하는 방향’으로 붕괴하는 기술도 터득했다. 당연히 완벽하게 조정하지는 못하지만, 일정 부분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 지역 또는 B 지역에 나타날 것으로 계측되는 헬게이트를 조정하여 A 지역에 나타날 확률을 높이는 식으로. 이런 식으로 위치뿐 아니라 타이밍이나 난이도까지도 ‘미세한’ 제어는 가능하다.

 

 

물론 라이텔바흐의 이 비술은 만능이 아니며 헬게이트를 마음껏 소환하는 소환술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베링 해협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그에게 혐의를 두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발레리안도 자신이 과도하게 억지를 부린다는 점은 잘 인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쪽 탑의 잔해에서 얻은 데이터로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특정한 조건이 갖춰진다면, 인간 측에서도 헬게이트의 소스 코드에 ‘해킹’을 시행할 수 있다. 단순히 관측을 통해 ‘좀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확률 구름을 붕괴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이미 현현된 헬게이트의 방향성을 조정하는 일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가능성이다. 그런 해킹을 실현한다는 것은 막대한 연산력을 동원하기에 가능성은 한없이 영에 수렴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질의 이터널 셀을 소유한 라이텔바흐라면 혹시 또 모르지.

 

 

 

 

 

“무얼 염려하는지는 알겠지만, 발레르.”

 

 

라이텔바흐는 뻔뻔스럽게 동료의 어깨에 손을 얹어 안심시켰다.

 

 

“아무리 나라도 네가 생각하는 그런 능력은 없어.”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라이텔바흐는 상대의 눈초리가 매우 예리하다고 여기며 속으로 감탄하였다. 역시 발레리안은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다. 그는 어쩌면 진실에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새로이 획득한 능력들을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다. 적과 아군 모두를 완벽하게 속일 필요가 있다.

 

 

“알겠다.”

 

 

미심쩍은 기분을 지우지는 못했으나 발레리안도 속는 척 받아주었다.

 

 

“곧 육지에 내려주지. 나와 동료들도 육로로 이동할 예정이다. 너희 일행과는 다른 쪽 방향으로 갈라지게 되겠군.”

 

 

“좋은 생각이야. 탑이 숨겨진 장소가 어디일지 모르니 여러 팀이 수색한다면 효율성이 높아지겠지.”

 

 

라이텔바흐는 죽마고우를 대하듯 발레리안의 넓고 단단한 등을 큰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런 모습만 보면 상하관계나 라이벌 관계라기보다는, 가끔 한 번씩 다투다가도 화해하는, 친밀한 벗 같기도 했다.

 

 

“하지만 탑을 발견한다면 도움을 청했으면 하는군. 언제든 열려 있으니.”

 

 

“네 도움은 필요치 않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만만치 않을 거다. 동쪽 탑 때보다 구조가 더 진화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해. 공로는 그대가 갖도록 해. 나는 언제든 용병으로 힘을 보탤 의향이 있으니까.”

 

 

라이텔바흐의 말투는 호의를 베푸는 것인지, 아니면 여유로운 승자로서 자만심을 뽐내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발레리안은 매서운 눈매로 그를 쏘아보았다.

 

 

“부담은 갖지 않았으면 해, 발레르.”

 

 

라이텔바흐가 호쾌히 웃으며 말했다.

 

 

“난 그대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으니까.”

 

 

이에 발레리안은 흠칫하다가 곧 안면을 뻔뻔스럽게 바꾸었다.

 

 

“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

 

 

 

 

 

플레먼과 아퀼라는 갑판 위에 있었다. 둘은 차가운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동료 헌터들, 곧 재석과 라울과 테무친은 상대측 헌터들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시설이 참 좋네요.”

 

 

아퀼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확실히 모비딕 호는 최신식 시설이 잘 갖춰진 전천후 함선이었다. 전투 기능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범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훌륭해 보였다. 여객선으로서도 시설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플레먼은 홀로 묵상하며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찬 바람을 맞으며 광활한 바다를 구경하다 보니 이런저런 잡념들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추운데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때 기척 없이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돌아보니 발레리안이 보였다. 작은 편인 플레먼의 키와 대비되는 장대한 신장과 근육질의 몸이 매우 위압적이었다. 근사하기도 하고. 대체로 강한 체격을 지닌 헌터들을 마주하면 항상 이런 기분이 되곤 한다. 커다란 포식 동물 앞에 선 소동물이 된 기분.

 

 

하지만 발레리안의 어조는 매우 부드럽고 신사다웠다. 그것이 위장된 모습이리라는 직감은 느꼈으나 적어도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할 근거는 없었다.

 

 

“꽤 춥습니다.”

 

 

그는 모포 하나를 플레먼의 외투 위에 얹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발레리안 쾨니히스베르크 중장님.”

 

 

“플레먼 에이비슨 씨, 맞습니까?”

 

 

그새 이름까지 조사했구나.

 

 

“네.”

 

 

“잠시 방에서 식사나 함께 하시죠. 정류지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한 시간은 더 걸립니다.”

 

 

훤칠한 그 미남자는 플레먼을 향해 선의의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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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회 발레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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