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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65회 아벨의 후예 Ch 11. 아브락사스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03 | 회차평점 0 0

 

 

 

 

 

 

*

 

 

 

 

 

 

   “오랜만이야.”

   “그래.”

   근사한 야경이 보이는 탑. 두 사람이 여유롭게 분위기를 만끽하며 안온하게 차를 나누었다. 두 사내 중 하나는 루비같이 붉은 머리를, 다른 한 명은 남색 머리를 지녔다. 화려한 외모와 얼굴에 녹아든 관록과 지성미, 그리고 돋보이는 개성 때문에 어디에 내어놓아도 눈에 띌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두 사람의 출신은 달랐다. 붉은 머리 남자는 우주 인류, 남색 머리 남자는 지구 출생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뜻을 함께하는 영혼의 동반자요 최고의 동지였다.

   두 사람은 카이젤의 직속 보좌관 겸 비서관으로 주인의 신뢰를 톡톡히 받는 충신들이었다. 보통의 S 클래스 이상 초인은 자신의 역량을 펼치며 자유롭게 세계를 활보하는 편을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둘은 오히려 좁은 반경 내에서 남을 섬기는 비서직을 택했다. 그만큼 이 둘은 상사에 대한 충성심이 다른 초인보다 월등히 높았다.

   먼저 카이젤의 비서로 뽑힌 쪽은 지구에서 선발된 레반. 이후 우주 인류의 인구수가 충분히 채워지자 데미안도 추가로 발탁되었다. 팀으로 연합된 뒤 둘은 성향이 제법 잘 맞았는지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슬슬 초월 진화의 표식이 가동될 예정이라지.”

   데미안 룩스는 기대감에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들뜬 모습이었다.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어.”

   남색 머리 사내 레반 싱클레어도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

   “초월 진화의 표식은 일곱 표식 가운데 가장 핵심 부위야. 너도 알겠지만, 충성/사상제어/기억의 표식처럼 제어를 위한 목줄이나, 생사/소속/환상의 표식과 같은 보조용 도구들은 대체하거나 바꿔도 큰 문제 없어. 하지만 초월 진화의 표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야 그렇겠지. 인간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이니까.”

   이들이 말하는 초월 진화의 표식은 과거 한창 우주 인류 가운데서 초인 후보자를 발탁하여 각성시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시절에 유용하게 활용되던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90만 명 가까이 되는 초인들이 우주 인류 중에서 후천 각성으로 탄생했고 표식은 분명히 좋은 촉매제 노릇을 했었다.

   다만, 어느 정도 수가 채워지자 초인 각성은 차차 지지부진해졌고 나중에는 추가적인 각성자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초월 진화의 표식이 더는 불필요한 물건이 아니냐는 비판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는 판이었다.

   물론 과거에 맡았던 역할을 배제하고도 유용성은 여전히 있었다. 몇몇 초인들은 전면개방의 시대에 이 표식이 사람들의 창조성과 노동력을 끌어낼 강력한 수단이 되리라고 믿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경제적 고민거리가 사라지면 사람들의 마음도 자연히 게을러질 테니, 끝없이 자아실현과 자기 계발과 사회 발전에 뛰어들도록 채찍질해줄 보상회로는 필요했고 초월 진화의 표식은 이런 작용에 적격이었다.

   다만, 이런 소극적인 역할이 기대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과거보다 의의가 퇴색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카이젤을 지척에서 모시는 두 비서는 초월 진화의 표식의 진정한 의의와 가치가 전혀 다른 부분에 있음을 알기에 회의적 시선에 동의하지 않았다.

   초월 진화의 표식의 본질은 다름 아닌, 일반인을 초인에 근접한 존재로 성장시켜주는 강력한 펌프. 초인으로의 각성을 보조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이는 본 기능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 표식의 진정한 진가는 선택받지 못한 하위권자에게 고속발전의 기회를 선사하는 것이다.

   초인은 본래 영과 혼과 육의 전인적 복합체를 활용할 수 있는 폭과 비율이 초인이 아닌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분명 뇌의 분자생물학적 구조 자체도 고차원적이고 정밀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들은 물질세계를 넘어선 차원에 속한 정보처리기관을 능률적으로 응용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인간을 넘어선 초지능을 발휘 비결이었다.

   초월 진화의 표식이란 바로 그 특징을 모방해낸 일종의 생체 모방 발명품이었다. 고로 초인의 혼과 육체에서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일반인에게까지 확대 적용하여 은택의 수혜자를 넓히도록 설계된, 상향평준화 유도 장치였다.

   물론 여태껏 초월 진화의 표식은 불완전했다. 목표치에 달할만큼 충분히 업데이트되지 못했었기에 기껏해야 초인 각성 자극제 같은 소극적 역할로만 쓰였다. 하지만 이제 안정적으로 초월 진화의 표식을 운용하는 기술이 정립되었다. 위버멘쉬는 그것을 이론화된 과학적 아트로 정립하여 All-of-Self (AOS, 전자아, 全自我)로 명명했다.

   이제 일반인에게도 초인이나 위버멘쉬처럼 자신의 전부분을 온전히 이용하는 방법이 허락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도 자신의 존재를 이루는 구성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그 활용 훈련을 통해 본연의 한계를 넘어 성장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즉 전 인류 차원의 초월 진화가 개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반이 순수한 호기심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싱클레어군.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말이야. 우리는 유례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유비쿼터스-크리에이티비티’의 시대를 말이지. 그곳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벅찬 일이 아니야.”

   유비쿼터스-크리에이티비티.

   즉 도처에 창조성에 내재된 유사 범신론적 우주.

   이것이 도래한 내막에는 지적설계종이 있었다. 카이젤의 원작인 ‘오픈아이드-워치메이커’와 칼리드와 일라이저의 모방작인 ‘블라인드-워치메이커’로 개시된 지적설계종 프로젝트는 비록 짧고 굵게 끝나긴 했으나, 사회 전반에 적잖은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종족 스스로 이종족을 설계해낸다는 괴이한 아이디어, 이 패러다임이 지적설계종 이후로도 모든 인류의 발명품에 깃들었다.

   그 결과, 인간만의 고유 능력으로 여겨졌던 창조 능력은 이제 길거리의 돌처럼 흔해졌다. 사소한 부품이나 미세한 원소 단위 물체마저도 초인 이전 시대의 인류의 상상력을 뛰어넘었고 자체적 창조기능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건물이 외부 조력조차 없이 건물을 낳고 기계는 자신보다 상위인 기계를 제작하며 천체는 스스로 인공 천체를 생산하는 판국이었다. 심지어 피코머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것들은 마치 세균이 무수한 변이체를 낳듯 갖가지 패턴으로 분화되고 다양화되어 전체적인 성능을 상향해나갔다.

   이렇게 도처에 퍼진 창조기능들은 현재는 통일시스템의 지배 아래 완벽히 통제되었기에 인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만 작동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과 고유성에 심각한 위협이 가해지는 결과는 피할 수 없었다.

   막중한 도전의 질문이 던져졌다.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성의 탁월함? 감성의 탁월함? 이제 인공지능은 물론 길거리의 돌들마저도 그 정도는 거뜬히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고로 이제 인간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면 피 흘릴 각오로 부단히 투쟁해야만 하는 시대가 이르렀다.

   초월 진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 옵션이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대표님과 부대표님이 말씀하셨듯 인간만의 특색은 혼과 영, 초자연계에 속한 부위를 소유했다는 점이지. 우리의 존재의의가 부정당하지 않으려면 이러한 특유의 성질을 활용해야 해. 아니, 적극적인 활용 정도로는 모자라. 100%를 넘어서 500% 이상 활용해야 해. 인간 개체 내부의 고유 자원을 극한까지 끌어내야 한다.”

   데미안도 동의했다. 인간의 가치는 ‘인간 특유의 속성과 능력’에 있었다. 고로 그것을 자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위버멘쉬는 가장 존엄하며, 초인들도 어느 정도는 존엄의 기로에 있다고 믿었다. 반면, 초인 이외의 인간들은 아직 멀었다. 그자들이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게 이끌어주기 위해서는 훈육과 가르침을 베풀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어떤 의미로는 참 비참한 시대로군. 능력을 통해서 가치를 입증해내고자 부단히 발버둥치며 애써야 하는 시대라니 말이야.”

   레반은 자조하며 혀를 내찼다. 생명체의 본질은 끝없이 투쟁을 통해서 생을 유지하는 존재라고 누가 그랬던가. 편안하게 안식하는 순간 그 세포는 죽어버린다지. 삶이 곧 투쟁이고 죽음이 안식이라니. 이러한 모순적인 개념이 또 어디 있을까. 과연 삶과 안식이 하나로 합치되려면 어디서부터 개혁해야 한단 말인가. 레반과 데미안의 미약한 상상력으로는 그것을 깨달을 겨를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삶과 투쟁의 일치 하나만 있었다면, 이제는 존엄성 또한 투쟁과 하나가 되어버렸어. 급격히 진화하는 이종족과 기계들을 압도하려면 인간도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해야 하니 원. 자칫 대표님 외의 인간은 모조리 가치를 잃어버릴 판국이야. 그나마 지배층에 속한 우리 초인들은 나으려나.”

   “우리도 그 운명은 어쩔 수 없어. 게다가 초인이란 오로지 능력과 활용도에서만 가치를 발견하는 작자들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도 만족하지 못할거고 사람들의 부족함에도 불만족을 느낄 거다.

   더욱이 이 시대는 더욱 그러하겠지. 인간이 알을 깨트리고 신적 존재로 성장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우리가 만든 발명품 앞에서 주인으로서의 존귀함을 증명할 수 없어.”

   데미안은 이러한 이유로 전 인류의 초월 진화란 하나의 대안책이 아닌 피할 수 없는 길임을 알았다. 그는 이것이 역설일지언정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고 확신했다. 레반은 이와 관련해 데미안이 놓친 또 하나의 성찰을 내놓았다.

   “룩스, 내 생각에는 대표님 자신도 경각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그를 보좌하면서 보아왔는데, 그는 자기 자신의 역량 진보 속도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보였어. 우리 눈에는 그토록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녔는데도 말이야. 어쩌면 그도 자신의 전부를 다 끌어내지 못해 안달이 된 게 아닐까 싶어.”

   “흠.”

   “가설을 세워보았아. 어쩌면 인간 전체의 성장이 성취되지 않는 한, 위버멘쉬의 성장에도 모종의 제약이 걸리는 건 아닐까 싶어.”

   레반은 상상력의 나래를 자유로이 펼쳐보았다.

   “너도 나처럼 대표님께 배워서 잘 알잖아. 기본적으로 혼(魂)이란 것들은 상위 차원에 속한 실체로서 분자 오비탈처럼 서로서로 겹쳐져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천체혼도 그렇고 동물혼들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게 증명되었지. 그렇다면 인간혼도 개체별로 분리된 상태로 존재하는 동시에 모종의 ‘공유 화합체’의 상태로도 실존하는 건 아닐까?”

   “일리 있는 가설이네.”

   데미안은 레반의 괴이한 가설에 흥미를 느껴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그렇게 판단할 근거는 충분해. 초인 등장 이전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지. 하나의 기발한 사상이 한 사람에 의해 창안되면 전 인류 차원의 각성으로 이어지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단순한 사상의 확산만으로 그러한 변혁을 다 설명해내긴 어려우리라. 어쩌면 한 영혼 내에서 발생한 개화(enlightment)가 혼들의 차원 속에서 생성된 혼의 연합체를 통해 인류 전체로 확산된 영향은 아니었을까?

   “일개 일반인들의 개화도 그런 도미노 효과를 낳을 수 있다면, 하물며 우리처럼 전인적 자아를 충분히 활용하는 개체들의 각성이라면?”

   “공명의 폭도, 확산의 여파도 이전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겠지.”

“위버멘쉬라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그 상호작용은 양방향으로 작용할 테니 상급자의 각성이 군중의 위대한 각성으로 이어진다면, 그 반대 방향의 혜택도 성립하겠지.”

   어쩌면 위버멘쉬의 진정한 의도는 전 인류의 초월 각성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역량 또한 한계 너머로 증폭시키려는 계획이 아닐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던가? 타인을 가르쳐본 자만이 비로소 자신의 이해력 또한 완성할 수 있다고. 어쩌면 그 성찰 속에는 단순한 ‘이해력’이라는 차원 이상의 깊은 함의와 진리가 담겼는지도 모르겠다. 인류를 가르침으로서 스스로 개화하는 자. 어쩌면 그것이 위버멘쉬의 칭호를 소유한 자의 진정한 본질일지도?

   “아브락사스……, 드디어 우리의 왕이 온전한 아브락사스(Abraxas)의 본체로 승천할 그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군.”

   “공감이야. 부디 그 날을 우리 생에 목도할 수 있기를!”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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