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67회 아벨의 후예 Ch 11. 아브락사스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4.30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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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현의 특수 속성이라면 지금보다도 효율성이 높아질 텐데.”
문득 천씨 형제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형은 일반인임에도 놀라우리만큼 신체 특성이 특이한 탓에 초능력의 잔흔을 몸에 머금을 수 있다지. 그리고 동생 쪽은 처음에는 낮은 단계의 초인이었지만 모종의 정신적 충격을 통해 자신의 클래스를 증폭시켰다던가? 이전에는 F 클래스에서 D 클래스로, 그리고 이번에는 D 클래스에서 B 클래스로 승격했다지.
“마침 내게 꼭 필요한 한 쌍이로군. 저 두 이레귤러의 비밀을 더 연구한다면 온 인류의 초월 각성을 이루는데 지대한 힌트가 될 텐데 말이지. 아쉽군.”
어디 인류의 발전뿐이랴. 카이젤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발판이 될 것이 자명했다. 일반인인 천재현조차 초능력을 머금게 할 특성이라면, 그 원리를 해석해 위버멘쉬인 자신에게 접목하는 데 성공한다면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게다가 카이젤에게도 천수현과 마찬가지로 형제와의 특이한 관계라는 이례적 특성이 존재한다. 특이 케이스라고 봐도 좋을만큼 매우 진한 유대감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천수현의 특이성의 비밀을 알아낸다면 H-self의 완성도 앞당길 수 있다.
‘그 둘이 아닌,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같단 말이지.’
마음속에서 야금야금 탐심의 음성이 올라왔다.
그 순간, 마침 공교롭게도 누가 개입했는지 시스템 상에 어느 녹화 영상이 재생되었다. 리온의 설교 동영상이었다. 카이젤은 인상을 찌푸렸다. 세상의 모든 자료와 기록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통해 그의 뇌리 내에 데이터로 저장되긴 했다만, 하필 무의식이 이 시점에 그 자료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다니.
‘모든 것을 인지한다는 건 이럴 때는 곤혹스럽군.’
사실 그도 이 어린 선지자의 쓴소리를 듣기를 마냥 싫어하지만은 않았다. 괴로우면서도 자꾸 듣게 된다고 해야 옳으려나. 매일 업로드되는 설교를 나름 표정 구겨가면서도 꾸준하게 들어왔다. 하필이면 지금 재생된 영상의 설교 내용은 열왕기상 21장에 대한 강해였다. 엘리야 대언자의 맹렬한 꾸지람이 현대인인 리온의 입을 빌려 생생히 전달되었다.
‘이미 넘치도록 가졌으면서도 갖지 못한 것을 빼앗으려는 탐심, 그 악독한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어린 대언자가 자신의 바로 옆에서 자신을 꾸짖는 듯한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전인격적인 회개를 촉구하는 그 청년의 훈육에 반응할 마음은 아직 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자의 선지자적인 선포는 이상하리만큼 강렬하게 마음을 움직이고 찌르는 위력이 있었다. 동생인 윤혁과는 또 다른 방식의 책망이었다.
“쳇, 하필.”
마음놓고 천씨 형제의 소유를 탐하려던 욕망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나봇의 포도원인가?’
내심 아쉬움이 들긴 했다. 이레귤러를 버리긴 아깝지 않은가. 이미 루미니아를 통해서는 ‘통제’의 과학을 완성시켰다. 크리슈나를 통해서는 분신들에 ‘개성’을 입히는 법을 완성했다. 이제 딱 천수현만 확보되었다면 인류와 자신의 온전한 ‘승천과 각성’을 끌어낼 비결을 알아냈을 텐데.
“아쉬운 대로 이 대신 잇몸을 써야지. 분신들을 조교로 이용하는 수밖에.”
바로 이 시각, 1천 경(千京)기의 클론솔져들의 육체가 조달되었다. 그 몸체들은 메타뉴런에서 파생되어 생성된 인공 두뇌 파츠와 결합되는 중이었다. 이들이 조립되면 곧 인류의 성장을 도울 조수들이 확보된다.
더욱이 크리슈나로부터 얻어낸 ‘개성을 만들어내는 비결’ 덕에 클론솔져들은 완벽한 통제에 놓인 상태로도 완벽한 개성과 독창성을 보유하게 되었다. 왼쪽과 오른쪽을 동시에 바라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나하나는 초인에 못 미치지만, 카이젤의 영감을 전수받을 수 있고 자율적으로 창조적 성취를 이뤄낼 수도 있고, 나아가 본체와 더불어 모든 분신들이 경험과 수련을 공유할 수도 있다.
이들은 완성되는 즉시 2등 시민들의 사회 사이사이에 스며들 예정이다. 군인의 신분으로써, 동시에 비밀경찰로서, 훈련을 돕는 교관의 신분으로써. 우주 인류의 대대적인 각성을 이끌어내도록 다방면으로 교육을 베풀 것이다.
“1천 경 기……, 활성화되지 않은 메타뉴런으로는 이 정도 수효를 운용하는 게 한계인가? 무한생산은 현재로서는 무리겠군. 하지만 이것도 뭐 나쁘진 않아.”
시간이 해결해주리라고 믿고 그는 당장 확보된 샘플들부터 체스말로서 투입했다.
*
리온은 기대감 섞인 웃음으로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두 명의 젊은 남자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였다. 둘 다 귀하게 자라난 듯한 인상이었다. 훤칠한 외모도 나름 인상적이지만, 순수해 보이는 인상이 도드라지는 감상을 남겼다.
“만나서 영광이에요, 목사님. 저는 천재현입니다.”
천재현. 나이는 리온 자신보다 훨씬 더 많다고 들었건만 겉보기에는 이십 대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동안이었다. 호감형의 인상과 든든해보이는 체격이 돋보였다. 아마 운동을 해서 그렇겠지. 그가 크로스솔져의 일원이라는 점은 윤혁에게 이미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전사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람은커녕 벌레 하나 해치지 못할 것마냥 착해 보였다.
‘저 사람이 정말로 신수들을 무참히 때려죽였던 전사라고?’
잠깐의 쓸데없는 상상에 빠진 리온은 이내 최대한의 예를 갖춰서 응대했다. 이내 또 다른 남자가 리온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재현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훈훈한 젊은이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유지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지현은 척 보기에도 과묵해보였고 엘리트의 인상이 풍겼다. 부잣집에서 자라나서인지 귀티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겸손하고 온유한 성향으로 보이긴 했지만 출신에서 나오는 여유로움과 안정감은 숨길 수 없었다. 더불어 꽤 박학다식해 보였다. 하지만 삶의 고통이나 고생길은 전혀 겪어보지 못한듯했다. 섣부른 판단일수도 있으나 적어도 첫인상의 통찰로는 그래보였다.
‘온실 속 화초인가?’
지구 교회는 최근 리온을 돕기 위한 원정대를 모집하였다. 그리고 교인들 가운데 이 두 청년이 자원하였다. 그러자 원로 목사들은 내심 놀랐다. 아무래도 부유한 배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안락함과 권리만을 바라보느라 위험한 여행에 나서지 않으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사실 그들의 생각은 몇 가지 측면에서 오판이자 선입견이었다. 먼저, 그들은 현시대의 보편적 부유함을 간과했다. 누구든 인류 경제 시스템 안에만 속해있으면 과거 시대의 그 어떤 부자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지구 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물의 끈질긴 유혹과 그로 인한 영적 게으름의 함정은 비단 재현과 지현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이 각오해야 할 진정한 손실은 경제적 자원이 아니었다. 지구로부터의 축출이 진짜 기회비용이었다. 요새 돌아가는 정세가 영 심상치 않았다. 현재 교인들은 내심 자신들이 지구를 영영 떠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즉 가만히 앉아있어도 쫓겨나게 생긴 판이다. 이런 마당에 굳이 먼저 제발로 나가줄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가만히 머물러 있다가 인류연합의 명령으로 축출되면 보상으로 막대한 경제적 혜택과 지구 밖에 있는 부동산이라도 받겠지만, 제 발로 나갔다가 못 돌아오는 경우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위기의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지현과 재현은 무서울 게 없었다. 둘은 지구 거주권과 관련해 안전망과 보험이 있었다. 그들의 친족 가운데 인류연합 간부가 있었으니 최소한 쫓겨날 걱정은 없었다.
또한 재현의 경우 안전에 대한 염려는 극복한 지 오래였다. 그에게 목숨이나 몸에 대한 걱정은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훨씬 더 치열한 전장에서 생사를 걸었던 자였다. 폭주 문제로 전전긍긍하며 고민과 씨름한 적도 최근 있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쉬운 우주 순회쯤이야.
지현은 재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생한 경험은 적었지만, 그렇다고 올바른 사리 분별을 못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그는 미래의 고초를 나름대로 시뮬레이션하여 마음속으로 철저한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모두의 예상을 깨트리고 가장 잃을 것이 많아 보였던 둘이 리온의 편이 되겠노라고 나섰다. 원로 목사들은 리온에게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 권면하도록 권유했다. 이제 최종 결정권은 그의 손에 들리어졌다.
솔직히 처음에는 후보자들이 썩 탐탁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난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견딜 만큼 마음이 강건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만나보지도 않고 편견으로 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었다. 리온은 둘을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시험도 해볼 겸 약속을 잡았다.
막상 현장에서 대면해보니 두 청년에게서 나오는 든든한 인상과 고운 성품, 그리고 겸손하고 선량한 태도를 보고 마음이 혹하였다. 특히 재현은 마치 커다란 개가 사랑하는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기라도 하듯 목사 리온을 향해 존경심을 뚝뚝 흘리는 눈빛으로 호감을 드러냈다. 애송이 목사 주제에 한참 나이도 많은 분께 존경의 시선을 받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리온은 난처해했다.
‘냉정히 내치기라도 하면 토라져서 꼬리를 축 내릴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좋은 인상만 보고 섣불리 판단할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감정으로 결정할 문제도 아니었고. 종교개혁은 이전 선교 여행보다 더 위험한 임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즉 손에 쟁기를 쥐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이 임무에 적합하지 않다. 저 착한 두 남자에게 서운함을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엄격한 평가는 불가피했다.
“식사 대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리온은 후히 베풀어준 둘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번 임무에 여러분을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둘의 얼굴이 수심으로 물들었다. 예상치 못한 경우의 수는 아니었으나 막상 거절당하니 당황스러웠다.
“목사님……, 저희에게 혹시 미덥지 못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지적해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고칠겠습니다.”
둘이 나름 항변 겸 설득을 해보았으나 리온은 완강했다.
“그 길은 가시밭길이 될 것입니다. 무관심과 외면으로 인해 낙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호응을 받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위험합니다. 인류연합의 화살을 정면으로 받게 되겠죠. 게다가.”
리온의 머릿속은 그가 계산한 여러 시나리오들로 인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할 이단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정통 교회 내에도 개혁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을 겁니다. 직언을 날리는 즉시 필히 엄청난 반대와 직면하게 될 겁니다. 자칫하면 시스템의 배척을 받을지도 모르죠. 과장 섞어서 심하게 예견하면 숙청될 수도 있고요.”
그는 냉담하게, 현실을 하나하나 지적해주었다.
“쉽게 말해서 자칫하면 여러분이 누려온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
재현과 지현이 착하고 친절한 사람인 건 리온도 단숨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착한 성품 하나가 훌륭한 십자가 군병이 될 자격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주님을 위해 고난을 각오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기를 철저히 부정하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지 않는다면, 오롯이 하나님께 운명을 위탁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걸려 넘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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