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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78회 아벨의 후예 Ch 13. 에고이즘과 알트루즘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26 | 회차평점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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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바로 그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은 문을 조심스레 열어주었다. 손님은 다름 아닌 이 집식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청년들이었다. 그것도 한꺼번에 서른 명도 넘게 인원이었다. 그들은 공손히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린 후 성한과 윤혁의 행방을 물었다. 유진은 곧장 방에서 윤혁과 성한을 데리고 나왔다.

   “성한 아저씨, 안녕하세요.”

   신해가 대표로 인사를 한 뒤 곧바로 윤혁 쪽을 바라보았다.

   “윤혁아.”

   “신해 형? 무슨 일이세요.”

   “네 옛 동료를 만나야 할 것 같아. 우주에서 합류했다는 사람 말이야.”

   스테판이라는 말에 윤혁은 얻어맞은 듯 번쩍 정신이 들었다. 복잡한 의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왜 하필 크로스솔져들이 이 시점에 스테판을 찾지?

   “스테판씨는 왜?”

   “미안하다. 사정이 있어서 사연은 말해주지 못할 것 같아.”

   이것은 고의적인 은폐가 아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통일시스템은 크로스솔져들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의 범주에까지 금제를 걸어두었다. 솔직히 그런 통제 상황에 지금 윤혁을 찾아온 것도 도박을 감수한 셈이었다. 일단 경합과 관련되어 정보 유출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대화는 삼가야만 했다. 다만, 스테판만큼은 꼭 만나고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지금 스테판에 다가갈 면회권을 가진 건 크로스솔져들의 지인 중에서는 윤혁뿐이다.

   “부탁할게.” 

   케리도 정중히 말하며 윤혁의 눈을 응시했다.

   “아빠?”

   윤혁은 아빠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했다.

   “다녀오렴.”

   잠시 머뭇거리던 윤혁은 청년들에게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이내 그들은 근방에 있는 스테판의 개인 숙소로 향했다. 윤혁은 가는 내내 불편감을 지우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인류연합 측에 주목을 받는 크로스솔져를 무려 서른 명이나 대동하여 가다니. 그것도 하필 면담자가 스테판이다. 그도 마찬가지로 주목받는 요주 인물 아니던가.

크로스솔져들도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가는 도중에 통일시스템이 간섭할까 봐 불안해 전전긍긍했다. 그 괴물 같은 기능의 범우주적 시스템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온갖 물리적 작용과 정신적 작용을 일으키는 일마저 가능하니까 안심할래야 안심할 수 없었다. 솔직히 목숨도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판이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윤혁이 염려스레 물어보자 크로스솔져들은 묵묵히 눈짓만 하였다.

 

 

 

 

 

 

 

 

*

 

 

 

 

   도착 직후 그들은 지체 없이 면담자를 만날 수 있었다. 스테판은 취침 중 깨어났는지 부스스한 차림으로 그들을 맞아주었다. 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니긴 했으나 여유가 없고 기회가 없으며 사안의 심각성은 크니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미 스테판도 뭔가를 알고 있는지 크로스솔져들이 주고받는 의미심장한 눈짓을 통찰하여 이해하는 듯했다. 아마 모종의 방법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정보 전달이 된 것일까? 윤혁으로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알 도리가 없어 난감했다. 뭔가 사건이라도 발생한 것일까?

   “스테판.”

   케리가 크로스솔져 대표로 상대를 불렀다.

   “무슨 용건이오?”

   “미래에 대해서 상의해야 합니다.”

   “당신들이 말한 미래가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의미요?”

   “아마도요. 일단은 그렇게 생각해주시죠.”

   마음껏 시원하게 긍정하지 못하고 에두르는 이유는 역시나 감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스테판도, 크로스솔져들도 불편함을 불편함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자리에 모인 서른넷은 뜻을 함께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나머지 서른두 명의 크로스솔져와는 정치적 판단에 관하여는 뜻을 달리하였다. 신앙 노선이 똑같아도 이러 식으로 갈림이 생기는 일은 희귀한 현상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 속을 살아가는 이상 실용적인 차원에서의 정치적 판단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같은 믿음을 가진 이라도 항상 그 판단에 있어 하나가 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당신과 협력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윤혁의 친구이니까요.”

   케리는 이번 경합 때 스테판을 도울 의사를 밝혔다.

   “그 말인즉슨.”

   “네, 여기 모인 이 친구들은 저처럼 아직 강성한 씨 일가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마땅히 아저씨가 베푼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그들은 형을 도우려는 윤혁을, 그리고 그 윤혁을 돕기로 맹약한 스테판을 믿어줄 작정이었다. 그 둘이 카이젤 라흐블뤼크라는 거대한 존재의 마음을 변화시킬 때까지, 기약이 없더라도 곁에서 힘을 보탤 생각이었다. 설령 그 끝이 실패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그렇기에 그들은 이번 경합에서 과감히 스테판의 보조인원으로 합류할 생각이었다. 다른 이레귤러 참가자들 가운데도 훌륭한 신앙인으로 보이는 이가 제법 존재하긴 하다만, 그래도 스테판의 신의와 잠재력에 걸어보기로 했다.

   “물론 우리 전부가 당신과 함께하지는 못합니다.”

   후보자 한 명당 허용되는 보조인원의 수는 스물넷이다. 그러니 산술적으로 봐도 이곳에 모인 서른넷 중에서 최소 열 명은 다른 후보에게 배당될 것이다. 그편도 사실 나쁜 시나리오는 아니다. 스테판에 더해 다른 후보자의 가능성도 함께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이니까.

   “어쨌건 최대한 당신 편에 힘을 보태주겠습니다.”

   “고맙소.”

   “다만, 정작 궁금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신해가 나서서 스테판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물어보시오.”

   “당신이 내리고자 하는 답은 무엇입니까?”

   많은 말이 생략된, 함축적인 질문. 풀어서 해석하면 의미는 이러했다. 당신이 경합에서 승리한다면 어떤 소원으로 빌 계획인가. 직접 드러내놓기에 부담이 될 질문으로 이 또한 실례는 실례였다. 하지만 한 번쯤 스테판의 가치관을 확인해볼 필요는 있었다. 

   “당장 성급하게 정할 수는 없소.”

   “생각해둔 바는 있습니까?”

   “답을 내리는 건 내가 아니오. 우승할지도 모르겠지만, 우승하더라도 나는 최후의 그 순간 성령이 내려주신 답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오.”

   지극히 옳은 말이긴 했지만 면접관에서 흡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다. 일단 모호했다. 하지만 따져 묻기에는 이미 실례를 너무 많이 한 형국이었다. 게다가 스테판은 장난기 없이 진지했다. 더욱이 곤란함을 회피하려는 기색도 아니었다. 크로스솔져들은 스테판을 믿어도 좋을지 다시금 고민했다.

   “소원과 별개로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해드릴 수 있소.”

   스테판의 입에서 결연한 결심이 흘러나왔다.

   “내가 맡은 의무, 내 소명, 그리고 친구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소.”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당신을 습격할지라도?”

   “물론이오.”

   과연 저 남자의 강직한 정신이 카이젤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와 대면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비틀어질까. 그는 결의를 완강히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의 태도에 변화를 보일까? 변한다면 그 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이 될까. 청년들은 진중히 숙고해보았다.

   깊은 고민 끝에 결론이 난 케리가 스테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결전의 날 다시 뵙도록 하죠. 곁에서 지켜보겠습니다.”

   “고맙소.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소.”

   “능력이 닿는 한 당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다만, 처음 품은 결의와 마음가짐을 잊지 마시죠. 이 또한 지켜보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다진 스테판은 34명의 동역자 하나하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윤혁은 현재 정확히 어떤 상황이 진행되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더 캐묻지 않았다. 대장부들 사이에서 어떤 운명적인 결심과 합심이 이뤄졌다. 관찰자로서 그는 조용히 마음속에 이 일을 새겨두었다.

 

 

 

 

 

 

 

 

*

 

 

 

 

   수술 당일이 이르렀다. 윤혁은 긴장으로 뻣뻣해진 낯빛을 띤 채 실험실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대기했다. 방은 한없이 넓었다. 일반적으로 흔히 떠오르는 실험실의 풍경과는 상당히 달랐다. 초현실주의 화풍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형의 미적 취향이 반영되어서인지 온갖 기하학적인 패턴과 비현실적 시공간 연결이 두드러졌다. 현란하고 복잡한 나머지 눈이 부셨다.

   ‘설마 이곳이 상위 차원인 건 아니겠지?’  

   사실은 생물체로서의 본능이 이곳이 삼차원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감각으로 어림짐작컨대 차원 개수도 최소한 몇천 이상은 넘어 보였다. 당연히 윤혁의 눈으로는 실체의 전부를 관측할 수도 없을 터였다.

   문득 섣불리 수술을 승낙한 것에 대한 후회감이 다시 밀려왔다.

   뒤숭숭한 기분으로 잡생각을 곱씹던 중, 재혁이 실험실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그는 평소의 근사한 제복 차림이 아닌 흰색 환자복 차림이었다. 윤혁과 똑같이. 차이가 있다면 몸이 좋아서인지 헐렁함 없이 근육 위로 딱 달라붙는 모양새였다.

   “무서워?”

   그는 동생 곁에 다가가 상냥한 어투로 넌지시 떠보았다.

   “조금은.”

   “만약 하다가 못 견딜 것 같으면 바로 말해. 그러면 그만둘 테니까.”

   “난 그렇게까지 나약하진 않아.”

   “나약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재혁은 좀 더 풀어서 정보를 알려주려다가 멈추고 입을 닫았다. 직접 보는 편이 이해하기에는 용이하겠지. 동생이 과연 저 엄청난 압박감을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까? 아무리 작은쪽 카운터파트라지만 엄연히 메이저급 초지능체의 일부분이니 강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분명 거대하고 짙은 데이터가 몸에 스며들 터이다. 괜히 허락한 것인가 염려되어 후회심도 들었다.

   “자, 이제부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재혁은 윤혁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살며시 귓속말로 속삭였다.

   “멀미가 날 수도 있으니까.”

   그는 동생의 이마에 살포시 손가락을 얹고는 지그시 눌렀다. 단순 몸짓이 아니었다. 곧 두 사람이 체결했던 커버넌트가 실체로서 재활성화되었다. 그 여파로 모종의 ‘초감각 전이 현상’이 발생하였다. 재혁이 지닌 현자의 눈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윤혁의 눈에 덮어씌워졌다. 윤혁은 화들짝 놀라며 경악했다.

   “헉!”

   “말했지. 정신 단단히 붙들어 매라고.”

   도무지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감각의 향연이 쏟아졌다. 윤혁의 눈앞에 고차원들이 벌거벗겨진 채 고스란히 펼쳐졌다. 시공간 연속체를 덮는 11차원의 칼라비-야우 차원, 그 위에 존재하는 벌크, 그 위의 하이퍼 벌크, 벌크 위에 더 높은 벌크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연쇄가 반복되었다. 흡수되는 정보량이 뇌 붕괴를 일으킬만큼 폭증했다. 시야도 붕괴되는 듯했다.

   ‘상위 차원? 이게 진짜 모습?’

   한 영역에서 더 높은 차원으로. 이 같은 도약이 무수히 반복되었다. 차원수가 몇 단계까지 증가하다 멈출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초감각 덕분에 눈에 선명히 보이는 상위 벌크의 살풍경한 본 모습. 현란한 기하학의 향연이었다. 이루 표현조차 불가능했으며 뇌 속에 다 담아낼 수도 없었다.

   이윽고 발밑 쪽으로 투명한 유리처럼 생긴 물질이 바다처럼 깔린 모양이 보였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 아래로는 시뮬레이션 우주들이 관측되었다. 예전에 헬리웃이 보여주었던 방대한 S-unvs들조차도 지금 보는 광경에 비하니 우주 속의 먼지 한 톨마냥 하찮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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