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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87회 아벨의 후예 Ch 15. 의사, 유모, 붉은악마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30 | 회차평점 0 0

 

 

 

 

 

 

*

 

 

 

 

 

 

   실험 첫날, 윤혁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의료용 캡슐 안에 가만히 눕는 것뿐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작업을 하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기계가 분주하게 돌아가는 모양을 보아 심장에서 뭔가 변화가 벌어지기는 하는 듯했다.

   실험용 캡슐 안에 있을 때는 알몸으로 있어야 했기에 약간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로봇들이 왔다 갔다 하며 윤혁의 신체에서 무언가를 채취해갔다. 형에게 이식 수술을 받았던 때처럼 특이한 재질의 선들이 몸 속에 박혔다. 문자 그대로 실험체가 된 기분을 실컷 느낄 수 있었다.

   실험 도중 종종 깊은 피로감이 몰려오더니 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꿈속에서는 시뮬레이션 우주 같은 부류의 다른 차원들이 보였다. 그 속에서 무슨 현상이 벌어졌는지는 기억 나지 않았다. 그렇게 윤혁은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인터갤럭틱 호는 태양계의 관문들을 벗어나 우리 은하의 중심으로 곧장 워프했다. 그곳에는 은하와 은하를 잇는 거대 인공 웜홀이 열려있었다. 수억 개의 항성계가 통과할 만큼 폭이 드넓은 웜홀이었다.

   그 중심형 웜홀은 그 자체로도 거대한 은하 간 연결 게이트이기도 했지만, 웜홀 내부에서도 워프 행위가 허락되는 일종의 특수 공간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게이트의 효과와 워프의 효과를 중첩하는 일이 가능했다. 인터갤럭틱 호는 Galaxy-0 즉 우리 은하와 저 너머의 외부 은하인 Gal-X-23,209,123 사이에 놓인 중심 웜홀 통로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통로를 횡단하는 도중에도 여러 번 워프도 하였다.

   웜홀 통로에서 벗어나 좀 더 축의 원심방향으로 나가자 3차원 공간을 초월한 상위 차원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이제 우주선은 고차원의 벌크 공간을 내부를 유유이 헤엄쳤다. 그곳은 테서렉트 아키텍쳐와 가까운 위치라 그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곳이었다.

   이에 맞춰 인터갤럭틱 호의 거대 연구 시설은 윤혁의 심장이 된 알트루즘을 일부분 활성화시켰다. 본래 아무 시설의 개입도 없다면 행성 하나 범위만큼만 알트루즘의 영향력이 닿겠지만, 연구 시설과 중심 웜홀, 그리고 테서렉트 아키텍쳐가 합세하자 그 범위는 광대한 영역으로 늘어났다.

   “크으으윽.”

   이내 순간적으로 강렬한 통증이 심장 부근에서부터 발생하였다. 외상이나 중독으로 인한 병리 현상은 아니었다. 감염으로 인한 고통과도 달랐다. 실체를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괴이한 고통과 불안감이 몸을 엄습했다.

   윤혁은 가까스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가슴 부근의 살갗에서 모세혈관이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이 선히 보였다. 얼굴도 뜨거움에 후끈 달아올랐다. 팔다리가 저려왔다. 이내 더 많은 인공 매질 실이 전신으로 파고들었다. 피코머신이 담긴 액체가 몸에 스며들었다. 모종의 정화 내지는 안정화를 위한 인터벤션이었다.

   대략 한두 시간이 지나서야 몸 전체가 진정되었다. 세포 하나하나를 좀먹을 기세로 엄습하던 고통은 어느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몸에 생긴 자잘한 상처들도 말끔히 없어졌다. 체내에 일시적으로 전이된 불확정성과 오류가 해소되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재혁이형 말대로였어.’

   이후로도 비슷한 현상이 세 차례나 더 반복되었다. 변주곡을 연주하듯 점점 더 복잡하고 강렬한 패턴의 향연이 이어졌다. 와중에 실험 장비들은 윤혁의 몸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낱낱이 기록했다.

   고통의 전이와 재생을 한참 반복한 끝에야 하루치 순례길은 마무리되었다. 탈진한 윤혁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고 숨을 몰아쉬었다. 메디컬로이드들과 태헌이 곁에서 그의 몸 상태를 지켜보며 치료를 도와주었다.

   “윤혁아.”

   태헌은 실험이란 게 설마 이런 종류일 줄 미처 몰랐기에 몹시 당황했다. 무리는 아니었다. 그의 지식수준으로는 알트루즘 같은 초현실적인 영역의 실체를 알 턱이 없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그저 일개 연구원으로서 시스템의 잔일을 수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우주까지 와서 맡은 임무가 하필이면 인간 실험체, 그것도 친한 동생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며 관리하는 일이라니.

   “이럴 줄은 몰랐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별문제 없을 거예요.”

   “보안 때문에 사정도 알 수 없으니 참 답답하네.”

   그리고 태헌으로서는 윤혁이 겪은 신체적 변화도 의문스러웠다.

   “불사신이라니, 도대체 어떤 실험을 당했길래…….”

   윤혁은 더 알려 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태헌이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서 좋을 게 없다. 최대한 초인들이 벌이는 일과는 거리를 멀리 두는 편이 낫다. 윤혁은 태헌의 팔을 붙잡고 애써 안심시키려는 제스처를 하였다.

   “어차피 이렇게 엎질러진 물, 어쩔 수 없잖아요. 저도 계약의 의무가 있고, 선배도 연구자로서 임무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옆에 같이 있어만 줘요. 이럴 때 말동무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안심될 것 같아요.”

   그러자 태헌은 무거운 한숨을 머금고 윤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알았어. 환자와 정서적 교류 관계를 형성하는 일도 엄연히 내 임무니 당연히 그래야지. 이곳에선 명령받는 입장이라 별다른 도움은 못 주지만, 대화라도 나누는 게 네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면 그렇게 할게.” 

   그렇게 두 사람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윤혁의 아픔 위에 간단한 심리적 마취를 놓았다.

 

 

 

 

 

 

 

*

 

 

 

 

 

 

    무려 열두 시간 동안의 험난한 실험을 무사히 다 마친 윤혁은 옷을 갖춰 입고 숙소로 돌아갔다. 우주선 넓이가 워낙 거대해서인지 없는 시설이 없었다. 덕분에 그 어떤 호텔이나 관광지도 부럽지 않게 안락하고 편안했다. 고생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루디아가 윤혁을 보자마자 걱정하며 얼굴을 살폈다.

   “너 얼굴이 핼쑥해졌어. 살이 빠진 건 아닌데 기력이 없어 보여.”

   “그 정도로?”

   “거울이라도 봐.”

   루디아는 안쓰러워 하는 마음을 담아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곧바로 체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불확정성 전이로 인해 일그러졌던 피코머신 작동 알고리즘이 신속히 복원되었다. 곧이어 몸의 기력과 편안함도 회복되었다. 편안감에 압도된 나머지 윤혁은 긴장을 탁 풀고 루디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편하면 계속 이렇게 있어도 좋아.”

   “고마워. 그리고 미안.”

   “난 네가 안 아픈 게 더 중요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루디아를 향한 윤혁의 정서적 의지감은 꽤 깊어진 상태였다.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을 무렵 그 무게를 거들어주고 위로해줄 친구만 한 존재가 또 있을까. 더욱이 둘이 서로 함께 나눈 시간이 길었고 이를 통해 쌓은 신뢰감이 워낙 깊었다. 이것이 커버넌트 오브젝트와 알트루즘의 상호작용이 더욱 효율적으로 일어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앞으로 신세 좀 질 것 같아.”

   “언제든. 힘들면 얼마든지 내게 기대줘.”

   지친 몸을 추스른 후, 윤혁과 루디아는 같이 산책 겸 우주선 안 편의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카페, 상점, 놀이터, 공원, 영화관, 운동장 등 없는 것이 없었다. 하루 동안 고생한 윤혁에게 상을 주겠다며 루디아는 그를 여기저기 데려가서 기분 환기를 시켜주었다. 잠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둘은 평범한 그 또래 청년들처럼 웃고 떠들며 놀았다. 마침 방해하는 사람이나 구경꾼도 없었기에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기분 전환을 마친 둘은 숙소로 돌아가 같이 식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터놓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되도록 심각한 주제는 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까?”

   자연스레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었다. 과연 그들에겐 별 탈이 없을까?

   “리온…….”

   특히 리온의 경우에는 조만간 지구 밖에서 종교 개혁이라는 큰 싸움에 뛰어들 예정이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그의 신앙과 실력, 품성이야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수준이지만, 종교개혁이란 자칫 지저분한 싸움으로 번질지도 모르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윤혁과 루디아는 손을 맞잡고 리온과 그의 동료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인류연합이 리온을 골칫거리로 여기면 어떡하지?”

   “차라리 그런 거물이 된다면 다행일지도 모르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낸다는 뜻일 테니까. 개혁에 실패하는 것보다는 나아.”

   “하긴.”

   “그리고 우리 형도 리온을 개인적으로 일대일로 알고 있어. 만약 그를 불안 요소로 여겼다면 진작 처분했겠지. 아직은 알면서도 그럴 기색은 전혀 없는걸.”

   윤혁은 3년 전 크리스마스 때, 리온이 면전에서 재혁을 꾸짖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당시 리온은 재혁이 무려 하늘까지 조절하는 힘을 선보이며 협박했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않고 당당히 할 말을 전했었다. 지금의 재혁이 더욱 강력해진 능력으로 은하계 하나를 초능력으로 집어던진다 해도 리온은 똑같이 반응할 것이다.

   “그러니까 염려할 것 없어. 그 친구는 순교하면 순교했지, 절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거나 꾸물거릴 위인이 아니야. 형조차 두 손 두 발 들었을 정도니, 일개 초인들 따위가 덤빈다고 한들 뜻을 굽히겠어?”

   윤혁이 자랑스러워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친구 하나는 정말 잘 뒀네. 나는 리온에게서 많은 것을 본받고 싶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사실 윤혁은 리온뿐 아니라 루디아와 스테판에게서도 수많은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 지금도 그녀를 칭찬해주고픈 말이 산더미였다. 루디아가 괜히 쑥스러워할까 봐 조용히 마음속으로 삼킬뿐.

   그는 대화의 화제를 전환하였다.

   “섬의 주민들은 건강히 잘 지내? 레리엔 씨는?”

   “최근까진 다들 별 탈 없이 지냈어. 아 참, 아가씨께서 여행 선물을 주셨어!”

   “선물이라면?”

   “한 번 구경해볼래?”

   루디아는 마법의 주머니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인벤토리로부터 기이한 모양의 물건들을 여럿 꺼내 보였다. 현대 과학의 산물 같기도 했고 공상과학 게임에서 나올법한 아이템의 느낌도 들었다. 레리엔의 취향이 깃들어서인지 아기자기하고 정교한 미학적 특성도 반영되어 있었다.

   “여행 중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오, 전부 다 신기한 기능들이네.”

   윤혁은 그 아이템들과 그 설명서를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며 머릿속에 핵심 사항을 담아두었다. 구체적으로 어느 상황에 필요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비상 시를 대비해서 카드를 많이 준비해둬서 나쁠 것은 없다.

   “레리엔님 덕을 거듭 여러 차례 보네.”

   과연 카이젤을 제외하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초인 중 하나라는 명성답게 공학적 자질도 굉장하구나 싶은 감상이 들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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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회 아벨의 후예 Ch 15. 의사, 유모, 붉은악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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