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01회 아벨의 후예 Ch 20. 에페수스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01 | 회차평점 ![]() |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감사하게도 Upol의 여러 층은 최첨단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얽혀있었기에 선량한 영향력의 전달이 용이했다. 시공간 장벽의 문턱이 낮은 게 이럴 때는 참 유리했다. 그 많은 기독교 인구 간에 교류와 연합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는 데는 이러한 고도화된 문명의 덕택이 컸다. 물론 교파 간의 분열이나 이단의 창궐이 적었던 것도 결정적인 이유였겠지만.
‘다음번에 찾아갈 Upol은 이런 편리한 조건이 아닐 가능성이 크겠지.’
왜 주님께서 첫 순서로 이 지역으로 인도했는지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으나 이제는 대강 파악이 되었다. 시작부터 곧바로 버거운 임무를 맡을 수는 없으니 상대적으로 가벼운 미션부터 해결하는 연습을 해야 마땅하리라.
Upol-51,203,987,065의 교회들을 돕는 작업의 첫 단추는 바로 마지막 때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작업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리온에게는 고민이 많았다. 현 세상을 운영하는 시스템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이제 말 그대로 행동 하나하나, 아니 은하 전역의 존재들의 분자배열 패턴마저도 일일이 실시간으로 관측되고 제어 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통일시스템은 물리법칙과 시공간을 제어하는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마인드 리딩과 마인드컨트롤 기능까지 지닌 존재. 마음까지 완벽하게 지배하지는 못해도 뇌와 신체는 조종 가능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원격 세뇌마저도.
이런 마당에 세상 돌아가는 비밀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일이 현명한 접근법일까 싶었다. 선포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인류연합이나 초인들의 실상에 대해서도 밝혀야만 할 텐데. 사역에 방해를 당하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그래서 리온은 보안 정책에 거슬리지 않도록 선을 지켜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말세의 흐름을 상세히 알리기 위해 핵심 정보들을 추려내야 했다.
먼저는 지난 수백 년 사이에 벌어진 지구의 역사를 알렸다. 그중 최종 카운트다운이 개시된 기점, 곧 초대째 위버멘쉬의 등장과 네오 오더의 몰락, 인류연합의 최초 설립, 혼돈의 시대의 개막과 초인 군벌들의 내전, 그리고 인류연합의 재설립까지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정리해서 가르쳤다.
아울러 리온은 루디아와 그녀의 동포들과 아나스타샤에게 전달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지난 백여 년 사이에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에 벌어진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도 같이 정리하여 역사 공부 자료로 만들었다.
그는 이 필수 정보들을 종합하여 간략한 수필로 정리하였다. 인류연합 측이 민감히 여길 정보는 다루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책을 출판하지도 않았다. 최대한 아날로그적이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소책자를 교회들끼리만 돌려보도록 계획하였다.
몇 명만 보다가 금세 묻힐 줄 알았건만 의외로 이 자료는 해당 Upol의 성도들과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자료를 디지털화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구전을 통해서 내용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달되었고 시스템의 즉각적인 개입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사역팀이 도달한 지 채 1개월도 지나지 않아 Upol-51,203,987,065의 깨어있는 교회들은 지구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효과는 제대로였다. 경계를 풀어놓은 채 졸고 있던 영혼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이며 나아가 성경이 예언하는 마지막 날의 사건과 주님 재림의 징조가 지구의 타임라인 속에서 무서우리만큼 정교하게 현실화되고 있음을 직시했다. 또한 우주 인류 조상들이 겪어온 타임필드 속의 역사가 실상 변두리의 만들어진 역사에 불과하며 진짜 하나님의 시간표의 중심은 저편에서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자각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타임필드가 거의 해제되었고 사실상 한때 격리되었던 지구의 시간표와 하늘도시의 시간표가 하나로 합치되었다. 그러니 예전처럼 주님이 더디게 오신다고 생각하며 정신줄을 놓고 있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많은 교회들은 졸다가 머리를 얻어맞고 깨어난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우리가 그동안 속세주의에 빠져서 영적인 성장을 등한시하고 있었소.”
깨어난 선각자들은 강단에서 교인들을 일깨웠다.
“이제 은혜의 때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늦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일부 성령의 일깨움을 받은 이들은 거리로 나가 복음을 외쳤다. 믿지 않는 이들은 그들을 조롱했다. 세상은 수천 수만 년간 멀쩡하게 유지되었고 끝없이 번영의 일로를 걷고 있거늘, 말세는 무슨 말세란 말인가. 더욱이 평화로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오는 메시아라니. 그들은 그런 구원자를 믿고픈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덧없는 세상 부귀영화에 환멸을 느끼던 일부 영혼들을 그 경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먹을 때는 몹시 쓰지만 삼킨 후에는 달콤한 말씀. 그들은 경고를 수용했다. 불신자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교회 안에서도 첫사랑을 잃은 채 힘을 잃어가던 여러 신자도 번쩍 깨어났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구속사의 소식을 더 자세히 전해주시오.”
교회 지도자들은 리온과 보다 더 활발히 교류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설교, 강해, 소식 전달을 부탁했다. 하지만 리온은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서 그분이 허락할 때만 강단에 올라섰다. 나머지 시간에는 성경 주석을 작성하고 저술을 완성하는 일과 중보 기도에만 몰두했다.
한편, 놀라우리만큼 이 지역에서는 분쟁이나 다툼이 없었다. 신학적인 논쟁에서건 정치적인 의견에서건 말이다. 이것은 리온에게는 상당한 호재였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이곳에서 전해야 할 소식은 주로 최후의 시대와 관련된 예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예언들은 기독교 교파 내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기 쉬운 영역들이었다. 이곳이 분파 분열이 적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리온은 이사야서 24~27장, 에스겔서 38장, 다니엘서 7~11장, 요엘서 3장, 스가랴서 12~14장, 마태복음 24장, 누가복음 21장, 데살로니가후서 2장, 그리고 요한계시록 6-19장 등 중요한 예언들을 총정리해서 설파하였다. 지구에 대한 소식들이나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나 성경 그 자체의 권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예언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결코 단순히 겁주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이 예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부활 사건, 그리고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갚아주신 은혜의 구원과 더불어 연결시켜서 재조명했다. 구원과 심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에 반드시 같이 선포되어야만 했다.
‘원래 종말론적 가치관은 신자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그들이 지난 세월 무뎌졌던 것이지 이것이 원래는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곧 없어질 세상을 위해서가 아닌,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도록 가치관을 재확립시켜주는 것이 곧 종말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물론 동시에 종말론에 대한 해석은 늘 신학적인 분쟁을 낳아왔다. 환난과 휴거의 시간적 선후관계, 천년왕국의 해석, 계시록의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 등 논쟁거리는 차고도 넘쳤다. 다행히 지혜롭게도 리온은 이러한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오롯이 본질에만 집중했다.
그는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이뤄질 사건이며 신자들은 그것을 바라보며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강조했다. 최후의 타임라인이 어떤 레퍼토리로 흘러갈지, 그 구체적인 모습과 시간적 순서는 탐구와 공부의 대상이긴 하나 제한된 인간으로서 속단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님을 강조했다.
속단하기 어렵다고 해서 참고할 현실의 정보까지 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세 번의 세대에 걸친 초인 집단 출현, 이스라엘의 종교적 분쟁, 이슬람 극단파인 크레센트의 준동과 암약, 데살로니가후서에 암시된 성령의 ‘억제 작용(억제자의 이름은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메시아닉 유대인의 등장과 인류연합 수장과의 언약(이 부분도 자세한 언급은 피했다), 그리고 성경의 온갖 예언들을 문자 그대로 실현하기에 충분한 기술력의 등장 같은 것들.
이것들은 모두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를 알아볼 수 있는 징조였다. 주님께서도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면서 계절이 변화함을 알아보라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또 날씨의 징조를 경험적으로 분석하듯 시대의 징조를 면밀히 주목하라고도 하셨다. 그러니 이런 귀중한 정보를 지구의 신자들만 특권으로 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하튼 종말 신학의 건전한 재정립은 꺼져가던 Upol-51,203,987,065 지역의 사랑의 불씨를 다시금 열정으로 되살려내었다. 목회자들은 리온의 말을 전해 듣고 그 모든 가르침을 그대로 신자들에게 전하였다. 선한 흐름의 연쇄가 이어졌다.
그 여파로 신자들은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대한 애착을 내다 버리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 종말 이후에 자신들이 새하늘과 새땅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혼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마음가짐이 이웃을 향한 복음 전파에 더욱 힘쓰게끔 했다.
*
“조금 쉬엄쉬엄 몸 챙겨가면서 하세요, 목사님.”
바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새 기도에 열중하는 리온이 걱정되었는지 재현이 부탁했다. 밥도 제때 못 챙겨 먹는 것 같아서 지켜보는 그로서는 염려가 되었다. 동시에 리더가 이렇듯 성실하게 금식으로 영혼을 단련하는 것을 보며 본인도 부끄러워졌다.
“저는 한두 끼만 먹어도 될 것 같아요.”
리온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정말로요?”
“그럼요. 오히려 더 마음이 맑게 깨어나는 느낌인걸요.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도 있는데 은혜를 받은 저는 이런 식으로라도 갈급함을 느껴보아야 그들의 허기에 공감할 수 있겠죠.”
재현은 속으로 심오하고 깊은 뜻이로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그러면 저도 같이 금식에 동참할게요. 식사를 줄이는 식으로라도.”
“글쎄요, 전 반대합니다.”
리온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재현을 걱정한 탓이 더 컸다. 자신이야 체구가 왜소한 편이니 조금 적게 먹어도 상관없겠지만, 재현처럼 건장한 근육질 체격이라면 에너지 유지를 위해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초능력을 안정적으로 억눌러야 하는 현 처지에서 몸의 건강을 해치기란 곤란하겠지.
“그나저나, 다들 금세 적응해주셔서 고맙네요.”
찬영과 재현과 지현은 생각보다 빨리 사역지에 적응하였다. 물론 리온처럼 탁월한 영적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생명력 담긴 설교를 전하거나 중보 기도의 움직임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한 사람 분량은 잘 맡아주었다.
셋은 주로 몸으로 뛰면서 일을 돕거나 실무 쪽에서 재량을 발휘했다. 특별히 지현은 영민하고 민첩한 두뇌가 있어서 그런지 그런대로 리온의 비서 역할을 능숙히 해냈다. 물론 지현의 재능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었다.
“목사님, 이분들을 상대로는 이 점을 미리 주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현은 의외로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는 눈치가 뛰어났다. 이는 타고난 기질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면서 경험을 쌓아온 리온이야 그렇다 쳐도 이제 겨우 초신자에 불과한 지현이 타인의 반응을 이토록 잘 예측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리온은 그의 말들을 귀담아들었고 그 덕에 여러 상황에서 덕을 보았다.
“유지현씨는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유형을 잘 파악하시는지요?”
“아, 그게 말이죠.”
지현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어서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범죄자들을 자주 보아온 덕분 같아요.”
“범죄자요?”
“네, 제가 법학도라고 소개했었던 것 기억나세요? 지금이야 워낙 관리 시스템이 발달하는 바람에 인간에 의지하는 사법 체계가 거의 불필요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저도 나름대로 열의와 비전을 갖고 공부했었거든요.”
그가 받은 현장학습 중심의 법 교육 특성상 교도소에 수감된 여러 유형의 범죄자들을 맞상대할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별의별 유형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자연히 지현은 사정이나 변명이 없는 악당이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그는 어떻게 해서 사람의 타락이 발생하는지, 그 본심은 무엇인지, 갱생의 여지는 있는지 등의 주제로 무수히 탐구해보았었다.
“의미깊은 일이네요.”
“아뇨, 정작 회심하기 전까지는 결국에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었죠. 어차피 인간 법관이 할 일이 거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주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후 제가 걸어왔던 행적에도 그분의 계획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죠. 사람도 변할 수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신앙을 갖기 이전에는 지현은 인간이란 결코 변하지 못할 존재라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개선해낸 인간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개입이 그의 삶에 임하면서 그런 생각이 달라졌다. 당장 불완전하고 어그러졌던 자신의 인격부터가 회복되는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그때부터 그는 새 희망을 품게 되었다.
“더 실력을 쌓고 난 다음, 범죄자들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법적 권리를 되찾도록 해주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그러니까 영적인 상처와 훼손을 치유하는 일 말이에요.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바꿀 수 없는 완악한 인격일지라도 하나님께 맡긴다면 희망이 있을 거예요.”
그의 깊은 속내가 또렷히 전해졌다. 리온은 나름대로 자기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었던 한켠의 자부심이 부끄러워졌다. 저보다 몇 살이나 어린 저 젊은이도 세상에서 가장 미움받고 정죄당하는 부류의 인간들을 향한 사랑의 비전을 품고 있구나.
‘반면 나는 마냥 권세자들의 악행을 정죄하기만 했었지.’
타인의 영혼을 편견 없이 소중히 여기는 것. 자신의 영혼만큼이나 남의 것을 아끼는 것. 그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았다. 리온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윤혁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현도 응원했다. 또한 그의 가정도 꼭 회복을 누리기를 소원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이전회
500회 아벨의 후예 Ch 20. 에페수스 (1) |
다음회
502회 아벨의 후예 Ch 20. 에페수스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