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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52회 아벨의 후예 Ch 33. 세미온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08 | 회차평점 0 0

 

 

 

 

 

Chapter 33. Intergalactic : 세미온

 

 

 

 

 

 

 

 

   은발 소녀의 얼굴은 흡사 인형처럼 예뻤다. 이목구비는 조각가 정교하게 깎아낸 것마냥 예리하고 정교했으며 말끔하고 부드러운 피부는 아기 천사의 아름다움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그 표정은 어린아이의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근엄함, 위엄, 카리스마, 지배자의 패기. 이런 류의 단어만이 어울리리라.

   “세미온 씨?”

   “그래, 그것이 내 이름이다. 너는 강윤혁일 테지 아마도.”

   “그렇습니다만…….”

   윤혁은 머릿속에서 수천 개의 퍼즐이 어질러진 기분이 휩싸였다. 직소 퍼즐들이 들어맞을 듯 안 맞춰질 듯 아리송한 느낌이었다. 일종의 기시감이었다. 뭔가 예전에 유사한 내용을 들었던 것도 같은 느낌은 분명 있는데 마치 외부에서 누군가가 강제로 그의 기억에 간섭이라도 한 것인양, 모든 것이 분명치 않게 혼동되었다.

   “파파라는 칭호…….”

   “기억이 잘 안 나는 모양이구나. 하긴 우리에 대해선 보안이 걸려 있지.”

   윤혁은 입을 꾹 다물고 끄덕였다.

   “너는 네 형님께 나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못 들었느냐?”

   사실 재혁은 윤혁에게 그들에 대해 암시하긴 했다. 아주 흐릿하게 스쳐가는 수준으로. 허나 윤혁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깔끔히 말소된 상태였다.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절대 보안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저들에게는 고위 초인과의 접촉마저도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카이젤 본인만이 그들을 언제든 접견할 수 있으며 그의 허락이 아니면 통일시스템마저도 접근하지 못한다. 그들의 본체를 본 자도 카이젤 뿐이며 그들이 외부와 접촉할 때면 항상 대리자를 통해 소통한다.

   그리고 통일시스템은 조금이라도 외부인들 속에 그녀들과 관련된 기억의 단서가 남으면 반사적으로 그 잔흔을 지워버린다. 물리적인 물증이든 사람의 기억이건, 강제적으로 작동하는 소거 작용이다.

   “아쉽구나.”

   세미온은 우아한 자태로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옥좌에서 걸어 내려왔다. 그녀의 기나긴 은색 머리칼이 휘날리더니 빛의 파편이 부스러지듯 퍼졌다. 세미온은 윤혁과 루디아를 지나치더니 결박당한 헬리웃에게 다가갔다.

   “하찮구나.”

   그녀는 버러지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헬리웃을 흘겨보았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촉수마냥 원격으로 조종하여 그를 칭칭 감았다. 이후 손으로 그의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헬리웃은 절규하였고 그의 온 몸에서 섬광이 분출되었다. 정체불명의 작업이 끝나자 헬리웃은 정신을 잃은 채 지푸라기처럼 쓰러졌다.

   “뭐, 뭐였죠?”

   “죽지는 않았단다. 내 형제들까지 같이 손댔으면 죽었었겠지만.”

   “저기……, 당신은 대체 누구시죠?” 

   허무하게 헬리웃이 당하는 모습을 본 윤혁이 황당하다는 어투로 물었다.

   “아까 세미온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 질문이 아닌 것 아시잖습니까?”

   그러자 수만 명의 무장한 우툼들이 세미온을 경호하고자 대열을 갖췄다. 한명 한명이 상위 지적설계종이었다. 윤혁은 긴장감에 움츠렸다. 그러자 세미온은 우툼들을 손짓으로 멈춰 세웠다. 이내 그들은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잠잠해졌다.

   “시스템 락 오프. 기억 일부를 잠깐 되돌려주마.”

   세미온이 허락의 명령어를 선언하자마자 윤혁의 뇌리에 번뜩 기억이 스쳤다.

   “에고, 슈퍼에고, 이드!”

   “그래, 조금 기억났느냐?”

   “그자들도 제 형을 파파라고 불렀죠. 그러고 보니 초인들마다 제각기 형을 다른 칭호로 불러왔는데……, 당신들이 그를 그렇게 칭하는 것도 아무 이유 없는 우연은 아니겠군요.”

   세미온은 여왕처럼 근엄한 미소를 보였다.

   “눈치가 아주 느린 아이는 아니로구나, 얘야.”

   “당신은 누구입니까? 에고? 슈퍼에고? 이드?”

   그러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부 아니란다.”

   “그러면…….”

   “그것들은 나와 내 형제들의 분신이란다.”

   세미온의 말에 윤혁은 반문하였다.

   “그게 곧 당신이라는 말과 같은 뜻 아닌가요?”

   “분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분류된다고 해서 다 같은 테크놀로지가 아니야. 기술이 발전한 만큼 그 범주가 대단히 다양해졌지. 예컨대 내가 인형을 단말기로 쓴 경우에는 그 인형의 활동은 본체 자신의 것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

   루디아는 옆에서 듣던 중 그 말이 공감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녀는 그런 전략을 활용하여 선교 여행을 수행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기술, 이를테면 너희의 인격을 디지털 퍼스날리티로 복제해낸다고 하자. 과연 그 복제체는 너희 자신과 같은 존재일까?”

   “영혼도 없는 데이터 따위가 저희와 같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 대략 그런 차이란다. 분신도 이렇듯 천지 차이란다. 크게 나누면 아바타와 클론,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지. 아바타 계열은 통제가 필요하고 종속적이지만 본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본체와 동치이지. 반면, 클론은 독립적이지만 본체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같은 존재로 여기기 어렵단다.”

   얼추 이해는 되었지만 이것이 문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여전히 아리송했다.

   “그러면 에고나 슈퍼에고나 이드는? 어떤 계열의 분신이죠?”

   “두 부류를 양극으로 나눠 스펙트럼을 펼쳤을 때 중간쯤 되겠구나. 그것들은 우리의 의식 응결체를 대량으로 생성해낸 후, 가공하고 정제하고 분리하고 응결시켜서 만든 것, 일종의 인공 인격체란다. 하지만 본체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건 아니야. 우리의 혼과 공명하긴 하지. 그러나 엄연히 우리 본체와는 분리되지.”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 정도이려나? 그러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세미온 씨의 분신은 에고 쪽인가요? 아니면 슈퍼에고? 이드?”

   “사실 셋 전부란다.”

   “네?”

   “아까 언급한 ‘의식 응결체’를 만들 때 내 형제들의 의식이 다 함께 자원으로 쓰였지. 그러니 에고 속에도 내 부분이 일부 있고 슈퍼에고와 이드에게도 내 성분이 일부는 있단다. 물론 내 형제들의 성분들도.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에고 속에는 내 지분이 가장 많이 포함되었단다. 비율로는 99% 정도?”

   “복합 인격체로군요.”

   “그렇지.”

   복잡한 분신 개념에 윤혁과 루디아는 조금 머리가 지끈거렸다.

   “바로 그 에고라는 분신이 저를 무례하게 대했다는 사실은 아시겠군요.”

   “그 점은 사과하마, 얘야. 우리가 거느린 분신은 매우 많단다. 임무 특성상 초인 중 우리만큼 분신이 많은 사람이 또 없어. 아 물론, 파파를 제외한다면 말이야.”

   일일이 분신들을 책임질 여력이 없다는 투로 들렸다. 이게 과연 맞는 변명일까.

   “우리는 우주 인류 프로젝트 2단계에 사용되는 모든 외계행성마다 에고와 슈퍼에고와 이드를 하나씩, 이렇게 한 세트씩 일일이 구성해서 배치해뒀단다. 평상시에는 에고, 슈퍼에고, 이드 모두 몸체와 의식체가 분리된 채 반쯤 동면 상태로 활동하도록 해뒀지. 그러다 특수 조건이 성립되면 몸과 의식이 합쳐져 활성화된단다.”

   “특수한 경우라면?”

   “바로 너 같은 귀한 아이가 행성을 방문한 경우 말이다.”

   세미온은 윤혁의 심장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트루즘인가? 아니면…….’

   기억을 돌이켜보니 에고는 알트루즘을 확인하러 왔었다. 슈퍼에고는 커버넌트의 흔적을 확인하러 왔었다. 그리고 이드는 리비도의 근원……, 아무튼 그렇고 그런 생체 부위를 연구하려고 쳐들어 왔었다.

   그 세 목표물의 공통점을 굳이 들자면 재혁과 윤혁의 링크라는 점?

   “그러고 보니 우리 분신체들에게 시험 당하느라 욕을 많이 봤다고 들었다.”

   “솔직히 과하셨습니다.”

   온갖 굴욕들이 떠오른 윤혁은 가까스로 인내심을 발휘하여 감정을 절제하였다.

   “이해하렴. 그것들은 우리 통제 아래 완전히 굴복되진 않았다. 의식 응결체를 강제 추출하는 과정에서 우리 본체와는 상이한 성격이 많이 서렸지. 심지어 한 행성의 에고와 다른 행성의 에고, 이렇게 에고끼리도 인격 성향이 완전히 다르지.”

   “아니, 그나저나 그렇게 많은 수의 분신을 생성하는 일이 가능키나 하나요?”

   루디아는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지 되물었다.

   “예전에 저도 체험이 있긴 한데, 인형 몸체 하나 조종하기도 몹시 힘들었어요.”

   “비결이 있지.”

   세미온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라&가이아.”

   “네?”

   윤혁은 세미온의 대답이 깜짝 놀라 눈동자가 커졌다.

   “파파와 우리가 공유하는 프로젝트지. 바로 그것 덕분이란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신형 퀘이사-II는 파파와 온전히 공명을 일으킬 수 있지. 그 연합 네트워크에 동참할 보조인원으로 우리가 택해주셨지. 덕분에 우리도 퀘이사-II의 막강한 권능으로부터 작은 부스러기를 얻어먹게 되었지.”

   세미온은 손에서 환영 형상 같은 것들과 공식들과 술식들을 생성하여 원리를 대강 가르쳐주었다.

   “파파의 퀘이사-II, 그것과의 연결을 힘입어 각 행성의 행성혼에 우리의 의식을 투영였지. 그 작업을 통해 우리 의식을 복제한 레플리카를 무한정 찍어내었지. 행성혼들을 직물의 재료로 삼아 도화지들을 만들어내고 그 위에 우리의 형상을 담은 인쇄물을 만들어낸 격이지. 그게 바로 에고, 슈퍼에고, 이드, 한 세트란다.”

   이게 인간의 영역이 맞긴 한 것인지. 기가 막혀다. 여하튼 윤혁은 썩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일단 자신을 괴롭히고 희롱했던 그 악독한 범인들이 자꾸 기억 속에서 아른거려 불편했다. 눈앞의 이 사람을 과연 그것들과 동일 인물로 인식해야 할지 말지, 이 부분도 몹시 혼동되었다.

   “뭐, 우리 책임도 아예 없지는 않으니 사과하마, 얘야.”

   “알겠습니다. 그냥 운이 나빠서 배설물을 밟았다고 생각하죠.”

   “하하.”

   확실히 본체인 세미온은 전에 본 분신들과는 달리 신사답고 품위 있어 보였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지금 제가 보는 세미온 씨는 분신인가요? 아니면 본체?”

   “물론 분신이란다. 클론은 아니고 아바타지. 의식 응결체로 만든 삼중 세트와는 달리 내 본체와 직접 연결되어 연동되고 있단다. 그러니 내가 지금 네게 하는 말은 곧 본체의 말과 동일하단다. 전화기라고 생각하렴.”

   “본체 모습은 이 단말기 모습과 동일하나요?”

   “아니란다. 어느 정도 특징을 반영하긴 했지만, 다르지. 에고-슈퍼에고-이드 세트 말고도 우리에게는 다양한 인형들이 있단다. 어느 하나도 모양이나 성질이 같은 것이 없지. 사람의 모양도 있고 괴물 모양도 있단다.”

   “그렇군요.”

   세미온은 윤혁과 루디아에게 음료와 다과를 대접해주었다. 처음에는 혹시 독이나 다른 위험물이 들어있을까 염려한 윤혁은 쉬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일단 이번 여정부터가 내내 거칠고 험난했으니 그 목표점에 나타난 우두머리를 믿기란 쉽지 않았다. 그 못된 헬리웃이 겁을 먹을 정도의 상대라면 여간 위험한 게 아니겠지.

   하지만 계속 위축되어 있자니 그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독이 들었어도 어차피 알트루즘에 의해 해독되리라 생각하고 윤혁은 대접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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