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53회 아벨의 후예 Ch 33. 세미온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10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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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는 여러가지를 가르쳐주었다.
먼저, 그녀는 우툼 족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 여러 종을 이미 만나본 두 사람이었지만, 정작 갤럭시 클래스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지라 세미온의 설명에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의 기원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현재 수조 기의 빅뱅 제너레이터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은하 종들이 생성되었는지도. 셀레스티언은 그저 일개 프로토타입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 둘은 경악했다.
“우툼은 그중에서도 세 종류의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를 섞어 만든 복합 종이지. 아울러 지적설계종이기도 하단다.”
“지적설계라면, 설마 창조라도 시행한다는 건 아니겠죠?”
루디아과 윤혁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숭배의 위험성. 경각심을 늦출 수 없었다. 인간은 고대부터 말 못 하는 돌과 나무와 금과 은을 깎아서 온갖 허황된 거짓 신을 만들어왔다. 이제는 더 나아가 인공지능마저 넘어선, 창조의 능력마저 갖춘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내려 하다니. 이야말로 계시록에 기록된 움직이는 짐승의 우상에 비견되는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창조라, 틀린 말은 아니지. 물론 초자연적 창조는 아니야. 그저 기존의 데이터와 물질을 활용해 조작하고 가공하는 것뿐이지. 창조에 쓰이는 알고리즘도 모두 인간 문명에서 얻은 것뿐이란다.”
“하지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단다. 요새는 인공지능이 버젓이 생명처럼 활개 치는 세상이지 않으냐. 더욱이 오늘날은 유비쿼터스-크리에이티비티의 시대란다. 길에 치이는 듯이 존재하는 돌부리에마저도 창조 능력을 이식할 수 있는 문명에 이르렀지.”
뒷사정을 듣고도 여전히 윤혁과 루디아의 굳은 표정은 영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구태여 뒷덜미를 잡고 시비를 걸려 해봐도 어차피 달라지는 것이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윤혁은 화제를 조용히 돌렸다.
“그러면 왜 이곳 은하는 우툼 족에 의해 정복당한 것이죠?”
“우툼 족이 정복한 게 아니란다. 그들은 내 수하이자 도구지. 내가 그들을 사용했단다. 이것은 연구 목적으로 내가 지정해둔 세계관 설정이란다.”
“연구 목적이요?”
“파파께서는 인류를 위한 식민지를 건설할 때 대개 독창적인 테마를 세워서 세계의 기본틀을 설정하지. 이것은 통치에 더해 연구를 겸하기 위함이란다. 너도 경험했듯 하늘도시들도 그러했고, 지금의 테라포밍된 외계행성들도 마찬가지이지.”
윤혁과 루디아도 선교 여행을 통해 온갖 기이한 세계관의 세상들을 목격해왔기에 이 말이 잘 이해되었다. 과거의 하늘도시는 단순히 인간들이 살아가는 거주지로서의 의미만 담고 있지는 않았다. 그곳에서는 분명 세계 규모의 거대한 실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초월형 문명을 생성하는 실험, 과학 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실험, 유사 창조 실험까지도. 이 일이 아직도 진행되는 중이었구나.
“그런 명목으로 인간들을 노예화한 건가요?”
“노예라니, 적절치 못한 표현이구나. 하늘도시에 있던 자들도 지금은 시민권을 얻지 않느냐. 반면 그들을 압제했던 이종족과 인공지능들은 모두 합당한 노예 신분으로 떨어졌지. 하늘도시들처럼 외계행성들도 그 과도기에 있을 뿐이란다.”
순간 아틀라스나 레바테인처럼 인간의 노예 노릇을 하던 종족들이 떠올랐다. 저들을 우상으로 보았을 때는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가증한 물건으로 생각되었건만, 다른 한편으로 저들을 생명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니 인간의 탐욕스러움과 가혹한 처사가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런 비극적인 존재들이 만들어진 건 모두 당신들의 욕심 때문이겠죠.”
“인류 차원의 위대한 욕망이지. 종족 전체의 승리를 위한 원동력이야.”
“저희 형도 그런 레퍼토리의 말을 자주 하더군요. 좋은 변명은 아닌 것 같네요.”
“우리는 파파와 생각이 같아. 그분의 자아이자 초자아이자 욕망과 같은 것, 그거시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지. 우리는 그분의 자아, 초자아, 욕망의 수호자란다.”
세미온은 느긋한 자태로 웃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하였다.
*
윤혁은 전경을 감상하였다. 스무 개의 목성급 크기 행성을 한 입에 삼킨 거대한 생체형 거대 구조물이 보였다. 이곳 세미온의 옥좌 근처에서는 저 거대한 요새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요새의 모양은 흡사 아름다운 꽃 같기도 했고 바닷속에 우글거리는 해조류나 말미잘이나 해삼 같은 무척추동물의 군집체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딱 잘라 감상평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기하학과 중력과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구조물을 자주 봤었지만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저건 무슨 마술을 부려서 만든 건가요?”
“영업 비밀이란다.”
호기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단순한 과학 기술? 아니면 초능력이 기반일까?’
궁금증 서린 윤혁의 눈빛을 눈치 챈 세미온이 귀띔해줬다.
“뭐, 알려줄 수 있지. 사실 비밀까지는 아니니라.”
세미온은 시범으로 손에서 어떤 힘을 발산하였다. 윤혁도 루디아도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류의 힘. 루디아는 이 힘이 초능력과는 카테고리가 다른 낯선 것임을 알아차렸다. 몸 전체가 커버넌트 오브젝트가 된지라 힘의 근원의 이질성을 분별하는 감지력이 증가한 덕이었다.
“어떤 힘이죠?”
“행성, 혹은 행성혼과 관련된 힘이란다.”
윤혁은 이해하지 못해 갸우뚱거렸다.
“퀘이사-II 엔진에 대해서는 알고 있느냐?”
“레리엔 씨와 형에게 잠시 듣긴 했습니다. 말 그대로 겉핥기 식으로.”
“그 물건은 참으로 괴물이지. QUASAR-II는 현존하는 모든 초능력 채널에서 나온 이능을 하나로 중첩한 것만큼이나 대단한 능력원이란다.”
“네?”
믿기 어려웠다. 일단 720! 개라는 비상식적인 개수의 초능력 채널들도 굉장하고 그것들 하나하나도 대단한 잠재력이며, 그 융합된 힘은 궤를 벗어난 엄청남이거늘. 단 한 종류의 초능력 채널에서 흘러나온 힘만으로도 잘만 활용하면 항성계급 권능을 휘두르는 게 가능하다. 여러 힘이 조합되면 시너지 효과와 운용폭은 지수함수적으로 늘아난다. 그런데 그마저도 넘어선다고?
“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란다. 일단 QUASAR-II는 수억 광년의 거리에도 제한 받지 않고 천체혼과의 공명을 일으킬 수 있지.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혁신적이지만, 그건 그저 기초 기능에 불과하단다. QUASAR-II에는 더 엄청난 부가 이능력원들이 있지.”
세미온은 손에서 힘을 발산하여 스무 개의 가스 행성과 생체 뼈대가 하나로 합쳐진 요새 쪽으로 흘려보냈다. 곧 지진이라도 발생한 듯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구조물의 형태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순간 두 사람은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천체혼 공명 기능, 그 자체만 해도 초능력과는 별개의 원리로 발생하는 특수한 힘이지. 우리 스스로는 그 힘도 다 감당하지 못해. 우리는 그저 파파의 조수로 참여할 때만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단다.
그럼에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우리는 QUASAR의 천체혼 공명 작용에 참여함으로써 그 공명력의 일부를 흡수하여 몸에 새기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공명력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힘은 ‘하젠트라’를 획득하게 되었지.”
“하젠트라요?”
“공용어가 아닌 2세대 초인의 언어로 된 말이라 모르겠구나. 번역하면 ‘상위 권능’이라는 뜻이다.”
알기 쉽게 세미온은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한 사람이 어떤 권능을 몸에 담는다고 하자. 예컨대 초능력일 수도 있고, 우리의 경우 QUASAR의 천체혼 공명력이 되겠지. 이 경우 그 힘은 유한한 인간의 몸을 집어삼키기 쉽지. 따라서 몸이 그 권능을 다스리려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힘을 자력으로 생성해내야 해. 그게 바로 하젠트라란다.”
비유하자면 조개가 몸 속에 고통의 수고를 오랜 세월 담으며 인고할 때 반사 반응으로써 진주가 생성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나. 혹은 항원을 외부에서 투여 받을 때 몸에서 항체가 생성되는 것과도 비슷하단다.
“오로지 인간의 혼만이 특정 권능에 대해 하젠트라를 생성할 수 있지. 이종족이나 기계는 불가능한 창조 행위야. 물론 모든 인간이 가능한 건 아냐. 특수한 카리스마타를 지녀야만 가능해.”
“그런 카리스마타도 존재하나요?”
“있지.”
세미온은 그런 기이한 류의 카리스마타가 실제로 그녀와 그녀의 형제들에게 공동 소유로 하나, 그리고 카이젤에게는 백 종류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생판 처음 드는 이야기들로 점입가경이었다.
‘초인이란 자들, 그리고 위버멘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괴물이었군.’
윤혁은 이 판타지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현실이 공상보다 더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하젠트라를 생성하는 것은 대단한 고난이도 작업이다. 최상위 초인 중에서도 실제로 자신이 직접 하젠트라를 생성하여 획득한 이는 드물다고 한다.
“현존하는 하젠트라의 예들은 대부분 파파와 연관되어 있지.”
720! 종류의 초능력 채널, 그 힘들을 전부 융합한 초 복합 초능력. 카이젤은 그 엄청난 힘을 실제로 몸에 담았고 이를 제어할 힘인 ‘초능력들에 대한’ 하젠트라도 획득했다. 반면, 다른 초인들은 진도가 미진했는데 그들은 아직 1개 채널의 초능력에 대해서도 하젠트라를 생성하지 못했다.
세미온의 경우 라&가이아 프로젝트에 동참하였고 퀘이사 시리즈의 행성혼 공명 작용력을 몸에 공유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힘에 대한 하젠트라를 극히 일부분 얻는 데는 성공했다. 현재 윤혁 일행이 거하는 이 행성 생체 복합체의 경우 건설하는 과정에서 세미온이 얻은 그 하젠트라가 일부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잘 발달된 과학이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지만, 점점 어이가 없네요.”
“우리들은 너무 급진적인 시대를 살고 있지. 변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단다.”
그때 세미온은 화제를 돌려 윤혁에게 대뜸 제안을 한 가지 던졌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내게서 더 많은 정보를 듣고 싶더냐?”
“네? 저는…….”
기습적으로 바통을 받은 윤혁은 의구심에 의아해했다. 저자들이 왜 자신을 도우려는 것이지? 자신이 알트루즘을 심장에 지니고 있는 사실을 탐탁잖게 여기던 것 아니었나? 당장 에고만 해도 윤혁을 두고 알트루즘을 소유하기에 부적격인 자로 취급했었다. 태도의 변화에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난 네 심장을 빼앗을 생각은 없단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설마 마인드리딩을 하시는 건 아니죠?”
“네 의식의 표면 상에 발현된 사고 활동 정도는 투시할 수 있단다.”
하기야 철인왕들도 그 정도는 가뿐히 했었다. 진정한 의미의 마음 읽기가 아닌, 그저 전기 신호들의 활동을 감찰하는 정도. 어쩌면 저들에게는 이미 몸에 밴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름 네 가치를 인정하느니라. 그러니 너를 해칠 생각도 없지. 그럴 마음이 있어도 파파께서 해하도록 놔두지도 않겠지만. 다만, 네게는 다른 의미로 좀 더 호기심이 생겼느니라.”
“저에게요? 저에게는 전혀 특별한 구석이랄 것이 없는걸요.”
“아니, 넌 특별하단다. 인류연합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특별하지.”
세미온은 지그시 윤혁의 눈을 정면에서 주시했다.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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