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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54회 아벨의 후예 Ch 33. 세미온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12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녀는 본격적으로 대화 속에 미끼를 던졌다.

   “그래서 문득 너를 이용해보고 싶어졌단다. 한편으로는 너를 내기에서 당당히 꺾어보고 싶어졌지. 네 사상과 이념이 어느 정도 선까지 견딜 수 있는지도 실험해보고 싶구나. 너는 적극적으로 나와의 내기에 응하여 네 뜻을 실현해보겠느냐?”

   “잠시만요. 무얼 말씀하시려는지 도통 잘 모르겠습니다.” 

   의중을 모를 말들이 점철되자 윤혁은 최면에라도 말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허허, 때가 되면 알게 될 테니 걱정 말거라. 조만간 우리는 다시 보게 될 거란다. 더 자세히 일러줄 때도 이르겠지.”

   맥락을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그 전에 오늘은 잡담이라도 나누자꾸나. 너에게도 기본적인 사전 지식은 주어져야 내기를 하더라도 공평하겠지?”

   대체 어떤 내기를 할 작정인지를 몰라 영 꺼림칙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보를 확보해둬서 손해볼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혁은 깊은 고심 끝에 세미온에게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말씀해주세요.”

   “그래, 네 여자친구를 잠시 떨어트려 둬도 괜찮겠느냐? 비밀스러운 이야기라서.”

   이에 윤혁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요, 룻도 제 곁에서 이야기를 듣게 해주시죠.”

   “호오. 흥미롭군.”

   루디아는 윤혁의 손을 붙잡았다.

   “저기, 나는 괜찮아. 따로 이야기를 하고 와도.”

   하지만 윤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 친구는 서로 의지하며 동행할 동료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 떨어질 수 없는 중요한 사람이고요. 저와 비전을 함께 나눕니다. 무엇보다 이 친구는 당신네 일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룻은 형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인류연합과 유대인의 공식 언약을 체결한 장본인이기도 하죠. 또 당신들이 그토록 경계하는 커버넌트의 힘을 소유하기도 했고요.”

   물론 윤혁은 이런 요소들과는 무관하게 루디아를 신뢰하고 인정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인류연합의 고위 간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면 이런 중요한 팩트들을 최대한 강조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설령 그녀가 과학이나 정치에는 소질이나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이런 핵심 정보를 논할 때 그녀를 따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호라, 네가 그 커버넌트 오브젝트였구나.”

   “오브젝트가 아닙니다. 인류연합 대표가 직접 인정한 은인입니다.”

   “그래, 좋은 여자친구를 두었구나, 얘야.”

   그제야 세미온은 내내 존재감을 무시했던 루디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꼬마 아가씨, 너는 이 아이와 함께하는 막중한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느냐?”

   윤혁의 임무가 너무도 버거울텐데, 그 길에 같이 서 있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실제로 윤혁은 장차 거대한 규모의 풍파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평범한 여인인 루디아가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일들이 기다리리라. 하지만.

   “윤혁이가 해내려는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도 기꺼이 돕겠어요. 그러니 그에 필요한 요소라면 저 역시 당신에게서 나올 정보가 무엇이건간에 각오하고 듣겠습니다.”

   “훌륭한 태도로구나.”

   세미온은 그녀를 흔쾌히 치하하며 인정해주었다.

   “참고로 네가 이드를 제압할 때 썼던 그 능력은 다시 쓰지 않는 편이 좋겠구나. 네 역량으로는 제어가 불가능하다. 또 어차피 오브젝트의 고유 권능은 또 다른 커버넌트의 소유자를 해치지 못해. 그러니 우리에게 써 봤자 안 통하겠지.”

   그 말에 윤혁은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선교 여행 막바지쯤 있었던 사건이었다.   

   ‘아하, 그래서 카가미 씨의 펜던트가 폭주했는데도 내가 죽지 않았던 것이군.’

   돌이켜보니 에녹의 펜던트도 분명 커버넌트 오브젝트였다고 했었다. 비록 윤혁이 받은 건 그 복제품에 불과했지만 속성은 일정량 공유 받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로 인해 같은 커버넌트 소유자인 윤혁에게 힘을 발동했을 때 큰 충격파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기절과 약간의 찰과상으로 끝났던 것이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가보자꾸나.”

   셋은 차를 홀짝이며 천천히 과거의 기록 속으로 진입하였다.

 

 

 

 

 

 

 

 

*

 

 

 

 

 

   “나는 우주 콜로니 안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Upol이라고 불리지만 과거에는 하늘도시라고 불리던 그곳들 말이다.”

   “아.”

   “너희도 겪어봤겠군. 하지만 너희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지. 형태도 구조도, 철인왕들의 패권기보다 훨씬 더 원시적이었어. 수용 가능한 인구수도 적었고. 그저 2세대 초인들의 시대에 나온 것보다 조금 더 개량된 콜로니 정도라고 보면 되겠구나.”

   세미온은 옛 역사를 시작부터 읊어나갔다. 그녀 혹은 어쩌면 ‘그’가 어린아이였을 적이었다. 그녀의 고향은 콜로니 내부에 존재하는 마을 형태의 커뮤니티 중 하나였다. 당시의 콜로니는 기껏해야 지구의 섬 국가 정도의 면적이었다.

   중력 제어 기술도 완비되지 않았기에 중력 조성의 상당 부분을 회전 원심력에 의존하였다. 대기를 가둬두는 투명한 외곽도 비교적 낮은 고도에 있었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렴풋이 투명한 창이 보였고 그 너머로는 우주 공간이 훤히 보였다. 해와 달 대신에 인공조명과 열 생성 기관이 기온과 기후를 조절하였다. 일주기와 연주기는 기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조율되었다.

   콜로니 위 지표면에는 여러 마을이 세워져 있었다. 또한 중앙 지역을 감싸는 거대한 강철 방벽이 있었다. 금속 방벽에는 구멍이 있었는데 그 너머로는 화려한 미래형 도시가 엿보였다. 낙후된 마을들과는 확연히 대조되어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도심지의 길거리에는 기계들만이 지나다닐 뿐이었다. 방벽 안쪽에는 인간의 땅, 방벽 너머에는 기계의 땅이 대조되어 자리했다. 기계는 인간을 관리·감독하였다. 인간들은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 신세였다.

   “내 고향 사람들은 누구도 합리적으로 이성적 추론을 하지 못했지.”

   그들의 세계관은 지구의 중세 시대만큼이나 협소했다. 그들은 해와 달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땅이 둥글다는 개념도 알 턱이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보아온 작은 콜로니가 그들에게는 세계의 전부였다. 어떻게 해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들의 조상과 뿌리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만일 그렇다면 호기심과 반골 기질이라도 있어야 하건만, 심지어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저 외부에서 시키는 대로, 보이지 않는 관리자들이 통제하는 대로 따라가며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낼 뿐이었다.

   “아니, 그들은 관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단다. 정확히 말하면 관리를 당하면서도 자신이 관리당하는 줄도 몰랐지. 실험실의 흰쥐와도 같이 말이다.”

   그러던 중, 변수가 생겼으니, 바로 세미온의 출생이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세미온이 아니었다. 그 이름은 오래 전 진작 버린지라 지금은 기억하고 있지도 않다. 여하튼 과거의 그녀는 영민한 아이였다. 그녀는 일찍이 자신에게 거대한 잠재력이 깃들어있음을 깨달았다. 고향의 다른 이웃들과 자신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존재의 격을 나누는 간극이 존재함을 눈치챘다. 그녀는 특별한 인간이었다.

   지적 능력에서 그런 징조가 나타났다. 그녀는 별달리 배우지 않아도 지식을 저절로 익힐 수 있었다. 이는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살던 콜로니는 교육이라는 시스템에 큰 제약이 있었다. 외부 관리자는 사람들에게 일정 범위 이상으로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세미온에게서는 맑은 샘물이 샘솟듯 끊임없이 창의적인 생각과 철학적인 생각, 심지어 탐구자의 정신이 치솟았다.

   그녀는 배우지 않았는데도 우주의 본질을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추론했다. 그녀의 혜안은 동 세대 사람들을 아득히 앞서 있었다. 그녀는 지식욕에 목말랐다.

   이내 어린 세미온은 자신에게 천재 이상의 거대한 정신력이 담겨있음을 자각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뇌리에 박힌 무언가가 그 잠재력을 억누르고 있는 상태도 깨달았다. 그녀는 의아해했다. 무감각한 이웃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개념, 곧 ‘관리자’라는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해 깊은 고찰을 품기 시작했다.

   ‘그 존재는 누구일까? 우리에게는 왜 이 족쇄가 씌워졌을까?’

   문득 그녀는 이 족쇄야말로 혹 소통의 열쇠가 아닐까 하는 이상한 결론에까지 도달했다. 어쩌면 관리자는 모종의 이유로 콜로니 주민들의 자유를 잠시 박탈함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선포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마음속에 숨겨진 족쇄를 감지해낸 것을 넘어 그 족쇄가 시사하는 바까지 정확하게 추론해냈다. 아마 관리자도 그런 이변적인 존재가 출현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세미온도 족쇄의 존재는 단순한 폭압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차차 고민해보니 이것은 폭압이 아닌 메시지임이 명확해졌다. 세미온은 이 메시지를 발판 삼아 관리자에게 다가가기를 소망했다. 자신의 강력한 정신력마저 가둬둘 만큼 정교한 기술력을 휘두르는 존재라면 분명 존경하고 우러러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내 이웃들은 그 위대한 분께 어떤 죄를 짓고 형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만큼은 관리자의 눈에 발탁되어 그런 버러지들과 격이 다른 존재로 인정받고 면제를 얻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이차 성징이 나타날 즈음, 세미온은 특이한 능력을 각성했다. 총 두 가지의 고유 재능이었다. 하나는 타인에게서 자아의 흔적을 흡수하는 능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녀 자신도 정체를 정의하기 힘든 불명확한 재능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뭔가를 변질시키는 능력이었다.

   물론 당시의 능력 활용 수준은 보잘것없었다.

   “잠시만! 자아를 흡수한다니, 그건 무슨 의미죠?”

   윤혁이 이렇게 질문한 건 형이 겪었다던 ‘인격 흡수’가 떠오른 탓이었다.

   ‘혹 무슨 관련성이라도 있나?’

   세미온은 이렇게 답해주었다.

   “물론 영혼의 본체를 잡아먹는다는 뜻은 아니란다. 온전한 인격 흡수도 아니지. 그렇다고 재능 자체를 흡수하는 것도 아니야. 단지 흔적, 곧 혼과 뇌의 마찰로 인해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무형의 정보 자취를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니라.”

   “어렵네요.”

   “그것도 오로지 이웃들 한정으로만 가능했지. 나와 같은 족쇄를 품은 자들만.”

   “우주 인류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처음에는 자아의 흔적만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러다 점점 역량이 발전하였다. 나중에는 그들의 사고방식, 기억의 잔해, 감정, 방어기제 따위 등을 흡수하였다. 더욱 발전되자 나중에는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못한 다른 마을 사람들의 자아에까지도 흡수력이 닿았다. 나중에는 자신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에게까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이라면?”

   “나중에 깨달았단다. 그들이 우리 콜로니가 아닌 다른 콜로니에 살던 사람들이었다는걸. 내가 살던 콜로니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었던 게야. 당시로서는 큰 깨달음이었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깨달은 중세인과 맞먹는. 심지어 내가 접촉한 자들 중 누군가는 이미 지하에 묻힌 자들이었지. 지금이야 너도 그 의미를 알겠지만 말이다.”

   윤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하늘도시는 여러 개가 존재한다. 또 각 하늘도시의 지하에는 동면 상태의 사람들이 봉인되어 있다. 아마도 세미온은 꽤 초기 버전의 하늘도시에서 태어났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족쇄란 게 설마 표식을 의미하는 걸까?’

   정확하지는 않아도 맥락상으로는 그렇게밖에 해석될 여지가 없다.

   ‘좀 더 정보를 확보해볼까?’

   윤혁은 속내를 감춘 채 잠잠이 이야기를 주워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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