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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29회 [2부] 50화. 가짜 유대인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21 | 회차평점 0 0

 

 

 

*

 

 

 

 

 

세계 양분의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랜 일도 아니고 불과 한 세기도 되지 않은 일이다. 어린 세대는 역사책으로 보았겠으나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생생한 추억으로 남은 시절. 사람들은 가리켜 그 두 양대산맥의 축을 ‘역사의 오른쪽 날개’와 ‘역사의 왼쪽 날개’라고 칭했다.

 

 

한 곳에서는 압제와 핍박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자유와 번영과 평화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자의 세상은 스스로를 ‘연방’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불렀고, 반대로 후자의 세상은 멸칭에 가까운 표현인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참으로 이 둘은 언어적인 이름과 본질은 다른 것임을 보여주는 예였다.

 

 

자유의 세상과 압제의 세상, 그 양쪽 모두에는 ‘두 부류의 나그네’들이 존재했다. 한 무리의 나그네들은 영적인 나그네들로 이 지구 전체를 잠시 거쳐가는 천막인 듯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다른 한 부류의 나그네는 문자 그대로 정말 나그네인 자들로, 디아스포라의 운명 속에서 물리적 거처를 찾지 못한 떠돌이 유대인들이었다. 영적 나그네들은 하늘의 본향을 향한 회귀 본능을 지녔고, 물리적 나그네들은 땅의 본향인 ‘시작의 땅’을 향한 귀향 욕구를 지녔다.

 

 

브리튼 제국에만이 아니라 커뮤니스트 연방 내부에도 분명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물론 차이점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황제부터가 하나님의 종인 브리튼 제국에서는 종교 및 신앙의 자유와 더불어 기독교적 가치와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예찬의 문화가 있었고, 그런고로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그곳을 터로 삼을 수 있었다. 자유로운 예배와 선교와 전도와 선포와 교육이 이뤄졌고 많은 이들이 회심하거나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 또한 이곳을 가장 안전한 터로 여겼는데, 이는 역사속의 모든 나라들과 달리 유일하게 브리튼 제국만이 유대인들을 향한 보호와 우호의 자세를 하나님 앞에 맹세했기 때문이었다.

 

 

수적으로는 이렇게 제국 내에 머무는 나그네들이 압도적이었다. 대신 연방 영토에서 살아가는 나그네들은 그 수효는 적으나 영적인 정절, 민족적 얼을 향한 독실함에 있어서는 더 순결했다. 이는 용광로 같은 시험을 주는 환경 때문이었다. 핍박이 임할 때 비로소 참된 진짜배기 신앙인들이 드러나고 검증되기 마련이다. 거짓으로 회심한 자들이 견딜 수 없는 맹렬한 화염 속, 그 안에서는 오로지 보석처럼 순결한 신앙인들만이 남았다. 그들은 시련 속에서 더욱 단련되었고 세상을 향한 욕정이 끊어진 채 오로지 인생의 참된 가치에만 몰두하였다. 대신 수적으로는 지극히 줄어들었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두 세계의 나그네들은 비록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었으나 서로를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의 임재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형제나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연방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였고, 반대로 연방 소속 크리스천들도 제국에서 거하는 영적인 형제 자매들을 기억하였다.

 

 

이러한 시공간을 초월한 동지애는 양편의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존재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어떤 고귀한 영적 가치를 추구하지는 않았고 대신에 훨씬 더 현실적인 염원이 있었다. 그들은 정치적인 운동과 공작을 통해 해방을 이루어 민족이 하나가 되어 안전히 보존될 날을 간절히 염원하였다.

 

 

브리튼령의 그리스도인들은 지구 반대편의 압제의 땅에서 신음하고 있을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늘 생각하며 자주 중보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들은 온 세계가 ‘복음 통일’을 이루어 예수님의 이름 아래에 자유로이 예배드릴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염원하였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기도 제목을 응답받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위한 선결 과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복음 통일을 위한, 그리고 자유로운 선교의 문을 다시 열고 탄압의 빗장을 제거하기 위한 기도의 전쟁이 매일 매일 이뤄졌다. 브리튼의 신앙인들은 하루라도 빨리 저 사악한 탄압 정권이 붕괴되고 그 밑에서 신음하고 있을 영적 동포들이 억압과 고문과 학대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했다. 교회마다 기도회가 열렸고 새벽마다 말씀 낭독과 선포들이 이뤄졌다.

 

 

한편, 유대인들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이 사안에 접근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시인한다고는 하였으나 그분을 온전하게 보호자로 신뢰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 대신 지극히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생존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그들은 수가 적었고 정치적인 힘도 약했으며 경제력이나 인력 면에서도 뛰어나지 못했다. 시대가 흐를수록 브리튼 내부의 인재 풀이 기하급수적으로 풍성해졌던 것에 비해 유대인들의 세계에서는 걸출한 기린아들이 그리 많이 출현하지 못했다. 가끔 나타나더라도 대부분은 히브리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거나 기독교로 개종하여 유대적 정체성을 인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대적 정체성을 간직한 자들이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나마 가진 왜소한 힘이라도 모아서 똘똘 뭉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들은 끈끈한 유대를 이루었고 계층이나 출신이나 지역을 신경쓰지 않고 형제의 연맹을 이루었다. 연약했기에 그들의 감정적 연대는 더욱 강력했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들은 세계 양분의 시대 이전까지 숱한 고난과 괴롭힘을 겪어왔다. 유럽에서도, 아시아에서도, 그리고 하이드라의 시대에는 멸종을 눈앞에서 바라보았다. 브리튼령으로 귀속된 권역에 자리 잡은 운 좋은 유대인들은 장래 이 같은 일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그리고 발생하였을 때에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강구하였다. 아울러 그들은 지구의 반대편에서 핍박을 받고 있을 형제 유대인들을 탈출시켜 브리튼 내부로 빼오기 위해 애를 썼다. 미약하게나마 그들은 여러 수단을 통해 ‘탈 연방 루트’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혈육을 하나둘씩 구출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3차 대전쟁이 일어났고 연방 체제는 붕괴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이 성취된 것일까. 세계의 복음 통일이 어느 정도 비슷한 모양새로 이뤄졌다. 연방에서 고난을 겪던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로운 광복을 만끽하였다. 이렇게 소원을 성취한 그리스도인들은 잠시 국제 정세나 지정학적 정치에는 관심을 돌렸고 대신 개인의 신앙 생활 및 사회 생활에 초점을 두었다.

 

 

반면에 유대인들의 촘촘한 유대(紐帶)와 민족주의적인 단합은 소원 성취로 인해 연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어 민족 내 친목 체계의 치밀성을 더해나갔다.

 

 

그렇게 하여 오대양 육대주 전 지역에 걸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유대인이 직간접적으로 대여섯 다리를 거쳐 인맥의 끈 안에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히브리적 정체성을 유지하기로 작정된 자들에 한한 것이었고 그 수효도 많아야 천만 명 이하였다. 그럼에도 고정된 본토조차 없는 흩어진 무리가 이렇게까지 촘촘하게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신기한 현상임이 분명했다.

 

 

 

 

 

 

 

 

 

 

 

*

 

 

 

 

 

산달폰의 달콤한 미끼에 알렉시스는 덤덤하게 되받아쳤다.

 

 

“별로 흥미가 동하는 주제는 아니군요.”

 

 

“쳇, 재미없네요.”

 

 

쉽게 걸려들지 않는 고단수의 모습에 산달폰이 김이 빠진 듯 혀를 찼다. 알렉시스는 애써 궁금증을 감추며 태연스러운 포커페이스의 태도로 여유로이 응수해주었다. 굳이 말려들어 줄 필요야 없지.

 

 

“그나저나, 어쩌다가 유대인들의 혈맹(血盟)의 중심격이 되신 겁니까?”

 

 

“무슨 혈맹씩이나 되는 거창한 표현까지. 그저 친목회 같은 거죠.”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한 규모인 듯합니다만.”

 

 

알렉시스가 언젠가 한 번 스쳐가듯 살짝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연맹은 이미 프로빈스나 스테이트 단위를 넘어 컨티넌트 규모의 지역을 아우르며 연결성을 증대하는 추세였다. 물론 그 속에 포함된 사람 수효는 타 민족에 비해서 적은 편이었고 사회경제적 영향력도 크지 않은 편이었다. 다만 주목할 부분은 그들에게서 선명히 느껴지는 ‘뭉치고자 하는 열의’였다. 이제껏 브리튼을 포함하여 그 어떤 민족에서도 알렉시스는 그런 예를 보지 못했었다.

 

 

‘확실히 특별히 수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내버려두어도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으리라. 딱히 불법적인 요소도 없고 수상한 안건으로 의심스러운 계획을 논하는 것 같지도 않다. 산달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친목회’가 연장된 듯한 형태의 연대(聯隊). 그들이 소원하는 바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브리튼에서는 결사와 정치 운동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그야 그렇긴 하죠.”

 

 

산달폰의 덤덤한 대꾸에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한 알렉시스가 마지못해서 대답했다. 하기야 어떤 의미에서는 반체제 인사로 규정할 수도 있는, 디에고 같은 공화파나 만델라 씨 같은 잠정적 독립운동가도 등용하는 마당에, 고작 유대인들의 사소한 움직임에 신경을 빼앗긴다면 그 또한 우스꽝스러운 꼴 아니겠는가.

 

 

“다만 믿기 어려워서요. 아무리 그들이 유독 연합력이 강한 일족이었다지만, 아직 사회적 영향력을 충분히 얻지 못한 당신이 육대주 전체의 유대인 사회에 연줄을 형성했다는 사실이.”

 

 

“직설적이어서 좋네요.”

 

 

짙은 흑청발의 젊은이는 조금도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받아쳤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죠. 다만 그렇게 대단하게 보실 건 없어요. 이미 제가 성인이 되기 이전부터 범 지역적 유대인 네트워크는 곳곳에 형성되어 있었어요. 저는 그저 그것들의 내부에 들어가 연줄을 얻은 뒤 하나로 이었을 뿐이죠.”

 

 

구체적인 설명이 생략되었기에 알렉시스의 궁금증은 더욱 깊어졌다. 물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인맥을 구축하는 작업이야 알렉시스도 누구보다 더 많이 해봤고 누구보다 더 잘하긴 하지만, 이는 애초에 태생적 위치 덕택이 컸다. 가장 좋은 혈통에 가장 좋은 외모, 그리고 최고의 사교성과 최고의 재능들을 자랑하니 사람들이 엮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 그런 요소 하나도 없이 맨 땅에서 인맥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산달폰의 재주는 그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가까이 둬서 나쁠 것 없는 인재다.’

 

 

알렉시스 속의 계산적인 자아는 이 부분을 면밀하게, 그리고 민첩하게 정리하며 앞으로의 유용성을 파악하였다. 산달폰과 맞닿아있는 유대인들의 그물망에 자신이 손을 얹는다면 그것은 어느 쪽에 더 유익이 될 것인가. 자신이 그들로부터 유익을 얻어낼 분량이 더 많은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혹시 제가 아는 사람들도 그 네트워크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까?”

 

 

“아마도 아닐 걸요. 대부분 이름 없는 사람들이라서요.”

 

 

산달폰의 대답에 알렉시스는 의외라는 듯 갸우뚱거렸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웬만큼 영향력 있거나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제 눈에 한번쯤은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래뵈도 브리튼의 인재풀 전체를 샅샅이 파악하고 있어서요.”

 

 

“그러시겠죠. 하지만 번짓수를 잘못 짚으셨어요.”

 

 

산달폰은 자신의 연줄 내에 있는 주요 주축 인물들을 몇 알려주었다. 알렉시스가 잘 알지 못하는 이들뿐이었다. 즉 이미 화려하게 무대에 데뷔한 유력 인물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혹 은둔하고 있는 잠룡(潛龍)들인 것인가? 하지만 알렉시스는 이미 워쳐들의 조력과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의 힘, 그리고 타고난 축복 받은 감찰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잠재된 인재들을 거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감찰에서도 벗어났다는 말은, 그들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대단한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리라.

 

 

“의외로군요. 유럽과 북부 신대륙에서 활동 중인 유력 유대인 가문들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자본과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체제와는 완전히 별개의 개념인 셈이군요.”

 

 

바로 그 언급이 나온 순간, 산달폰은 알렉시스가 무안해할 정도로 폭소하였다.

 

 

“푸하핫, 하하! 이런, 이런!”

 

 

자색 눈동자가 잠시 당황으로 흔들렸다.

 

 

“미안해요, 미안! 알렉. 실례했어요.”

 

 

“어떤 포인트에서 제가 실수한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무렴요. 그러게 재미있는 사실을 귀띔해준다고 했었잖아요.”

 

 

알렉시스의 직감은 본능적으로 어떤 귀찮은 사실이 폭로될 것을 예견하였다.

 

 

“사실 말이죠.”

 

 

산달폰은 귓속말을 하듯 속삭이는 톤으로 알렉시스 곁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당신이 말한 자들, 그러니까 부유하고 인맥과 영향력이 강대하기로 유명한 그 유력 유대인 가문들 말입니다, 그 사람들 전부 가짜들입니다.”

 

 

“네?”

 

 

알렉시스의 잘생긴 이마에 미간의 일그러짐으로 인한 주름이 그려졌다.

 

 

“그 작자들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진정으로 속했던 적이 없던 자들이에요.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죠. 우리가 로마에 의해 전 세계로 흩어지기 이전부터 우리의 일원인 양 위장했었죠.”

 

 

“……그 말의 신빙성에 대해 책임을 지실 수 있습니까?”

 

 

덜컥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괴리감이 느껴지는, 음모론 같은 이야기. 그러나 의심스러워하는 알렉시스를 향해 산달폰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금 전의 폭소는 사라지고 이제 웃음기는 한 줌도 남지 않았다.

 

 

“제 혈육들의 명예를 걸고 확언하죠. 나는 당신을 향한 신뢰와 신임의 표시로서 어떤 이방인들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진실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당최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지? 단순히 민족적 차원, 혹은 역사적 차원에서 이해하기에는 영적 이슈가 긴밀히 얽힌 문제였다. 알렉시스는 근심과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생각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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