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30회 [2부] 51화. 가짜 유대인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23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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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내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계 3:9)
금시초문의 낯선 이야기였다. 황태자의 머릿속에서 본능적으로 한 구절이 스쳐갔다. 그는 그 말씀의 의미가 그런 의미이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편지에 적힌 그 수수께끼의 표현을 오로지 영적으로만 해석해왔다. 초대 교회 당시에 극성을 부렸다던 ‘자칭 유대인’의 회당이란 바로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거절해온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주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참된 유대인이 아니었던 게로지.
사도 바울도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롬 2:28-29)” 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심지어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롬 9:6-7)”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예슈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이상한 해석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껏 종교개혁의 유지를 이어온 이들은 그렇게 믿어왔고 이는 알렉시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그는 보통의 종교개혁자들과는 달리 조상이신 크리스토프의 영향을 받아왔기에 장래에 있을 유대인들의 회심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런고로 유대인들을 향해서는 우호적인 태도와 소망의 자세를 취해왔다. 하지만 회심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에 속하지 못한다고 믿는 점에서는 그도 다르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알렉시스의 사고 방식도 일정 부분은 ‘교회’가 ‘구약의 이스라엘’을 넘어선 진정한 계승자라고 믿는 데에 젖어진 셈이다.
하지만 산달폰의 증언은 신선한 충격과 고정관념의 깨어짐을 주었다.
“지금 설마 주님이 말씀하신 ‘자칭 유대인’들이 애초에 유대인의 혈통조차 아닌 자들이었다는 말씀입니까?”
“주님이라면 이방인들이 메시아로 믿는다는 예슈아를 뜻하는 것인지요?”
“아, 잊고 있었습니다. 유대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당신들은 예수님, 아니 그대들의 말로 예슈아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었죠.”
유대인의 혈통 가운데 기독교로 회심한 자가 적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대개 기독교 개종 이후에는 브리튼 속에 흡수되었고 히브리 나그네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린 뒤 영속적으로 브리튼 시민이 되었다. 즉 현재까지도 히브리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자들은 기독교도가 아닌, 유대교인 내지는 유대 문화 정체성을 포용하는 무신론자이다. 산달폰은 어느 쪽에 가까우려나. 어쩌면 명목상으로는 유대교에 가깝되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즉 알렉시스가 신약 성경인 요한계시록을 인용한 것은 판단 실수였다. 산달폰의 입장에서는 전혀 유효하지 않은 자료이니까.
하지만 어찌되었든 알렉시스 본인에게는 충분히 생각할 거리가 되었다.
‘주님께서 단순히 유대주의자들을 책망하는 줄로 생각했다.’
역사적으로도 유대주의자들은 참된 복음을 거절하였고 이단적인 가르침을 초대 교회 내부에 퍼뜨렸었다. 정죄 당할 근거는 충분했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 전부를 ‘유대인이 아니다’ 라고 분류할 근거까지 되는 것인가. 그렇게 따지면 현존하는 유대인들 대부분 역시 유대인이 아니라고 정의해야 한다. 그러면 무슨 근거로 브리튼 황실과 크리스토프의 후손들은 그들을 사랑으로 품고 감쌌던가. 단순 인류애의 차원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깊은 애틋함을 다 설명하기 어려웠다.
‘분명 로마서 중후반부 말씀은 유대인들의 장래 회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민족적 회심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중간 단계의 세대는 죄다 유대인이 아닌 것으로 분류해야 한다면 이 또한 코미디가 아니겠는가. 알렉시스는 그간의 고정 관념을 재점검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러면 주님은 정말로 문자 그대로 민족적 유대인 혈통이 아닌 자들의 창궐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실태를 책망하셨던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그 가짜들은 언제 섞여들어왔는가.
그리고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헌데 수천 년 전의 일을 무슨 수로 다시 점검하고 증명한단 말인가?
잠깐의 고민 끝에 알렉시스의 추리는 어느 한 의심스러운 지점에 닿았다. 처음에는 그도 역사 사료, 고고학 같은 객관적 정보들에 의존한 추리를 시도했었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순간 그의 마음은 문득 새로운 발상에 이끌렸다. 무려 세계 최대의 정보량을 자랑하는 자신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어떤 형태의 비밀스런 정보 경로가 산달폰에게 쥐여져 있다. 그렇다면 자신도 통상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생각의 경로를 모색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는 산달폰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자신에게 허락된 지름길을 하나 택했고 그것에 집중하였다. 그 덕분에 알렉시스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산달폰이 서 있던 정보의 고지(高地)에 접근하였다.
“혹시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한 번 말씀해보시죠.”
황태자에게 흥미를 느낀 청년은 상대의 대답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두매아, 에돔입니까?”
그 재빠른 도달에 산달폰은 솟구치는 경의를 절제하며 감탄의 미소를 머금었다.
“과연, 그 명성대로군요.”
“반쯤 찍었는데, 대략 비슷한 지점에 떨어진 모양이군요.”
“어떻게 아무 단서 자료도 없이 그런 추리에 도달하셨죠?”
이에 알렉시스는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헤롯 대왕, 그리고 그들의 일가, 그들에게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기독교인들의 ‘브딧 하다샤(신약 성경)’에도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가짜 유대인’에 대해 듣고서 계시록의 한 구절을 떠올렸듯, 이번에도 알렉시스에게 추리의 길잡이가 된 것은 바로 신약 성경이었다.
물론 굳이 신약을 들지 않더라도 요세푸스 기록과 같은 당대 역사 자료들을 참고한다면 단서를 추측해낼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만일 그랬더라면 데이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지의 베일을 감당해야 했을 터이고 일정 단계 이상 나가지 못한 채 추리는 미궁에 빠졌을 것이다. 심증까지는 얻었어도 확증의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알렉시스에게는 산달폰에게는 없는 ‘물증’이 있었다.
“에돔의 후손들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갖는 본질적 중요성에 대해, 오로지 복음서에서만 감지할 수 있는 맥락이 하나 있습니다.”
그 요점이란 바로 ‘메시아의 강림’,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발발한 헤롯 일가의 맹렬한 질투와 반발과 투쟁이었다. 그들은 메시아로 오셨던 이를 맹렬히 대적하였고 죽이려했다. 이유는 단 하나, 헤롯 스스로 유대인의 왕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헤롯의 자손들도 메시아의 일꾼들을 미워하였고 메시아를 살해하는 일에 동참하였으며 그 이후로도 그분의 증인을 죽이고 배척했다.
허다한 다른 이방 민족들을 다 제쳐두고 알렉시스가 범인으로서 하필 에돔을 정밀하게 지목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었다.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분명 영적인 세계에서는 큰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때 하필 많고 많은 무리 가운데 에돔인의 후손인 헤롯 일가가 악(惡)의 체스말로 선택되었다. 우연은 아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지옥의 권세는 분명 유대인의 왕을 대적하기 위한 ‘가짜 유대인의 왕’으로서 그자들을 택했으리라. 이는 산달폰 같은 유대인과는 달리 메시아의 정체를 올바로 아는 기독교인이기에 해낼 수 있는 발상이었다. 물론 산달폰에게서 힌트를 듣지 않았다면 그도 미처 모르고 지나갔었겠지만.
“퍼즐이 조금은 맞춰지는군요.”
알렉시스는 반칙에 가까운 위대한 정답지에 의존해 물증을 얻은 뒤에야 거꾸로 심증 레벨에 속하는 ‘불확실한 역사적 사료’들을 끼워맞춰 교차 검증을 시도해보았다. 과연 어렵지 않게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동남쪽에 자리한 이웃 나라 에돔 민족, 그들은 출애굽의 시절부터 형제 나라 이스라엘과 껄끄러운 관계였다. 에돔의 왕은 모세가 이끌던 히브리 민족이 자신들의 영토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그들은 이스라엘과 숱한 전쟁을 벌였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절에는 에돔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긴 했으나 그 이후로는 반란을 일으켰었다.
이 가깝고도 먼 원수 겸 이웃 나라는 이스라엘이 바빌론 침략에 의해 망하던 그때에도 가증스러운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형제 나라의 멸망을 기뻐하며 박수를 쳤고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거들었으며 약탈에 동참했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대언자인 에스겔과 오바댜와 예레미야의 글을 빌려 에돔이 그들의 죄에 대한 영원한 보응을 받을 것을 기록하셨다.
이후 에돔은 바빌론의 침략으로 몰락하였고 이후 나바티아 일족의 침략을 받아 원래 살던 땅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그들은 유대의 남부에 위치한 이두매아라는 지대로 이주하여 살아가게 되었는데, 그리스로부터 유다의 정치적 독립을 쟁취한 하스모니안 왕조는 에돔 족속을 정복하여 굴복시켰고 그때부터 이두매아의 에돔족은 살아남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하여 그 문화에 동화된 척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종 관계는 다시 한 번 역전된다.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유다가 정복되어 속국이 되었을 때, 에돔 사람 안티파터와 그의 아들 헤롯 대왕은 로마의 유력자들에게서 환심을 얻었다. 그들은 탁월한 정치적 재능과 모략을 바탕으로 권세를 얻었고, 결국은 로마로부터 유대 땅 전체에 대한 대리 통솔권을 받기에 이른다.
‘형제 민족끼리 서로가 서로를 다스리기 위해 끝없는 줄다리기를 벌인다. 비극적인 블랙코미디로군.’
에돔의 조상인 에서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야곱,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 악연의 형제들이던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 둘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붉은 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탈취했던 야곱, 아버지 앞에서 속임수로 형 행세를 하고 축복을 도둑질했던 야곱, 그런 야곱을 죽이려 했던 에서, 정작 형 대신에 동생을 택하신 하나님. 자극적인 아침 드라마도 이보다 더 흥미롭긴 어렵지 않겠는가. 이 두 형제의 파행과 투쟁은 결국 당대를 넘어 후손들에게까지 전염되어 영원한 분쟁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역사 속에서 그 분쟁이 종료된 줄 알았건만.’
아무래도 그건 후세 사람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산달폰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에돔과 이스라엘의 영원의 전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헤롯 일가, 그리고 그들과 같이 유대인들의 사회에 녹아든 에돔인들, 그들이 어쩌면 로마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망 때 유대인들과 함께 세계로 흩어졌는지도 모르겠군요.”
“정답입니다.”
그 이후, 유대인들과 에돔인들을 일일이 추적해본 역사가도 없고 명료하게 기록된 역사 자료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어떤 무리가 어느 무리에 속하고 어떤 후손이 어떤 조상에게서 이어지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다. 그저 오랜 구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 구전이라는 것도 아마 유대적 정체성을 유지해온 소수의 후손들에 의해서만 비밀스럽게 계승되었겠지.
“당신이 말한 그 사실, 조상들에게서 받은 구전입니까?”
“달리 다른 방도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제가 당신처럼 세계의 정보망과 지식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여전히 알렉시스는 기분이 석연치 않았다. 신약 성경의 단서와 역사의 궤적들은 얼추 비슷하게 들어맞는다지만, 정말로 결정적인 확증이 가능한 것인가? 성경을 해석할 때 가장 골치아픈 부분은 어느 부분까지를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어느 부분까지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지를 분간하는 일이다. 만일 주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문자적으로 믿는다면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 행세를 하였던 무리는 정말로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합당한가? 그렇다 라고 확증하기도 어렵고 아니다 라고 대답하기도 어렵다.
산달폰이 선조들과 일족에게서 전해받은 계승, 그리고 알렉시스 스스로 해낸 추론, 두 생각이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는 점으로 미루어보건대 에돔 일족이 지금도 생존하여 활동하리라는 가설은 일정 부분 신빙성을 갖는다. 하지만 정말일까? 설령 그렇다 쳐도, 유럽과 신대륙 역사를 아우르며 막대한 부와 권력을 행사해온 저 유대계 유력 가문들이 바로 그 범인들이라는 사실은 또 어찌 입증하겠는가.
“좀 더 분명한 증거는 없습니까?”
알렉시스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캐물었다.
“이 정도 추론에서만 그친다면, 성경을 믿는 분들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은 음모론 정도로 치부하고 그칠 것입니다.”
“흠, 증거라……, 하지만 그건 당신이 신경쓰셔야 할 문제 같은데요.”
태연히 맞받아치는 산달폰의 뻔뻔스러움에 알렉시스는 어이가 없었다.
“하아, 설마.”
순간 자조의 생각이 밀려왔다. 어째서인가? 이래봬도 세상 모든 사람을 마음껏 쥐락펴락하는 황태자이다. 그런데 어째 저 사내와 마주할 때면 매번 이상하게 말려든단 말인가. 분명 상대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결과적으로는 매번 농락당하는 듯한 착각이 드니 원.
“세상 모든 사람이 명쾌하게 알 수 있는 적나라한 물증, 그건 지금부터 당신이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구 제국의 차기 황제씨?”
산달폰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다. 알렉시스가 자신의 말을 듣고 믿건 믿지 않건 그로서는 상관 없다. 반면, 알렉시스의 마음 속에는 의심과 불안감이 심기게 되었다. 이제 그는 이 불편한 진실을 자기 눈으로 손수 확인해보지 않고는 지워지지 않을 찝찝함에 짓눌리게 되었다. 만일 그가 의구심을 이기지 못하고 직접 진실을 파헤친다면, 그 수혜자는 산달폰이 될 것이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비밀을 확고하게 입증하여 모두에게 보일 증거를 얻게 될테니까.
“영악한 친구 같으니라고.”
“저로서는 신뢰의 증표로서 일족의 깊은 비밀을 공유했을 뿐입니다, 알렉.”
“허, 한바탕 당했네요.”
약오르기는 하지만 그냥 덮어둘 수도 없는 문제다. 왜냐하면, 유대인 유력 가문들, 아니 지금껏 ‘유대인이라고 알려졌던’ 그들은 현재 알렉시스와 그의 형제들이 잡고자 하는 거대 범죄 카르텔과 밀접하게 연루된 용의자들이니까. 그 동안에는 선조의 언약 때문에 섣불리 그들에게 칼을 휘두르지 못했다. 자칫 그들을 함부로 수색했다가는 유대 민족을 보호하겠다는 언약을 위배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 눈에 비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선민(選民)의 후손이 아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만약 이 새로운 가설이 옳다면 마음껏 칼춤을 추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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