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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77회 [2부] 98화. 아들과 어머니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12 | 회차평점 0 0

 

 

 

호주 대륙 성층권 위에 좌정한 거대한 기체, 비블로스 본체가 모든 잠재력을 최대한도로 해방하였다. 그 흉흉한 거함거포적 위용에 어울리지 않은 고도의 정밀성과 섬세함을 함유한 이 기계는 세상의 각종 선진 기술의 집결체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지상 최대의 연산 유닛이었다.

 

 

라지쿠마르 박사의 유산인 뇌파 연동 기술, 이것을 알렉시스가 팀 아르다의 도움을 받아 극한까지 강화하여 만들어낸 원격 연동 능력이 비블로스 속에 존재했다. 어둠의 무리는 초상물질이라는 반칙에 더하여 뇌와 몸에 칩을 심는 금기까지 범하면서까지 겨우 영격 통신 따위를 실현했는데, 알렉시스는 오롯이 인간의 기술력만으로는 그 너머에 다다랐다.

 

 

무선으로 기계와 인간이 마음을 연결한다는 건 오로지 비블로스라는 유일무이의 유닛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주인님.}

 

 

“시간이 부족하니 최종 모드로 바로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물리적 차폐물까지 사이에 두고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둘의 연결은 바로 옆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두 가족처럼 생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알렉시스는 연결의 강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알폰스, 부탁드립니다.}

 

 

“오오, 드디어 우리 아들이 소매를 걷어붙힌 모양이로군. 마땅히 도와드려야지.”

 

 

비블로스 본체 내 사령탑 안에 탑승하고 있던 알폰스는 손을 뻗어 모니터 위에 올려놓았다. 곧 생체 신호 인식 프로세스가 가동되었다. 그의 혈액과 유전자가 채취되어 비블로스의 암호 체계 해제를 위해 전달되었다. 알렉시스는 최종 모드 발동을 최대한 제한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 조직 일부를 대가로 문을 열도록 설정해두었는데, 하필 지금은 알렉시스와 비블로스가 떨어져 있어서 다른 이의 것을 이용해야 했다. 감사하게도 알렉시스의 아버지인 황제의 유전자는 조건에 부합하였다.

 

 

{황실 직계 수장 유전자 인식 완료.}

 

 

{락을 해제합니다.}

 

 

{브레인-소울-네트워크-마인드 싱크로, 최대 레벨 상향.}

 

 

곧 알렉시스의 마음은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비블로스 속을 장악했다. 그것은 마치 유체 이탈만큼이나 강력한 제어력이었다. 그러나 알렉시스의 몸은 그대로 움직이고 사고하되, 사고력의 지배 범위만 두 개의 육체로 확대된 것이었다. 아울러 비블로스의 하드웨어가 가진 모든 능력도 고스란히 알렉시스의 것으로 소화되어 운용되었다.

 

 

“접속 권한 인증 개시.”

 

 

지금 알렉시스가 노리는 건 비블로스의 몸체만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경유기에 불과하고 진짜는 지구 상공 전체를 관할하는 권능의 옥좌였다. 왕의 무기로 빚어진 만능형 전천후 요새. 지난 몇 달 간 팀 제즈리얼의 연구와 커버넌트 그룹의 지원을 통해 몇 차원 더 상향된 현 문명 최대의 산물.

 

 

“협력을 부탁한다.”

 

 

알렉시스의 호출과 함께 수백만 기의 가디언엔젤들이 상공으로 수직 상승한 뒤 비블로스와 천공성 사이에 커다란 원통형 마방진을 이루었다. 그들의 진열은 규칙적이고 정미했다. 알렉시스의 부탁에 호응한 그들은 이렇게 응답했다.

 

 

{우리의 마음들을 잠시 당신께 반환합니다.}

 

 

{옛 파트너들의 소원대로 당신에게 힘을 몰아드리죠.}

 

 

{부디 우리를 밟고 올라가 거사를 성취하시길.}

 

 

이에 비블로스에 대해 정신적 지배 지분을 갖고 있던 모든 가디언엔젤들의 권리가 알렉시스에게 수렴하였다. 이로 인해 알렉시스의 비블로스에 대한 지배력이 몇 배로 강화되었고 그 안정성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화되었다. 이로써 중개 연결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비블로스와 알렉시스, 그리고 천공성의 링크가 몇 초만에 완성되었고 그 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짙어졌다.

 

 

{양자 연결 프로토콜 최대 활성화.}

 

 

인간의 뇌 세포와 그 속의 전기 신호, 가디언엔젤들의 코어를 소유한 비블로스의 특수 연산 소자, 그리고 수천 기의 마더컴퓨터와 최상위 인공지능들을 합친 초거대 요새의 전자 연산 시스템, 이 세 구성 요소가 마치 한 신경 체계가 된 것마냥 공간을 넘어 양자적 얽힘을 통해 긴밀하게 연합되었다. 알렉시스의 혼이 이것들 모두의 사령탑이 되었다. 이제 인간의 영혼에서 나오는 지혜가 인공지능들의 머리 위에 올라타 지배하는 중심체로 화하였다.

 

 

“I have the control.”

 

 

{Yes, master.}

 

 

마침내 거대한 천공성의 비밀 서버가 봉인에서 풀려 비상 모드로 돌입했다. 오로지 인간의 마음에 의해 지배될 때에만 활성화되는 궁극의 계엄 모드. 이것이 아이언로드 알파의 진정한 잠재력이 해방된 모습이었다.

 

 

“네 주인이 임하였다. 부름에 답하라, 철장의 권력이여.”

 

 

바로 그 순간, 아이언로드에서 발원하는 강력한 양자 진동장의 파동이 지구 전역의 네트워크를 옅게 흔들었다. 전기 신호를 기반으로 기동하는 모든 인공물들이 이 임재를 감지하였다. 스마트폰을 보유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존재감이 문명 전체를 침식한 것을 느꼈다.

 

 

“뭐지?”

 

 

“마치 지구 전체에 정전이라도 임한 듯한…….”

 

 

 

 

 

트라하도 그것을 감지했다. 세일린에 의해 전자장 차폐 기능이 해제된 요새 내부로 다시금 정보와 신호들이 스며들었다. 트라하는 육백 기의 사상조작병기들과 그 안에 설치된 컴퓨터들이 보낸 무수한 분석 정보들을 자기 뇌 속에 심긴 칩들을 통해서 인식하였다. 과연 컴퓨터들 모두가 일종의 공포심에 빠져 있었다. 기계들이 감정을 느낀다면 우스운 표현이겠지만, 지금 이들이 감지한 경고 신호는 통상의 궤를 벗어난 수준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존재감.”

 

 

악령에 사로잡힌 인간조차도 순간 위압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현 인류 문명의 궤를 벗어난 위력이다. 브리튼 제국 전체와 싸워도 단숨에 승리를 거둘 전력이겠지, 분명.”

 

 

황태자는 저런 권능을 휘두르면서도 폭군이 되기를 거절했단 말인가. 세계 자체보다 강해진다면 세계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자신 같았으면 그 힘으로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하였을 것이다. 굳이 저렇게 잠금 장치를 걸고서 자신의 힘을 제한해야 했단 말인가?

 

 

“지금 막지 않으면 안 되겠군. 세일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브리튼 사령탑에 노출해버렸지만, 대신에 제어자는 인간의 몸. 그것도 내 앞에 무방비한 상태로 있다. 지금 죽이면 그만이야.”

 

 

“그렇게 하도록 놔둘소냐.”

 

 

세일린이 다시 한 번 이차 트랩들을 발동하여 트라하의 몸을 더욱 강하게 결박하였다. 그러나 귀신 들린 이 악인은 무식하게 완력을 발휘하여 줄들을 잡아뜯으려 했다. 그 장력으로 인해 결박이 고정되어 있던 방의 천장, 벽, 기둥, 바닥 등이 흔들리며 작은 지진이 벌어졌다.

 

 

콰아아앙.

 

 

세일린의 머리 위로 천장의 잔해가 떨어졌다. 방들이 하나씩 붕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간신히 머리를 가려 스스로를 보호한 세일린은 몸을 회피해 위험한 위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듯했다.

 

 

‘묶어둬야 해.’

 

 

황태자가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안에는 몸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 잠깐 그가 전력을 다하도록 기회를 몰아주어야 한다. 일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트라하가 악령의 힘으로 황태자가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리라.

 

 

콰아아앙.

 

 

다시금 세일린 위에 있던 천장이 흔들리며 부스러기를 쏟기 시작했다.

 

 

“어머니!”

 

 

다급하게 외치는 청년의 소리. 생전 처음 내뱉어본 말이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긴 했지만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다.

 

 

“난 괜찮아요.”

 

 

세일린은 아련한 미소를 억지로 머금고 몇 층 위의 난간에 서 있는 황태자에게 안위의 신호를 보냈다.

 

 

“저자가 어떤 계략을 준비하건 당신이 몇 분만 집중하면 훼파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아무런 염려는 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사(大事)를 성취하는 것에만 온 집중을 쏟으세요.”

 

 

마치 병으로 죽어가는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괜찮다며 위로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었던 황태자는 아주 잠시 주마등과 같이 스치는 데자뷔를 느꼈다. 병상에서 어머니도 자신을 억지로나마 위로했었다.

 

 

“내가 가르쳐준 좌표들, 다 기억하시죠. 당신은 기억력이 좋으니 하나도 잊지 않았으리라고 믿어요.”

 

 

세일린은 암호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알렉시스는 그 말을 듣고 중요한 깨달음이 머리에서 스쳤다. 그제야 이해되지 않던 퍼즐들이 원래의 그림대로 조립되었다. 그는 이를 세게 악물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잠시 그녀를 믿고 알렉시스는 눈을 감았다. 트라하도, 세일린도, 무너질 것 같은 이 굴혈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맑아졌다. 어린 시절 이후로 처음으로 따스한 위로를 들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친어머니에 대한 위로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하나님께서도 어머니를 버리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너지는 줄 알았다.’

 

 

트라하의 말이 진실을 가능이 크리라. 어머니가 그들의 무리에 연합되었던 자였음은 분명하다. 적어도 그들의 요람 안에서 양육된 분이셨겠지. 그러니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갖지 못하셨을 가능성도 크다. 믿더라도 그분을 이용하려는 마음으로 잘못 믿으셨을 수도 있다. 즉 구원 받지 못하셨을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크다. 만일 진실이 알려진다면 친어머니는 황실과 하나님으로부터도 명예와 존중을 잃고, 사탄과 그 무리에게도 버림받은 가련한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그 생각에 내내 마음이 괴로웠고 집중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일린 황후가 했던 한 말이 이유 모를 작은 위안을 주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두고 ‘유일한 나의 친구’라고 불러주었다. 거짓말이 아님은 타인의 심리를 읽는 데 능한 알렉시스이기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세일린은 심지어 이 진실을 걸고서 자신 자신을 희생할 각오까지 했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었다. 비록 정직함을 잠시 희생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긴 했다만, 그녀를 위해 기꺼이 이중스파이가 되어 주고 악인들의 멸망을 위해 자기 명예를 희생하기로 결정한 한 친구가 남았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었던 것일까?’

 

 

이성적인 근거는 없지만 이런 기대감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면, 이 일들 또한 그분의 뜻 아래에서 일어난 계획이겠지. 그렇다면 어머니는 하나님의 계획 밖에 내던져진 분이 아니다. 그분은 마지막까지 그녀를 신경쓰셨고 돌아보셨고 굽어살피셨는지도 모르겠다. 한 친구가 그녀를 이렇게 깊이 생각해줄 수 있다면, 하물며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그분은 어떠하겠는가.

 

 

이런 기대가 불길이 되어 마음을 적시자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생동감이 영혼 속에서 다시 회생하였다. 그것은 불꽃이 되어 다시금 침울해졌던 마음을 되살렸다. 모든 마음의 기능들, 특별히 찬란한 재능과 민첩한 논리력과 창조적인 상상력이 최상의 상태로 새롭게 되어 맹렬히 회전하였다.

 

 

그리고 알렉시스의 능력 개화는 아이언로드 알파에 대한 지배력 강화로 귀결되었다.

 

 

{최종 전투 모듈 가동합니다.}

 

 

“단번에 마무리한다.”

 

 

알렉시스는 머릿속으로 세일린이 직전에 남긴 암호를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그녀와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서로 예의를 갖추었고 존중의 태도를 보였다. 생각해보면 가끔 간간이만 말을 섞긴 했어도 그 대화는 어색하긴 했을지언정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감상도 자주 스쳤고 허락만 된다면 같이 잘 지내봤으면 하는 소원도 있었다.

 

 

알렉시스는 친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지구본을 소년 시절부터 애지중지하였다. 종종 세일린은 그와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기면 그 지구본을 두고 소년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곤 했다. 주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녀는 세계 곳곳의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장소들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 알려주었다. 부드럽지만 고고한 목소리로 조곤 조곤. 그 가운데는 알렉시스의 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그때마다 알렉시스는 귀를 쫑긋 세워 집중하곤 했다. 그때는 세일린이 자신과 이본의 친분을 일부러 드러내진 않았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녀가 정말로 이본을 친애했었던 것 같다.

 

 

지구본 위에는 알렉시스가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세일린을 통해 전달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록된 좌표들이 여럿 있었다. 알렉시스는 스무살이 될 때까지 좌표들을 하니씩 쌓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곤 했다.

 

 

그때는 왜 새어머니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 자신에게 이야깃거리들을 나눠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의도적인 신호였어.’

 

 

그녀는 트라하와 비밀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주로 여섯 종류의 초상물질들을 운송하고 채굴하는 일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녀 자신은 사탄숭배자들의 깊은 연회에 참여하지 못했고 계시를 받지도 못했으니 원료 매장지를 알지는 못했겠지. 그렇기에 어떻게든 트라하를 이용했어야만 했으리라.

 

 

‘게다가 만일 우리 측에서 초상물질의 좌표를 알아내었더라면 우린 필시 그것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세일린은 그 물질들이 사탄의 손에 오염되었음을 알았기에 브리튼이 손을 더럽히지 않도록 일부러 트라하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녀의 세심한 지혜에 알렉시스는 감탄했다.

 

 

‘하지만 적어도 채굴된 그 물질들을 저장할 장소에 대해서는 어머니 측에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겠지.’

 

 

그렇게 많은 물질들을 저장하려면 사전 공사가 필요하며 유통망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 관여했던 세일린이 모를 리가 없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중스파이로서 결정적인 때를 위해 소년 알렉시스에게 정보를 누출해주었던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총 육십 개의 좌표. 알렉시스는 지구본에 찍힌 그 좌표들을 향해 위성 시스템을 모조리 가동하여 감찰의 눈을 펼쳤다. 아이언로드와 연계된 브리튼의 모든 첨단 위성이 지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현상들을 치밀히 파악했다. 아주 작은 이변적 흐름마저도 놓치지 않도록, 모든 종류의 현대물리학적 현상을 감지하도록 프로그램들을 총동원하였다.

 

 

더불어 전 세계의 인공지능 시스템도 알렉시스의 보조 연산자가 되었다. 초상물질의 공명은 보통의 물리 현상을 벗어난 힘이니 물리 이론을 접목한 관측기만으로는 탐색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일정 부분은 추측에 의존한 추리가 요구된다. 이러한 일에는 인공지능만한 도구가 없었다.

 

 

“수색 완료.”

 

 

신속한 연산 작업이 오차 없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렸다. 알렉시스라는 마에스트로가 지휘를 맡은 덕분에 연산자들은 위대한 관현악단처럼 온전히 목적에 맞는 합주를 이뤄내었다.

 

 

“찾았다.”

 

 

{탐색 완료. 총 60개의 지하 시설 특정.}

 

 

알렉시스와 비블로스가 동시에 유레카를 외쳤다.

 

 

“육백 개의 사상조작병기, 육십 개의 초상물질 저장 시설, 그리고 여섯 종류의 초상물질인가?”

 

 

육백육십육(666). 취향도 참 힐렐답다.

 

 

“간다.”

 

 

알렉시스는 머릿속에서 모은 모든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방금 전 몇 분 동안에 완성한 전략들을 시행으로 옮겼다. 사상조작병기를 처음 상대하는 것이 어려웠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다. 게다가 지금은 인프라도 이쪽이 우위다.

 

 

그는 최근 획득한 초상물질 관련 연구 데이터, 아이언로드 알파 내에 탑승한 연구원들의 자료, 그리고 그간 팀 에덴의 도움으로 완비한 연구 프로젝트들을 하나로 모아 작품을 완성했다. 아이언로드 알파의 인공지능 마더 컴퓨터 덕분에 신속하게 실시간으로 작업들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 마침 하드웨어적 요소들이 이미 준비가 되었기에 알렉시스로서는 미시 조정만 마치면 그만이었다.

 

 

“서펀트크러셔를 사용한다.”

 

 

지난 이슬람 진압 때 쓰였던 ‘심판의 창’이 아이언로드 베타들의 주무기였다면, 아이언로드 알파 내부에는 그 상위호환이자 맞춤형 병기인 ‘서펀트크러셔(Serpent Crusher)’가 내재되어 있다. 이 또한 입자물리학의 극한이자 에너지 병기인데, 현존하는 입자 및 파동은 물론이고 인위적으로 재조립하여 창조한 파동 입자도 사용 가능하며 더불어 각종 특수 물리값을 주입하는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했다. 이것은 팀 에덴과 팀 사이나이 소속의 모든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어 완성한 걸작 중의 걸작요, 알렉시스의 지식과 미시 조율이 곁들여지면 가히 세상을 뒤엎을 단독 병기가 될 권능이었다.

 

 

알렉시스는 아이언로드 알파의 연산력을 동원하여 서펀트크러셔의 입자 물리량과 파동 함수값을 조정하였다. 그리고 입자 생성, 증폭, 전달, 공명, 속성값 변경 등의 작업에 복잡다단한 알고리즘들을 설정하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런 연산을 혼자서 단시간에 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일곱 팀의 천재 과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의 연구를 미리 모아두어서 사용하는 것이긴 해도, 알렉시스이기에 이런 방대한 지식들을 초 단위 짧은 시간에 최적의 해법으로 응용할 수 있다. 물론 컴퓨터의 연산력을 빌리긴 했다만, 이 또한 압도적 정신력을 소유한 그에게만 가능한 옵션이다.

 

 

“완성했다.”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서펀트크러셔를 맞춤형 재단한 알렉시스. 그는 포문의 물리적 상태를 점검하였고 최적의 방출 패턴을 이루도록 선체의 전체적 구조를 변형하였다.

 

 

‘하나님, 부디 저를 도우사 제가 실수 없이 맡은 일을 감당하도록 이끄소서.’

 

 

짧지만 간단한 기도를 드린 후, 그는 행동에 돌입했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들 가운데 있는 용들의 머리를 깨트리시리라 (시편 74:13). 주께서 구원을 위해 나아가서 그 사악한 자의 집에서 그 기초를 목까지 드러내심으로써 그 머리를 상하게 하셨나이다 (하박국 3:13)”

 

 

 

 

 

촤아아아악.

 

 

수백 개의 강력한 빛의 선이 방출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인 전자기파도 아니요, 전자나 입자들의 폭풍도 아니었다. 특수하게 속성이 재단된 입자와 파동의 조합체. 그 밀도는 현대 화기 전체를 능가했으며 그런 엄청난 힘을 단 한 방울도 공기 중에 흘리지 않은 채 정확하고 부드럽게 공간을 횡단하였다. 번개가 동쪽에서 번쩍이면 서편에까지 이르듯, 그것은 성층권을 가르고 대류권을 지났다.

 

 

이어지는 현상은 심히 공포스러웠다. 무인 지대에 설치된 열 개의 지하 요새들을 향해 천벌의 창이 돌격하였다. 기가톤급 수소 폭탄 수백 기의 에너지를 오롯이 압축형 빔으로 눌러놓은 권능이었다. 공기와는 전혀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덕분에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그 힘은 대지에 닿는 순간 갑작스럽게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지도, 에너지와 진동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그저 깔끔하게 녹이며 관통하였다. 어찌나 정밀하게 녹이는지 주변으로 열의 폭풍마저도 전달되지 않았다. 그저 뚫고 뚫고 또 뚫어 내려갈 뿐이었다. 지각을 뚫고 급기야는 맨틀에까지 닿을 기세로.

 

 

“힐렐의 마력이 담긴 그 물체들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건 안 됩니다.”

 

 

세일린이 알렉시스에게 외쳤다.

 

 

“물리적으로 흩고 분해하면 그 입자 하나하나가 암흑의 속성을 그대로 입은 채 분산될 뿐입니다. 악마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다시 그것들을 입자 하나하나 모아서 후일을 기약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알렉시스는 의미를 이해하였다.

 

 

“알겠습니다.”

 

 

만일 초상물질을 엄청난 열로 녹이거나 모조리 부순다고 하자. 그런다 해도 입자에 깃들린 특수 속성과 힐렐이 주입해놓은 힘은 그대로 유지된다. 당장의 인류가 그것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힐렐과 인간계와의 연결 고리를 없애겠다는 브리튼 황실의 당초 목적은 되려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미 고려해두고 있었습니다.”

 

 

알렉시스는 이어서 후속 타격을 준비했다. 깊은 지하에 묻힌 지하 요새를 향해서 발사된 섬광은 커다란 구멍을 열었고 그 구멍은 모든 초상물질에 닿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아이언로드에서 뒤어어 또다른 설정값의 서펀트크러셔가 발사되었다. 이번에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간 빔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물리 작용을 일으켰다. 공기를 가르고 진행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다가 요새 속의 저장고에 들어가자마자 사방으로 산란되었다. 곧 그 에너지는 분산되어 초상물질 전체로 스며들었다.

 

 

파치치지직.

 

 

동결 현상이 일어났다. 물질들이 물리적으로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기묘한 화학 작용에 의해 변질되었다. 분자 결합 그 자체에 설정된 마력진이 깨어진 것이다. 분자 결합 내에서 작동하던 특수한 파동들이 어그러졌으며 초자연계에서 주입된 힘이 동결되어 결빙된 화석처럼 봉인되었다. 물리계와 초자연계의 연결고리를 제거한 것은 아니나 그것을 무력화한 뒤 박제한 셈이었다.

 

 

“에드윈 녀석이 박사들보고 연구를 시켜두지 않았다면 공략법을 찾지 못했겠지. 정확히는 사탄 쪽에서 너무 무리수를 둔 덕분이지만.”

 

 

그들이 만일 자신들의 영향력을 결정화하여 초상 물질 속에 섞지만 않았다면 인간계의 하찮은 능력으로는 감히 그 영향력에 손을 대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그 힘을 물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형태로 일종의 ‘성육신’시켜둔 덕에 인간 측에서도 역으로 조작할 여지가 생겼다. 알렉시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위이이이잉.

 

 

활성화되었던 초상물질들이 빠르게 에너지를 잃고 잠들었다. 찬란하게 빛나던 여섯 종류의 물질과 그 다양한 화합물들이 녹슨 철처럼 부스러지며 흙처럼 빛이 바랬다.

 

 

<<빌어먹을, 감히 인간 따위가 이 따위 짓을!>>

 

 

생각지 못한 이변으로 일이 뒤틀리기 시작하자 마왕은 분개하였다.

 

 

[네가 처음부터 감당하지 못할 요구였노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후회해도 늦은 일이었다. 아도니야가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에게 수넴 여인을 요청했을 때, 그는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반지의 군주가 모든 자유로운 종족들을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반지에 담았을 때, 그는 자신을 파멸시킬 여지를 만들어주고야 말았다. 사탄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말도 안 돼!”

 

 

그 경악스러운 현상을 감지한 트라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공포에 떨었다.

 

 

“이 궤를 벗어난 물질들을 인간의 지혜만으로 무력화한다고?”

 

 

그는 격의 차이를 느끼며 전율하였다.

 

 

‘하지만 아이언로드 알파의 개수는 단 하나.’

 

 

서펀트크러셔를 사용할 수 있는 기체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반면에 지구 위에는 육십 개의 저장창고가 존재한다. 그것들 모두를 요격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며 공간적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요새를 향해서는 빔을 발사하지 못할 테니까.

 

 

“다음 프로세스 시작이다.”

 

 

알렉시스는 여유만만한 목소리로 손가락을 튕겼다.

 

 

“회절 패널 준비.”

 

 

{라져.}

 

 

쉴 틈을 주지 않고 아이언로드는 다시금 수천 발의 서펀트크러셔를 발사하였는데, 이번에는 첫 번째의 관통형 빔과 두 번째의 동결형 빔을 조합한 복합형 빔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위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 빔들은 위성들을 향해 진격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위성들은 그 무형의 빔들의 경로를 뒤틀었다. 파동을 굴절하고 입자들의 경로에 외력을 가하여 정확히 원하는 길로 가도록 재설정하였다.

 

 

이 같이 미리 준비된 위성 렌즈들이 이차 삼차에 걸쳐 빛을 주고 받고 분산시키며 모아주었다. 곧 지구 한 쪽에서 발사된 빔들은 꺾이고 또 꺾이고 나뉘어져 모든 좌표로 골고루 배분되었다. 위성들은 그 빔들이 육십 개의 저장 창고들을 향해서 모이도록 정밀하게 길을 닦았다.

 

 

이후 더욱 충격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위성을 통해 반사되고 굴절되고 회절되는 동안에는 위력이 낮게 설정되었던 빔들이 성층권을 넘어 대류권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밀도가 증폭되었다. 양자 얽힘을 통해 아이언로드 본체로부터 빔의 말단부를 향해 직접 에너지가 전달된 것이었다. 현대 과학의 모든 정수를 쏟아부은 오버테크놀로지의 결정체였다.

 

 

“말했잖아. 지식과 기술을 부지런히 갈고 닦았다고.”

 

 

저장 창고를 지키던 인공지능들은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수십 발의 천벌들을 바라보며 해답을 갈구하고 또 갈구하였다. 모든 확률을 무수한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해본 결과, 회피할 가능성은 제로였다.

 

 

사실 트라하는 이미 첫 번의 요격으로 몇 기의 저장 요새를 잃은 직후, 뇌 속 칩을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해 비상 대응 프로세스를 가동하긴 했다. 나머지 요새들에 담긴 초상물질들을 일부나마 수송관을 통해 빼돌리도록. 하지만 알렉시스의 이차 요격은 그 부분까지 감안한 공격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물리적으로 수송 가능한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서펀트크러셔는 그 범위까지 포함하여 완벽하게 암 절제술을 시행하였다.

 

 

콰아아아앙.

 

 

최소의 후폭풍만을 일으킨 채 심판의 빛들은 정확히 적의 심장부의 점혈을 찔렀다. 관통 직후 스며든 동결의 파동이 순식간에 모든 초상물질을 1mg도 남김 없이 오염시켰다. 힐렐이 무리하게 얻어내었으며 트라하가 쌓아둔 모든 재물이 하루 아침에 불태워지는 순간이었다.

 

 

{공명 반응 정지 확인.}

 

 

이어지는 일은 공명 작용의 차단이었다. 거침없이 사념파를 토해내던 사상조작병기들의 출력이 급속도로 저하되었다. 당장 몇 초안에 중지되지는 않았으나 이제 상쇄 병기들만으로 충분히 밀어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행운의 징조를 확인한 군인들은 두려움을 걷어내고 용기를 얻었다.

 

 

“시설들이 힘을 잃고 있다.”

 

 

“에너지 반응이 낮아지고 있어.”

 

 

그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진 못했지만, 전문가들답게 다음 스텝을 위해 태세를 준비하며 마음을 갖췄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통을 넘겨받은 것은 아이언로드 베타들이었다.

 

 

“일시적으로 자율 모드를 허한다. 베트, 기멜, 달렛, 헤, 바브, 자인, 헤트.”

 

 

알렉시스는 아이언로드 베타의 사령탑 역을 맡은 일곱 기의 아바타, 곧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자신의 복제품 로봇들에게 명령어를 주었다. 평소에는 단말기 노릇을 하며 자신의 정신 체계를 학습해오던 녀석들인데, 일시적으로 모드를 변경함으로써 그간 쌓아온 학습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정신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잠시나마 알렉시스와 동일한 경지의 지혜를 흉내내되 본체의 통제를 받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일곱 드워프 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기체들이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땡큐, 마스터.”}

 

 

{“알레프의 명령대로 따르죠.”}

 

 

이들에게 붙여진 코드네임은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알렉시스 본인에게는 그중 첫 번째 알파벳인 알레프가 붙었고 나머지는 그 다음 순서 일곱 개의 알파벳을 받았다. 베트, 기멜, 달렛, 헤, 바브, 자인, 헤트는 1분의 시간 동안 잠시 알렉시스와 동일한 기량의 지혜를 흉내낼 권세를 얻었다. 여기에 인공지능 본연의 연산력과 아이언로드들의 백업도 더해졌다.

 

 

{“마침 감마 시리즈의 성능을 테스트해볼 기회로군.”}

 

 

항공모함을 엄호하듯, 아이언로드 베타 하나하나를 엄호하는 보조 공중 전함들이 모여들었다. 최근에 완성된 아이언로드 감마 시리즈로, 크기나 위력은 상대적으로 작으나 양산이 가능할 정도로 단가가 경제적이었다. 이들은 이제 아이언로드 베타들을 거둘 보조자가 될 것이다.

 

 

일곱 기의 알렉시스의 아바타들은 미리 준비된 아이언로드의 간판 병기, ‘심판의 창’을 활성화했다. 서펀트크러셔처럼 복잡하게 설정값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그저 에너지 밀도를 잘 조정하여 적의 핵심부를 향해 조심스럽게 수술만 집도하면 그만이다. 이미 위성 장치를 통해 내부 정보도 충분히 모였겠다, 인공지능의 연산력도 받쳐주겠다, 주인의 판단력도 잠시 얻었겠다, 어려울 건 없었다.

 

 

{“사상조작병기 전기 타격 실시.”}

 

 

에너지를 공급해줄 공명원들을 상실하여 무력화된 사상조작병기들을 향해 수만 발의 심판의 창들이 쇄도했다. 1mm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조정된 좌표들을 향해 매서운 섬광들이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현존하는 방어 병기나 요새 중 어떤 것도 이 관통력을 막을 것은 없다.

 

 

지이이이잉.

 

 

먼저 빛의 창날들은 사상조작병기와 연결된 보조 연료 저장 토굴들을 본체로부터 끊어내었다. 연료 전달 수송로가 절단되었고 그와 동시에 특수 섬광 속에 담긴 파동에 의해 정밀한 냉각 작용이 일어났다. 알렉시스의 아바타들이 아주 정밀하게 연산하고 설정한 덕분에 예상치 못한 폭발은 모두 차단되었다.

 

 

차례 차례 자폭 위험 요인들의 제거가 진행되었다. 기폭 장치의 뇌수를 녹였으며 연쇄를 유발할 전선들을 끊었다. 만일 사상조작병기 내의 초상물질이 여전히 활성화된 상태였더라면 이런 작은 자극만으로도 지진 발생 모드가 곧장 가동되었겠지만, 다행히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무력화되었다. 이제 부수적인 위험 요소도 오차 없이 신속히 제거되었고 남은 건 기기의 본체 타격이었다.

 

 

{“이차 정밀 타격 개시.”}

 

 

이번에도 일곱 명의 지휘관은 신의(神醫)를 방불하는 솜씨로 수술 집도에 돌입했다. 모든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 그들은 단 한 치의 폭발 가능성도 허락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사상조작병기의 핵심 기관들을 찔렀다. 컴퓨터를 관통하고 중앙 관제탑을 관통하였으며 연산의 중심부를 마비시켰다. 수 차례의 포격이 이어졌으며 사상조작병기들은 빛의 가시로 도배된 고슴도치 신세가 되었다.

 

 

“황태자 전하의 비밀병기다!”

 

 

“다시 희망이 밝아온다!”

 

 

군인들과 요원들은 숨을 죽인 채 긴장감으로 하늘의 심판을 바라보았다. 한치의 오차조차도 시설 전체의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에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아이언로드의 강력한 에너지빔이 경이로워 외경심이 들기도 했다. 저 한 발 한 발이 핵폭탄을 방불하는 에너지일터, 그것이 오롯이 원하는 부위만을 녹이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시설 제압 완료.}

 

 

{자폭 반응, 감지되지 않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보아도 땅에서는 미진(微震)조차 일지 않았다. 너무나도 고요한 나머지 무서울 정도였다. 사상조작병기들의 가동은 완전히 정지되었다. 사념파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전기 기능마저도 멈췄다. 확인 사살마저 사실상 끝난 사망선고. 군인들은 승리의 함성을 외쳤다.

 

 

“지금이다!”

 

 

다시금 아이언로드 베타들이 육백 기의 시설들 근처에 굵직한 토굴을 뚫었다. 에너지빔이 관통하여 만들어진 동굴은 시설 자체를 다치게 하지 않은 채 정확하게 입구를 뚫어 군인들이 편안히 돌입할 길을 닦아주었다. 정예 요원들이 용기백배하여 사실상 사망한 사상조작병기 안으로 진입했다.

 

 

 

 

 

“헉! 헉! 허억!”

 

 

모든 작전을 마친 직후, 접속을 끊은 알렉시스는 탈진하여 무릎을 바닥에 대었다. 가까스로 쓰러지지 않고 버티긴 했으나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방대한 연산과 사고 활동은 단 시간에 쏟아부은 후유증이었다.

 

 

“거짓말.”

 

 

이 자리에 있던 또 한 명의 사람 역시 완전히 몸이 굳은 채 망연히 섰다. 그를 잠식한 감정은 외경심과 우주적인 공포였다.

 

 

‘인간한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보통 사람이 호랑이를 산 속에서 만날 때 드는 감정, 그것과 비슷한 감각이 그의 척추뼈부터 시작해서 말초신경 하나하나를 마비시켰다.

 

 

‘저것마저도 아직 초인의 경지에는 이른 것이 아니라고? 힐렐이 언급했던 그 초인이란 단계는 도대체 무슨 존재인거지? 우리의 상상력이 닿을 수 있는 게 맞긴 한건가?’

 

 

완전히 넋이 나간 트라하의 귓가로 악령들의 소음들이 시끄러이 메아리쳤다.

 

 

<쓸모없는 것.>

 

 

<넌 이제 필요없다, 실패자.>

 

 

<폐기물 같으니라고, 당장 죽어버려.>

 

 

<소모품으로 쓰인 뒤 그만 퇴장해라.>

 

 

<네놈 때문에 공든탑이 무너졌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평소 같았으면 신들의 이 잔인무도한 말에 벌벌 떨었겠지만, 어인 일인지 지금은 알렉시스 황태자에게서 느낀 공포감이 너무 큰 나머지 감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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