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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84회 [2부] 105화. 사탄의 절대반지 (2부 完)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29 | 회차평점 0 0

 

 

 

브리튼 제국의 알렉시스 황태자가 마흔두 살이 되던 해의 첫 달, 세상은 시끌벅적했다. 이미 있던 세 번의 세계 대전들, 한 차례의 종교 내전에 이어 제국이 치른 또 한 번의 홍역. 내란은 그 파급력에 비해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실질적 피해가 많이 남진 않았으나 진실이 들춰짐으로 말미암은 소동이 대중을 어수선하게 하였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카펫 밑에 쌓여있던 지저분한 먼지들이 밝은 등불 아래 훤히 드러났다. 수백 년 묵힌 진실들이 세상에 훤히 공개되자 오대양 육대주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혀졌다. 차라리 이전에 이런 일들에 대한 음모론이라도 회자되었더라면 그 충격이 덜했을 텐데,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던 추악한 내막이 폭로되었으니 얼마나 폭발적이었으랴.

 

 

내란 하루 만에 수십만 명도 넘는 범죄 가담자들이 체포되었다. 이어서 그들과 연루된 공범들도 줄줄이 실에 구슬을 꿰듯 호송되어 법의 심판대에 올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내란 몇 주 전에 계획했던 범죄들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 행했던 범행까지 모조리 색출되어 물증으로 박제되었다.

 

 

이 거대 범죄 카르텔들에 엮인 이들은 높은 이부터 낮은 이까지, 자유로운 이부터 속박된 이까지, 음지의 세력부터 양지의 존경 받는 위인까지,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망라하였다. 그들은 개개인 단위로도 각종 범죄와 비리를 행해왔으며 조직 단위로도, 그리고 더 크게는 거대 사교(邪敎) 집단의 사주로 오컬트적 범행도 숱하게 쌓아왔다. 이 모두는 이제 엄격히 처벌될 예정이다.

 

 

아울러 이 일을 계기로 인류 보안 법률은 더욱 구체화되었고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영적인 범죄’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는 이번에 잡힌 범죄자들이 실제로 초자연적 범행을 저질렀음이 드러났고 그 물증까지 황실에 의해 확보된 덕이었다. 이제 올해 이후 임할 세상에서는 각종 타로 카드, 주술, 무속, 샤머니즘, 영매, 접신 등이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되리라. 점술사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직종을 바꾸거나 브리튼 밖으로 나가야 할 터인데, 지구 전역이 제국 영토이니 일단 두 번째 옵션은 고려 대상 밖이었다.

 

 

소위 칠십 인의 장로라 하는 자들은 내란 당일에 80% 이상 체포되었고 나머지도 며칠 안에 도주 중 허무하게 사로잡혔다. 그들의 부하들과 하위 장로들, 연합된 마피아 조직원들, 혈맹들, 계약자들, 그리고 스파이들 역시 우두머리를 잃은 오합지졸이 되어 파죽지세로 전멸되었다.

 

 

 

 

 

공범들 가운데는 유서 깊은 유대인 거부 가문의 일원들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가문은 송두리째 범죄에 동참하기도 하여 사실상의 멸문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목숨만 거두지 않을 뿐 재산도, 명예도, 권위도, 영향력도, 모조리 몰수될 예정이다.

 

 

이런 배경에서 반유대주의가 고개를 다시금 올리려 꿈틀거렸으나 알렉시스 황태자가 먼저 이 일을 방지하고자 조기에 선수를 쳤다. 그는 가장 적절한 시점을 계산한 뒤 폭탄 같은 진실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현재 유대인으로 알려진 사람들 중 일부는 에돔인입니다. 그 동안은 혼란을 막고자 철저히 비밀에 부쳤지만, 이제는 불가피하게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할 때가 도래했습니다.”

 

 

이 발언에 세상은 다시금 발칵 뒤집어졌다. 만일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음모론 취급을 당했겠지만 하필 발언자가 세계 대전의 영웅이요, 내전과 내란을 승리로 이끈 세계 번영의 일등 선두주자인 황태자인지라 시민 대부분이 비판 없이 그 말을 믿었다. 마침 가짜 유대인들 중 상당수가 범죄 가담으로 체포된 지금, 더는 알곡과 가라지의 구분을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은 유전학적으로도 증명될 수 있는 실질적 구분임을 나는 믿습니다.”

 

 

알렉시스가 ‘유대인’과 ‘가짜 유대인’을 나누었을 때 그는 단순히 히브리 언약에 의거한 영적인 구분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유전자 내에도 실제로 에돔인과 유대인을 나눌 단서가 있음을 확신했다. 그는 억울한 유대인들이 도매급으로 반유대주의의 비판에 휘말리지 않도록 구별 작업에 돌입했다. 의외로 많은 정통 유대인들이 여기에 협조했다. 산달폰이 이들을 설득함에 있어서 많은 역할을 하였다.

 

 

한 달도 되지 않아 대규모 코호트에 대한 유전자 분석 연구가 완료되었다. 현재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거의 모든 이들과 체포된 자들을 비롯한 가짜 유대인 가문이 자신들의 게놈 샘플을 알렉시스와 커버넌트 그룹 측에 순순이 헌납하였다. 강한 권력을 소유한 알렉시스이기에 실행할 수 있는 작업이었고 이마저도 내란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명분을 깔아준 덕분이었다.

 

 

연구 결과 산달폰이 폭로했던 진실을 과학적인 사실임이 밝혀졌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이들 가운데는 두 개의 극명하게 구분되는 그룹이 존재했다. 한 그룹은 보통의 유대인들, 다른 한 그룹은 다수의 유력한 권세자들을 포함한 집단으로 유대인과는 상이한 유전 패턴을 지니고 있었다.

 

 

여담으로 이 연구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진짜 유대인’들의 유전자 속에는 기이한 후성유전학적 고유 패턴들이 존재했는데 그 중 어떤 것들은 현대의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차원적인 초상 현상적 특질까지 내포한 요소였다. 알렉시스는 이것이 아마도 ‘히브리 언약’의 실질적인 효력이 남은 잔흔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치 우리 가문의 유전자에도 고유의 초자연적 흔적이 남아 있듯, 저들의 유전자에도 그들만의 또 다른 특질이 녹아 있는 것일테지.’

 

 

브라이틀란트 가문의 유전자 속에 담긴 초상현상적 특징이 ‘확률 질서를 무시하는 유리한 반칙’의 특성이라면, 히브리인들의 유전자에 담긴 특수한 힘이란 무엇일까? 알렉시스는 학자로서 깊은 호기심이 빠졌다. 어쩌면 그 특수함이 산달폰과 라하토브 남매를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기이한 속성과도 연관된 것인지도 모르지.

 

 

‘삼촌이 언급했던 그 호크마란 것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려나?’

 

 

더 상자를 열어보길 원했으나 일단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였다.

 

 

 

 

 

 

 

 

 

 

 

*

 

 

 

 

 

브리튼의 모든 의회들이 내란 당시 일시적으로 자신들의 힘을 황제에 헌납하였던 것을 기억하리라. 이로 인해 잠시나마 황제는 모든 반역자들을 체포할 집행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 타작의 여파로 대의회에서부터 지방 의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회 기관들의 구성원 중 3분의 1 가까이가 범죄에 연루되어 자격을 잃고 구금되었다.

 

 

이제는 재구성의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의회는 올리버 크롬벨과 2대 왕 란돌프의 계약대로 브리튼 언약의 효력을 황실로부터 대중에게로 전이시키는 통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니 복원은 필요하겠지만, 그냥은 불가하리라. 의회 내부의 철저한 자정 작용이 선행되어야 했다.

 

 

몇 달 간 신속하게 전 세계 단위의 선거가 진행되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위험 요인들이 한 번에 뽑혀나가버린 지금, 선거 공정성에 대한 우려도 거의 제기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공정한 선거 결과, 공석을 채울 새로운 인재들이 등판해 의회의 권세를 부여받았다. 그들 대부분이 기존의 충성스러운 3분의 2의 멤버들보다도 더욱 황태자와 황실에 충성스러운 자들이었다.

 

 

황제는 이후 의회의 상태와 권세를 내란 이전 상태로 복구하였다. 반란의 요인들은 다 뽑혔고 그 자리를 더욱 충성스러운 자들이 채웠으니 앞으로 황태자의 힘과 영향력은 더욱 배가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후 알폰스는 그간 줄곧 바랐으나 아들의 제지로 늦춰왔던 작업을 신속히 앞당겼다. 바로 모든 영역에서의 전권의 위임이었다. 군권, 경제력, 정치적 힘, 정통성, 중앙정보국을 포함한 각종 정보 자산, 의회에 대한 목줄, 그리고 황궁과 그 안의 유산들에 이르기까지. 실상 공식적인 황좌 하나만 빼놓고는 아들에게 전부 다 맡기기로 한 결심을 실천으로 옮겼다. 아마도 황좌 역시 머지 않아 몇 년 안에 계승될 것으로 보였다.

 

 

여기에 대한 명분은 충분했다. 황태자는 이미 이십대 시절에도 세계를 사상조작병기의 악몽으로부터 건져낸 불세출의 영웅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과거의 악몽을 배가한 최악의 반인류 테러 범죄로부터 수십억의 존엄성을 구해냈다. 심지어 단 한 명의 군인이나 시민도 희생하지 않은 채. 이 사실이 뉴스를 타고 실시간으로 만천하에 선포되었고 가뜩이나 높았던 그의 명망과 신임은 한없이 치솟았다.

 

 

더욱이 사악한 ‘그림자 정부’와 ‘두로의 후손’들의 실체가 빛 가운데 공개되면서 그들의 악행에 대한 혐오와 격분이 일어났으며 이는 이들을 일망타진한 황태자에 대한 칭송으로 연결되었다. 물론 그들 대다수의 체포는 황태자가 잠들어있던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긴 하지만, 어쨌건 그들을 잡은 도구들은 황태자가 미리 안배해둔 카드들에서 나온 것이니 틀린 칭송은 아니었다.

 

 

 

 

 

여기에 더해 이제 마스터들의 태도가 급변하였다.

 

 

이번 사건 전까지는 그들 모두 쉽게 통제되지 않던 변수들이었다. 황제조차도 그들의 저력을 온전히 자신 뜻대로 컨트롤하지는 못했었다. 그만큼 영향력도 크고 독자적인 노선도 뚜렷하며 행방을 예측하기 힘든 거물들이요 위인들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브리튼 황실의 잠정적 정적(政敵)들인 셈이다.

 

 

그러나 트라하의 반역과 죽음은 그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물론 나머지 마스터들은 이번 일과 무관하고 결백했으나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것이 뻔했다. 이제 시민들은 트라하의 경우를 보면서 깨달았다. 마스터란 칭호가 과연 허투루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한 시대를 흔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위인들이다. 만일 이 시대가 아닌 한두 세대 이전에 태어났더라면 충분히 브리튼의 황실마저 무너트릴 수 있는 능력자들이리라. 그런 마스터 중 하나가 오랜 세월 악독한 마음으로 음모를 꾸미고 죄악을 획책한다면 얼마나 큰 재앙이 온 세상을 덮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똑똑이 보게 된 것이다.

 

 

황제조차도 그들 모두를 한 번에 다스릴 수는 없으나 유일하게 알렉시스만은 그들 모두를 압도적인 능력과 지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 이 명제가 트라하의 사상조작병기 테러 건을 통해 명백하게 증명된 셈이었다. 황제가 아들에게 모든 권한들을 물려주고 시민들도 이에 적극 찬동하며 지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마스터들도 자기 안위를 위해서는 스스로 굽히고 들어가야만 했다. 사람들이 이제 그들을 잠정적 수소 폭탄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알렉시스 황태자만이 그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모두가 믿고 있으니, 마스터들로서도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황태자 밑에 자발적으로 굴복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까지는 형식적으로만 상관으로 인정했다면, 지금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때 알렉시스의 스승이었던 자들도, 상관이었던 자도, 은인과 은사도, 정적이었던 이도, 적국 출신의 전향자들도, 독립을 주창하던 자도, 일단은 고개를 숙여 황태자에게 절대 충성을 맹약했다. 그것도 온 시민이 보는 공적인 자리 앞에서. 알렉시스도 이 흐름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회임을 알았기에 굳이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의 충성 서약을 공증하여 문서와 언약으로 확정하였다.

 

 

“물론 그대들 모두가 자유의지로 나를 기뻐하기는 어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본디 그런 위인들이 아니죠.”

 

 

알렉시스는 여유롭게 말했다.

 

 

“하지만 어떤 동기에서든 내게 연합하겠다면 환영입니다. 그대들은 먼저 제 처소로 떠나간 하나와는 달리 지혜로운 선택을 취한 것입니다. 그대들이 신실하다면 나 역시도 그대들에게 신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다른 주인을 취할진대 오늘 여기서 결정하시고 길을 택하십시오. 억지로 붙잡아두지는 않습니다. 자유로움을 택해도 좋고, 내가 걸어갈 길에서 동행하겠다면 내 뜻에 복종하십시오.”

 

 

그렇게 양첸 타이산, 제라드 폴 매카서, 야코프 폰 카이퍼, 아미르 코헨 벤큐뤼온, 무스타파 이스마일, 타오슈란 메이안, 하칸 바르에르든, 나탈리아 올가 알렉산드라, 디에고 안드레스, 쿠조 말리크 만델라, 이렇게 열 명은 공식적으로 알렉시스의 정부에 편입하여 그의 굴레 아래서 권위를 행사하는 부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황태자의 부재를 대비하여 그의 대리인을 맡도록 황제에 의해 세워진 인물은 황태자의 삼촌인 대공이었다. 하지만 알렉시스는 그를 자기 아버지와 동일하게 여겼기에 그에 대해서는 권위를 행사할 생각이 없었다.

 

 

 

 

 

 

 

 

 

 

 

*

 

 

 

 

 

두 달 정도 시간이 지나 내란의 여파는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대부분의 가담자와 관계자는 온당한 형벌을 받았다. 대부분은 죽을 때까지 바깥 세상을 볼 수 없도록 수감되었고 죄질이 매우 극심한 우두머리들은 반인륜 범죄에 대한 징벌로 극형에 처해졌다. 그들이 수십 년 전부터 인신 공양과 주술적 인신 제사와 그에 준하는 악행을 사탄 힐렐의 이름으로 꾸준히 자행해온 것이 명백히 드러났을진대, 이런 형벌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실 측에서 해결해야 할 마지막 숙원 사업이 남아 있었다. 단순히 바벨 시티의 수호자들을 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바벨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영적 어둠의 허브를 공략해야만 한다. 알렉시스에게 주어진 영웅명(英雄名)은 ‘키메라 살해자’라는 뜻으로 주어진 예언적 호칭이다. 이제 그가 그 역할을 다할 때가 이르렀다.

 

 

“핵심은 바로 ‘초상물질’입니다.”

 

 

황태자는 아버지와 가신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설명했다.

 

 

“태초의 바벨탑이 세워졌을 때부터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인간계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초자연적 ‘시스템’을 창조하였습니다. 역사 속에서 그 시스템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가며 그 명목을 유지했었죠.”

 

 

말하자면 일종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실체화한 프로그램이라고 이해해도 좋으리라. 마치 컴퓨터가 OS를 지니고 있듯이, 사탄에게도 인간계의 각종 요소를 제어하는 데 쓰이는 OS(Operating system)가 있다. 이 시스템의 통제 아래에서 종교들도 만들어지고 이념들도 만들어지며 각종 탐욕의 확산도 이뤄진다. 정치 시스템도, 오컬트 문화도, 각종 혼탁한 미디어와 문화도 이 시스템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다.

 

 

구태여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초자연계의 존재들은 물리계의 연약한 존재들과 달리 지나치게 거대한 힘을 지녔다. 초자연계 속의 지극히 작은 개체 하나의 권능과 위상조차도 물질계의 모든 질량을 상회할 정도로 거대하다. 그렇기에 역으로 그들에게는 피조계에 마음대로 간섭하지 못하는 강대한 금제(禁制)가 씌워졌다. 이 금제는 하늘에 속한 신적인 법칙으로 사탄조차 맘대로 범하지 못하는 율례요 칙령(Divine decree)이다. 이 금제의 영향력을 우회하기 위해서 반드시 시스템이라는 간접적 통제 매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상물질이 생성되면서부터 이 ‘시스템’에 모종의 대대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초상물질이 생성된 시점에 곧바로 사탄이 모든 초상물질을 오염시켰는가? 알렉시스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유일하게 딱 하나 남긴 했으나 오염되지 않은 조각이 있었고 어머니와 새어머니는 그것을 오랜 시간 보유하였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초상물질의 창조자는 사탄이 아닌 하나님이다. 둘째, 사탄이 초상물질을 오염시켜 자신에게 종속되도록 조작할 권세는 허락받았으나 반드시 자신을 따르는 인간들을 매개로 그 일을 시행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추측해보자면, 사탄은 이 초상물질들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시스템’을 초상물질들 속으로 대부분 녹여넣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왜 그런 길을 택했는가. 초자연계의 강대한 존재들의 복잡한 계산을 알렉시스 같은 일개 인간이 이해할 턱은 없겠지만, 아마도 힐렐은 이 초상물질들을 통해 인간계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더욱 강화하려 했던 것 같다. 실제로도 그것은 어느 정도 효력이 있었다.

 

 

“말하자면 이 초상물질들은 ‘사탄의 절대반지’인 셈입니다.”

 

 

알렉시스는 ⌜레젠다리움⌟의 세계관에 빗대어 비유하였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마귀는 인간계에 대한 지배력을 지닙니다. 그는 그 제한된 지배력으로 만족하지 못해서 더 많은 것을 원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내 선조인 현왕께서 주님으로부터 언약을 얻은 것을 목격하고서 시기심과 경계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대응책으로 더 강력한 지배 시스템을 창조하고자 했으리라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선택지는 아주 현명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효율을 높이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여전히 브리튼 언약은 깨지지 않았으며 크리스토프의 후손 가운데 강대한 위인이 태어나는 것을 차단하지 못했다. 물론 황실 가운데 숱한 첩자를 심는 데 이 초상물질의 도움이 막대했던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만일 운이 나빴더라면 정말로 그들이 원하던대로 황실의 후손 가운데 그들의 유지를 잇는 자가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본이 스스로 그자들을 배반했기에 그 가정법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 역사는 돌고 돌아 역으로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알렉시스는 명령을 내려 이번 내란을 계기로 확보한 모든 초상물질을 한 자리에 모아두었다.

 

 

참고로 이는 최상위 공권력을 기반으로 선포된 엄중한 명령으로 어느 누구도 초상물질의 일부를 감히 빼돌리지 못했으며, 어마어마한 벌을 각오할 간이 부은 자가 아니면 시도조차 꾀할 수 없었다. 가디언엔젤들과 비블로스가 혹여나 어떤 누락이 있을지 심혈을 기울여 감시를 도왔다. 여기에 각종 전략 자산 및 정보 자산이 알렉시스의 수중에 있었으나 초상물질이 빠져나갈 틈새는 모두 봉쇄되었다.

 

 

트라하의 육십 개 저장창고에 저축되었던 여섯 종류의 초상물질들, 사상조작병기들 속에 내장된 초상물질들, 그 외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초상물질로 가공된 물건들과 체포된 범죄자들의 몸 속에 심어진 초상물질들까지, 모두가 몰수되어 고스란히 거대한 저장고 안에 모였다.

 

 

알렉시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이 비상한 물질들을 자신과 제국의 유익을 위해 취하여 연구한 뒤 인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 두 번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모두를 적기에 파괴하여 사탄이 바벨탑 이후로 소유해온 ‘시스템’을 부숴버리는 것.

 

 

만일 알렉시스가 단순히 뛰어난 군주이기만 했다면 그는 첫 번째 선택지의 거대한 유혹에 넘어갔으리라.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대신에 자신의 것으로 취하여 선하고 위대한 용도로 쓴다면 얼마나 유익하겠는가. 이것은 그런 류의 유혹의 음성이었다. 내심 사탄으로서는 그쪽에 희망을 걸어보았으리라.

 

 

알렉시스는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의 군주이기 이전에 신의 종이었고 그분께 허락받은 범주 이상의 것을 감히 취할 수는 없었다.

 

 

“사탄의 반지를 부숴버리겠습니다.”

 

 

그는 수많은 가신들과 국가 관료들과 과학자들과 목사들이 목격하는 앞에서 힐렐의 ‘시스템’이 응결된 이 일련의 물질들에 대한 처형식을 거행하였다. 땅에 착륙한 아이언로드 알파가 친히 내부 입자로에서 특수 에너지를 생성하여 배리어 속에 봉인된 초상물질들을 송두리째 불태웠다.

 

 

이때 초상물질의 고유 특성과 공격 입자의 특수 성질로 인해 강력한 공명 작용까지 유발되었다. 알렉시스의 계산대로 이 자리에 모인 초상물질은 물론이고 지구 위 다른 곳에 존재하는 미량의 잔여 물질까지, 모두 일거에 공멸되었다.

 

 

이 사형식은 단순한 물리적 분쇄가 아니었다. 서펀트크러셔 때와 동일하게, 초상물질의 내부 분자식을 분쇄하였고 이를 통해 사탄의 시스템은 쪼개지고 분산됨으로써 보존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산화하였다.

 

 

 

 

 

황자들도, 황후도, 황실의 다른 구성원들도 다 같이 모여 알렉시스 곁에서 이 장면을 구경하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웅장하게 울리는 외경심이 솟구쳤다. 수백년에 걸친 어둠의 무리와 황실과의 전쟁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우린 마침내 키메라의 몸통에 작살을 꽂았구나.”

 

 

그러나 황태자는 전혀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았다. 지난 번에는 흉측한 아홉 꼬리 중 하나를 살해했다. 이번에는 몸통 자체를, 심장을 관통하였다. 그러니 통제에서 벗어난 나머지 여덟 꼬리의 폭주가 곧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피치 못할 필연적 다음 수순이다.

 

 

“잠시 소란스러워지겠지.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진멸할 수 없어.”

 

 

만일 이슬람이 고스란히 세를 유지한 채 지금 시점에 폭주했더라면 브리튼은 제국으로서는 결코 막지 못했다. 그때는 조심스레 마인드 퓨리파이어를 통해 근본주의자를 제외한 모두를 배교시킨 뒤에 신속하게 근본주의자들을 사로잡았기에 승부를 낼 수 있었다. 이렇듯 다행이도 가장 감당이 안 될 꼬리는 제거해뒀으니 나머지 여덟은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랜슨, 내 동생, 자, 이제 네가 마음껏 활약할 차례야. 한 마리는 장군들의 몫으로 내줄 테니 나머지 하나는 네가 전공으로 취하도록 해.”

 

 

알렉시스는 지체없이 장기말들을 움직였다. 키메라의 몸통이 죽은 뒤 즉각 일어날 꼬리들의 폭주를 오롯이 예측한 건 오로지 그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일이 다 벌어진 뒤 뒷북을 치는 다른 장군들과 달리 미리 작전을 진행할 수 있다.

 

 

 

 

 

<<흥미롭구나, 인간이여.>>

 

 

악마는 자신이 범한 큰 실책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과 호기심은 너무도 맹랑한 그 남자를 향하였다.

 

 

<<네가 나와 같이 교만에 빠지게 될 날이 기대되는구나.>>

 

 

잠시 살을 내주긴 했지만 뼈를 취한다면 이 또한 나쁜 선택지는 아니겠지. 모든 권세와 영예와 인기를 독차지한 인간이 과연 교만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힐렐은 알렉시스 역시 넘어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보아온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잠시 뒤로 물러나 관망하며 네가 그려낼 이야기들을 구경해주마.>>

 

 

 

 

 

 

 

 

*

 

 

 

 

 

내란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세계 몇몇 지역에서 어지러운 일들이 발생하였다.

 

 

이는 알렉시스가 예견한 바대로 전개된 현상으로 제어력을 잃어버린 몇몇 종교가 폭주함으로써 나타난 일이었다. 모든 종교들이 이 기현상에 휘말린 것은 아니었다. 바벨 시티의 에니그마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즉 사탄의 시스템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제되던 여덟 개의 촉수에만 해당 사항이 있었다. 시스템이 일시적으로나마 부서지면서 이들이 자기 멋대로 자기 파멸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중 소형 종교 셋은 ‘사탄숭배교’와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교’와 ‘그노시즘’으로 이들은 상대적으로 조기에 빠르게 진압되었다. 교인 중 상당수가 지난 내란 때 관여되어 이미 무너졌기에 나머지의 붕괴도 쉽게 이뤄졌다. 남은 잔당은 돌연 반사회적 범죄를 시도하다가 허무하게 일망타진되었다. 마침 초자연적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가능해진지라 이들을 일벌백계의 표본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탄숭배교나 그노시즘의 소멸이야 잡범 진압 정도의 의의만을 지녔으나 카발라의 제거는 유대인들을 위해 상당한 유익이었다. 정통 유대인 가운데에도 가짜 유대인들의 영향을 받아 엇나간 이들이 많았고 그런 이들이 줄곧 잘 빠지던 사교가 카발라였다. 이런 쭉정이들이 모두 빠지고 나니 공동체 전체가 건강하게 정화되는 효과가 생겼다.

 

 

거대 종교에 해당하는 ‘키메라의 꼬리’는 총 셋이었는데 그 중 가장 컸던 이슬람은 사전에 삭제되었다. 남은 둘 중 하나인 힌두교 계열의 뉴에이지 운동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폭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점진적인 소멸의 길을 스스로 택했다. 뉴에이지에 심취한 이들이 아름답게 위장된 가면을 벗어던졌고 곧 기괴하고 엽기적인 주술적 본질이 대중 앞에 훤히 드러났다. 사람들은 점차 이 계열의 종교를 혐오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지탄과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내버려두어도 이들에게는 쇠락과 소멸의 미래가 확정되리라.

 

 

 

 

 

반면에 중형 종교 셋은 상당한 문젯거리가 되었다.

 

 

그 가운데는 유서 깊은 기독교계 이단인 ‘모르몬의 증인’이 있었다. 이들은 곧 자발적으로 극단적 종말론을 지어내어 자기네 종교에 사로잡힌 교인들을 미혹하였고 각종 소동에 집단 자살까지 시도하여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물의를 일으켰다. 이들에 대한 대규모 수색이 이뤄졌으며 얼마 안 가 막대한 비리가 색출되었다. 징벌할 명분을 스스로 제공하는 격이니 브리튼 제국 측에서는 되려 문제의 뿌리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두 중형 종교는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하나는 ‘주체사상교’로 만주 지역과 한반도 북부에 세를 떨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신토이즘’으로 과거 2차 대전을 일으켰던 전범인 일본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기어코 반란을 일으켰다. 비록 지역 자체의 독립이 아닌 민중 차원의 반란이었으며 그 규모가 극심한 수준까지는 가진 않았으나 브리튼 제국 측에서도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알렉시스도 만일 군대의 개입이 필요한 사태가 벌어진다면 바로 이 두 종교에서 문제가 터질 것을 예상한 바였다. 그는 먼저 대장급 장군들을 파송하여 일본에서 벌어진 신토이즘 반란 세력을 해결하였다. 여섯 대조직의 반란이나 이슬람의 내전 때와는 달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조차 없었다. AI들을 선두에 내세울 필요도 없었다.

 

 

한편 더 큰 문제를 일으킨 주체사상교 세력은 장교 단 한 명이 동원되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랜슨 황자였다. 애초에 형인 제로스에게서 바벨 시티의 에니그마에 대한 공지를 받았던 그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고 만반의 준비도 미리 갖춘 상태였다. 황태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하였고 적은 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잘 부탁할게, 랜슨.”

 

 

테서렉틴은 자신의 권역에 상륙한 친동생에게 무운을 빌어주었다.

 

 

“걱정은 붙들어 매고 편안히 구경하고 있어, 테디 형.”

 

 

정말로 몇 주 안 되어 주체사상교와 랜슨의 전쟁은 압도적인 황자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것으로 벌써 내란 진압에 이어 두 번째 무훈(武勳)이었다. 그 공로로 그는 한 번에 두 계급을 승진하였고 경험을 더 쌓은 뒤 내년에는 한 계급을 더 승진하기로 예정되었다.

 

 

 

 

 

이로써 제어를 잃은 뱀의 꼬리들은 자멸되거나 심판되었다. 유일하게 단 하나의 위험 요인만을 제외하고. 그것은 바로 카톨릭의 심장부인 교황청이었다. 율리시아 여왕과 크리스토프 대제 때부터 브리튼 황실과 철천지원수였던 숙적. 의외로 그들은 이번 격변에도 조용했다.

 

 

 

 

 

물론 변화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올해 3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왔던 연로한 교황이 서거하였다.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콘클라베가 개최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바티칸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알렉시스의 눈도 그곳을 주시했다.

 

 

과연 누가 다음 교황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마지막 때의 양의 탈을 쓴 용, 과연 그는 저곳에서 출현할 것인가?’

 

 

그가 생각하기에 이 일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중요한 징조였다.

 

 

 

 

 

이것은 새로운 대결을 예고하는 징표였으니, 곧 수백 년 전의 교황과 황제의 자존심 대결이 색다른 형태로 재현될 것을 예표하는 바였다.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을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종교개혁을 통해서 태동한 브라이틀란트 가와 브리튼 제국이 과연 자신들의 옛 속박자에게 당당히 되갚음을 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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