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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85회 [2부] 외전 1화. 제리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9.17 | 회차평점 0 0

 

 

 

이슬람 섬멸전 이래로 최대 소란이었던 내란 사태가 무사히 안전하게 지나고 새해의 아침은 밝았다. 거대한 평지풍파가 일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시끌벅적한 소식이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줄줄이 감옥으로 잡혀들어 갔으며 높은 지위부터 낮은 지위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범죄를 발각 당하여 몰락하였다. 더불어 비록 미수에 그쳤다고는 하나 그 악몽 같은 사상조작병기까지 재출현했으니 얼마나 어수선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태연히 돌아갔다.

 

 

제로스는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뒤틀리지 않고 순탄하게 해결된 것에 대해 크게 안도하였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거듭된 양심의 고발로 인해 좌불안석이었다. 자신은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경솔했다. 정직하게 직면하자면 이번 사태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형제들의 개입이 없었더라도 여섯 대조직과 힐렐 숭배자들은 뭔가 일을 벌이기는 했을 것이다. 실제로 트라하가 이미 사상조작병기들로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음이 밝혀졌으니 이 일을 제로스의 탓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비블로스는 이 작당의 공모자로서 형제들이 꾸민 모든 계략을 낱낱이 알고 있다. 비록 초상물질들은 아이언로드의 빔에 의해 파괴되었고 증거는 인멸되었다지만 비블로스는 이 사실을 당연히 제 주인에게 이실직고했을 것이다. 제리는 자신의 책임에 대해 도피할 생각은 없었으나 형을 마주하려니 부담감이 커졌다. 형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는데. 조금만 더 신중할 걸. 후회감이 들었다.

 

 

그래서 제리는 집안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무의식적으로 형과의 마주침을 회피했다. 종종 공적인 자리에서 황자로서 부름을 받을 때에도 다른 형제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조용히 나아갔을 뿐 되도록 알렉시스의 눈에 띄지 않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겠지. 자신도 좋아하는 형과 계속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에휴, 형에게 해명은 해야 할 텐데, 어떡하지.’

 

 

그는 오랜 갈등 끝에 용기를 내어 결심의 방향을 굳혔다. 아무 변명도 하지 말고 책임감 있게 직면하자. 형에게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다짐은 했으나 역시나 선뜻 발을 내디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이었다. 2월 중순 쯤으로 막 한기가 풀리던 때, 제리의 자택에 그 사람이 방문했다. 그는 잠잠히 노크를 하였고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직감적으로 제리는 그 노크의 주인공을 예감했다.

 

 

“잠시만요. 곧 갈게요.”

 

 

헐레벌떡 달려온 연갈색 머리의 청년은 긴장감을 다스리며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재빨리 열었다. 키가 제법 큰 제로스보다 한뼘은 더 큰 장신의 청년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온화한 기온이 느껴지는 듯했다. 착각이었을까. 제리는 다급히 문을 크게 열고 손님을 맞았다.

 

 

“형! 어쩐 일이야, 연략도 없이.”

 

 

“그게…….”

 

 

적갈색과 밀색이 섞인 머리카락의 그 미남은 평소의 자신만만하고 강인한 태도에 어울리지 않게 낯을 가리는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무언가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모습이랄까. 저 자신도 가까스로 용기를 낸 듯한 기색이었다.

 

 

“꼭 일이 있어야만 찾아올 필요는 없잖아?”

 

 

알렉시스는 자신도 이 낯선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애써 눈마주침을 피하며 기어 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어렵게 말했다. 이에 제로스는 어안이 벙벙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그, 그건 그렇지.”

 

 

그는 말을 더듬으며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마음을 적응시키고자 서둘러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스쳤다. 드디어 피하고 피하던 그것, 곧 올 것이 왔구나. 단단히 각오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울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내 집에 손수 찾아와주었거늘.

 

 

제로스는 서둘러 다과와 차를 준비하여 식탁 위에 내놓았다. 알렉시스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다며 동생을 되려 안심시켰다. 그 작은 태도의 변화에서 제로스는 저도 모르게 위화감을 느꼈다. 형은 항상 자신에게 공적이고 엄격한 사람이었다. 선량하고 곧바른 인물이었으나 언제나 거리감이 있었다. 잘했을 때는 후히 칭찬해주었고 잘못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책망을 해주던 어른스러운 형이었지만, 항상 무겁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웃고 떠드는 그런 거리감 없는 혈육이라기보다는 말이다.

 

 

‘우리 형이 뭘 잘못 먹었나?’

 

 

제로스는 이것이 부디 기우이기를 바랐다.

 

 

“요새 별 일 없이 잘 지내지?”

 

 

알렉시스가 먼저 동생에게 안부를 물었다.

 

 

‘우와!’

 

 

착각이 아닌 것인지 이상하리만큼 형에게서 느껴지던 거리감이 줄어들었다. 자신만 그렇게 망상 속에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가까이 다가와도 좋다는 사인처럼 느껴져 어딘가 모르게 두근거렸다. 하지만 제로스는 자신이 책망받을 일들이 있음을 알기에 양심 때문에라도 선뜻 그리 하지 못했다.

 

 

“나, 나야 언제나 그렇듯 잘 지내지.”

 

 

그는 가시방석의 분위기를 무마해보고자 수다를 떨었다. 자신의 근황, 요새 무슨 좋은 일들이 있는지, 재미있는 일화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시시콜콜한 것까지 억지로 쥐어짜내어 대화의 맥이 끊기지 않게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알렉시스가 그 쓸데없는 대화 하나 하나에 진지하게 반응해주는 것이 아닌가. 제리는 해가 서쪽에서 뜰 노릇이라고 여겼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온화하게 풀어지자 제로스는 마침내 용기를 냈다.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힘겹게 어려운 대화의 화두를 꺼냈다.

 

 

“저기, 형.”

 

 

“왜?”

 

 

“사실 나 할 이야기가 있어. 진작 형 앞에서 직고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늦게 돌려 말해서 정말 미안해.”

 

 

알렉시스는 마치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했다는 듯 조금의 미동도 없이 태연했다. 그러나 상대를 시험하려는 기색이나 책망으로 낙담시키려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실망했거나 무시하려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경청하는 모습으로 동생의 용기를 기다려주었다.

 

 

“내가 사실은 말이지, 정말 어리석은 일들을 벌였어. 형도 이미 보고 받아 알겠지만, 내 입으로 정직하게 형 앞에서 자백해야 할 것 같아.”

 

 

그는 자신과 이안, 로빈, 에드윈, 아델바이스가 진행했던 계략과 그 전말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하였다. 여기에 대해 알렉시스가 황실의 일원을 공적으로 책문할 것 같지는 않았다. 황실의 대외적인 명예 문제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훈육을 면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혈기에 가득해서 지나치게 일을 벌였어. 난 형이 깨어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일들이 너무 염려되어서 그만……, 내 생각과 계획을 지나치게 내세웠던 거야. 주님께 책망을 듣게 되겠지. 변명할 말이 없는 거 알아.”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는 데도 알렉시스의 표정 가운데는 분노나 실망감 또는 짜증이 전혀 깃들지 않았다. 한 번쯤은 호되게 호통치거나 분기를 내어도 될 법한데도 말이다. 이미 한 번 꿈 속에서 거대한 운명과 충돌해 살아남았고, 또 적의 토굴에서 기사회생하여 돌아온 알렉시스는 전보다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진 상태였다.

 

 

“형, 내가 정말 어리석었어. 앞으로는 내 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형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를게.”

 

 

알렉시스는 안절부절하는 동생의 모습에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서른셋이나 된 다 자란 청년이 마치 아버지에게 혼나는 작은 어린아이처럼 된 모습이 안쓰러웠다. 제리는 저렇게 은연 중에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건가.

 

 

‘혼나겠지?’

 

 

제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느껴진 것은 머리 위로 얹히는 넓고 부드러운 온기였다. 알렉시스는 그의 머리를 가벼이 쓸어내린 뒤에 어깨 위에 부드러이 손을 얹었다. 가볍게 그 어깨를 두드린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도 너한테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왔어.”

 

 

제로스는 용기를 내어 눈을 들었다. 평소에 자신을 향해 저런 눈빛을 보인 적이 없던 형이었다. 다른 동생들에게는 자주 보여주었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혜택이 없었다. 언제나 공적인 칭찬, 공적인 교육, 그리고 책임감 있는 자로서의 인도와 도움 뿐이었지. 귀여워해주거나 애틋해하거나 같이 웃고 같이 팔을 어깨에 얹는,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고마워, 제리. 용기를 내줘서.”

 

 

“형?”

 

 

자신을 애칭으로 부르는 그 변화에 한 번 더 낯선 간질거림이 가슴에 일었다.

 

 

“난 말야, 사실 너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어.”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제로스였다. 잘못 들은 것이겠지?

 

 

“형? 그게 무슨?”

 

 

“너도 이미 은연 중 느꼈겠지만, 난 언제나 너한테 가슴 속 깊이 시기심을 숨겨왔었어.”

 

 

알렉시스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자신의 못난 모습을 애써 자백하였다.

 

 

“난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돌아가자마자 재혼하셨을 때, 새어머니와 그분의 아이들을 책임감 있게 수용하고 돌아보아야 한다고 다짐했어. 어린 나이에 억지로 마음 넓게 굴어보려고 흉내를 냈던 거지.”

 

 

지나치게 조숙했던 소년. 그는 아버지께 배운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보여야만 했고 그 의무감 때문에 항상 용서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태도였을까. 그 기저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그는 나중에야 직면하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 속에는 내심 깊숙이 원망이나 서운함이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도 정말 한 점의 시기심이나 불안감이 없었을까? 본능 속에조차 그런 생각이 없었노라고 자신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영적 교만이리라. 그저 자신이 맏이니까, 더 크라이스토브의 칭호를 짊어진 자니까, 언약의 수호자니까,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것일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세르빈이 태어났을 때는 애써 괴롭지 않게 견딜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도 어쩔 수 없는 그분만의 사정이 있었겠지. 소년 알렉시스는 그렇게 믿으며 애써 너그럽게 굴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세르빈을 넓은 아량을 자신의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로스와 펠렌드로크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실했던 덕(德)의 실체가 마음 안에서부터 균열을 일으켰던 것 같다. 겉으로는 동일하게 자비로운 태도를 보였으나 알렉시스는 그때 이루 말하기 어려운 어떤 ‘서운함’의 감정을 가슴 속에서 감지했다. 그는 그런 자신을 부인해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인간은 죄성을 지닌 존재였고 알렉시스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차라리 둘 중 펠렌드로크처럼 계산적인 인간이라면 더 훌륭한 인간으로서 기꺼이 포용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제로스는 달랐다. 순수했으며 마음이 부드러웠고 그런데다가 알렉시스와는 달리 모든 의무에서 자유로웠다. 신앙심도 올곧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도 지녔다. 어쩌면 그랬기에 알렉시스는 카인이 아벨을 향해 질투했던 그 감정을 무의식 중에 제리에게 투사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한테만 그렇게 냉담하게 대한 것, 그건 분명 내 미련한 잘못이었어.”

 

 

그는 자존심을 굽히고 고개를 숙여 정식으로 사과하였다. 이에 감당치 못한 제리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아, 아니야, 형! 냉담하다니, 형이 나한테 있어서 얼마나 존경스럽고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아니, 네가 만일 내 마음을 다 볼 수 있었다면 넌 내게 실망했을 거야.”

 

 

알렉시스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묻었다.

 

 

“난 네가 얼마나 귀한 선물인줄도 모르고 나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사람이었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쓴다고 자신했지만 정작 내게 주신 그분의 소중한 선물에도 무감각했던 멍청이였지.”

 

 

얼마나 이 아이가 서운했을까. 다른 동생들을 그토록 귀여워하며 안아주는 동안에 저 아이에게는 늘 사무적으로 대했으니. 이미 그 시간들을 보상하고 돌이키자니 벌써 자신은 마흔을 넘겼고 저 아이는 서른을 넘겼다. 순수했던 그 아이 시절로 돌아가긴 어렵겠지. 그래도 사과는 하고 싶었다.

 

 

“용서는 네 몫으로 남길게. 내 마음에 대해서 구차하게 변명하지도 않을게. 내가 옹졸했어. 못난 형이어서 미안하다.”

 

 

제로스는 반박의 말을 하기에 앞서 잠잠히 자신에게 다가온 이 상황에 대해 깊이 묵상하였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는가. 평생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기대치 못했다. 그래서인지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형이 날 미워한 게 아니었구나.’

 

 

자신이 하나님을 제외하고 인간 세상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어른을 꼽으라면 바로 큰형이었다. 심지어는 존경스러운 아버지인 황제보다도 더.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으로도 누구보다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미래를 같이 할 약혼자를 제외하고, 남성 중에서 가장 친애하는 1순위를 들라면 단연코 형이다. 심지어 친형제인 여섯 명보다도 더 좋아했다. 지금까지는 짝사랑에 가까웠지만.

 

 

그런 형이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해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형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지. 다만, 늘 아쉬웠던 그 부분에 대해 형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용기까지 내주니 다함 없이 고마웠다.

 

 

“그, 그러면, 형도 날 용서해주는거야?”

 

 

그는 조심스럽게 걱정하며 물었다. 알렉시스는 피식 작게 웃었다.

 

 

“아, 그 일? 그거랑 이거는 별개지.”

 

 

“그, 그렇겠지?”

 

 

“그래도 더는 묻지 않을게. 네가 자기가 무얼 실수했는지 이미 알고 반성하는데 내가 구태여 더 말을 얹을 필요는 없지. 게다가 네가 무슨 동기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도 잘 아니까.”

 

 

하나님의 왕국을 인간적인 계략과 모략으로 성취해보겠다는 태도는 분명 잘못이다. 알렉시스 본인도 그런 부분을 조심해야 하겠고 동생들에게도 이런 부분은 확실하게 교육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오늘은 더 아픈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제로스는 펠렌드로크와 달리 스스로 반성하며 성장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아이도 불완전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고, 그런 생각이 스친 자신이 수치스럽기도 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서를 읽으며 베드로의 실수들을 보며 그런 안도감을 느꼈을까? 그런 식의 안일함이 건전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분명히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불완전하다는 말은 백 번 옳다.

 

 

“앞으로 우리 둘 다 잘하자. 교만하게 굴지 말고.”

 

 

“응, 형.”

 

 

제리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사과하고 화해했으니…….”

 

 

알렉시스는 몹시 머쓱해하며 말끝을 잠시 멈췄다.

 

 

“불편하지 않다면 잠깐 안아줘도 될까?”

 

 

본인도 몹시 쑥스러운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반응을 긍정으로 읽은 큰형은 조심스레 동생을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넓고 탄탄한 품에서 진심 담긴 사과의 메시지를 읽은 제리는 감격한 나머지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이거 정말 꿈 아니겠지.’

 

 

다행히도 둘은 적응이 빨랐다. 그렇게 오랫 동안 가까운 듯 먼 듯 애매한 거리에 있던 형제는 드디어 아무런 장벽도 없이 친밀한 우애 가운데 하나로 연합되었다. 듬직한 형과 그를 따르는 귀여운 동생. 이미 어른이 되었다고 한들 어떠하랴.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는 않으리라.

 

 

“제리.”

 

 

“응, 형.”

 

 

“그게 말이지, 생각해봤는데…….”

 

 

입으로만 화해하기가 조금 무안했는지 알렉시스는 한 가지를 제안했다.

 

 

“네가 그 동안 내게 서운했던 것들이 많이 쌓여있을 것 같아. 지금 와서 돌아보기는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내가 시간을 내서 하나씩 노력해보고 싶어.”

 

 

“난 형한테 서운한 거 없어. 형한테서 이미 너무 좋은 시간들을 받았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형을 보면서 좋은 배움들을 많이 얻었다. 그는 존경할 표본으로서는 정말 흠이 없었다. 알렉시스는 제로스의 선량한 성품에 질투심을 느꼈노라고 말하긴 했지만 도리어 제로스 입장에서는 형이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요 모본 그 자체였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성공한 혁신가로서, 가족을 지키는 기둥으로서, 형제들의 리더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하지만 친밀한 형으로서의 모습은 부족했지.”

 

 

이제 그 못다한 아쉬움들을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싶었다.

 

 

“당분간 나라 내정을 정리하느라 바쁘긴 하겠지만, 그래도 휴일은 낼 수 있으니까, 너랑 좀 개인적인 친분의 시간들을 가졌으면 해.”

 

 

이것 저것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우와, 정말이지?”

 

 

제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긴 했다. 다만,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형,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앞으로 형 엄청 바빠질 예정이잖아.”

 

 

“뭐, 사실이긴 하지만.”

 

 

알렉시스는 동생이 상기시킨 아픈 현실에 찔렸다. 아버지가 나라 일을, 그것도 지구 전체 권역의 일들을 자신에게 송두리째 양도하셨다. 커버넌트 그룹도 새 형식으로 분산 개편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더욱 번창의 가도를 달릴 테니 자신에게 책임이 부과되는 것은 여전하다. 게다가 내란 후폭풍을 수습하는 것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어쩌겠어. 내가 시간을 내서 노력해야지.”

 

 

트라하와의 혈투를 통해 깨달은 교훈이 있었다.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따로 떼내어 헌신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를 또다시 잃을 뻔했던 그 밤의 충격은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누구든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면 순서 없이 떠나야 하므로 기회가 있을 때 서로를 뜨겁고 진솔하게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난 너한테 빚진 사람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알렉은 동생의 고운 머릿결을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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