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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86회 [2부] 외전 2화. 제리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02 | 회차평점 0 0

 

 

 

마침내 오랜 쑥스러움과 어색함을 이겨내고 우애 깊은 형제가 된 형 알렉과 동생 제리. 제로스는 붙임성 좋은 귀염둥이답게 자신의 소원을 풀고 형과의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에게 허락된 기회를 넉살좋게 부여잡았다.

 

 

“형, 나 형한테 부탁할게 있는데 말야.”

 

 

그가 처음 제안한 부탁은 정말 제리다운 내용이었다. 알렉시스가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릴 때 형과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참여하는 것이었다. 알렉시스 입장에서는 조금 의외의 기습이긴 했는데 그도 이내 제리의 성정을 생각하고는 이해했다. 다소 난감한 부탁이긴 했다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거절할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하자.”

 

 

알렉시스는 현역 군인에서 퇴역한 이후로 지난 십수 년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많은 고아들, 불우한 아이들 및 한부모 가정 자녀들을 발굴하여 현재까지 후원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현재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되었고 직접 가장 노릇을 하여 알렉시스의 다른 아이들을 동생처럼 돌보는 중이었다.

 

 

현재 후원받는 아이들이 이루는 패밀리는 천스물네 개. 그들 모두가 알렉시스에게는 자녀들이나 마찬가지였고 실제로 아이들도 그를 친아버지처럼 깊이 생각하였다. 처음에는 은인과 수혜자의 관계에서 시작했던 것이 어느 덧 유대감이 풍성해지면서 더 아름다운 인연으로 발전한 것이다.

 

 

제로스는 삼촌으로서 당당히 그 틈바구니에 끼여들었다.

 

 

그와 알렉시스는 동유럽 지역의 어느 한 패밀리에 합류하여 같이 주일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난 이후에 제로스는 아이들과 놀아주었고 맛있는 것도 사주었으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즐거움을 주었다.

 

 

알렉시스는 그 대단한 친화력에 감탄하면서도 아주 작게 시샘을 느꼈다. 그토록 살갑게 자신이 대해주어도 자신은 아버지 취급이더니 동생에게는 마치 친한 동네형처럼 다가가다니. 약간은 허탈하기도 했다.

 

 

“그야 형은 너무 다가가기에 높은 사람이니까 그렇지.”

 

 

얄밉게 제리는 팩트를 지적하였다.

 

 

“너무 대단한 사람한테는 거리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라고.”

 

 

“하여간 네가 아이들한테는 더 사랑받는 타입이란 건 잘 알겠다. 만약 의사였더라면 소아과 전공을 하면 딱이었겠네.”

 

 

확실히 제로스는 유머 감각도 좋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잘 맞았으며 무엇보다도 무궁한 은혜를 베푼 높은 분이 아니었기에 마음의 빚 없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다음 주에도 동일한 일이 반복되었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패밀리를 만난 제로스는 금세 조카들의 마음을 얻었고 아이들은 젊고 재롱 많은 삼촌에게 홀딱 빠져서 쉽게 자기 울타리 안에 그를 넣어주었다. 이렇게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제리였다.

 

 

알렉시스로서는 다소 어처구니 없으면서 서운하기도 했지만 안도감이 드는 일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삼촌을 만나게 해주었으니 인생의 관계도 더욱 풍성해질 기회가 생긴 셈이지.

 

 

고마운 점은 제로스가 아이들 앞에서 알렉시스의 이런 저런 면을 더욱 피알하여 그의 매력을 더욱 깊게 알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소 낯 뜨거운 흑역사들도 드러나긴 했다. 물론 나쁜 의미로서의 흑역사 말고 보통 누구나 괜히 쑥스러워 감추고픈 어린 시절의 귀여운 미담들 말이다. 덕분에 한없이 높은 분으로만 보였던 은인에게서 아이들은 더 인간미 넘치는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전에는 멋있기만 했는데 이제는 아저씨에게서 귀여움도 보게 되었달까.

 

 

이런 이유로 약이 조금 오른 알렉시스는 장난스레 동생에게 꿀밤도 주었지만 정말 싫은 것은 아니었는지 얼굴을 옅게 붉혔다. 새로운 인연이 매개체로 추가된 덕분에 아이들과 알렉시스의 사이도 금세 더 가까워졌다.

 

 

“고마워.”

 

 

언제나 동생에게서 효용성과 재능만을 바라보았던 예전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람 그 자체가 저토록 진국이거늘. 자신도 동생들에게서 본받을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형인 이유는 말야.”

 

 

제리는 부끄러움도 없이 이렇게 당당히 말했다.

 

 

“단순히 그저 모든 재능들에 있어서 천하제일이어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서, 세계 최고로 잘생겨서, 나라와 지구를 구해낸 영웅이라서, 최고로 강한 히어로라서, 단지 그런 이유가 아니야.”

 

 

“너 참 낯 뜨거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알렉시스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만류하려 했다.

 

 

“물론 다 맞는 말이지 형. 그런데 말야, 난 형이 말뿐만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서 기뻤어. 그런 삶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절로 마음이 겸허해지더라. 난 외적으로 가장 빛나는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사람이 더 멋지다고 생각해. 그런데 놀랍게도 형은 외적으로도 가장 빛나는 사람인데도 동시에 가장 정직하고 곧바른 사람이더라. 나 같았으면 금세 교만해졌을 것 같단 말야. 솔직히 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재능만으로도 수시로 교만에 빠질 때가 많아.”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알렉시스는 양심의 가책이 고통스러웠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네 재능은 절대로 작지도, 보잘 것 없지도 않아. 넌 내가 본 아이들 중 가장 멋진 창조성을 가진 친구야.”

 

 

띄워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고마워, 형.”

 

 

평소에도 항상 재능만큼은 인정받던 제로스였지만 오늘은 왠지 더 기뻤다. 형이 단순히 객관적으로만 평가해준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주관적인 평가까지 내려준 것이 감사했다.

 

 

 

 

 

 

 

 

*

 

 

 

 

 

제로스가 부탁한 두 번째 요청은 형과 더불어 자신의 저서들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과 묵상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고상하게 말하면 묵상이고 사실은 수다 떠는 것을 원했다. 물론 형이 자신이 창조한 가상 세계들에 깊이 심취해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사람이란 취향이 다양하고, 아무리 흥미로운 것도 기호에 맞지 않는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알렉시스에게 이것은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난 이미 네가 쓴 책들은 다 읽었어.”

 

 

종이책 소설들, 잡지에 연재하는 칼럼들, 제리의 극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페아와 뮤지컬과 영화와 드라마들, 몰래 연재하는 웹소설들, 블로그의 사설과 논설문들과 논문들까지. 심지어 제로스가 다양한 필명으로 출간한 신학 서적들도 모두 찾아 읽은 바였다.

 

 

“우와, 우리 형님이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감동인걸.”

 

 

넉살 좋게 그는 기쁨을 표하였다. 마치 배가 불러 온순해진 성체 숫사자에게 착한 골든 레트리버가 다가가 애교를 부리며 친근감을 표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알렉시스는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다 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따.

 

 

“넌 내가 아는 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니까.”

 

 

“과찬이야, 형. 만약 형이 작가가 되었다면 나보다 더 나았을걸.”

 

 

“그럴 자신이야 있지만, 미안하지만 난 취미 이상으로는 문학을 쓰지 않아. 그럴 시간도 없고.”

 

 

겸손하면서도 사실은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는 형다운 모습에 제리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설적인 문학가들도, 레젠다리움의 작가인 환상문학의 거장도, 결국 네가 추월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넌 동시에 이전 세대의 오스왈드 선생님이나 마틴 로이드 선생님처럼 이 시대에 요구되는 하나님의 신학자가 될 수 있어.”

 

 

형의 칭찬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 알렉시스는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인재들을 평가한다. 동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제로스의 경우에는 화해하기 이전에는 그렇게 예뻐하는 편도 아니었으니 더욱더 철저히 객관적으로만 평가해왔다.

 

 

“나 원래 칭찬에는 별로 무감각한데 말야.”

 

 

연갈색 머리의 청년은 대단히 감동을 받았는지 고무되었다.

 

 

“오늘 형한테 응원을 들으니까 엄청 에너지가 넘칠 것 같아.”

 

 

 

 

 

이후 둘은 수시로 시간이 날 때마다 제리의 글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알렉시스는 바쁜 일상 중에도 근무 사이 사이에 쉬는 시간이 생기면 메시지로 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때로는 픽션 속 세계관들에 푹 빠져 즐겁게 함께 노닐었다.

 

 

그렇게 동생의 세계관들을 단순한 분석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같이 즐거워할 축하의 대상으로 누리다 보니 알렉시스의 상상력과 창조성의 폭과 깊이도 전보다 더욱 넓어졌다. 그 영향으로 일의 능률도 오르고 나랏일을 위해 프로젝트들을 세울 때도 더욱 지혜로운 생각들이 많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는 제로스의 글들이 질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유익한 덕이었다. 관능적이고 말초신경적인 재미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작품들과 다르게 그의 작품들은 철학이 아닌 말씀에, 쾌락이 아닌 은혜에, 폭력적인 자극이 아닌 사랑에 기초하고 있었다.

 

 

형과의 교제를 통해 더욱 풍성해진 것은 제리도 마찬가지였다. 알렉시스의 재능 중 가장 탁월한 것을 고르라면 자신을 드러내는 능력이 아닌 남을 세워주는 능력이었다. 그는 그 능력을 통해 수많은 인재들을 발굴했고 그들의 잠재력을 한계 너머로 이끌어내어 지금의 강력한 조력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제 그 혜택을 동생이 받게 되었는데, 그 효력이 친구들과의 교제 때와 달리 심히 강력하여 경이로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나 형 덕분에 새로운 영감이 수없이 샘 솟는 거 같아.”

 

 

“잘 됐네.”

 

 

이렇게 둘은 서로 유익도 얻으면서 우애도 깊어졌다.

 

 

 

 

 

하루는 휴일에 제로스가 아직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자신의 원고를 형에게만 몰래 보여주었다. 알렉시스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비밀의 보물을 홀로 누리는 영광을 독식하였다.

 

 

“이건 내가 최근 구상한 대체역사 소설이야.”

 

 

대체역사라는 장르는 세상의 역사가 어느 분깃점에서 변화를 맞아 현실의 역사와는 다른 형태로 전개되는 모습을 상상한 소설이다. 제로스는 상상력의 귀재답게 단순히 변곡점이 발생한 때 부근의 역사만을 구상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뒤로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하여 그려내었다. 가히 타킨의 레젠다리움을 능가하는 방대한 세계관 구축이었다.

 

 

“흐음, 이건 흥미로운 질문인걸.”

 

 

알렉시스는 동생의 세계관 설정을 잔잔히 감상하였다. 질문은 이것이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근현대 역사 최고의 혁신이었노라고 평가한 사건, 종교개혁과 브리튼 왕실의 만남. 종교개혁(Reformation)은 본래 유럽 본토에서 시작되었다. 마르틴 루터, 츠빙글리, 장 칼뱅 등의 개혁가들이 가톨릭의 폭정과 성경 교리의 왜곡에 저항하여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들의 개혁은 대륙 안에서는 철저히 실패하였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교황의 화살을 피해 망명해야 했다. 그들을 받아주었던 두 위대한 인물이 바로 율리시아 여왕과 그녀의 맏아들인 크리스토프 대제였다.

 

 

‘두 분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그분들을 받아주었던 것이 아니었지.’

 

 

율리시아는 본인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신념과 성경에 대한 자각을 통해 교황청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용맹을 떨쳤고 가톨릭의 교리에 반대하였으며 그런 그녀를 지탄하던 왕실 내의 친족들을 물리치고 왕위에 올랐다. 그녀는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단호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법적 질서를 행하였고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았으나 유일한 진리는 성경 말씀에만 있노라고 공언하며 브리튼만은 대륙과는 다른 노선을 걷겠노라고 선포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너무도 많은 정적들과 고통스러운 격전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겨냈다.

 

 

그리고 그녀가 피를 감수해가며 닦은 그 위업의 길을 물려받은 현왕은 순탄하게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잘못된 교리, 왜곡된 전통을 거절하였고, 오직 복음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며 사람들을 이끌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를 도왔고 끝내 칼이 아닌 복음을 통해 브리튼 내에서 신교가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제로스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만일 율리시아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녀 대신에 다른 탐욕스러운 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브리튼 대신에 대륙에서 종교개혁이 성취를 거두고 브리튼은 그저 그 영향에 잠시 발만 담굴 뿐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지는 못했다면?

 

 

그의 소설은 그 이후에 전개되었을 역사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그 역사가 무려 430년을 거쳐 지금의 시대와 비슷하게 21세기에 이르렀을 쯤에 어떤 변곡점을 맞이할지를 예견하고 있었다.

 

 

이 ‘현대’의 대목에 도달했을 때 알렉시스는 속으로 크게 놀라며 경악하였다. 그의 낯빛이 어두워지며 몸과 입이 잠시 마비되었다. 형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한 제로스가 걱정하였다.

 

 

“형?”

 

 

“이 사람.”

 

 

동생의 기나긴 대체역사 세계관 속에서 마지막 시점에 이르러 등장하는 기묘하고 매력적인 인물. 아직 그 인물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동생이 아직 설정하지 않은 듯 했다. 다만 그를 칭하는 호칭이 있었다.

 

 

 

 

 

위버멘쉬(Übermensch).

 

 

 

 

 

독일어였는데 너무도 낯선 단어였다. 현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말로 동생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18~19세기쯤의 어떤 괴팍한 철학자가 만들어낸 단어였다. 그런 존재를 갈망하던 인류가 21세기의 시점에 이르러 정말로 위버멘쉬라 칭할 존재를 출산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동생의 소설 말미에 나올 주인공이었다.

 

 

“제리.”

 

 

“왜 형?”

 

 

“나……, 이 사람, 낯이 익어.”

 

 

본능적인 두려움에 알렉시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제리, 내가 너한테 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준 적은 없었지?”

 

 

“키메라에 대한 것 말고는 들은 내용이 없었지.”

 

 

“그래.”

 

 

그날 꿈에서 만났던 존재, 17년 전에도 만났었지만 기억하지 못했던 그 존재. 알렉시스 자신의 또다른 가능성으로 여겨졌던, 역사의 분기점으로 여겨졌던 자. 알렉시스를 가리켜 자신을 만들어내기 위한 씨앗들 중 하나였노라고 당당히 선언했던 초월적인 인간. 너무나도 정확하게 적그리스도와 유사한 능력치를 소유했으나 적그리스도와는 다른 궤적을 가진, 또다른 카테고리의 전혀 다른 인간.

 

 

“제리, 너 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상상해낸 거야?”

 

 

“으음.”

 

 

제로스는 깊이 생각을 되짚어보았다.

 

 

‘설마 제리가 하나님께 모종의 직접 계시를 받은 건가?’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이 가능성이 고려되었다.

 

 

“꿈에서 뭔가가 떠올랐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 아니야, 형. 내가 상상한 거 맞아. 다만, 이 인물에 대한 설정이 너무나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어. 내가 상상력이 좋은 편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갖고 상상을 이뤄내는 일은 드물거든. 계시는 아니긴 해도 뭔가 계시에 이끌리는 느낌? 표현하기 어렵다.”

 

 

알렉시스는 침묵하며 다시금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카르테니온……, 이었나?’

 

 

그의 이름과 그의 삶에 대한 희미한 파편들이 기억났다. 꿈에서 깨면서 대부분의 기억을 잃긴 했다만 일부는 남아 있었다. 놀랍게도 제로스가 쓴 소설의 설정들이 그날 공유한 그 남자의 삶과도 너무 닮아 있었다. 35년 간의 통치도 그렇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겪는 암살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에게 한 형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놀라지 마.”

 

 

“무슨 일인데.”

 

 

“지난 번 내란 때 내가 깊이 잠들었었지. 그때 꿈에서 이 남자를 만났어.”

 

 

제로스는 순간 컵을 떨어뜨리며 입을 떡 벌렸다.

 

 

“우, 우연이겠지?”

 

 

“아니, 구체적인 항목들까지, 너무 많은 부분에서 일치해.”

 

 

“내가 나도 모르게 형한테 이 소설을 누출한 적이 있었나?”

 

 

혹시나 그래서 꿈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 건 아닐까? 하지만 돌이켜보니 이 원고가 완성된 것은 최근이었고 형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노출된 적은 없었다. 전산으로 된 것도 아니니 더욱더 그러하리라.

 

 

“그 남자의 삶, 내 모습과 알게 모르게 닮아 있었어.”

 

 

알렉시스는 아련한 얼굴로 동생의 원고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만일 끝내 내 뜻대로만 살았더라면 저와 비슷한 모습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아, 형!”

 

 

제로스가 반박했다.

 

 

“형은 이 책의 초인과는 달라. 일단 형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잖아.”

 

 

“내가 끝까지 그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난 형이 그럴 것이라고 믿어.”

 

 

부디 그러기를 본인도 바라였다. 알렉시스는 씁쓸한 기분을 잠재우며 원고를 동생에게 돌려주었다.

 

 

“형, 생각해봤는데, 이거 출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왜? 네가 힘들게 쓴 책이잖아.”

 

 

“그냥…….”

 

 

제리도 뒤숭숭한 마음이 되었다. 기분 탓이었으면 좋겠다. 만일 이것이 정말 계시나 어떤 영적인 연결과 관련된 것이라면 경솔하게 발설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무엇보다 형의 불편감을 더 증폭시키고 싶지 않았다.

 

 

“네가 바라는대로 해. 난 뭘 하든 널 응원할테니까.”

 

 

알렉시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동생의 머리 위에 살포시 넓은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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