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97회 용 머리 부수기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2.17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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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관리자 세나케립은 북극해의 빙하에 앉아 거대한 먹구름의 감옥을 바라보았다. 지금 베링 해협을 덮고 태평양까지 뻗은 헬게이트를 소환한 장본인이 그였다. 원래의 차원 너머의 규율대로라면 쉬이 시행할 수 없는 일이다.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S급을 넘어선 개체를 부르는 바람에 중간관리자로서의 ‘열쇠 권한’을 상당량 소비했다.
-적어도 30일은 쿨타임인가.-
당분간은 싸움을 걸 수 없겠다. 그래도 시험해 볼 가치는 있다. 라이텔바흐가 어떤 힘을 숨겼는지를 탐색해 보리라. 녀석을 도발해 보면 뭐라도 유용한 단서가 튀어나오리라. 끄집어내 주마.
-이번 작품은 조금 달라.-
지속적으로 유사-심연들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삼투압을 소유한 헬게이트를 생성했다. 저것을 만드느라 꽤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했다. 회심의 역작이니 나름 발목을 잡을 수 있으리라.
라이텔바흐를 태운 웨폰박스 드론은 두터운 암흑의 벽을 뚫고 헬게이트 권역 안으로 입장했다. 수면 위로는 파도가 넘실댔다. 빙하들이 산산조각난 상태로 중력을 거슬러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둠의 차폐로 인해 거의 모든 빛이 사라져 자욱했으며 바다는 마치 용의 진노를 머금은 듯 혼돈 가운데 포효하였다.
망막 위로 정렬되는 정보에 따르면 헬게이트의 본체는 수면 아래에 위치한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수심 100m 이하에 있다. 다크포스의 밀도 자체는 S급 헬게이트에 알맞은 수준인데, 비정상적으로 크기가 크다. 이렇게 인간들이 거의 없는 지역에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례적이고. 헬게이트가 이런 식으로 ‘길을 막아서기 위해’ 예고조차 없이 나타나지는 않는 법이다.
“어쨌건 여기서 부수지 않으면 바다를 건너지 못하겠군.”
라이텔바흐는 머릿속에서 본능적으로 시뮬레이션을 개시했다. 지나치게 광대한 너비라는 이례적 요소를 제외한다면, 지금 이 헬게이트의 등급은 약 S+ 이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다. 거듭 힘이 강화되는 듯한 기색이었다.
“빨리 부수지 않으면 며칠 안에 SS급에 도달하려나.”
단둘뿐이었던 SSS급 헬게이트만큼은 아니어도, SS급은 충분히 ‘국가 재앙’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방치하면 과거 기준으로 한 나라를 멸망시키고도 남는다. 라이텔바흐의 힘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는 있으나 서두르지 않으면 피해가 번질 것이다.
“하지만 느낌이 안 좋군.”
어비씨언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또한 감지되는 코어 에너지 총량에 비해 공기 중에 감지되는 흑파와 어비쓰론 농도는 낮은 편이다. 이런 유형은 극소수의 엘리트 유닛에 총력을 몰아주는 타입이다.
‘그 녀석을 만든 두 번째 SSS급 헬게이트도 그랬었다.’
불쾌한 추억이 떠오른 라이텔바흐는 눈살을 찌푸렸다.
-크아아아악-
귀를 찢는 굉음이 공기 중에 울렸다. 라이텔바흐의 고막은 고통스러운 울림으로 부르르 떨었다. 불쾌감에 그는 이터널 셀의 기능을 동원하여 신경계를 안정시킨 뒤 사건의 지평선을 사용하여 음파의 진동을 차폐하였다.
“물리적인 공격력에 자원을 쏟아부었나?”
다음 순간,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장관이 전개되었다. 고래 수천 마리가 움직인다고 해도 이런 물보라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리라. 마치 쓰나미가 발생하는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체가 수면 아래에서 넘실거렸다.
“코드네임, 레비아탄(Leviathan).”
어비씨언의 형태와 해부학을 감지한 라이텔바흐의 분석안이 곧장 이터널셀 신경계 위에 데이터를 기록하였다. 그가 임의로 지은 이름이 아니다. 헬게이트는 결코 자존적인 창조성을 소유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어비씨언과 다른 생산물을 만들 때 반드시 침공 된 권역인 인간계로부터 추출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표절을 할 수만 있을 뿐이다.
또한 그들이 어떤 생산물을 만들면 그 배후에는 작성 프로그램 코드가 희미한 잔흔으로 존재하며 감찰안과 분석안은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으로 그 잔흔을 추적하여 헬게이트가 참조한 데이터값을 추적할 수 있다. 설령 라이텔바흐 본인이 인류 역사 속의 각종 전설 및 역사 정보를 알지 못하더라도.
-크르르르-
수억 마리의 바다 괴물이 동시에 울부짖는 듯한 초저주파 진동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원했다. 곧이어 쓰나미가 격해지더니 바닷물이 라이텔바흐를 덮쳤다. 그는 사건의 지평선을 동원하여 웨폰박스와 함께 상공으로 올라갔다. 이제 베링 해협을 중심으로 북극해와 북부 태평양은 벌거벗겨졌으며 그 밑의 심연이 드러났다. 바위가 아닌 흉측한 비늘로 덮인 거대한 섬이 보였다.
-크아아아아아-
괴수의 몸체가 용솟음쳤다. 섬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거대한 물체, 그것이 몸뚱이인 줄 알았건만, 머리였다. 섬과 같이 비대한 머리가 상공으로 치솟자 그 아래에 딸린 기다란 뱀 몸뚱이가 끌려왔다. 몸뚱이는 헬게이트 권역 전체를 두르고 있었는데 어찌나 광대한지 바다를 에워 두르는 북구 신화의 전설 속 뱀 요르문간드를 연상케 하였다.
“순수하게 덩치만 놓고 보면 내가 본 것 중 가장 크군.”
이런 경우는 오히려 라이텔바흐에게는 상성이 좋지 않다. 자칫 상대가 물리적인 싸움으로 들어가면 인간의 제한적인 몸이라는 상한선 때문에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상황이 가능하다.
레비아탄은 해저에 있던 거대한 바위를 꼬리로 집어 라이텔바흐에게 투척하였다. 그야말로 작은 섬에 가까운 흉흉한 질량이다. 스치기만 해도 그 압력에 휘말려 가루가 될 판이었다. 차라리 흑파나 어비쓰론을 응집해서 포격하면 이능으로 상쇄할 수 있는데 자연계의 질량 탄은 더 곤란하다.
라이텔바흐는 재빨리 사건의 지평선의 밀도를 최대화하였다. 이 상태에서는 헬게이트에 침식된 이 지역 한정으로 사실상 정지된 시간 속에서 운행할 수 있다. 운석이 그를 치기 전에 그는 보법으로 공중을 밟고 신속히 풍압이 미치지 않는 영역으로 올라갔다. 헬게이트의 다크포스에 침식된 이상, 안티-게이팅 에너지의 반발 작용을 부력처럼 사용하면 공기마저도 발 받침으로 삼을 수 있다. 이 권역 안에서만은 초인 이상의 묘기를 부릴 수 있는 비결이다.
콰아아아아앙.
회피한 궤도 뒤쪽으로 거대한 바위가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라이텔바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레비아탄이 헬게이트 밖으로는 넘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간접적인 충격파는 밖에 번지겠지. 그 여파에 혹여 에어크래프트가 손상되면 골치 아프다. 게다가 거기에 일반인도 있으니 더 조심해야 한다. 그는 진지하게 임하리라 결의했다.
다시금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괴물의 꼬불꼬불한 꼬리를 활대 삼아 투척되었다. 물리력만 놓고 보면 작은 전술 핵미사일 세례보다도 치명적인 위력이다. 라이텔바흐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직면했다. 물리 공격은 상성 상 가장 안 좋다지만 저 탄환도 이미 다크포스에 침식되었으니, 해결책이 없지는 않다.
위이이이잉.
라이텔바흐의 손안에 백색파동이 매우 얇게 압축되었다. 극미량이지만 파형별로 정교하게 분리된 힘으로 응축과 증폭을 거친 상태였다. 원래라면 이것보다 더 많이 생산해서 대량으로 쏟아붓는 게 정석이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싶은 스킬이 있는지라 최대한 손안에만 압축했다.
촤아아아악.
라이텔바흐의 정권 지르기가 운석들의 궤도와 충돌했다. 질량 대 질량으로 보면 스치자마자 헌터의 몸이 소멸하여야 할 판이다. 그런데 기현상이 벌어졌다. 역학의 기본 법칙인 작용-반작용의 질서. 그것이 마치 무시된 듯한 일이 나타났다. 라이텔바흐의 힘은 운석을 향해 전달되었고 운석의 운동량과 운동에너지는 마치 삼투 장벽은 만난 것처럼 라이텔바흐에게 한 점도 전달되지 않았다.
스르르르.
운석은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삭아 문드러지듯 분해되었다. 힘의 작용에 의한 깨어짐이 아니다. 마치 원래부터 분자 결합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마냥 과자처럼 쉽게 쪼개졌다. 그것도 불규칙한 형태가 아닌, 1mm 단위로 정교하게 반듯이 규칙적으로 나뉜 정육면체 조각들로. 심지어 큐브들의 각도마저 90도에 한없이 가까운 직각이었다.
이어지는 타격 모두 라이텔바흐의 신속한 정권에 동일한 형태로 부서졌다. 처음부터 운동에너지가 없었던 것같이 아무 타격도 주지 않고 관성력의 법칙도 무시한 채 흩어졌다. 오로지 다크포스에 송두리째 침식된 물리계에서만 허락되는 묘기다.
-크아아아아-
분노한 레비아탄은 몸을 일으켜 공중 위에 부유 중인 라이텔바흐를 향해 돌진하였다. 뱀의 길고 굵은 몸뚱이가 바다를 밑바닥에서부터 갈며 윗물과 아랫물을 혼합하여 엄청난 거품과 태풍을 일으켰다. 공기의 압축과 팽창으로 인해 허리케인보다 더한 폭풍이 발생하였다. 거친 비바람이 라이텔바흐를 향해 휘몰아쳤다.
“헤렘 시리즈.”
웨폰박스가 열리며 여섯 개의 기괴 병기들의 손잡이가 사출되었다. 라이텔바흐는 그중 붉은 창 하나를 꺼냈다. 창이라기보다는 삼지창에 가까운 쇠스랑으로 정확한 형태를 표현하기 힘든 프랙털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켈다마.’
다섯 개의 꼬리가 날카로운 창과 같이 라이텔바흐를 향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라이텔바흐의 창, 아켈다마가 그의 손에서 검무를 추었다. 이내 궤적이 송두리째 붉게 물들었다. 붉은 검기 같이 생긴 그 작용은 물감 한 방울이 물컵 속에서 번지듯 순식간에 넓게 확대되었다. 그의 손에 담겼던 ‘변이된 주파수의 백파’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아켈다마의 사출물에 스며들어 함께 진동하였다. 잠시 후, 뱀의 꼬리 다섯 개는 종잇장처럼 찢어지되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나뉜 뒤 프랙털처럼 더 잘게 나뉘고 또 나뉘었다.
-끄아아아악!-
“아콜.”
휴식의 틈새도 주지 않고 라이텔바흐의 두 번째 무기가 왼손에 쥐어졌다. 돌들이 박힌 모양의 몽둥이 모양 둔기. 그는 사건의 지평선을 발아래 응축하여 속도를 극대화한 다음, 괴물의 머리 하나를 향해 아콜을 휘둘러 난타하였다.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레비아탄의 머리 하나가 잘게 빻아졌다. 수십만 조각으로 나뉜 그 잔해는 바닷물에 떨어졌고 검은 피가 북극해를 먹물처럼 물들였다.
-용서하지 않겠다-
이지를 소유한 어비씨언인 것인지 레비아탄은 인간의 언어로 된 뇌파 신호를 발산하며 악의를 폭발적으로 쏟았다.
세나케립은 지하의 권능을 담은 스위치를 눌러 리미터를 해제했다.
-자, 좀 더 날뛰어라.-
레비아탄의 머리들이 히드라의 그것처럼 증식하였다. 한 머리에서 둘이 돋아나고 다시 그 둘에서 넷이 돋아났다. 어느덧 수백 개의 머리를 가진 용 괴물이 바다를 가득 메운 흉흉한 장관이 만들어졌다.
-크아아아악-
모든 머리가 입에 에너지를 응축했다. 흑파, 오염시켜 만든 심연독, 어비쓰론 입자탄, 순수한 다크포스에 이르기까지, 그가 바다 아래에서 추출한 삼중수소를 응축해 얻어낸 강한 핵력의 핵융합 에너지까지 더해졌다.
“한 발 한 발이 던전 내부 한정으로 수소폭탄급이려나.”
라이텔바흐는 헤렘 시리즈의 나머지 무기들을 꺼내어 양팔에 둘렀다. 어깨에 하나, 전완에 하나, 손아귀에 하나씩, 총 여섯 무기가 모두 결합되었다.
“이 이상 초 진동수 백파를 노출해서는 곤란해서.”
무기에 의지하는 건 그의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범위에서 패를 잘 감추고 신속하게 끝내기 위해서라면야.
라이텔바흐는 양팔을 통해 육도류 스킬을 시전하였다. 모든 물리적 힘을 모아서 휘두르는 무력의 정점. 여기에 압도적인 양의 안티-게이팅 에너지가 담겼다. 헤렘 시리즈 무기들의 장점은 이런 그의 무식한 에너지 공세를 거뜬히 견디는 수준을 넘어 강력한 특수 이능 효력으로 발현시켜 준다는 데 있었다.
“머리들을 깨트려주마.”
굉음과 함께 북극해, 베링 해협, 태평양 일대가 반으로 갈라졌다. 해저 바닥이 그대로 벗겨졌다. 뱀의 몸뚱이는 바다와 함께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잠시 후 폭음과 함께 레비아탄의 머리들이 분쇄되었다. 자신들이 입에 문 수소폭탄급의 거품과 함께. 베이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타작마당의 곡식처럼 산산이 가루가 되었다. 어비씨언의 최후 공격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쇄되어 소멸하였다.
결착의 순간, 계측 장비를 통해 헬게이트 내부의 현상을 같이 관측하던 헌터들과 플레먼과 아퀼라는 경악하였다. 매우 낮은 해상도로 재구성한 이미지이기에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황스러웠다. 바다가 베이고 그 안의 미드가르드 뱀이 머리부터 몸까지 빻아졌다. 이교도 신화 속의 티아맛, 티폰, 요르문간드가 학살당하는 그 광경이 현실 속에서 재현된 격이었다. 플레먼은 하나님께서 친히 바다의 뱀을 죽이시리라는 예언을 연상하였다.
‘예표인가.’
주께서 반역자 아비멜렉을 여인의 맷돌로 죽이셨듯, 포악한 침략자 시스라를 여인의 말뚝으로 죽이셨듯, 장차 드러날 진짜 리워야단이 예수님에 의해 죽임당하는 미래를 예고하시기 위해 저런 일을 표적으로 보여주셨는지도 모르겠다.
[만군의 주가 자신의 양 떼 곧 유다의 집을 돌아보았으며 그들을 전쟁에 쓰는 자신의 훌륭한 말 같이 되게 하였노라.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못이 그에게서, 전쟁의 활이 그에게서, 학대하는 모든 자가 다 같이 그에게서 나왔느니라]
(스가랴서 10장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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