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104회 이념적 다툼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5.12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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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당하기 이전의 소비에트 연방은 사회주의적 국가였고 러시아는 그 몸뚱이요 본체가 된 땅이었다. 그 땅은 지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회주의 혁명이 물리적으로 실현된 표본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완벽한 실패의 예였다. 국가의 경제는 크게 침몰했으며 결국 제3제국과의 국력 경쟁에 밀려 참패를 면치 못했다.
그 폐허에서 우후죽순 일어난 것은 옛 이데올로기의 향수를 잊지 못한 잔당들이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하루가 멀다고 반란이 일어났다. 대개는 작은 규모였으나 종종 큰 눈덩이로 불어나는 경우도 발생했다. 세계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비록 패배했다지만 세계의 한 축을 제패했던 이데올로기적 경쟁자. 그것을 감당하여 소화하기란 만만한 임무가 결코 아니었다.
숱한 반란이 일어났고 그들은 참혹히 진압당하거나 정체를 세탁한 채 도주하여 패잔병이 되었다. 그러나 바퀴벌레를 박멸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듯, 도주자들은 다시 사상을 퍼뜨렸고 선동을 일삼았으며 세계정부에 반하여 기치를 세웠다. 정부의 처지에서는 끝나지 않는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았다.
헬게이트의 등장은 이 지루한 술래잡기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다주었다. 세계정부도 국력이 약화하여 휘청거렸으며 끝내는 통합을 유지하지 못한 채 명목만 연합된 열 개의 권역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반란군과 반정부 선동자의 창궐지인 시베리아는 반사 이익을 누렸는가 하면 그건 그렇지도 않았다. 역병 형 헬게이트가 번지는 바람에 이 땅 역시 격리되어 세계로의 영향력 확장을 차단당한 것이다.
게오르그는 그런 땅에서 힘겹게 투쟁을 이어가던 이들의 후손으로, 흔하디흔한 그 도당 중 평범한 하나였다. 그의 곁에는 동지들밖에 없었으며 주기적으로 일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도망치기를 반복한 탓에 그 동지 관계도 종종 물갈이되었다. 그에게는 안정적으로 발붙일 땅이 없었다. 성격 자체는 활달하였으나 삶의 배경이 이런 탓에 강제적으로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그런 그가 라이텔바흐의 눈에 들어온 이유는 ‘가소성’ 때문이다. 사람의 특성을 기계적으로 예지하는 재능이 탁월한 라이텔바흐는 이 사람의 성정을 몇 번의 대화 및 연설 방식만 보고도 유추해 냈다. 다른 혁명가들은 필요 없다. 그들 가운데 불순물과 극단적인 종자를 ‘웨이브’가 잘 걸러내어 줄 터이고, 그 뒤에 남은 잔당들을 흡수하여 온건하게 통제할 재목이라면 저 남자가 적격이리라.
원정대와 게오르그의 동료들은 며칠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종종 오가는 이들이 있었는데 역시나 게오르그의 진영과 전선을 함께하거나 공통 분모가 존재하는 무리였다.
플레먼은 이런 류의 사람들과의 교류가 익숙하지 않았다. 일단 세계정부의 대대적 숙청 때문에 양지에서는 혁명적인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플레먼의 성향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런 이들과는 전혀 맞지가 않았다.
교류와 교제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 온 많은 무리가 끼어들었다. 그들은 몇 번의 의견 충돌 과정에서 다시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라이텔바흐의 대화의 장에는 몇몇 인간들이 운명적으로 선별되어 남았다. 게오르그는 그 과정에서 자기네 진영의 주도적 위치에 세워졌다. 원래는 그의 입지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라이텔바흐라는 사람의 중재와 통제로 인해 자연스럽게 게오르그가 발언권을 많이 얻었고 차차 한 진영의 주축이 되어갔다.
결과적으로 가장 마지막까지, 가장 깊숙한 대화의 장에 남게 된 사람은 게오르그와 아퀼라였고, 원정대의 대원들은 그들을 지켜보는 관중의 자리에 앉았다. 사상적으로 방향성이 뚜렷한 사람이라고는 둘뿐이었고, 플레먼은 워낙 소극적이라 자기 의견 피력에 수동적이었으며, 라이텔바흐는 애초에 자기 목적을 위해 양쪽 모두를 이용할 작정이라 관망자를 자처했다.
사실상 아퀼라와 마지막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사회주의자는 게오르그뿐이었다. 나머지와는 아예 대등한 인격적 의사소통이라는 전제가 잘 성립하지 않는 듯했다. 평행선도 지나치게 먼 평행선이었다. 그러나 게오르그만은 토론다운 토론을 수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가 좋을 수는 없었다. 마치 개와 고양이의 대립을 보는 듯했는데, 이는 필연적인 이치였다.
아퀼라는 북미 지역 출신으로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시도되었던 자유민주주의의 실험장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본인은 그 시대를 살지 못했으나 혈통으로서, 그리고 정신적 계승으로서 온전히 그 총체를 이어받았다. 그는 현존하는 독립운동가 중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적 본질을 그나마 제대로 이해하는, 거의 유일한 자였으며 반정부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온건함과 건전함을 유지하였다.
그가 높이 평가하는 가치는 개인의 자유, 특히나 양심의 자유로, 바로 이 가치를 짓밟은 죄목으로 인해 세계정부를 정죄하는 바였다. 비록 세계정부가 사유재산권을 폐지하지는 않았다지만 (이것은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원칙 덕분에 라이텔바흐나 발레리안 같은 위험인물도 경제적 영향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 점 하나를 변명 삼아 세계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퀼라는 그러한 분명한 신념 아래서 이미 세계 각지의 많은 동맹자들과 협약을 맺었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구했으며 실질적인 성과도 거두었으며 음지에서 영향력을 확장하였다. 그는 입만 산 몽상가가 아닌 실천적인 행동주의자이기도 했다. 동시에 선을 지킬 줄 아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점은 세계 단일 정부라는 그릇된 오행(誤行)을 바로잡고 민족과 영토의 경계선을 회복한 뒤 적절한 균형 아래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체계를 정착시켜 모든 민족에 이식하는 것이다.
반대로 게오르그는 아무래도 자라난 배경의 영향 때문인지 평등의 가치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 볼셰비키 혁명의 주동자들과 큰 차이가 여럿 있었다. 그는 전체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아무래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류의 전체주의인 제3제국과 그 후임 시스템인 세계정부의 폐해를 몸소 체험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이가 아직 젊어서 과거의 멸망 전인 소비에트가 어떠한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런 조건이라면 사실 과거 자신들의 과오는 돌아보지 못한 채 향수에만 젖어 현재의 체제에 반대하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옛 조상의 전철을 다시 밟기가 매우 쉽다. 다만, 그는 그러지는 않았다. 그는 정직하게 소비에트 여기 실패의 사례임을 인지했다. 그런 유연성이 라이텔바흐가 눈여겨 본 부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어떤 방정식을 실력 부족한 학생들이 풀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 방정식의 의미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라’라는 신념을 분명히 가졌다. 즉 과거의 시도가 사회주의적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해답 자체가 없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실 그는 신념 자체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의 가소성이란 필요에 따라 자기 사상을 변경할 줄 아는 재능이었다. 그가 재능이나 외모 면에서 평범해 보임에도 결코 범부로 분류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고집스러운 인간의 속성상 자기 고정관념을 꺾기란 쉽지 않으니까.
게오르그에게 있어서 과거의 이념적 유산이란 틀린 부분을 고치고 또 고침으로써 올바른 정답으로 나아가야 할 미완성품이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적대 진영의 장점도 얼마든지 흡수할 의향이 있었다. 그것이 반대편 사상들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타 진영은 그저 장점을 취해 집어삼킬 부품 정도로 여긴다는 점에서는 그도 본질은 혁명가였다.
아퀼라와의 논쟁에서 그는 쉽게 밀리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자유민주주의 시스템 역시 실패한 사례임을 명확하게 꼬집을 줄 아는 영악함을 지닌 덕분이었다. 그렇다. 과거의 미합중국 역시 멸망 당했다. 세계 전역에 자유민주주의를 심으려 했으나 제3제국의 도약하는 권능 앞에 밀려났고 기회를 박탈당했다. 만약 승리했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며, 세계는 부흥과 번영을 누렸으리라고 아퀼라 입장에서는 목이 터지라 강변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게오르그는 그것이 무의미한 가정법임을 정확히 지적했다.
단호한 결단력과 연합된 힘을 위해서는 강력한 단일 통치 체계의 존재가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는 명목하에 힘을 분산하고 안전장치를 만들어두면,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에 제대로 책임을 지지 못하리라. 중우정치에 빠질 것이며 무절제한 상태에 이를 것이고, 결국은 강자에 의한 약자의 수탈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것이 그의 논지였다.
물론 게오르그는 중우정치의 위험성과 처참함을 맹렬히 정죄하는 동시에, 엘리트주의의 위험성도 경계했다. 소비에트의 역사도 결국은 민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힘을 가진 엘리트들에게 권력을 몰아준 실패의 장이 아니었던가. 그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수정 사상을 강구하는 중이었다. 정말로 통치가 민중을 잘 대변하되, 전체주의에 이르는 지경이 되지 않는 방법. 현실에서는 그 답을 찾기 어렵겠지만, 여전히 그는 그 길을 모색하기를 포기치 않았다.
또한 그는 적극적인 의미의 차별 철폐를 원했다. 신분, 재산, 계급에 따른 차별을 철폐한다. 제3제국은 이를 정면으로 무너뜨리는 만행을 범했으니, 그가 이 목표를 염원으로 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아퀼라가 추구하는 이상도 인간의 존엄성의 형평을 추구하기에 이런 면에서는 둘의 의견이 교차할 작은 창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게오르그는 자유로운 시장이란 개념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자유란 결국 자연적인 평등 붕괴를 방조하는 방패가 되리라 보았다.
헌터들은 그 토론의 장을 보며 추억했다.
“저런 일은 의외로 자주 있던 패턴이야.”
라울은 플레먼에게 귀띔해 주었다.
“자주 있었다니요?”
“인간은 절대적인 위력의 원수 앞에 놓인 약자가 되었을 때,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일시 휴전을 맺을 수 있지.”
세계 대전 이후 임한 암흑의 시대, 이 배경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극명히 대치되는 양극단 출신이 우스꽝스러운 임시 동맹을 맺는 현상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었다. 헌터라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부 견제 세력이 나타나기 전에도 정부를 향한 봉기의 준동은 숱하게 있었고, 무능한 세계정부에는 그들을 일일이 타격할 실력이 부족했다.
북미 대륙 또는 그 영향을 받은 서구 진영의 후손 가운데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들이, 유라시아 대륙 동부를 차지했던 사회주의자의 후손과 더불어 웃픈 동맹을 맺는 일이 드물지 않게 발생했었다. 헌터들도 라이텔바흐의 동지로서 그러한 동맹들을 곁에서 지켜보았고 때로는 포섭하기 위해 살펴보기도 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 간의 대화는 매우 불안정했다. 공산주의자는 제3제국과 같은 파시즘은 허락될 수 없으며, 자본가들의 횡포는 결국 동일한 형태의 불합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보았다. 가난한 자들을 향한 수탈이야말로 그들이 지적하는 절대악의 핵심 포인트였다. 그래서 그들은 생산 수단을 민중에게 돌리기를 추구하였고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은 쉬이 양보 되지 않았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체계는 현 세계정부 치하의 사상적 압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악을 몰아내고 그 위에 다시금 중앙 집권적 계획 경제를 세운다면, 또다른 유형의 악이 대체제로 나타나는 격이라고 그들은 판단했다. 그들의 욕망은 투명하고 자유로운 투표, 그리고 시장이었다.
물론 세계정부라는 공적(公敵)이 여전히 건재하기에 이념 다툼은 현실적으로 당장은 사치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현실이 있었기에 종종 내부 분열은 협정으로 일단락되었다. 다툼이 봉합된 원동력은 그저 공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합동 작전 본부를 어설프게나마 세워 이원화된 지휘부를 가지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실행이 제대로 되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결국, 생존이라는 본능을 동력 삼는 동맹이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것이며 조금이라도 숨 쉴 틈이 생기면 분열의 기미는 다시금 올라왔다.
이런 패턴을 숱하게 보았던 헌터들은 이번 대화도 그렇게 흘러갈지 면밀히 바라보았다. 그들의 리더인 라이텔바흐가 주목한 사람들이니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만일 저들이 자기들의 이념적 태도를 양보하고 현실을 바르게 인식할 줄 안다면, 더 나아가 타협점을 발견한다면, 재미있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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