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106회 화평케 하는 자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5.12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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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퀼라나 게오르그가 성경의 하나님에 대해 아는 바가 있더라면, 나아가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라도 있었다면, 대화는 조금 더 쉬워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같은 성령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비록 육신적인 생각 속에서의 이념과 가치관은 상이하게 충돌한다고 할지라도, 동일한 그 성령님께서 중재해 주실 수 있으리라. 그리스도인은 그 시민권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으므로, 땅의 것을 두고서 논쟁하더라도 그 시선을 다시 하늘로 교정하면 싸움은 중재될 수 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시작점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오늘날의 세상은 신을 철저히 몰아내었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더욱더 확실하게 발을 붙일 틈마저 빼앗겼다. 그나마 세계정부의 횡포에 반대하는 뜻있는 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일어났으나 그들의 의로움이란 상대적인 것이며 불완전하고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 아퀼라도, 게오르그도, 둘 다 그런 경우에 속한다.
더 큰 문제는 플레먼의 용기가 부족함에 있었다. 가뜩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선포하기를 두려워하는, 영적으로 나약한 세대 가운데 거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모자라 마음껏 증인 노릇을 하지 못하게끔 하는 ‘입술의 봉함(封函)’이라는 저주를 받았다. 그런 데다가 플레먼 개인의 성정 또한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나약한 성격이다.
이런 마당에 둘을 화해의 시작점으로 모아들일 수 있겠는가.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절대적인 진리의 장으로 부르는 것인데, 그 과정의 허들은 너무나도 높으며 제대로 이뤄질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파리를 잡겠다고 박격포를 쏘는 격이며, 증상을 완화시켜야 할 내과 의사가 종양 전체를 근치적으로 수술하는 집도의가 되겠다고 칼을 드는 격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라면 모를까, 자신은 정식으로 라이텔바흐의 초대를 받아 토론의 관계자가 되었으며, 아퀼라와 게오르그는 치열하게 겨루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관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둘 모두 진지하니 자신도 책임감을 갖고 답을 주어야만 한다.
‘인간의 어떤 이념도 하나님이 하신 진리의 말씀보다 위에 설 수는 없어.’
설령 가장 근치적인 해결책인 복음을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부수적인 명령들이 권위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신자들이라 해도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할 책임이 없지는 않다. 도둑질하라는 명령이 주의 계명 가운데 하나라고 해서, 주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이 도둑질을 마음껏 해도 되는 면제권을 가진 것은 아니듯 말이다.
‘하지만 나 또한 똑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비판을 하는 자는 자신에게 동일한 정죄의 칼날이 돌아올 것을 늘 각오해야 한다. 비겁하게 자신의 대들보는 감춘 채로 상대의 티끌에 현미경을 들이댄다면 동일한 무서운 잣대가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를 알기에 플레먼은 설령 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자신보다 영적으로 낮은 존재로 깔보며 대할 수 없었다. 감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예수님의 명령은 서로를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어.’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들을 품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명령의 범위는 이웃에게로 확장되며, 심지어는 원수들에게까지 뻗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그분의 날에 그분의 집행에 맡겨두고 지금 이 순간에는 최선을 다하여 사랑의 명령을 지키고자 씨름해야 마땅하리라.
‘나는 육신의 정욕대로 남을 깎아내리며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1). 지금 그에게는 이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라이텔바흐처럼 똑똑한 사람이라면 탁월한 언변으로 서로 다른 진영의 인간들을 마음껏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그런 식의 접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성령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그러한 지식과 힘의 논리가 통하겠지만, 적어도 열매 맺어야 하는 책임을 지닌 자신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비본질적인 영역에서는 관용이 필요해. 하지만 본질적 영역에서는 뜻을 굽히지 않겠다.’
아퀼라에게도, 게오르그에게도 부분적으로는 진리의 편린과 일치하는 방향성이 있다. 특히나 게오르그의 경우, 그가 자라난 배경인 러시아 지역이 근본적으로 성경에서 벗어난 비뚤어진 사상에 절여져 있었음을 감안할 때, 개인으로서는 대단히 성찰이 뛰어나며 마음이 열린 편이라고 봐줘도 된다. 특히 그는 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믿을 뿐 아니라 인정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이전 시대 소련이 비참하게 멸망당한 이유가 신을 일부러 지우려 한 만행 때문도 있으리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그런 부분적으로나마 올바른 식견을 하나의 교두보로 삼는다면 조심스럽게 대화의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여러분에게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음을 이해합니다.”
그는 토론에 참여하되, 먼저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미리부터 답을 정해놓고 방향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대화를 유도신문으로 틀어 함정에 빠트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경청하였다. 인격적인 태도로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였고 다행히 그 진심은 조금 전달된 듯했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고 한들 인간에게 정말로 가장 중요한 참된 가치를 우리가 영원히 놓치게 된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먼은 마음속에 강직한 말뚝을 세웠다. 그는 인간의 이념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의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들이 주장하는 바가 절대적인 진리보다 더 중요합니까?’라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은 쥬오디아나 신티를 달랠 때에나 쓰이던 방법으로 두 사람 모두가 마음속으로는 진짜 정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경우에나 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을 설득하려니 더욱 막막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누구나 양심을 넣어주셨으니, 최소한의 보편적인 접점을 잡는다면 통하리라.
“우리는 존엄하게 창조된 존재들이며,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그리고 모든 사람은 같은 혈통을 공유한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상대를 나의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말하는 데만 해도 강한 용기가 요구되었다.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압력이 존재하여 자기 입에서 진실이 분출되는 것을 짓누르는 것 같은 감각이 거듭 느껴졌다. 게오르그나 아퀼라나 라이텔바흐가 그런 눈치를 주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강요하지 않음에도 그 압력을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플레먼은 저주의 실재를 여기서 다시금 체험했다. 자신은 이 순간도 주님을 부끄러이 여기는 중이었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기에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그 와중에도 자신이 내뱉을 수 있는 부분까지를 내뱉기를 추구했다.
‘나는 세상을 반으로 나누기 위해 부름을 받은 자가 아니야.’
당장 그리스도께로 모으면 더할 나위 없이 최선이겠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겁쟁이일지언대, 최소한 이미 나누어진 것을 더 가혹하게 나누는 미련한 자가 되기만은 원치 않았다.
자유의 가치를 외치는 이에게는 이렇게 답했다.
“자유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참된 진리만이 자유를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그 얼마나 허공을 치는 무익한 싸움이겠습니까. 참된 보화를 놓친 채 헛된 것을 위해 다투기만 힘쓰다가 모두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퀼라가 전체주의에 반대하고자 인간 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 그 자체만을 놓고 보면 실용주의적으로 어느 정도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플레먼도 지독한 압제의 흉악함을 어린 시절에 잠시 목격하였기에 아퀼라의 청사진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아울러 하나님을 모르는 것 치고는 그는 독립운동가로서 나름 체계적이고 온건한 사상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멸망한 미합중국의 건국 이념이 그 뿌리에 있어서 기독교적 가치관에 맞닿아있음을 아퀼라는 알고 있을까? 설령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는 나름 실천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적 세계관과 상당 부분 나란한 방향의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 이것은 훌륭한 대화의 접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성경적 세계관이 선물해 준 자유, 법치, 공정 등의 좋은 개념들을 아무리 예찬하고 입에 달고 산다고 해도, 그 열매만 소비할 뿐 뿌리에 대하여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넘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자유만을 위한 자유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에 빠질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선물 된 이유는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경배하기 위함이지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리기 위함은 아니다. 전체주의적 압제자를 몰아내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방해받지 않기 위함이지, 우리 스스로 주인이 되기 위함은 아니다.
또한 반대로 게오르그에게는 이것을 가르쳐주어야 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진리를 먹고 살아야 합니다.”
유물사관과는 타협하지 않으리라. 흔적 같은 옅은 형태로라도 용납하지 않겠다. 이것을 서서히 관철하는 것이 관건이다. 민중과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향을 근본적으로 거세할 필요는 결코 없겠지만, 그것이 진리와 반대되는 것을 옹호하는 시작점이 된다면 교정이 요구된다.
‘하나님, 우리의 죄는 큽니다. 우리는 남을 탓할 것 없이, 각자 모두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남으로써 다 같이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자신의 길로 향했고 그 앞에서 낭떠러지를 만났습니다. 단절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인 동료 인간들과의 유대도 잃어버렸고 자신만의 정욕과 자기 의에 빠져 악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밤 주님 앞에서 드렸던 회고의 회개 기도를 다시금 마음에 새겨야 했다. 인간들이 넘어진 이유는, 교만함과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생각을 앞세웠고 그 결과 가장 악한 이념을 소유한 제3제국 손에 멸망했다. 하나님께서 징벌의 도구로써 그것들을 사용하신 셈이다.
“여러분은 러시아나 미국 지역의 자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한 피를 나눈 한 형제입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사상적인 진영에 달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지으신 분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소중하게 된 생명입니다.”
이렇게 고백함으로써 플레먼은 자신이 최소한 ‘만물을 창조하신 인격적 절대자’를 인정하는 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었다. 신이라는 개념마저도 인정하지 않도록 강요하는 세계정부 치하의 세계에서 이것은 작지만, 용기로 인정될 만했다. 정작 플레먼 자신은 자신의 용맹치 못함에 크게 분개하였지만.
“참된 자유가 무엇일까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입니까?”
그는 거듭 조심스럽게, 그러나 온유하게 질문을 던져 모두의 생각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자연 세계를 보십시오. 인간의 탐욕, 그리고 헬게이트의 흉측함과는 달리, 창조된 자연계는 올바른 질서 안에서 돌아갑니다. 그것이 아름다움이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우리 또한 법도 안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두 분 모두 가슴에 손을 얹는다면 이를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는 더욱 차분하게, 그리고 온유하게 변증을 이었다.
“내 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방종에 지나지 않지만, 선악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그 선한 뜻을 자유의지로 따른다면, 우리는 참된 존귀함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참 자유란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선한 양심을 따르는 능력입니다. 그 양심을 방해받지 않도록 억압에서 풀려나기 위해 정치적 자유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특정 정치 이념이나 목표점을 옹호하지 않았다.
“인간은 창조하신 분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평등합니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강제로 인위적인 평등을 만들어내려 할 것 없이, 인간 영혼의 가치를 그 절대적 기준안에서 사랑함으로써 평등의 자리에 나갈 수 있습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지어졌으나 진리 안에서 사랑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라이텔바흐는 친구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장면을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주시하며 기억했다.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으나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자신과 달리 탁월한 카리스마도 없으면서 온유하게 화평의 장을 펼치는 재주에 약간은 질투심도 느껴졌으나 주목할 점은 있다고 여겼다.
‘재미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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