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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107회 외계 침공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5.12 | 회차평점 0 0

 

 

 

원정대가 해당 지역에 체류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껏 거쳐온 다른 시베리아의 구역들의 경우 구조만 하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떠났었다. 그에 비한다면 이곳에서의 정류는 이례적으로 길었다.

 

 

세 명의 헌터는 리더에게 뭔가 계략이 있겠거니, 혹은 무언가 그가 탐색해야 할 사항이 있었으리라고 예상했다. 게오르그와 아퀼라, 그리고 플레먼이 나누는 대화와 토론이 예상외로 온화하고 평온한 가운데 흥미롭게 펼쳐지고는 있으나, 그것만으로 여기에서 무한정 시간을 끌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한편, 라이텔바흐도 잠잠히 기다리는 가운데 마음속에서 복잡다단한 고민들을 품었다. 그의 머리는 여러 변수를 가늠하며 열심히 연산하는 중이었다. 두 민간인 동료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 것도 그가 신경 쓸 거리가 많기 때문이었다. 변수 중에는 당연히 어디 암약하고 있을지 모르는 세계정부의 영향력, 그리고 헬게이트라는 돌발 변수들이 있었다.

 

 

‘이미 계측은 마쳤다.’

 

 

시베리아에 올 때부터 그는 에어크래프트 내에 설치된 광역 관측 장비의 도움으로 드넓은 동토 거의 전역의 기상예보를 관측하는 중이었다. 그는 평소보다 몇 배는 정밀하게 자신의 관측력과 연산력을 갈무리하였다. 다른 헌터의 수억 배 효율에 달하는 특수 연산력을 담지한 이터널셀들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려하였다. 덕분에 앞으로 5년 이내에 시베리아에서 발생할 헬게이트 현상의 대부분이 그의 계측 범위 안에 정미하게 포착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정말 거슬리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북미 구 캐나다 지역에서 겪었던 변수는 여전히 원인불명이다. 베링 해협에 발생한 예측불허의 거대 헬게이트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기는 어려운 것은 분명하나,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라이텔바흐는 무언가 ‘자연적이지 않은 변수’가 개입했음을 감지했다.

 

 

‘누구냐?’

 

 

사실 발레리안 총회장과 만났을 때, 그 친구도 경고했었다. 퉁명스럽지만 나름대로 도와주려는 기색이었지. 억지로 짜증 부리는 척하는 모습이 어설퍼서 좀 귀엽기는 했다만. 발레리안은 자신이 ‘동쪽 탑’의 잔해를 수색하면서 발견한 흔적을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외계의 존재’의 강림에 대한 증거였다.

 

 

“헬게이트가 아니다, 라이텔바흐.”

 

 

그 말을 되짚어보며 라이텔바흐는 깊이 숙고했다. 어비씨언들은 수없이 마주했었다. 666마리 최상위 개체도, 열두 기의 디싸이플급 영웅 유닛들도. 그리고 세 마리 여왕개미(타이레, 바블로니아, 이두미아)나 세미라미스, 담무스 같은 다중 헬게이트 복합 유닛들도 이제는 자주 상대해 봐서 익숙하다.

 

 

‘그 이상의 레벨이라면, 역시나 근원인가?’

 

 

헬게이트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스. 헌터들은 그것을 가상의 개념으로 ‘유사-심연’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진짜 심연, 즉 지옥이라고 부르기에는 한 술 낮은 레벨의 허술한 실체인데, 그렇다고 자연계에 예속된 무언가라고 보기에는 위험한, 애매모호한 것들. 지금까지는 항상 차원 저편에서만 도사리며 헬게이트들을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하던 것들이기에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는 설마 직접 충돌하게 되려나?”

 

 

긴장감이 들었다. 현재까지 그가 싸워온 적들 중 단순 스펙만 놓고 보면 바벨탑의 주인 더 썬이 가장 강하다. 물론 가장 ‘어렵게 상대했던 적’은 그놈이 아니라 그 흑염룡이긴 하다만. 어쨌건 최대치라고 해봐야 라이텔바흐에게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은 위협일 뿐이었다.

 

 

하지만 만일 저 건너편의 근원체들이 직접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이 세계에 강림한다면 꽤나 일이 피곤해질 것이다.

 

 

라이텔바흐는 마지막으로 레비아탄을 처치한 뒤로는 그 ‘예측불허의 외계 존재’가 개입할 수 없는 잠깐의 유예기간이 시작될 것을 예상했다. 대략 이터널셀로 연산해 보니 한 달 정도로 계측되었다. 하지만 이미 그 한 달을 넘겼고 추가로 몇 주 이상이 지나갔다. 저쪽에서 아직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뭘 얼마나 더 준비하고 있길래 잠잠한 것인가.

 

 

 

 

 

 

 

 

 

 

 

*

 

 

 

 

 

우려했던 일이 체류 8일 차에 시작되었다. 파수꾼처럼 해당 지역 주위를 망보던 헌터들은 부랴부랴 라이텔바흐를 불렀다.

 

 

“잠시 와보셔야겠습니다.”

 

 

재석의 호출에 라이텔바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야외로 나갔다.

 

 

“야단났군.”

 

 

비로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오히려 기분은 후련했다. 하지만 두 눈에 관측되는 정보는 결코 호의적인 상황으로 인식될 수 없었다.

 

 

“나를 도발하려는 모양인가.”

 

 

근 1년 이내에 점진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계측되었던 헬게이트들이 저 하늘 위에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는 중이었다. 새롭게 기획된 것 같지는 않다. 모양이나 패턴이 라이텔바흐가 관측했던 거의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계획에 없던 것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준비된 것들을 미리 당겨온 것에 가까워 보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는 헬게이트의 발생 원점은 지면이 아닌 높은 고도로 어떤 것들은 성층권에 뿌리가 박혀있었다. 나아가 실체화율이 현저히 낮았다. 분명 존재하기는 하는데,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 외로 연하다고 해야 할까? 저쪽에서 대체 어떤 꿍꿍이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플레먼 씨와 아퀼라 씨를 불러라.”

 

 

“네.”

 

 

재석은 즉시 그의 말에 순종했다. 갑작스러운 경보에 긴장하던 두 민간인은 재석의 호출을 듣고는 그의 인계를 따라 라이텔바흐에게로 이동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심호흡으로 긴장을 조절한 뒤 아퀼라가 질문했다.

 

 

“우리가 이미 예상하던 시나리오 중 하나입니다.”

 

 

“헬게이트 발생입니까?”

 

 

“보시다시피.”

 

 

아직 헌터가 아닌 아퀼라나 플레먼의 눈에는 성층권 너머에 무리를 지어 나타난 헬게이트 군집이 명확하게 관측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아주 옅게 위화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게오르그 씨와 이곳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전해야 할까요?”

 

 

플레먼이 두려워하는 음색으로 물었다.

 

 

“아마 의미 없을 겁니다.”

 

 

라이텔바흐의 눈에 현재 들어온 ‘헬게이트 사정권’은 비단 이 지역만이 아니었다. 시베리아 거의 전역에 걸쳐, 거의 10km 이내 간격으로 온 일대가 헬게이트 출몰의 위험권 아래 놓였다. 드넓은 대지 곳곳의 상공에 위험물들이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흥미롭게도 그것들은 완전히 개별 행동을 하기보다는, 100개에서 200개 정도가 하나의 그룹을 이루어 군집(cluster)을 이루어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였는데, 마치 그 모습이 암세포들이 뭉쳐진 조직 군체처럼 보였다.

 

 

“어디로 도망쳐도 사정권 안에 들어갈 겁니다.”

 

 

최강의 헌터는 잠잠히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어차피 사람들 모두를 구한다는 것은 그의 안중 밖이었다. 이왕 모두를 구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핵심은 ‘어느 범위만큼’을 보존해야 하며, 그 범위를 ‘어떤 기준 아래에서’ 선택해야 하느냐이다.

 

 

‘몇 주 뒤에 벌어진 전세계적 웨이브에는 변동 사항이 없어.’

 

 

이것이 참으로 다행인 점이다. 저쪽의 외계 간섭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도 아주 중요한 흐름을 변경할 권한까지는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미리 그 흐름을 두고 라이텔바흐의 ‘계략’과 더불어 씨름을 하고자 접촉을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쪽에서는 라이텔바흐가 숨겨둔 수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이 발동되면 자신들이 준비한 웨이브가 어떻게 역이용될지 모르니, 어떻게든 라이텔바흐 본인과 접촉하여 정보를 캘 필요가 있겠지.

 

 

또 한 가지, 저쪽에서는 장차 있을 글로벌 헬게이트 웨이브의 방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옮겨오기 위해서 ‘북쪽 바벨탑’의 권능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북쪽 탑을 신속히 부수어야 할 당위성이 더욱 확실해진다.

 

 

요컨대 지금 여기서 생긴 돌발 현상 자체는 장차 임할 더 중요한 싸움에는 큰 변수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웨이브 때 활동할 시베리아 지역 사람들을 이왕이면 좋은 사람들로 남겨두는 편이 좋다. 라이텔바흐 본인의 계획을 잘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할 자들은 굳이 그 중요한 판에 끌고 갈 필요가 없으리라.

 

 

가혹하리만큼 계산적이긴 해도 라이텔바흐의 본질은 이런 전략적 계산을 무자비하게 세울 줄 아는 인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플레먼은 두 차례 헬게이트에 휘말린 경험을 회상하며 떨리는 마음을 애써 통제하였다. 자신이 저 친구처럼 용맹한 걸웅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언제나 이런 점이 아쉬웠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멀쩡하면 됩니다.”

 

 

라이텔바흐는 태연스레 결론을 내리며 친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원정대 리더로서의 명령입니다. 지금부터는 제 손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하지만.”

 

 

“모든 건 전문가인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당신은 절대 내게서 안 떨어지면 됩니다. 그게 당신의 의무입니다.”

 

 

그 순간, 플레먼 본인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나 라이텔바흐의 몸으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안티-게이팅 에너지가 마중물처럼 끌어올려져 발산되는 중이었다. 그 힘은 플레먼을 포함하여 약 3m 거리 이내에 고도로 농축되었다.

 

 

 

 

 

이윽고 원정대 일행이 위치한 곳에서 수직으로 10km 떨어진 좌표에 모인 백 기 이상의 헬게이트들이 융합 축퇴 작용을 일으켰다. 그제야 일반인들의 눈에도 위협적인 유사-심연의 자녀들이 관측되기 시작했으니, 곧 하늘이 어두워지며 해와 달과 별의 빛들이 완전히 차폐되었다. 종말의 재난을 연상케 하는 기괴 현상이 임하자, 사람들은 공포에 잠식되었다.

 

 

“퇴치 준비하자.”

 

 

“오케이.”

 

 

테무친의 신호에 라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에어크래프트 위에 올라탔다. 되도록 수송기가 오염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으나 어차피 시베리아 전역이 오염되게 생긴 판이니 불가피하다.

 

 

“저도 돕겠습니다.”

 

 

재석이 제안했으나 곧바로 라이텔바흐가 만류했다.

 

 

“지상에서 수비를 도와라. 나 혼자서는 움직이는 데 제한이 있으니까.”

 

 

라이텔바흐는 자신이 손으로 꽉 쥐고 있는 플레먼 쪽으로 눈짓을 주었다.

 

 

“아, 이해했습니다, 당회장님.”

 

 

재석을 위한 무기들을 담은 웨폰박스들이 사출되었다. 뼈의 재질로 된 것처럼 생긴 창들이 그 안에서 나왔다. 그 무기들은 마치 러시아 전통 인형처럼 껍질이 벗겨지며 내부에서 더욱 긴 줄기가 나오기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상공에 닿을 만큼 기다랗게 전개되었다. 아울러 많은 잔가지가 골창(骨槍)의 몸체에서 뻗어 나와 여러 방향으로 뻗쳤다.

 

 

 

 

 

이윽고 침공이 개시되었다. 헬게이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략을 펼쳤는데 라이텔바흐는 그 방식을 감지하자마자 식은땀을 흘렸다.

 

 

‘내 방식을 해킹하였다? 예상 너머의 강적이군.’

 

 

얼마 전까지 라이텔바흐가 인위적으로 헬게이트 권역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서 원격에서 요격하던 방식. 그것을 역이용하여 이번에는 헬게이트들의 복합체가 자신의 권역을 억지로 길게 늘여 아메바의 촉수처럼 뻗어내었다. 원래라면 도저히 사정거리 상 닿을 수 없던 침식 권역이 순식간에 일행이 있는 지상으로 하강하였다. 플레먼은 눈을 감았다. 동시에 라이텔바흐가 실시간으로 내뿜던 안티-게이팅 파워의 농밀함이 매우 선명하게 느껴졌다.

 

 

“서둘러라, 테무친, 라울.”

 

 

라이텔바흐는 플레먼의 어깨를 쥐지 않은 다른 한쪽 손 위에서 불꽃처럼 찬란히 빛나는 어떤 정체불명의 에너지를 피워내었다. 황금빛의 그 옅은 불꽃이 순식간에 전이되어 아퀼라의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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